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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악단] “평양은 찬송가를 믿지 않는다” (김형협 감독, Choir of God, 2025)

독일의 사상가 칼 마르크스가 1843년 쓴 [헤겔 법철학 비판]에는 그 유명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정확한 문장은 이렇다. “종교는 억압된 피조물의 탄식이며, 심장 없는 세상의 심장이고, 영혼 없는 현실의 영혼이다. 이것은 인민(人民)의 아편(阿片)이다.” 이 말은 오랫동안 회자되며 공산주의 국가에서 종교를 탄압하는 논거가 되었다. 하느님의 은총이 사라진 듯 보이는 그곳에서도, 종교는 마약처럼 사바세계를 떠나지 않았다. 지난 연말 개봉된 영화 <신의 악단>은 세상에서 가장 폐쇄된 동토의 왕국에서 펼쳐지는 복음의 성가를 다룬다. 2억 달러를 위한 ‘메소드 연기’ 영화는 북한이 처한 딜레마에서 시작된다. 국제적 경제제재로 달러가 절실한 북한에 달콤한 제안이 온다. 평양에 교회를 세우고 인민을 모아 부흥회를 연다면 2억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것. 체제 수호의 최선봉인 보위부는 고민에 빠진다. ‘절대 지도자’가 엄존하는 땅에 주님의 전당이라니. 하지만 궁하면 통하는 법. 보위부는 외국 지원단체의 현장 확인 전까지 3주일 동안 ‘가짜 신도’들을 양성하기로 한다. 성경을 읽히고, 찬송가를 익히고, 통성기도의 ‘연기’를 몸에 숙달시킨다. 그야말로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메소드 연기’의 시작이다. 아이러니가 만들어내는 코믹함과 장엄함 영화는 익숙한 현실 속에서 펼쳐지는 상황 반전의 묘미를 살린다. 불순세력을 잡아 가두던 보위부가 이제는 외화벌이를 위해 ‘반혁명 작태’인 예배를 완벽히 수행해야 한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7번방의 선물> 각색에 참여했던 故 김황성 작가의 유작이다.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고는 하나, 완전히 매칭되는 실제 사건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하교회의 전설이나 남쪽 종교인들의 선교 활동이 두만강을 넘어 북녘에 온기를 전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실제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평양을 수차례 방문해 김일성에게 성경을 선물했고,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는 여전히 ‘쇼윈도’ 기능을 수행하며 평양에 서 있다. 영화는 이 차가운 성...

[굿뉴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말해 봐! (넷플릭스, 변성현 감독, Good News,2025)

이 영화가 조금 일찍 공개되었다면, 아마 내년 봄 열릴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부문) 한국대표로 ‘어쩔수가없다’와 각축을 펼쳤을 것 같다. ‘굿뉴스’에는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옹골차게 들어차있다. ‘불한당’으로 언젠간 큰 사고를 칠 것 같은 변성현 감독이 마침내 ‘굿뉴스’에서 폭발한 것이다. 알려진 대로 지난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는 실제 발생한 사건을 모티브로 극화한 것이다. 프랑스를 휩쓴 68학생운동은 일본에 적군파를 탄생시켰고, 공산주의 혁명을 꿈꾸는 일단의 몽상가들은 직접 행동에 나선다. 1970년 3월 31일,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신좌파 일당은 여객기(JAL 요도호)를 하이재킹한다. 그들은 조종석으로 달려가서는 다짜고짜 평양으로 날아갈 것을 명령한다. ‘북조선’이 그들의 혁명의 전진기지로 삼기에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비행기는 (일본)국내선이었고, 당시 북한과는 수교는 고사하고 북한으로 가는 비행길도 모른다. (관제를 해야 하는지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른다!) 게다가 그 사이에는 ‘한국’이라는 절대변수가 있었다. 변성현 감독은 이 난해하고도 난감한 국제적 난기류를 어떻게 헤쳐 나갈까. 흥미진진하다. 한반도로 기수를 돌린 비행기. 그들에겐 항로도 없고, 관제사의 지시도 없다. 이 긴박한 상황에 중앙정보부에서는 신박한 작전을 펼치기 시작한다. 중정부장 박상현(설경구)의 장자방인 ‘아무개’(설경구)가 기상천외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이다. 우선은 실력 있는 공군 관제사 서고명 중위(홍경)로 하여금 비행기 무선통신을 인터셉트하여 기수를 휴전선 쪽으로 돌린다. 그들이 내놓은 아이디어는 이 비행기를 김포공항에 착륙시키는 것이다. 그곳이 평양공항이라고 속이고. 어떻게? 세상 속이는 것이 본업(!)인 트릭의 대가 ‘영화감독’(윤경호)을 데려와서 지상최대의 쇼를 연출하는 것이다. 평양공항이 된 김포공항에는 북한인민군과 한복차림의 인민으로 분장한 엑스트라가 대거 동원된다. 이제 비행기에 탄 납치범 일당들이 속아...

[리멤버 미] 애니메이션 ‘요덕스토리’ * True North *

  오래전 1998년 12월 20일, KBS 1TV ‘KBS스페셜’에서는 ‘1998년 지금 북한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일본의 한 단체가 그해 9월 무렵의 북한 모습을 몰래 찍은 모습이었다. 1시간 남짓의 영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중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살기위해 먹을거리를 찾아 시골장터 진창을 뒤지는 어린아이, ‘꽃제비’의 모습이었다. 이후, ‘남과 북’이, 세계정세가 어떻게 변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꽤 많은 서구 액티비스트와 영화인들이 북으로 직접 들어가서 북한의 실상을 필름에 담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북한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의도적이었든지, 의식적이었든지 남쪽의 사람들은 북쪽의 진실을 불편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진실이 어떻든 간에 말이다. 29일 개봉하는 영화 [리멤버 미]는 애니메이션이다. 그것도 일본의 영화감독이 만든 것이다. 2020년 프랑스 앙시에서 소개된 기막힌 작품이다. 영화는 북한의 한 어린이, 그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년은 아마도 능라도5.1경기장에서 카드섹션에 동원되어 연습 중인 모양이다. 북한의 장엄한 집단광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그 일사불란한 장면들 말이다. 평양의 중산층 아파트에 사는 이들 가족은 ‘일본’에서 북으로 온 북송동포인 모양이다. 아버지는 훌륭한 통역가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어느 날 이들 가족은 한밤에 트럭에 실려 간다. 아버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소년은 여동생, 엄마와 함께 어디론가 끌려간다. 산길을 꼬박 달려 도착한 곳은 ‘조선인민경비대 2915군부대’이다. 함경도 요덕수용소로 알려진 곳이다. 이곳에서 10년. 소년과 가족의 지옥 같은 수용소 생활을 보여준다. 위대한 조국을 배신한 죄는 고된 노동과 헌신으로 씻어야한다는 것이다. 상상을 초월할 방식으로 말이다. ‘꽃제비’와 ‘요덕스토리’는 한국의 식자(識者)층은 다 안다. 다만, 언급하기를 꺼려한다. 통일의 저해요소라고 외면하려할 뿐이다. 김태균 감독의 [크로싱]과 곽경택의 [태풍...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일본에서 분단국 민족으로 살아남기

  (2021.12월) 9일 극장에서 개봉되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크게 보아 일본 식민지배의 부산물이며, 좁혀보면 남북 분단의 비극이다. 해방이 된 후 일본에 체류하던 우리 민족은 수십만에 이른다. 그들은 고향을 찾아, 모국을 찾아 현해탄을 건넌다. 그런데 건너지 않은/못한 사람들이 더 많다. 그들이 나이 들고, 그들이 일본에서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이른바 재일동포 2세, 3세, 4세, 5세로 이어지며 그들의 정체성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들의 DNA와 그들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그 정서를 느낄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바로 김철민 감독의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이다. 이 작품은 일본의 조총련 사람들에게 카메라의 초점을 맞춘다.  사전적으로 말해 ‘재일조선인’은 일본 식민 지배의 결과로 일본에 거주하게 된 조선인과 그 후손들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의 식민 지배 35년간의 뼈아픈 역사를 지나자마자, 그들이 맞닥뜨린 비극은 남과 북의 분단과 계속되는 이념의 대립이었다. 조국의 상황에 따라 일본에 남은 재일조선인 사회는 양분된다. 남쪽을 지지하는 재일대한민국민단(‘민단’)과 북한을 지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이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기간에 이들을 대하는 시선을 분명했다. 북과 교류하는 ‘총련’계는 국가보안법을 내세워 철저히 외면한 것이다. 그리고 ‘민단’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박정희 독재정권은 국내에 유학 온 민단의 청년들을 체제 강화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이들을 북한의 지령을 받아 남한에 암약해 온 ‘유학생 간첩단’으로 조작한 것이다. 1975년의 간첩조작사건이 바로 그것. 이들 130여 명의 희생자 중 재일조선인 2세인 강종헌, 이동석, 이철 등이 영화에 등장해 당시를 증언한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일본의 조선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극심한 차별 속에서 자라왔다. 강해지거나 나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름을 남긴 인물을 숱하다. 최양일 감독의 작품들, 정의신 감독의 <용길이네 곱창집>, ...

[그림자꽃] 나는 북조선의 공민이다 (이승준 감독,2021) * Shadow Flowers *

    1989년 당시, 한국의 대학생이었던 임수경이 방북하여 김일성 주석과 포옹하는 장면이 뉴스 화면을 장식하면서 한국 사회에 일대 핵폭탄급 혼란이 야기됐다. 이후 북한에 대한 우호적, 체제 옹호적 발언이 나오면 다른(!) 진영에서는 조건반사적으로 “그렇게 좋으면 북한으로 가라!”라는 말이 나온다. 남쪽의 자유민주주의를 만끽하며 북쪽의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사람을 ‘빨갱이’라 지칭하며 북송을 권하는 ‘분리의 레토릭’이다. 그런데, 이게 가능한 일일까? 가고 싶다고, 보내고 싶다고 갈수 있는 국가시스템일까? 오늘(27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그림자꽃>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특별한 경우를 다룬다.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탈북자’이야기이다.  <그림자꽃>은 한 ‘탈북’인사를 뒤쫓는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신이 ‘탈북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김련희라는 사람이다. 1969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련희는 1993년 결혼하여 남편과 딸 하나를 두고 평양에서 행복하게 살았단다. ‘북한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주부였던 그는 건강 문제로 고생한다. 다행히 중국에 친척이 있어 치료를 위해 중국으로 나올 수 있었단다. 하지만 엄청난 병원치료비에 절망한 김련희는 북으로 돌아갈 생각이었고, 북으로 가기 전 선양의 조선족 식당에서 잠깐 일을 한다. 여기서 한 달만 일해도 북한에서는 큰돈이라니. 그런데, 그곳에서 그만 운명이 달라진다. ‘브로커’가 등장한 것이다. “남한에 가서 몇 달만 일하면 더 큰 돈을 벌수 있다”는 말에 ‘속아’ 10여 명의 북한 동포들과 함께 ‘탈북자 그룹’이 된다. 중간에 마음이 바뀐 김련희는 한국에 못 가겠다고 했지만 이미 북한여권을 빼앗긴 상태이고, 순진하게도(!) 남한 사람에게 자신의 사정을 잘 설명하면 돌려보내줄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렇게 김련희는 2012년 9월 16일 한국으로 들어왔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탈북자’의 한국 사회 정착이 시작된다. 물론, 김련희는 자신은 여기 잘못 온 사람이며, 한...

[강철비2: 정상회담] 잠수함은 춤춘다 (양우석 감독, Steel Rain2: Summit, 2020)

  양우석 감독이 400만 관객을 불러 모았던 <강철비>의 속편 <강철비2: 정상회담>을 내놓았다.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한반도정세와 트럼프라는 예측불가의 미국대통령이 엄존하는 2020년 여름에 등장한 가장 정치적인 드라마이다. 스스로 ‘밀덕’임을 자처하는 양우석 감독이 웹툰을 통해 선보인 한반도전쟁 가상시나리오를 다시 한 번 영화로 구현한 작품이다.  영화는 한국 대통령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북한 땅에서 북미 평화회담이 성사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지난 30년 동안 북한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핵에 올인 했고, 그것을 지렛대로 국제사회로부터 체제유지를 보장받으려한다. 힘들게 마련한 핵무기를 미국과의 평화협정이라는 미명하에 전격적으로 내놓기로 한 것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가장 좋은 그림 아닌가? 그런데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북핵 너머, 아시아의 패권을 노리는 중국과 일본의 오랜 대결, 독도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갈등, 복잡한 정세를 관통하는 팍스 아메리카의 힘 등이 복잡하게 뒤엉켜 일촉즉발의 위기로 달려가는 것이다.  양우석 감독은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국제역학 관계를 겉으로 드러나는 야욕과 밑바닥의 음모를 적절히 뒤섞는 방식으로 비교적 단선적으로 처리한다. 중국은 의뭉스럽고, 일본은 야심에 가득하며, 미국은 직설적이다. 그리고 북한은 -애처롭게도- 칭얼댄다. 이런 판국에 한국이, 한국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것은 얼마 없다.   양 감독은 각각의 음모론을 복잡한 동아시아 정세로 깔아놓고 신속하게 북미회담을 성사시킨다. 적국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이 이렇게 허술한 경호체제 속에서 열리나 의심할 틈도 없이, 북한의 지도자가 이렇게 권력기반이 약한가 딴죽을 걸 여유도 없이 북남미 세 정상은 백두호에 유폐되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속전속결로 사태를 장악한 호위총국장은 이곳에서 부함장의 카리스마로 자멸의 길로 들어선다.   양우석 감독은 전작 <강철비>를 통...

[바다로 가자] “내 고향 함경남도 단천군” (김량 감독, 2019) * Forbidden Fatherland *

  남북분단의 역사에 있어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는 1998년,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어간 일일 것이다.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는 이벤트였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북한(강원도 통천군 아산리)이 고향인 정 회장의 수구초심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잠깐 이웃나라를 보자. 중국-대만의 관계에서도 반백년 전 공산주의자를 피해 대만 섬으로 피난 온 자본주의 세력들도 대만에서 기업을 일구고 돈을 벌더니 하나씩 고향(대륙)으로 돌아가서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더 신기한 것은 대만(국민당) 군 장성들도 전역한 뒤 노후를 떠나온 고향-공산주의 중국-에서 보낸다고 한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 혹은 죽기 전 갖게 되는 소망인 모양이다. 여기 그런 심정을 엿볼 수 있는 영화가 있다. 김량 감독의 가족다큐멘터리 <바다로 가자>라는 작품이다. <바다로 가자>는 김량 감독이 자신의 아버지의 삶을 카메라에 담는다. 동해 바다가 보이는 함경남도 단천군이 고향인 아버지, 김주영은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 만 18살 때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난 인민군이 아니야. (대한민국) 국군에 입대했어.”란다. 북으로 진군한 국군에 입대했고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 때 남으로 온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부산에 정착한다. 바다가 보이는! 김주영씨는 본의 아니게 ‘실향민’ 1세대가 된 것이다. 언젠가 통일이 되고, 살아생전 다시 고향땅에 갈 것이라고 굳게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박정희 시대를 거치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들 실향민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잘 알 것이다. <바다로 가자>가 흥미로운 것은 실향민 1세대와 그들의 아들딸, 즉 2세대가 갖고 있는 ‘고향과 통일’에 대한 인식차이이다. <바다로 가자>에서는 아들딸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청춘과 아버지의 고향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함께 남에 둥지를 튼 고향사람들 이야기도 곁들인다. 우리는 이들 사람의 이야기를 안다. 어쩌면 ‘반공’의 이...

[백두산] 남과 북, 폭발을 막아라 (이해준 김병서 감독, ASHFALL 2019)

  지난 19일 개봉한 한국영화 <백두산>(감독:이해준&김병서)이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는 백두산이 화산 폭발을 일으키며 북한을 거의 무정부상태로 만든다. 이어 곧 남한마저 집어삼킬 후속폭발의 징후가 관측되고 이를 막기 위한 특별한 작전이 펼쳐지게 된다. <신과함께> 1,2편으로 한국영화 CG의 완성도와 중요성을 높인 덱스터스튜디오가 다시 한 번 CG신기원에 도전한다.  백두산이 터졌다 어느 날 갑자기 백두산이 터졌다. 엄청난 파괴력은 한반도 남쪽에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것은 재앙의 전주곡일 뿐이다. 서울에서 백두산 화산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 중인 프린스턴 대학의 로버트, 한국명 강복래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백두산 아래에 꿈틀대던 마그마 방이 계속 세력을 확장, 2차,3차,4차 폭발로 이어질 것이란다. 막을 방법은? 화산 속으로 뭔가를 집어던져 마그마의 흐름을 바꾸든지 해야 한단다. 이제 남과 북이 손을 잡고 비상한 방법으로 그 해법을 찾아갈 것이다. 북한, 무정부상태 영화 <백두산>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오랫동안 잠잠하던 백두산 화산이 폭발한 것이 아니라 북한의 핵무기 해체이다. 영화 초반부 들려오는 뉴스에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로 했고, 미군 특수부대가 곧 청진항으로 입항 ICBM을 해체한다”고 전해준다. 소련 붕괴 이후, 그리고, 미소 데탕트 시절에 수많은 핵무기가 특별한 절차를 거쳐 폐기되었다. 한동안, 소련이 무너지고, 어수선한 틈을 타서 중동의 테러리스트들 손에 핵무기가 넘어가는 경우가 영화로 많이 다뤄졌다. 과연 북한이 만든 ICBM의 탄두에 실린 우라늄을 EOD(폭발물처리요원) 하정우 대위가 제대로 해체할 수 있을까? 그렇게 ‘뚝딱’ 떼어내어 기폭장치가 있는 트렁크에 싣고 ‘흔들흔들’ 비포장 산길을 달려 백두산 꼭대기까지 이고갈 수 있을까. 프로도도 아니면서 말이다. 이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아니라 <아마겟돈>에 가깝다....

[길소뜸]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임권택 감독, Gilsodom, 1986)

  KBS 1TV에서는 ‘독립영화관’이 방송되던 금요일 밤에 ‘한국영화 100년 더 클래식’이라는 기획전을 내보내고 있다. 1919년 10월 27일 서울 단성사에서 최초의 한국영화로 평가받는 ‘의리적 구투’ 개봉 100년에 맞춰 KBS와 한국영상자료원과 힘을 합쳐 ‘100년의 한국영화 걸작 12편’을 매주 내보내고 있다. 오늘밤에는 그 여섯 번째 작품으로 한국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그린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1986)이 시청자를 찾는다. 여의도 KBS에서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 한창이던 1983년 여름, 화목하고 부유한 가족을 꾸려나가던 화영(김지미)은 남편(전무송)의 권유로 방송국에 아들을 찾으러 가다가 회상에 젖는다. 화영은 해방과 함께 황해도의 작은 마을 길소뜸으로 이사를 가서 고아(이상아)가 되고, 아버지 친구 김병도와 함께 살다가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김 씨의 아들 동진(김정석)과 사랑하게 된다. 비 오던 날 둘은 사랑을 나누고 화영은 아이를 낳지만,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운명이 서로 엇갈리며 만날 수 없게 된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산가족 찾기’ 현장에서 옛사랑을 만나고, 혈육을 만나게 되지만 이들은 세월의 강을 건너 옛 정을 되살릴 수 있을까.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을 KBS를 통해 보게 되는 것은 흥미롭다. 이제는 전설같이 전해지는 KBS여의도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생방송 현장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아직도 귀에서 울리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노래가 시청자를 시간여행 시킬지 모른다.  다양한 장르에서 장인의 솜씨를 보여준 임권택 감독은 한국전쟁이 빚은 슬픈 가족의 역사를 고스란히 필름에 담는다. 전쟁의 비극은 군인들의 죽고사는 문제였을 뿐만 아니라, 연인의 생이별, 그리고 대를 잇는 엇갈린 운명의 아픔을 남긴다.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을 통해 많은 가족과 피붙이가 수십 년 만에 상봉했지만,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많은 사연과 기막힌 경우가 많았을 테다. 임권택...

[뷰티풀 데이즈] 그녀의 삶은 계속된다 (윤재호감독, Beautiful Days, 2018)

  (박재환 2018.11.26)  지난달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은 오랜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이나영 주연의 저예산영화 ‘뷰티풀 데이즈’였다. 이나영은 10대의 나이에 북에서 중국 땅으로 넘어온 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20대를 보내고 지금은 한국에 정착한 여인을 연기한다. 어느 날 그에게 뜻밖의 사람이 찾아온다. 14년 전, 훌쩍 떠났던 그곳에 남겨둔 피붙이 아들이다. 아들은 “아버지가 죽기 전에 엄마를 무척 보고 싶어 해요.”라고 말한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어던 것일까. 감독, 여자의 일생을 이야기하다 윤재호 감독은 프랑스에서 미술을 공부하다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단다. 프랑스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한 ‘조선족’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단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중국에 두고 온 아들이야기. 이후 윤 감독은 중국에 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다. 북에 넘어온 사람들의 고단함 삶과 선택의 순간들, 그리고 남으로 이어지는 삶의 궤적에 흥미를 갖게 된다. 이런 이야기는 이미 <태풍>,<크로싱>, <무산일기> 등을 통해 그들이 여정이, 선택이, 운명이, 삶이 얼마나 처절하고, 파괴되고, 무시 받는지 알고 있다. 윤감독은 그런 삶을 더 처절하게 보여주는대신, 담백한 현실의 삶에 초점을 맞추러한다. 이나영이 두고온 땅의 사람들과, 이나영이 선택한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 같이 밥상앞에 둘러앉은 가족이며, 묵묵히 숟가락에 밥을 떠먹는 일상이 있을 뿐이다. 아들은 실로 오랜만에 만난 엄마-어릴 적 기억밖에 없던 엄마-가 남한땅에서 술집에서 일한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공간이 있을 것이다. 중국에 정착한 북한여인의 삶, 그 아들의 삶의 가능성에 대해서 말이다.  이나영, 가족을 이야기하다 이나영은 남편과도(중국의 오광록, 남의 서현우) 말을 별로 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장동윤)과도. 넘치는 말과 폭발하는 감정은 가슴에...

[공작] 롤렉스와 호연지기 (윤종빈 감독 The Spy Gone North, 2018)

   ‘블랙리스트’ 정권을 지나자마자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류의 영화가 쏟아지고 있다. 윤종빈 감독의 <공작>도 그 중의 하나이다. ‘공작’은 YS정권 시절에 있었던 대북스파이활동을 다룬 작품이다. 정확히는 1993년, ‘북핵위기’가 고조될 때이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둘러싸고 의문스런 행보를 이어간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를 선언하면서 클린턴은 이른바 외과수술식 폭격도 불사하겠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올 때이다. 당시 YS정권의 안기부(국정원 전신)에서는 이 엄중한 사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왔는지 <공작>은 흥미진진하게 전해준다. 영화는 당시 중국에서 활동한 한 안기부 요원의 활약상을 저본으로 삼는다. ‘박채서’란 인물이다. 정보사 요원이었던 그는 안기부에 특채되어 대북 첩보활동을 펼쳤단다. 안기부에서는 “과연 북한에서는 어느 정도 핵개발이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박채서는 대북사업가로 위장하여 중국에서 대북라인을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된다. 오랜 수고와 기다림 끝에 박채서는 북경에 나와 있는 북한의 대외경제위 리명운 처장과 연결되었고, 기선잡기와 패 숨기기라는 전형적 게임의 법칙이 진행되고 마침내 북한핵심부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박채서의 실제이야기는 한창 북핵사태로 시끄럽던 시절부터 ‘취재원과 취재기자’로 연을 이어오던 (‘시사저널’의) 김당 기자가 최근 내놓은 책 <공작>에 자세히 나온다. 윤종빈 감독은 ‘북풍’과 ‘흑금성’ 이야기를 듣고는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영화에 담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는 박채서의 활약상을 기반으로 하면서 상상가능한 중국에서의 남북접촉의 모습, 그리고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한 북한내부의 이야기(보위부와의 관계 등)를 흥미롭게 엮어서 완성시킨다. 윤종빈 감독은 총 한 방 쏘지 않으면서도 영화를 전체적으로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로 이끈다. 박석영이 위험천만한 임무를 맡고 북한의 거점으로 들어갈 때의 긴장감은 <무간도...

[강철비] 남과 북의 워게임 (양우석 감독 2017)

최근 북한 핵 사태와 관련하여 제기하는 문제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북한의 핵 미사일이 어디를 목표로 하는 것이냐”는 것. 사실 이 문제는 전쟁종말 단계에 처한 최종책임자의 자포자기적 심정을 상정한다면 부질없는 질문일 수도 있다. 그런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접근하면 문제가 꼬인다. 그리고, 미국의 압도적인 핵 무력 앞에서 실제 김정은이 핵 버튼을 누를 수 있을까하는 심리적인 문제도 있다. 이런 특수한 한반도 상황에서 비상사태가 벌어진다. 과연 진짜 핵전쟁이 발발할 수 있을지, 타겟은 어느 나라인지를 상상한 영화가 만들어졌다. 4년 전 정치인 이전의 인간 노무현을 담은 영화 <변호인>으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던 양우석 감독이 신작 <강철비>를 내놓았다. 양우석 감독은 웹툰(작가)으로 <스틸 레인>이란 작품을 내놓았었다. 김정일이 암살된다는 설정을 담았었다. 양 감독은 그 작품을 기반으로 좀 더 진전된, 훨씬 복잡해진 한반도 핵 상황을 그린다. 북한이야기로 시작된다. 보위총국, 총정치국, 그리고 군부가 얽혀서 복잡하게 돌아간다. 분명 어떤 권력기관이 쿠테타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개성공단에서 중국 기업이 입주식을 갖는 날, 인민들이 꽃다발을 들고 경애하는 지도자동지에게 열화같은 성원을 보이는 가운데 남쪽 하늘에서 미사일 한발이 날아온다. 클러스터형 로켓이다. 아수라장이 된 가운데 북의 정예요원 정우성이 피투성이가 된 지도자 1호를 들춰 업는다.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탈출하는 중국기업들의 차량 틈에 끼어 남쪽으로 향하는 것. 정우성은 그렇게 부상당한 1호와 함께 일산의 한 병원으로 숨어든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믿기 힘든 사태와 함께 남과 북의,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중국, 일본의 첩보전과 군사대치가 시작된다. 사드 배치와 핵/ 미사일실험 등의 사태를 거치며 방송매체에서 탁월한 전문지식을 보여주고 있는 양욱 군사평론가가 이번 영화 제작에 자문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반 영화팬들이 보면 영화에 등장하...

[올드마린보이] “아버지는 오늘도 바다에 간다” (진모영 감독,2017)

  (2017) 영화진흥위원회의 역대 흥행기록을 살펴보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373만 관객을 동원하며 89위에 랭크되어있다. 바로 그 밑에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군도>, <범죄와의 전쟁> 등이 있다. 놀라운 기록이다. 물론, 다큐멘터리로서는 역대 최고기록이다. TV에서 한번 소개된 할아버지, 할머니의 오래된 순정스토리가 한국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바로 그 작품을 연출했던 진모영 감독이 다시 다큐멘터리로 돌아왔다. 지난 9월 열린 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먼저 선을 보였던 <올드 마린 보이>이다. 감독의 전작을 알기에, 인터뷰 등을 통해 본 감독의 진정성을 믿기에 그의 신작에 큰 기대를 가질 수밖에. <올드마린보이>는 두 가지 포인트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른바 ‘가족으로서 아버지의 책임감’, 그리고 ‘탈북자의 남한정착기’이다.  주인공 박명호씨는 2006년 서해바다를 통해 남으로 넘어온다. 아내 김순희, 두 아들 철준과 철훈을 데리고 목숨을 건 도박을 감행한 것이다.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이들 가족은 서해가 아닌, 동해안 쪽 강원도 고성군 대진해변에 삶의 새 터전을 마련했다. 이곳은 최북단 해안마을이다. 박명호씨는 이곳에 ‘머구리’의 삶을 살아간다. ‘머구리’는 둔탁한 잠수장비를 몸에 걸치고 수심 30미터 해저로 들어가서 대왕문어도 잡고, 각종 해초류를 채취하는 잠수부다. 우리가 아는 스쿠버다이버보다 더 육중한 장비를 갖춰야하고, 해녀보다 더 깊숙한 바다에 들어간다. 오직 공기공급줄이 달린 밧줄에 의지하여 심해로 들어간다. 의외로 동해안 바다 속은 탁하고, 물살이 세다. 체중 60킬로에 장비가 60킬로이다. 그래서, 자칫 해초에 엉키거나 밧줄이 부유물에 걸리면 어찌 손 쓸 틈도 없이 수장된다. 영화사에서는 머구리의 삶을 “10명 중 5명은 포기하고, 3명은 죽고, 1명은 아프고, 단 1명만 살아남는다”고 비유했다. ...

[우리가족] 남한 삼촌과 10명의 탈북청소년 (김도현 감독 Our Family, 2013)

  어제(2015.9.22) 밤 KBS 1TV ‘KBS독립영화관’ 시간에는 김도현 감독의 ‘우리가족’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방송되었다. 이 영화는 작년 7월 극장에서 개봉되긴 했지만 ‘독립영화’가 그렇고, ‘다큐멘터리’가 그러하듯이 극소수의 관객만이 극장에서 이 작품을 관람했었다. 영진위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서 ‘달랑’ 807명이 관람했단다. 바로, 그 문제의 작품을 ‘KBS독립영화관’시간에 만날 수 있었다.  영화 ‘우리가족’은 탈북청소년을 거두어 정말 가족처럼 키우는, 아니 함께 ‘공동체가정’을 이끄는 한 남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사람은 김태훈. 그는 2004년 탈북자들을 수용하며 잠시 ‘남쪽사회에 적응하도록’ 교육/지원하는 하나원의 봉사자로 탈북자를 만났다. 이게 필생의 일처럼 - 종교인의 소명처럼 - 자신의 청춘을 다 바치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나라 탈북자 정책에는 그런 것이 있는 모양이다. 무작정 지원금/정착금 주고 남한사회에 내던져놓을 경우 그 결과가 어찌되는지 아는 사람은 안다. 위탁교육 비슷하게 유사가족을 이루는 모양이다. ‘청소년그룹홈’이라고 영화에서는 나온다. 김태훈은 북한지역 이탈 청소년을 하나둘 받아 함께 생활한다. 그게 한 명, 두 명, 세 명이 되더니 어느새 10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된다.  그들의 집은 1980, 90년대 대학교 하숙집을 연상시킨다. 초등학교 때 들어와서 이제는 중고등학생이 된 청소년 10명과 북적대며 좁은 집에서 ‘청소년그룹홈’으로 공동체생활을 이어간다. 아니, 정확히는 남한사회, 가족살이에 적응해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정부기관이나 종교단체, 혹은 독지가의 도움의 손길을 보기는 어렵다. 적어도 이 작품에서는 말이다. 결혼까지 포기하며 어린 양(!)을 거둬들여 제대로 성장시키느라 확실하게 노총각이 되어버린 반듯한 남한 청년. 아이들은 “삼촌, 삼촌”하면 따른다.  최근 들어 서구인의 시각에서 한국예능을 이끄는 TV프로그램이 각광받는 것과 함께 북한...

[연평해전 리뷰] 진정한 ‘배달의 기수’ (김학순 감독, Northern limit line, 2015)

  지금은 지상파에서 사라진 전설적 TV프로그램이 있다. ‘배달의 기수’라는 국방홍보영화이다. 지금은 대부분 희화적으로 이 프로그램이 거론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군과 민의 소통과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남북 대치상황에서 전방과 후방이 따로 없다는 절박함이 묻어나는, 꽤나 진취적인 국방부 홍보영상물인 셈이다. 그런데 요즘은 국군이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 때 국방부의 협찬을 받기도 어려울뿐더러, 충무로에서 먼저 손을 내미는 경우도 드물다. 몇 년 전 ‘알투비’라는 공군‘협찬’영화가 기억될 뿐. 오늘 꽤나 의미 있는 영화가 개봉된다. 김학순 감독의 ‘연평해전’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지난 2002년 6월 29일, 대한민국이 온통 월드컵 분위기에 휩싸였을 때 서해안 연평도 바다에서 벌어졌던 남북한 군사충돌의 전 과정을  담는다. 영화는 충격적인 영상기교나, 블록버스터급 CG가 없다. 담담할 정도로 조용히, 묵직하게 그날의 격전의 30분으로 관객을 몰아넣는다. 이 영화는 ‘잔재주’나 ‘불꽃놀이’가 없다. 소박하지만 관객에게 그날의 군인과, 그날의 전투를 보여주는 돌직구 스타일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아주 짧게 NLL의 역사를 소개한다. 625전쟁이 일어나고 휴전협정을 거치면서 지금의 NLL이 확립되고 지금도 연평도 앞바다에는 북과 남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광화문 광장의 가득 매운 붉은악마 응원모습과 월드컵 경기모습이 휙휙 지나가고 해군기지를 보여준다. 윤영하 대위가 새로운 정장으로 부임하고, 비슷한 시기에 의무병 박동혁 상병이 전입온다. 그리고 윤영하 대위는 20여 명의 부하장병들과 함께 참수리 고속정357호를 타고 바다에 나가 작전을 펼치고 기지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곳곳에서는 “대~한민국”함성과 함께 월드컵 열기가 달아오르고 말이다. 당시 정부는 월드컵기간에 군사충돌을 적극 회피하는 방침을 세웠고, 북한은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NLL선을 침범하며 우리 측의 반응을 떠보기를 반복한다. 영화에서는 그동안 잘 ...

[나의 독재자] 나의 아버지 (My Dictator,이해준 감독,2013)

   ‘김씨 표류기’라는 작품을 내놓았던 이해준 감독의 신작 ‘나의 독재자’가 최근 개봉되었다. ‘나의 독재자’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청와대에서 기발한 준비과정을 했었다는 신문기사에서 모티브를 찾은 영화이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시절, 당시 이후락 중앙정부부장이 직접 평양를 다녀와서는 중대발표를 했었다. “청산가리를 품고 죽을 각오로 북한에 다녀왔다. 곧 김일성과 정상회담을 할 것이다.”는 것이었다. 이후 중정에서는 김일성 대역을 내세워 정상회담을 준비한다. 그의 말투는 기본, 사고방식까지 수령에 가깝도록 연습 또 연습한다. 물론, 유신과 함께 이 프로젝트는 파기되었다. 그럼, 김일성이 되기 위해 발버둥쳤던 그 대역배우는 이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이해준 감독은 평범한, 아니 사실 연극판에선 형편없었던 한 무명배우가 최고의 배역을 맡아 최고의 연기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가 허망하게 그 기회를 놓친 뒤 반쯤은 미쳐버린 리어왕처럼 살아가는 후반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면서 영화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같은 감성적 정치영화나 남산의 중정지하에서 펼쳐지는 고문같은 정치풍자극이 아니라 아들에게만은 최고가 되고 싶어했던 평범한 아버지의 좌절된 꿈과, 그런 아버지 때문에 역시 좌절된 삶을 살아야했던 아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사실, 남북정상회담은 한국전쟁 종전이후 남과 북의 첨예한 대립에 있어 유일한, 그리고 가장 강력한 평화전략으로 인식되고 있다. 박정희시절에도 영화에서처럼 ‘정상회담’에 대한 생각은 있었으리라. 그리고 전두환 이후에도 모든 대통령들이 정상회담을 고리로 한반도평화체제 정착에 강한 미련/집착을 보였었다. 핵문제가 전쟁발발위기로까지 번지던 YS시절, 미국의 카터 전 대통령이 급작스레 방북하고 남북정상회담이 처음으로 가시화된다. 회담을 보름정도 남겨두고 대화 상대였던 김일성이 급사하는 바람에 그 기대는 무산된다. 영화에서는 중앙정보부의 활약과 김일성의 급사를 적절히 시나리오에 담는다. 중정(안기부)시절의 무명배우는...

[용의자] ‘시효인간’ 공유 (원신연 감독, The Suspect, 2013)

  지난 연말에 개봉되어 '변호인'의 흥행 돌풍에 밀려 관람 후순위로 밀린 영화가 있다. 원신연 감독의 '용의자'이다. 이미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붉은 가족> 등 남파된 북한 특수공작원의 실력과 속사정을 충분히 보아왔기에 "또 무슨 간첩이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공유’라는 배우가 가지는 아우라와 영화 속 '자동차 추적 씬'에 대한 입소문 덕에 만만찮은 흥행력을 보여주고 있다. 2014년 북한의 정세만큼 다이내믹한 '용의자'를 한 번 보자. 공유, 북한에서 버림받고 남한에서 표적이 되다  공유가 연기하는 지동철은 서울에서 대리운전을 하고 있다. 그의 숨겨진 과거와 현재 그가 처한 상황은 영화 초반에 다 드러난다. 그는 한때는 날리던 북한의 최정예 특수공작원. 귀신같은 솜씨를 자랑하던 그였지만, 그가 목숨 바쳐 충성하고자 했던 조국으로부터 배신당한다. 사랑했던 여자와 얼굴도 본적 없는 딸마저 희생당하자 그에게는 살아있을 이유가 딱 한가지뿐이다. ‘그 놈’을 쫓아 서울로 잠입한 것이다. 그 놈(김성균) 또한 한때는 북한의 최정예 특수공작원이었고 지금은 전향하여 대한민국 국정원의 특수요원이 되어있다. 공유는 이제 국정원과 기무부대의 표적이 된다. 하지만 그의 복수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좁은 골목길을, 언덕길을 마구 드라이빙하며, 한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며, 오직 복수를 꿈꾼다. 누가 그를 막을 수 있으리오. 우리 이웃에 공작원이 있다  한국(남한)에 넘어오는 것은 살인기술로 연마된 무장공비만이 아닌 모양이다. 외국어에 능통하고, 할리우드 스턴트맨보다 더 운전을 잘하고, 금메달리스트보다 사격술이 더 뛰어난, 그야말로 ‘제이슨 본’ 같은 놈들이 한둘도 아닌 여럿이 서울에 암약 중이다. 그리고 그들만큼 뛰어난 실력의 우리 특수기관 요원들이 촘촘하게 그들을 감시하고, 뒤쫓고, 은밀하게 작전/역공작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우리(?)가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

[베를린]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 (류승완 감독 The Berlin File , 2013)

  (박재환 2013.2.5.) '류승완'은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특히나 성룡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단다. 그래서 영화감독이 되었고 줄기차게 액션영화를 찍는다. 류승완 감독은 개그맨 김병만과 비슷한 삶의 궤적을 그려왔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고생하며’ 실력을 쌓아온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고 배웠으며 연출부에서 영화를 습득한 것이었다. 그가 자투리 필름을 얻어 ‘액션’ 단편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것을 하나로 엮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완성시켰다. 그리곤 충무로의 활력 넘치는 영화감독이 된 것이다. 그가 충무로 영화판의 주류에 편입하고 12년 만에 <베를린>이란 꽤 규모가 큰 액션블록버스터를 내놓았다. 베를린을 배경으로 남과 북의 스파이전쟁, 동과 서의 첩보전쟁을 거창하게 펼쳐놓는 것이다. 이~야, 이 감독 정말 출세했다! 동명수, 표종성을 쫓아라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의 베테랑 요원 정진수(한석규)가 베를린에서 국제적 규모의 불법무기 거래 현장을 감시하는 영화 초반부에서부터 관객을 단박에 휘어잡는 액션활극이 펼쳐진다. 정진수는 자신의 눈앞에서 놓친 그 놈이 북한 특수요원 표종성(하정우)임을 알게 된다. 베를린 한국대사관. 청와대 측에서 감찰 나온 ‘높은 분’(곽도원)은 국정원의 어설픈 작전실패에 대해 힐난하지만 정진수는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는 자신의 임무에만 매진한다. ‘고스트’ 표종성을 잡기 위해. 한편 베를린의 북한대사관. 무기거래현장이 누군가에 의해 사전에 정보가 샌 것에 대해 북한대사(이경영)도, 표종성도 무언가 거대한 음모가 진행 중이란 것을 눈치 채게 된다. 이때 북한에서는 이 일을 조사하기 위해 국가보위부 소속의 동명수(류승범)가 파견된다. 김정일 사후 최고 권력을 유지하기위해 혈안이 된 북한군부 실권자 동중호(명계남)의 아들 동명수가 왜 베를린에 직접 날아온 것일까. 정권교체기의 위험한 시기에 북한의 검은 돈줄인 베를린주재 북한대사의 망명시도 낌새라...

[R2B: 리턴 투 베이스] 전쟁의 기원 (김동원 감독, R2B: Return to Base , 2011)

한국영화판의 큰손 CJ가 한류 톱스타 비(정지훈)를 캐스팅하여 100억 원을 쏟아부은 영화, 한국 공군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완성한 작품 <알투비 R2B: 리턴 투 베이스>를 보고 나면 제일 먼저 톰 클랜시의 소설 <OP센터>가 생각난다. 이 작품의 연관성은 공고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아래에서 어떤 돌발변수가 한반도에 파멸적 전쟁을 촉발시킬 수 있는지, 혹은 그 전쟁의 암울한 그림자를 극적으로 걷게 되는지를 비쥬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63빌딩을 배경으로 북한 미그 기가 휘젓고 다니는 전반부와 한국 전투기가 북한 미사일기지를 맹폭하는 후반부가 관객에게는 어떤 감정을 던져 줄지 궁금하다. 사고뭉치 탑건, F-15K를 몰다 공군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 소속 최고의 전투기 조종사 태훈(정지훈)은 에어쇼에서 위험천만한 묘기를 자의적으로 연출하다 21전투비행단으로 좌천된다. 국민 혈세 수백 억, 혹은 그 이상 들어간 전투기를 개인의 짜릿한 모험을 위해 사용한 태훈이 만나게 되는 공군용사들은 상상가능하다. 정말 가족 같은 편대장과 생사를 같이할 준비가 되어있는 동기와 후배들. 그리고 공사 출신 장교와는 또 다른 군생활을 하는 하사관들까지. 그리고 군대가 배경이다보니 공과 사를 칼같이 구분하고 명령을 하늘같이 여기는 이철희 대위(유준상)가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정지훈 중위는 바로 이곳에서 전투기 정비대대의 중사(신세경)에게 흠뻑 빠져들고 드라마는 상큼한 멜로의 빛깔을 더한다. 그런 비행기지에서의 평화로운 분위기는 현재의 남북분위기만큼 위태롭다. 한반도 평화무드를 깨는 불온한 움직임은 북한에서 먼저 일어난다. 미그기 한 대가 귀순의사를 밝히며 남으로 향하더니 돌연 서울상공을 휘저으며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된다. 곧이어 북에서는 쿠테타가 일어나고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가 포착된다. 아마도 한국의 어느 군사기지 벙커 안에서는 최첨단 군사정보시스템이 작동하고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외과의 사식 핀셋 공격, 궤멸적 핵 선제공격이 논의된다. 한반도의 운명을...

[풍산개] 김기덕 사단이 만든 남북한 치킨게임 (전재홍 감독 Poongsan 2011)

  우리나라 영화판에도 사단이란 게 형성되어 있다. 정치적 결사체는 아니고 어떤 인연으로 맺어진 영화계 선후배관계이다. 탄탄한 충무로 역정을 기반으로 이제는 대기업까지 연결된 강우석 사단이 있고, 태생은 가난한 ‘연극무대’였던 장진 사단도 있다. 언젠가부터 김기덕 사단이란 것도 언론에 오르내린다. 김기덕 감독 본인이야 칸, 베를린, 베니스 등 세계의 내로라하는 국제영화제에서 위명을 떨친 명감독이지만 한국에서는 오히려 비주류감독으로 치부된다. 평단에서의 평가도 애매하고, 영화팬들은 여전히 그의 영화를 엽기라며 불편하게 여긴다. 게다가 어찌된 일인지 김 감독은 영화계 자본세력과의 트러블로 한동안 언론에서 멀어지는 듯 했다. 그런데 김 감독은 자신의 영화미학과 영화제작방식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전수해왔다. <아름답다>(전재홍), <영화는 영화다>(장훈),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장철수) 등이 이른바 김기덕 감독사단의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여기에 또 한 편의 작품이 추가된다. 바로 전재홍 감독의 <풍산개>이다. <풍산개>는 어떤 영화이고, 김기덕 감독과의 ‘1촌맺기’ 영화방식이 어떤지 알아보자. 정체불명의 남자, 휴전선을 휘젓다    영화는 정체불명의 한 남자(윤계상)의 황당한 활약상을 그린다. 이 남자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있다. 병실에서 다 죽어가는 한 할아버지의 한 맺힌 부탁은 이렇다. “내래 북의 고향에 두고 온 아내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소.....” 그럼 이 남자는 할아버지의 유언 장면을 캠코더에 담는다. 그리고는 모토사이클을 타고 일산 자유로를 달려 해안 철조망을 뛰어넘어 눈 깜짝할 사이 강물 속으로 사라지더니 어느 새 이북 땅에 숨어든다. 그리곤 재주껏 이산가족을 찾아가서는 그 영상을 보여준다. 이북의 가족들은 분단 반세기, 아니 60년 만에 만나는 남편과 아버지의 영상메시지에 흐느낀다. 그리고는 이번엔 답신. 남자는 그 장면도 고스란히 캠코더에 담고 월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