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라벨이 BIFF상영작인 게시물 표시

[굿뉴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말해 봐! (넷플릭스, 변성현 감독, Good News,2025)

이 영화가 조금 일찍 공개되었다면, 아마 내년 봄 열릴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부문) 한국대표로 ‘어쩔수가없다’와 각축을 펼쳤을 것 같다. ‘굿뉴스’에는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옹골차게 들어차있다. ‘불한당’으로 언젠간 큰 사고를 칠 것 같은 변성현 감독이 마침내 ‘굿뉴스’에서 폭발한 것이다. 알려진 대로 지난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는 실제 발생한 사건을 모티브로 극화한 것이다. 프랑스를 휩쓴 68학생운동은 일본에 적군파를 탄생시켰고, 공산주의 혁명을 꿈꾸는 일단의 몽상가들은 직접 행동에 나선다. 1970년 3월 31일,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신좌파 일당은 여객기(JAL 요도호)를 하이재킹한다. 그들은 조종석으로 달려가서는 다짜고짜 평양으로 날아갈 것을 명령한다. ‘북조선’이 그들의 혁명의 전진기지로 삼기에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비행기는 (일본)국내선이었고, 당시 북한과는 수교는 고사하고 북한으로 가는 비행길도 모른다. (관제를 해야 하는지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른다!) 게다가 그 사이에는 ‘한국’이라는 절대변수가 있었다. 변성현 감독은 이 난해하고도 난감한 국제적 난기류를 어떻게 헤쳐 나갈까. 흥미진진하다. 한반도로 기수를 돌린 비행기. 그들에겐 항로도 없고, 관제사의 지시도 없다. 이 긴박한 상황에 중앙정보부에서는 신박한 작전을 펼치기 시작한다. 중정부장 박상현(설경구)의 장자방인 ‘아무개’(설경구)가 기상천외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이다. 우선은 실력 있는 공군 관제사 서고명 중위(홍경)로 하여금 비행기 무선통신을 인터셉트하여 기수를 휴전선 쪽으로 돌린다. 그들이 내놓은 아이디어는 이 비행기를 김포공항에 착륙시키는 것이다. 그곳이 평양공항이라고 속이고. 어떻게? 세상 속이는 것이 본업(!)인 트릭의 대가 ‘영화감독’(윤경호)을 데려와서 지상최대의 쇼를 연출하는 것이다. 평양공항이 된 김포공항에는 북한인민군과 한복차림의 인민으로 분장한 엑스트라가 대거 동원된다. 이제 비행기에 탄 납치범 일당들이 속아...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핵 발사 > 요격 실패 > 다음은? (House of Dynamite 넷플릭스, 캐스린 비글로 감독)

  ★ 스포일러 주의: 영화내용이 상세히 소개됩니다 ★  1964년 미국에서는 두 편의 종말론적 핵 드라마가 공개되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미 공군전략사령관이 핵폭탄을 실은 B52를 발진시키면서 미소 강대국의 치킨 게임이 펼쳐진다. 시드니 루멧 감독의 <페일 세이프>에서는 미확인물체가 미국 영공에 나타나고 핵전략폭격기를 출격시키면서 벌어지는 끔찍한 ‘눈에는 눈’ 비극이 그려진다. 이들 영화는 핵으로 무장한 새로운 전쟁의 확전 과정을 보여준다. 실수든, 오판이든, 장난이든, 착각이든 저쪽으로부터 핵 미사일이 날아온다는 빨간 등이 켜졌을 때 우리는 어떤 대응을 해야 하나. 여러 가지 기술적 안전장치가 있겠지만 이젠 ‘무선방해’나 ‘페이크 정보’까지 고려해야한다. 날아가는 미사일을 자폭시키기도, 전폭기의 회항을 명령하기도 어려운 상황일 경우 미국과 소련은 (그리고 중국, 북한까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모스크바가 날아가고, 평양이 사라져도 그들은 가만 있을까? (미국은? 한국은?) 대통령이 NSC를 소집하고 국회 의결을 거칠 시간적 여유가 없다. 10분이면 버섯구름이 피어오를 상황이다. 그 끔찍한 상상력을 2025년 다시 펼친다. 넷플릭스글로벌 OTT 서비스. 1997년 미국에서 시작됨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이다. 냉전시대 미소 양국은 궤멸적 핵미사일 레이스를 이어오다가 데탕트를 맞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또 다시 핵 전력이 기승을 부린다. 작금의 세계정세를 알려주는 간단히 자막이 흐른 뒤 평화로운 미국의 일상이 시작된다. 알래스카의 그릴리 기지의 미군들은 극동 지역에서 미상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발사된 것을 탐지한다. 처음에는 북한의 ‘일상적’ 미사일 발사실험으로 생각했지만 이내 곳곳의 탐지시설부터 위험 시그널이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백악관 상황실의 올리비아 워커 대위도 이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미사일 궤적은 곧 밝혀진다. 18분 뒤에는 시카고로 떨어지는 것으...

[전,란] 전쟁과 반란, 양인과 노비, 왕과 백성, 넷플릭스와 영화관 (김상만 감독,Uprising,2024)

  지난 주 열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은 놀랍게도 넷플릭스 무비 <전,란>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오랜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가 BIFF ‘개막작’이 결코 대중적인 흥행작품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올해는 그 고리를 끊을 요량인지 넷플릭스 작품을 내걸었다. 그래서 논란도 많다. 넷플릭스는 자사 플랫폼을 ‘세계적’ 영화제를 통해 홍보하고 있으니 손해 볼 것이 전혀 없는 구도이다. 영화팬으로서도 나쁠 것은 없는 듯하다. 몇 해 전 티모시 샬라메 주연의 넷플릭스 무비 <더 킹: 헨리5세>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었다. 엄청난 스토리, 웅장한 사운드, 스펙터클한 영상을 조그만 화면으로만 보기에는 아까워도 너무 아까웠으니 말이다. <전,란>도 그러하다. 이것이 어찌, 6인치 남짓 모바일로 볼 작품인가.   ‘전,란’은 ‘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동굴 안에서 벌어지는 계급이 다른 두 남자의 운명을 다루는 작품이다. ‘이종려’는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귀하신 자제분이다. 조상들은 대대로 병조판서를 지냈을 이 집안의 종려는 어렸을 때부터 검술을 배우지만 시원찮다. 영화는 ‘조선의 계급사회’를 초반에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어린 종려가 검을 잘못 다룰 때마다 옆에서 종의 아이가 매를 대신 맞는다.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정도가 아니다. 매질에 아이가 비명횡사한다. 그 자리에 ‘천영’이 들어온다. 천영의 신세는 기구하다. 양민이었지만 빚 때문에 노비신세가 되었고, 이렇게 주인 잘못 만나 죽을지도 모를 ‘매잡이 노비’가 되는 것이다.  영화는 종려(박정민)와 천영(강동원)의 기묘한 공생을 보여준다. ‘재주가 미천한’ 종려는 ‘비천한’ 천영 덕분에 무과에 장원급제하는 영광까지 누린다. 왕이 종려에게 어사화와 푸른 옷(靑衣), 보검(神劍)을 하사하는 날 운명이 엇갈린다. 오직 ‘노비문서를 찢어버리는’ 면천(免賤)만을 기대한 천영은 배신감에 몸서리를 치게 되고, 어쩔 수 없는 자신의 ‘계급적 운명’에 분...

[녹야] 판빙빙-이주영의 녹초가 된 하룻밤 (한슈아이 감독,2023)

지난달(2023년 10월)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중국의 판빙빙과 한국의 이주영 배우가 주연한 중국영화 <녹야>(원제:綠夜/Green Night)가 지난 1일 한국극장가에 개봉되었다. <녹야>는 ‘LGBT’스타일의 느와르 영화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지독한 멜로물이기도 하다.   영화는 한국 인천항의 국제여객터미널 보안검색대에서 시작된다. 판빙빙이 연기하는 진샤는 이곳을 이용하는 승객의 입국심사를 담당하고 있다. 검사대에서 ‘삐~’소리가 나면 좀더 꼼꼼하게 승객의 휴대품 검사를 한다. 방금 가방 하나만 메고 온 ‘녹색머리’의 여인(이주영)이 수상하다. 그리고 진샤는 이 녹색여인과 함께 악몽 같은 이틀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초록머리’ 여자는 인천과 중국(옌타이)을 오가며 마약을 옮기는 운반책이었다.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중국인 남친(김민귀)이 마약제조책이다. 초록머리는 그동안 단 한 번도 검색대에서 걸리지 않았다. ‘운’이 좋아서일까. 이제 ‘진샤’와 함께 그 운을 실험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관객들은 ‘진샤’의 상황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무슨 일인가 중국을 떠나, 한국에 오게 되었고, 한국에서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다. 아마도 어릴 때 헤어진 엄마인 모양이다. 한국인 남편(김영호)을 만나 가정을 꾸렸지만, 폭력성향을 가진 남편으로부터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을 당한 모양이다. 이제 ‘초록머리’와 ‘진샤’는 빼돌린 ‘마약’을 들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밤의 서울로 향한다. ‘마약’을 팔아넘길 수 있을까? 그 이후는? 알 수 없다. 둘은 그렇게 밤거리를 배회하고, 방황하고, 도망친다. 물론, 그들의 뒤를 쫓는 사람이 있다.    벼랑에 몰린 두 여자가 손을 잡고, 남성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는 당연히 <델마와 루이스>이다. 기존 남성(주인공)중심의 느와르에 통쾌하게 반기를 드는 구조이다. 전복까지는 아닐지라도 충분히 변주되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우리 삶의 질도 중요하니까 (박송열 감독,2021) * Hot in Day, Cold at Night * [BIFF리뷰]

   《탈무드》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단다. “부부가 사이가 좋으면 칼날 같은 침대도 편하고, 사이가 나쁘면 운동장만큼 넓어도 비좁다”는 뭐 그런 내용. ‘조강지처’니 ‘가난한 날의 행복’ 같은 이야기는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취업난에 집값폭등 시절에는 말이다. 지난 주 막을 내린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영화제의 위상과 경륜만큼 주어지는 상(賞)이 많다. 특히 ‘한국영화의 오늘_비전’과 ‘뉴 커런츠’ 섹션에 소개되는 한국영화는 항상 주목된다. 올해 상영작 중 박송열 감독의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가 ‘KBS독립영화상’과 '크리틱b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제목부터 흥미롭다. 영화는 박송열 감독과 원향라 부부의 커플 무비이다. 과연 그들의 침대 사이즈를 보자! 젊은 부부가 있다. 힘든 시기를 맞았다. 남편은 대리운전에, 택배를 전전하고 아내는 음식배달에 시간제 강사를 하며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둘은 바라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고 행복하다. 악착같이 일자리를 구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곧 취직할 것이고 이 순간의 고비만 잘 넘기면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런데 남편의 잘 아는 형이 풀프레임 DSLR카메라를 빌려가면서 돌려줄 생각을 않는다. 한 푼이 아쉬운 때인데 말이다. 아내의 어머니 생일날 다른 사람들은 봉투에 두둑한 용돈을 챙겨준다. 아무것도 준비해 오지 못한 이들 부부의 마음이 아프다. 버티고 버티고, 또 버티며 항상 웃고, 서로를 믿던 아내가 몰래 사채에 손을 댄다. 위기의 부부, 이 고비를 극복할 수 있을까. 영화는 현실 커플의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전혀 새롭다. 부부는 무미건조하게 하면서도 핵심을 다 갖춘, 의미 있는 대사를 주고받는다. “우리 삶의 질도 중요하니까. 그래도 우리가 사채까지 쓴 건 아니잖아. 사채 썼다가는 구원받을 수 없어”라고 말한다. 외부 현실의 고달픔도 충분히 타개할 것 같은 정신자세로 무장되어 있으면서도 순간적 판단이 흐트러지기도 한다. 영화에 등장하...

[한 끗] 나쁜 형사, 나쁜 피디, 나쁜 정치가 * A Bit Different * BIFF리뷰

  지난 주 막을 내린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70개국에서 출품된 223편의 영화가 소개되었다. 그중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섹션에서 소개된 이우동 감독의 <한 끗>은 2019년 <병>(2019)이란 단편으로 주목받았던 이우동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병’은 1990년 시골 작은 병원에서 ‘폐병’ 환자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에이즈가 무한대 전염의 공포로 여겨지던 시절, 미지의 공포를 다룬 재기발랄한 작품이었다. 이우동 감독은 이 작품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단편경쟁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었다.  영화 <한 끗>은 어두운 밤, 으슥한 골목과 너저분한 건물 옥상에서 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두컴컴한 시장골목을 도협(이우동)과 영미(오윤수)가 걸어가고 있다. 이들은 경찰이다. 영미는 시답잖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선배 도협이 못마땅하다. 지금 두 사람은 특별한 ‘사건 조작’을 하기 위해 이곳에 모인 것이다. 사연을 이렇다. 미영이 팔을 다쳐가며 붙잡은 악당 성균(이지훈)이 알고 보니 살인을 저지른 놈이었다. 방송사는 이 사건을 두고 센세이셔널한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정의의 형사’ 도협이 살인범 성균을 잡는 숨 막히는 순간을 극적으로 재현하자는 것이었다. 비리형사들과 특종에 눈이 먼 방송사 시사프로 조감독(김한결), 그리고 정치권의 입김 때문에 이렇게 한 밤의 옥상에서는 황당한 범죄 현장이 재현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쁜 놈’ 성균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란 것이다. 현장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이우동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한마음의집’이란 복지시설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조현병에 대한 인식개선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서 만든 영화란다. 실제 극중 ‘성균’은 조현병 증세를 보인다. 그런데 이우동 감독은 조현병 증세에 대한 집착이나, 의학적 소견보다는 그 누가 되었든 ‘한 끗’ 차이로 가해자,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

[원 세컨드] 시네마천국이 '항미원조'를 만날 때 * One Second * [BIFF리뷰]

중국 ‘5세대 감독’에서 아직도 작품을 발표하는 사람은 장예모(장이머우)와 진개가(천카이거)이다. 그중 장예모의 창작열은 대단하다. <붉은 수수밭>을 거쳐 30년 동안 여전히 중국영화계의 장인으로 남아있다. <영웅>이나 <황후화>, <그레이트 월>만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그의 작품은 대부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되었다. <책상 서랍 속의 동화>, <집으로 가는 길>, <천리주단기>, <산사나무 아래>, <5일의 마중>, <삼국:무영자>가 중국영화의 깊은 유산, 장예모의 열정을 확인하게 해 준 작품이었다. 이번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중에도 그의 신작이 포함되어 있었다. <원 세컨드>(원제:一秒鐘/One Second)이다. 영화는 장예모의 영화에서,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문화대혁명’을 다룬다. 그런데, 천안문의 광기가 아니라 저 먼 (중국의) 서북지역 감숙성 오지 마을에서 펼쳐지는 ‘문혁의 그림자’를 담아낸다. 장예모의 장기인 역사적, 문학적, 그리고, 영상미학적 요소가 결합된 ‘중국현대사 콘텐츠의 결정판’이다. 그리고 ‘한국전쟁’도 배경으로 쓰인다. 아쉽게도 그 요소 때문에 한국에서는 제대로 평가받기 힘든 작품이 되어버렸다. 중국 서북지역 깐수(감숙)성, 모래바람이 휘날리는 고비사막을 한 남자가 터벅대며 마을로 들어온다. 마을극장에서 영화상영이 끝나고 모두들 집으로 돌아간 한밤이다. 이 남자는 ‘영화’를 보기 위해 불원천리들 달려온 모양이다. 그런데 그가 정작 관심을 보이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본 영화 상영 전에 털어주는 ‘뉴스릴’(新聞簡報)’이었다. (이전에 우리나라 극장에서도 영화 상영 전 ‘대한뉴스’를 보여주었다. ‘중국뉴스’에서는 인민을 위해 헌신하는 공산당의 혁혁한 성과를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남자보다 먼저 그 필름을 훔쳐가는 더벅머리 소녀가 있었다. 이제 그 필름통을 둘러싼 쟁탈전이 벌...

[BIFAN리뷰] '친애하는 세입자' 남겨진 유산 (親愛的房客 대만 정유걸 감독) * Dear Tenant *

   지난 주 막을 올린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코로나 속에서도 힘겹게 진행되고 있다. 오프라인 상영에는 많은 난관이 있지만 OTT플랫폼 웨이브를 통한 온라인상영이 그나마 영화팬들의 돌파구가 되고 있다. ‘월드판타스틱블루’ 섹션을 통해 소개된 대만 영화 ‘친애하는 세입자’(원제:親愛的房客)도 웨이브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정유걸(鄭有傑 쩡요지에) 감독의 작품으로 지난 해 대만에서 개봉되어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대만영화는 몇 가지 경향이 있다. 학원 로코물, 어두운 역사에 발을 걸친 호러물, 그리고 LGBTQ 성향의 영화들이다. 어떤 영화인지 한 번 알아보자 영화는 대만 북부 항구도시 지룽(基隆/기륭)을 배경으로 한다. 제삿날인 모양이다. 가족 구성이 의아한데 곧 저간의 사정을 알게 된다. '린젠이'의 동성의 파트너 리웨이가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된다. 이후 린젠이는 리웨이의 집에서 리웨이의 어머니를 자신의 (시)어머니처럼, 리웨이의 어린 아들 요우를 자신의 친아들인 것처럼 알뜰히 챙기며 살고 있다. 당뇨를 심하게 앓던 엄마가 죽은 뒤 복잡한 문제에 휘말린다. 계속 리웨이의 존재를 꺼려하던 (리웨이의) 엄마는 결국 죽기 전에야 마음을 열었고,  그에게 어린 '요우'를 입양하라고 말한다. 리웨이의 동생 리강은 린젠이를 의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리웨이의 죽음, 어머니의 죽음까지 의심받게 된다. 대만은 2019년부터 동성간의 결혼이 합법화된 나라이다. 사회적 합의, 법적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난관이 있었으리라. 그런데 여전히 백안시하는 사회적 통념이 존재하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서 느낄 수 있다. 그 점에서 이 영화가 흥미롭다. 남녀의 구분을 없애더라도 상황은 애매하다. (사실혼 관계의) 남편이 죽은 뒤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고, 그 아이를 입양하는 흔한 이야기에서 그 ‘여자’가 ‘남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게이 남자의 정체에 대한 가족들의 태도가 영화를 이끌어가는 힘이다. 감독은 이...

[휴가] 해고노동자의 삶 (이란희 감독,2020) * A Leave *

  지난 주 막을 올린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분에 상영된 <휴가>(감독 이란희)는 메이저 영화제, 혹은 요즘 영화판에서 만나 보기 힘든 노동과 인권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소설가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에서는 해고노동자가 높다란 굴뚝에 올라 기한도 알 수 없는 고공농성을 벌인다. 가족의 삶의 터전이었던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자신의 울분을 표현할 방법은 높고, 춥고, 외롭고, 배고픈 탑 위일 뿐일까. 2020년 한국사회, 노동계의 현실은 변함없다. 어디선가 축배를 드는 반면, 또 어느 한 구석에서는 실적의 압박으로, 경기의 후퇴로 끔찍한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란희 감독의 신작 <휴가>는 해고무효소송에서 최종적으로 패소한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는다. 대법원 판결까지 나섰으니 법적으로 정리된 상태이다. 그럼 그가 갈 곳은 어디인가.   회사와의 해고무효소송에서 패소한 중년의 해고노동자 재복(이봉하)은 망연자실하다. 언제 적부터 눌러앉은 천막농성장이지만 동료는 하나둘 떠나가고 깃발만 나부끼고 있다. 더 싸울 여력도 여지도 없는 그와 동료들은 “이렇게 된 것 마음을 추스를 겸, 휴가나 다녀오자.”고 그런다. 재복은 휴가비도 없는 그런 이상한 휴가를 떠나게 된다. 어디로? 실로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해고노동자의 집은 삭막하다. 싱크대는 막혀 있다. 싱크대를 뚫고, 오랜만에 집 청소를 한다. 철 지난 선풍기도 깨끗이 닦아둔다. 오랜만에 만난 두 딸은 서먹서먹하다. 서둘러 저녁을 차리지만 컵라면을 들고 시큰둥해한다. 큰 딸(김정연)은 당장 대학 예치금 40만원이 필요하단다. 작은 애(이승주)는 롱패딩을 갖고 싶어 한다. 다행히 친구의 소개로 가구공장에서 며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노동자의 권리는 보호받지 못하는 것 같다. 제 코가 석자인 재복은 오늘도 열심히 일한다. 짧은 휴가는 끝나고, 아무런 기약도 없는 농성천막으로 돌아간다.   이란희 ...

[먼 바다까지 헤엄쳐 가기] 지아장커 다큐멘터리 Swimming Out Till the Sea Turns Blue *

  지난 주 막을 올린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는 68개 나라에서 출품된 192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코로나사태로 최소한의 범위에서 영화제가 운영된다고는 하지만 상영편수가 대폭 줄어든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영화가 딱 한 차례씩만 상영되는 까닭에 영화팬들의 접근이 쉽지만은 않다. 어렵게 소개되는 영화 중 중국 지아장커(賈樟柯) 감독의 다큐멘터리 <먼 바다까지 헤엄쳐 가기>(원제: 一直游到海水變藍/ Swimming Out Till the Sea Turns Blue)라는 작품이 있다.  중국 산시(山西)성 펀양(汾陽) 출신의 지아장커 감독은 1987년 <소무>로 충격적인 데뷔를 한 후 <플랫폼>, <임소요>, <세계>, <스틸라이프>, <천주정>, <산하고인> 등 내놓는 작품마다 명확히 중국 이전 세대의 영화감독과는 다른 자신만의 영상미학과 주제의식을 관철시키고 있다. <스틸라이프>는 베니스황금사자상을, <천주정>은 칸 각본상을 수상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그가 오랜만에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그는 곧잘 다큐를 만들었다. 화가의 회화세계를 담은 <동>, 중국패션산업을 다룬 <무용>, 그리고 도시이야기 <24시티>같은 작품이었다. 그가 중국현대사의 굽이굽이를 다큐로 담았다고 하니 흥미롭다.  지아장커가 만든 다큐멘터리 <먼바다까지 헤엄쳐가기>는 우리가 기대했던 웅장한 중국의 현대사나, 역사의 광기가 휩쓸고 간 들판에 엎어져 고통스러워하는 인민의 일그러진 얼굴을 담지는 않는다. 어쩌면 서구인의 시선에 익숙해진 우리의 중국바라보기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려고 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지아장커 감독은 오늘날의 중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를 통해 현대중국을 돌아본다. 감독은 2019년 5월, 자신의 고향에서 열린 문학축제에서 그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카메라...

[그대 너머에] 인버전된 박홍민 감독 * Beyond You *

   혹시 박홍민 감독의 전작 <물고기>(11)나 <혼자>(15)를 보셨다면 이 영화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영화라는 미디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존재에 대한 끝없는 탐구를 펼치는 감독이 바로 그이다. 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처음 소개된 작품 <그대 너머에>도 그런 감독의 진지한 탐구생활이 이어지는 작품이다.  <그대 너머에>는 한 영화감독의 이야기이다. 팔리지 않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시나리오에 썼기에 제작사 대표에게서 한 소리를 듣는다는 설정부터가 자기성찰적 이야기로 들린다. 하지만 영화는 그 남자의 시나리오와 현실과 꿈, 그리고 묘하게도 과거의 인연이 서로 뒤엉켜 진행된다. (어쩌면 그게 다 시나리오에 있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마을공원 풀밭에 개미들이 열심히 기어가고 있다. 카메라는 개미들을 유심히 비춘다. 옆 정자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다. 주인공인 감독(김권후)이다. 그의 앞에 지연(윤혜리)이 등장한다. “우리 엄마를 한번 만나봐 주세요.”라고 애원한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엄마는 계속 글을 쓰고 있는데 감독이야기를 계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지연이 그런다. “혹시 당신이 제 아버지 아니세요?”란다. 황당해하는 감독. 그리고 마주치는 인숙(오민애). 20년만의 만남이라고 한다. 이어 개미를 보여주고, 지연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인숙의 기억이 오락가락한다. 영화는 어느 순간 묘한 시선을 보이기 시작한다. 분명, 인숙과 이야기하고 있는데 인숙은 저쪽을 쳐다보고 있다.  “여기 있는 엄마는 아저씨 기억 속에 있는 엄마에요” 관객은 그 지점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마치 <식스 센스>의 브루스 윌리스가 된 듯하다. 하지만 알 수 없다. 지연의 존재도, 인숙의 존재도, 아니 감독의 존재에 대해서도 말이다. 지연은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에 대해 원망하고, 감독은 기억 속의 인숙을 끄집어내기 위해 발버둥친다. 어쩌면 꿈을 통해, 호흡을 통...

[커밍 홈 어게인] 웨인 왕+이창래+이문세, 그리고 엄마의 갈비 (웨인 왕 감독, Coming Home Again, 2019) [BIFF리뷰]

  지난 3일 개막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00여 편의 다채로운 영화가 한국의 시네필에게 소개된다. 그중 <커밍 홈 어게인>(Coming Home Again)은 미국 내 아시아인들의 정체성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하는 웨인 왕 감독의 신작이다. 홍콩 출신의 웨인 왕은 17살에 미국에 왔고, 올해 70살이다. 그가 이번에 관심을 보인 것은 미국에 뿌리를 내린 한국인사회 구성원의 이야기이다. 당초 웨인 왕 감독이 부산을 찾을 예정이었지만 최근 건강상태로 막판에 취소했다. BIFF에서 영화가 상영되기 전, 웨인 왕 감독이 영상으로 자신의 영화를 소개했다. 감독은 한국계 미국인(교포 1.5세)인 이창래 작가가 1995년 ‘뉴요커’에 쓴 에세이를 보고 인상에 남았다고 한다. 작가가 위암에 걸린 어머니를 1년여 병수발을 들며 느낀 복잡한 심정을 글로 옮긴 것인데, 웨인 왕 감독도 자신의 어머니를 파킨슨병으로 보내며 그 때 감정을 영화로 옮기고 싶었다고. 웨인 왕 감독 작품답게, 독립영화답게 영화는 힘들게 펀딩이 이뤄졌고, 저예산으로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암과 삶과, 인생, 그리고 한국인의 정서’를 전해준다. 영화가 시작되면, 샌프란시스코의 주택가를 달리는 창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조깅 중이다. 거친 숨을 내쉰다. 어딘가 분노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갑자기 쪼그려 앉아 오열을 터뜨린다. 그리고 아파트에 와서는 샤워한다. 천천히 아파트를 보여준다. 저쪽 방 침대에는 위암에 걸린 어머니가 있다. 창래는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회사를 그만 두고 이곳에 온 것이다. 조금씩 상황이 드러난다.  한국인 특유의 교육열에 의해 명문 고등학교에 보내졌고, 예일에 진학하고, 결국 월스트리트로 간 창래는 소설을 쓰겠다고 한다. 돈 안 되는 작가의 길에 아버지는 언짢아했다. 대학교수인 아버지는 어머니의 병간호엔 젬병이었고, 가족의 일엔 권위도 없이 자리만 지키고 있다.  창래는 엄마가 해준 음식들을 재현시키려고 노력한다. 특히 갈비를. 뼈에 살이 어느...

[메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스피탈 (이옥섭 감독, Maggie 2018)

   지난 주말 막을 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최고의 화제작은 개막작도 폐막작도 아닌, ‘한국영화의 오늘-비전’부문에서 상영된 한국독립영화 <메기>일 듯하다. ‘메기’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비를 지원한 저예산독립영화이다. ‘메기’낚시를 가는 낚시꾼의 인권을 다룬 영화는 절대 아니다. 이옥섭 감독과 이주영-구교환 등이 펼치는 재기발랄한 청춘드라마이다. 그렇다고 알콩달콩한 연애이야기는 더더군다나 아니다. 영화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장르의 대향연을 펼친다.  영화가 시작되면 퇴락한, 혹은 변두리의 한 병원-마리아사랑병원-을 보여준다. 뜬금없이 “우주선을 타지 않고 우주를 가려면 방사선과에 취직하는거다. 인간의 몸이 우주니까.”라는 내레이션이 흐른다. 천연덕스럽게 NASA로고가 박힌 이 병원 방사선과에서 사고가 생긴다. 어느 커플이 이곳에서 정사를 치렀고, 그 장면이 엑스레이로 찍힌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과연 엑스레이 속 민망한 포즈의 주인공들이 누굴까에 관심이 쏠린다. 간호사 여윤영(이주영)은 주인공이 자기인 듯 싶다. 동거남(구교환)도 “우리가 맞는 것 같은데?” 그런다. 다음날 병원은 발칵 뒤집어졌을 것 같은데 너무나 조용하다. 부원장(문소리)만 출근한 상태이다. 다들 휴가내고 출근을 안 한 것이다. 모두가 자신이 찍힌 것이라 생각한 모양. (이 장면을 볼 때는 버나드 쇼가 영국 고관들에게 다짜고짜 “들통 났으니 튀어라”고 전보를 치니, 다들 도망갔더라는 유머가 떠오른다)  영화는 이렇게 황당한 SF코미디로 시작되지만 이내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중요한 것은 ‘믿음’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불신으로 이어지고, 불신의 이야기는 싱크홀 이야기가 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청년’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라고 했단다!) ‘싱크홀’이 생기자 이를 메우기 위해 청년들이 대거(그래봐야 3명!) 동원된다. 일자리 창출. 하지만 반지를 잃어버리자 또 다시 대두되는 ‘믿음’의 문제. 그리고 커플...

[유리정원] 녹색의 피가 흐르는 사람들 (신수원 감독, Glass Garden, 2017) #BIFF2017개막작

  [박재환 2017.10.12] ‘명왕성’, ‘마돈나’ 등 독특한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어온 신수원 감독의 신작 <유리정원>이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세계적 영화제로 성장한 부산영화제의 막을 여는 작품으로 선정되었으니 기대를 가질만하다. <유리정원>은 문근영과 김태훈이 주연을 맡았다. <유리정원>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문근영은 대학부설 생체에너지연구소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생명공학 연구원이다. 어릴 때 한쪽 다리가 성장을 멈추면서 몸의 잡지 못한 채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다. 지도교수 서태화 밑에서 연구하고 있는 것은 녹혈구. 어릴 적 식물에서 ‘녹혈구’를 추출하여 생명을 연장시키겠다는 꿈의 프로젝트에 매달려있다. 하지만, 산학협력을 앞세우는 학교 입장에서는 미래를 알 수 없는 그런 장기 프로젝트보다는 ‘클로레라’와 ‘헤모글로빈’이 결합된 미용상품 개발에 올인한다. 자신의 연구아이템과 그간의 연구결과를 빼앗긴 문근영은 절망과 분노로 숲속의 자기만의 공간-유리정원-으로 숨어든다.  또 한 남자, 김태훈은 오래 전 <언더그라운드>라는 소설을 쓴 뒤, 도통 신작을 쓸 수가 없는 소설가. 게다가 어느 날 술자리에서 유명작가로부터 그만두라는 핀잔을 듣게 되자 발끈하여 “표절이나 하는 주제에.”라며 대들었다가 출판계에서 매장 당한다. 의기소침한 이 남자는 우연히 문근영의 존재를 알게 되고, 몰래 그녀를 관찰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소설로 옮긴다.  작가는 처음 “나는 숲에서 태어났다. 내속에는 녹색의 피가 흐른다”라는 말에 매료된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느낌. 그리고 창작물의 표절에 대한 분노를 가슴에 담고 있다는 것. 하지만, 과학도와 문학도의 결합은 어둡다. 생명연장의 헛된 꿈, 혹은 마비된 (덜 자란) 한쪽 다리의 세포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은 여자를 점점 ‘사이코’로 만들어간다. 문근영의 절망과, 그것을 지켜보는 소설가, 영화는...

[위험한 관계] 상해지련 (허진호 감독 危險關係 Dangerous Liaisons, 2012)

 (박재환, 2012.10.23.)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는 장동건, 장백지, 장쯔이가 주연을 맡은 멜로드라마 <위험한 관계>이었다. 이 영화는 지난 달 중국에서 개봉되었고 부산영화제에서 소개된 후 곧바로 국내에서도 극장개봉 되었다. 출연배우들의 면면만 보아도 이 영화는 2012년 아시아의 대표영화로 손꼽을만하다. 게다가 감독이 허진호라니. 이 영화는 중국 자본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잔잔한 멜로에 재능이 있는 한국 영화감독에, 아시아 시장에 통할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검증받은 콘텐츠를 활용한 작품이다. 18세기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쇼데를르 드 라클로의 원작소설 <위험한 관계>는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질투와 배신에 눈이 먼 남자와 여자의 사랑놀이가 기본구조이지만 다양한 변형을 보여주었다. 한국의 이재용 감독이 배용준을 캐스팅한 <스캔들>의 경우는 조선시대 규방마님을 주인공으로 했다. 이번 중국판 <위험한 관계>는 뜻밖에도 1930년대 상하이를 끌고 왔다. 어떤 사랑놀이가 펼쳐질까.  화화공자(花花公子), 미망인을 희롱하다  셰이판(謝易梵,장동건 분)은 상하이의 소문난 플레이보이이다. 물려받은 재산으로 상하이 중심가에 호화로운 호텔을 경영하며 한가로이 걸 헌팅을 하는 것이 취미이자 일상이다. 그의 유혹에 세상의 모든 여자는 100% 넘어온다. 한편 모졔위(莫婕妤, 장백지 분)는 상하이의 유명한 여자 사업가. 뛰어난 미모와 타고난 붙임성으로 사교계의 여왕으로 통한다. 이 둘은 서로의 재능과 취미를 인정하면서 위험한 게임에 빠져든다. 어느 날 이들 앞에 나타난 두펀위(杜芬玉,장쯔이 분)라는 여인 때문에. 두펀위는 남편을 여의고 혼자 조신하게 살고 있는 미모의 여인이다. 플레이보이와 유한마담은 이 정숙한 여자를 두고 한심한 내기를 건다. 한없이 조신하고 우아하고 정숙한, 그래서 이 두 사람이 보기엔 너무나 꽉 막힌 두펀위를 정복(!)하면 이기는 것이라고. 그런데 천하의 플...

[콜드 워] 홍콩은 어떻게 깨끗하고 안전한 도시가 되었는가 (寒戰/Cold War,2012)

1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품으로 홍콩 신예감독 류젠칭(陸劍青,륙검청)과 량러민(梁樂民,양악민)의 <콜드 워>가 선정되었다. 이 작품은 이달 18일 홍콩에서 개봉될 예정인 정말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부산영화제에서 홍콩영화를 개막작품으로 선정한 것은 왕가위의 <2046> 이후 8년만이다. 왕가위만큼이나 유명세도 없고, 한물 간 홍콩 범죄물을 개막작으로 선뜻 선정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류젠칭 감독은 오랫동안 조감독 생활을 했다. 놀랍게도 1999년 주성치의 <희극지왕>의 조감독으로 이름이 올라있다니! 량러민은 두기봉 감독의 <복수> 등에서 미술감독으로 일했단다. 아, 이를 어쩔 것인가.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는 뭘 믿고 이런 백그라운드의 중고신인감독의 개봉도 안한 홍콩작품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했을까. 곽부성과 양가휘라는 네임벨류를 믿고? <범죄와의 전쟁>이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했기에 홍콩은 어떨지 기대가 되어서? 어쨌든 한동안 홍콩영화는 액션이고, 코미디이고, 뭐고간에 개봉조차 힘들었던 한국에 소개된다고 하니 일단 기대는 된다. 염정공서, 부패와의 전쟁 이 영화에는 홍콩의 치안유지와 공정사회를 지키는 두 보루가 등장한다. 바로 홍콩경찰과 염정공서(廉政公署, ICAC)이다. 홍콩경찰이야 이전에 성룡이 날아다닐 때 출연했던 폴리스 스토리류나 두기봉 작품에서 충분히 그 존재감을 알 것이다. 그런데 ‘염정공서’는 홍콩의 대표적 상품(!)이다. 우리나라의 ‘국가청렴위원회’와 많이 대비되는데 염정공서는 홍콩 공무원의 염라대왕으로 통한다. 1970년대 부패가 판을 치던 홍콩을 뒤집어놓기 위해 세워진 이 기관은 부패와 비리에 연루된 (아니 연루되었다는 의심만 들어도) 공무원, 경찰, 관련인물들을 거의 ‘삼청교육대’수준으로 집어넣는 기관이다. 인터넷을 보니 이런 소개글이 있다. 출처를 규명하지 못하는 금전이 있을 경우 이를 몰수할 권리까지 가지고 있고, 비리혐의가 있으면 영장없이 48시간 구속시킬 수 있는 막강 권...

[오직 그대만] 미안하다 사죄한다 (송일곤 감독, Always, 2011)

  부산국제영화제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영화제는 개막작 선정에 고심한다. 대부분의 언론매체들은 개막식 날의 근사한 세레모니에 초점을 맞추고 개막작품에 대해 과도한 지면을 할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제 관계자들은 아직 개봉도 안한 작품 중에서 최고의 찬사를 이끌어낼 작품 선정에 목을 걸기도 한다. 부산영화제의 경우 올해는 영화의 전당이라는 근사한 전용상영관까지 만들어 세계에 첫 선을 보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개막작 선정에 정성을 기울였다. 그 결과 송일곤 감독의 <오직 그대만>이 선정되었다. 송일곤 감독은 오래 전 단편영화로 깐느 그랑프리를 걸머쥔 아트무비 계열의 감독이다. (부산영화제 개막작은 흥행과는 거리가 멀다는 속설이 생길 정도이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상황이 다를 듯하다. <오직 그대만>은 완벽한 멜로드라마로 흥행의 눈물바다를 약속한다. 나쁜 주먹, 착한 눈동자, 그리고 사랑 소지섭은 과거를 알 수 없는 남자이다. 주차관리원으로 주차박스 안에서 밤을 샌다. 어느 날 그 주차박스 안으로 한 여자가 들어온다. 바로 그 건물에서 일하는 텔레마케터 한효주이다. 한효주는 앞을 볼 수 없다. 매일 퇴근 후 주차박스에 들어와서 tv드라마를 본다. 소지섭은 맹랑한 이 여자의 갑작스런 출현에 놀란다. 그리고 로맨스가 시작된다. 한효주는 앞을 볼 수 없지만 소지섭의 땀 냄새와 벗은 운동화에서 퍼지는 발 냄새를 알아차린다. 소지섭은 몰래 발을 씻는다. 그런 순정 명랑만화같은 이야기가 펼쳐지더니 두 사람의 과거가 조금씩 드러난다. 남자는 왕년의 촉망받던 권투선수. 그 전에는 고아원출신. 잘 풀리는 인생은 아니었다. 권투를 그만두고 해결사 노릇을 하다 끔찍한 폭행사고에 연루되고 감옥까지 간다. 세상에 나와서는 조용히 주차박스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여자는 행복했던 가족을 비오는 어느 날 끔찍한 사고로 부모를 여의고 시각가지 잃어버린 것이다. 영화 <오직 그대만>에서는 오광록이 이 둘의 과거를 연결 짓는 끔찍한 사고...

[산사나무 아래] 암울한 시절에도 로맨스는 있기 마련 (장예모 감독 山楂樹之戀 Hawthorn Tree Forever, 2010)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2010년)로 15회째를 맞이한다.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은 올해도 최고의영화를 선정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특히 개폐막작 선정에 고심한다. 영화제의 위상도 높여야하고, 어느새 차갑게 느껴지는 바닷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수영만 요트경기장 야외상영장에서 개막작을 관람할 PIFF팬들도 만족시켜줘야 한다. 프로그래머들이 그렇게 1년을 공들여 초청한 작품이지만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 굉장히 실망스러운 작품도 많았다. 부산영화제도 15년을 하다 보니 그런 실망을 안겨준 경우도 꽤 된다.  이번 15회 개막작품은 중국 장이모우(张艺谋 장예모) 감독의 <산사나무 아래>가 선정되었다. 저녁에 열리는 개막작 상영에 앞서 기자들을 위한 사전 기자시사회가 열렸다.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백화점으로 등재되었다는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9층의 CGV 6관에서 영화가 상영되었다. 영화상영 뒤에는 감독과 배우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기자회견이 있었다. 이미 4회 때 폐막작으로 <책상서랍 속의 동화>가 상영되었고 이후 몇 차례 한국을 찾았던 장예모 감독은 인사말을 통해 이번 영화제를 끝으로 15년 동안 헌신한 부산영화제 조직위원장 자리를 물러나는 김동호 집행위원장에게 깊은 존경과 신뢰, 감사의 말을 전했다. 문혁, 순진남녀 연애하다 영화는 중국의 문화대혁명(문혁)시기를 다룬다. 중국현대사에서 문혁에 대해 부정적으로 기술한다. 모택동의 광적인 사회주의 대중운동으로 10년을 중국을 할퀸 문화대혁명은 중국을 정신적으로 완전히 황폐화시켰고, 경제발전을 수십 년 정체/역행시킨 전대미문의 이데올로기 투쟁이었다고. 모택동의 반대편에 있던 사람은 모조리 숙청되었고, 공산주의를 기치로 내건 시대상황에서 자본주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주자파’(走資派)라는 올가미를 씌웠고, 여기에 걸리면 자아비판과, 숙청, 죽음을 면치 못했다. 문혁의 최선두에는 모택동의 열혈 지지자인 어린 홍위병이 있었다. 이들의 무자비한 ‘나대기’로 인해 군대에서는 계급제...

[하이자오 7번지] ‘역사적인’ 러브 레터 (위덕성 魏德聖 감독, 海角七號 2008)

흥미로운 대만영화 한 편이 곧 개봉된다. 혹시 최근에 극장에서 ‘대만영화’를 보신 적이 있는지. 영화를 조금 아는 사람은 대만영화라 하면 곧 후효현 감독의 <비정성시>를 언급할지 모르겠다. ‘홍콩’ 배우 양조위의 우수에 젖은 눈빛 운운하면서 말이다. 그 ‘대만’ 영화가 지니는 심각한 역사적 함의를 이해하긴 쉽지 않다.  최근 (한국의 영화팬에게) 주목받은 대만영화로는 주걸륜이 피아노 배틀을 펼쳤던 <말할 수 없는 비밀>정도일 것이다. 대만은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와 거의 유사한 성장모델을 보인다. 공산주의와 결사항쟁 펼쳐야했던 시절이 있었고, 개발독재시대도 공유했으며, 진통 속에 민주화 과정도 겪었다. 그런데 영화산업 진흥 측면에 있어서는 한국이 조금 낫다. 우리나라에는 ‘스크린쿼터제’란 것이 그나마 산업적으로 국산영화를 지탱시켜왔지만 대만에는 그런 것조차 없다. 그러다보니 극장은  때로는 홍콩영화가 대세를 이룰 때도 있었지만 온통 할리우드영화 천하였고, 대만영화는 ‘독립영화’ 아니면 배고픈 ‘아트 영화’만이 그나마 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의 영광을 누리며 명맥을 유지해온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시아 각국에서 영상산업, 영화산업이 국가적 주요과제(특히 돈을 많이 벌어오는 산업적 측면에서!)로 주목받으면서 한국, 태국처럼 대만도 국가적 차원에서 자국 영화진흥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주로 ‘돈을 뿌리는’ 방식이다. 해외에서 상 타오면 상금 얼마 주고, 자기 동네에서 영화 찍으면 제작비의 일정부분을 지원해주고 하는 식으로. ● 2008년 대만 최고 흥행작품 지난 2008년 대만에서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작품은 <다크 나이트>도, 오우삼 감독의 <적벽대전>(1부)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트 <아이언 맨>도 아닌, 대만영화 <하이자오 7번지>(海角七號)라는 영화였다. 대만에서는 그해 8월에 개봉되어 5억 3천만 NT$ 라는 엄청난 흥행기록을 세웠다. (아바타가 나오기 전까지) 한동안 전 세계...

[나는 비와 함께 간다] 홍콩 예수 * I Come With The Rain *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에 소개되는 영화 중에 가장 관심을 받은 작품 중의 하나가 바로 이병헌, 기무라 타쿠야, 그리고 할리우드의 조쉬 하트넷이 출연하는 영화 <나는 비와 함께 간다>라는 영화이다. 역시 배우들의 이름 값 때문인지 이 영화는 발매시작 38초 만에 인터넷 예매분이 매진되는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이 영화는 지난 6월에 일본에서 먼저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트란 안 홍(Trần Anh Hùng) 감독 작품이다. 이름이 조금 생소할 수도 있지만 베트남 출신의 유명감독이다. <그린 파파야 향기>, 그리고 <시클로>로 해외영화제에서 각광받은 인물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시클로>에 출연한 양조위 때문에 더 유명해진 영화요 영화감독이다. (그것은 마치 후효현 감독의 <비정성시>와 비슷한 이유이다) 트란 안 홍 감독이 2000년 <여름의 수직선에서>을 완성한 뒤 한 작품을 추진하다 중단되고 그 뒤로 줄곧 이 영화에 매달렸다. 감독은 국제적인 캐스팅을 원했고, 이병헌, 기무라 타쿠야, 조쉬 하트넷의 캐스팅이 완료될 때까지 고생을 한 모양이다. 어쨌든 막강 삼인방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했고 영화는 만들어졌다. 그리고 국내에도 소개된다. 일본 개봉 뒤 이미 내용이나 영화의 이미지, 평가는 대략적으로 전해졌다. ‘밝음’보다는 ‘어두움’으로 말이다. 세 남자와 한 여자    영화의 시작은 <더 셀>이나 <양들의 침묵> 스타일이다. 형사 클라인이 위험스럽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아마도’ 잔인한 연쇄살인마와 맞닥친다. 그리고 이 형사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시간이 꽤 흐른 뒤 그날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서 겨우 헤어 나온 그는 사람 찾아주는 사립탐정일을 한다. 그에게 맡겨진 임무는 필리핀에서 사라진 아들을 찾아달라는 대부호(유명제약회사 오너)의 부탁이다. 형사는 아들을 찾아 필리핀으로 날아간다. 그곳에서 그보다 먼저 그 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