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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팔부:교봉전] 김용이 쓰고, 견자단이 보여준 ‘항룡이십팔장’

신필(神筆)이었던 고(故) 김용(金庸/진융) 작가는 살아생전 모두 15편의 무협소설을 내놓았다. 홍콩 무협영화 전성기에는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수도 없이 재생산되었다. 오랜만에 그의 소설을 영화로 옮기 작품이 극장에 내걸렸다. (그리고, 원작소설 챙겨보는 동안 이미 IPTV로 넘어갔다!) 지난 1월 25일 개봉되었던 <천룡팔부:교봉전>은 김용 작가가 1963년부터 홍콩의 <<명보>>(明報)에 연재하던 무협소설이다. 반세기 전에 나온 소설이지만  지금 봐도 스케일과 캐릭터, 전해주는 정서가 가히 우주 급이다.   ● 김용과 무협소설  김용은 소설가이면서 언론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역사전문가이다. 그는 유장한 중국역사를 배경으로 수많은 인물이 얽히고설킨 사랑과 열정의 드라마를 유려하게 소설로 써내려갔다. 그의 소설은 읽으면 읽을수록 감탄하고 빠져들게 된다. (그러니 함부로 발을 들여놓지 말기를!) 중국어 표현에 ‘낙양의 지가(紙價)를 높였다’는 말이 있는데, 실로 김용은 자신의 소설로 ‘명보의 지가’를 올리는데 혁혁한 공을 쌓았다. 신문잡지의 연재소설의 힘(효용성)에 대해서는 아마도 100년 뒤 ‘언론학자’들이 연구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김용은 <서검은구록>부터 시작하여 <월녀검>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품을 신문과 잡지 등을 통해 발표했다. 우리가 많이 아는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소오강호’, ‘녹정기’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동방불패, 동사서독, 독구구패 등은 다 김용의 원작소설에서 나온 것들이다)  김용은 1955년에서 1969년까지 15년 동안 엄청난 스케일의 소설을 쏟아내고는 일순간 ‘무협소설’ 절필을 선언했다. 그리고는 언론인과 정치평론가의 삶을 산다. 그러면서 꾸준히 자신의 작품에 대한 수정작업을 진행했다. 주로, 인명과 역사적 배경에서 소소한 수정과 가필 작업을 한다. ‘천룡팔부’에서의 수정작업은 ‘...

[천룡팔부] 김용 소설의 쇼 브라더스식 해석 (Demi-Gods and Semi-Devils, 포학례 감독 天龍八部, 1977)

(박재환 2005/3/2) 김용이 쓴 길고 긴, 많고 많은 무협소설들은 홍콩, 중국, 대만에서 경쟁적으로 TV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도 "누가 주인공으로 나온 게 더 재밌다"라고 말할 정도로 매니아가 많다. 지난달 임청하, 공리, 장민 등이 출연하는 영화 [천룡팔부](94년)의 리뷰를 올리면서 김용 이야기와 그의 대하소설이 어떻게 100분 짜리 영화에 구겨 넣어지는지를 소개한 적이 있다. 김용의 [천룡팔부]는 1977년도에 쇼 브라더스에서 한 차례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물론 그 전에 다른 김용 작품도 잇달아 영화로 만들어졌었다. 그럼 김용 소설의 SB(쇼 브라더스) 버전은 어떨까.   소설을 읽은 사람은 다들 아시겠지만 [천룡팔부]는 출연진도 많고 각종 무예가 집대성한 굉장히 스케일이 큰 대하 무협극이다. 단예와 소붕, 허죽 이들 세 영웅호걸의 장대한 우정극이 주된 플롯이다. 이들 세 명의 인연이 하도 기구하고, 겪게 되는 모험담이 보통이 아니기에 이들 세 사람의 이야기를 동시에 한 편의 영화에 넣는다는 것은 무리 중의 王무리이다. 94년도 작품에서는 소림사 승려 '허죽'이 어떻게 무술의 고수가 되는지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77년도 SB작품은 '단예'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단예는 대리국(大理國 (937~1252)의 태자이다. 북송(北宋)시대 현재의 호남-귀주성 부근에 자리 잡고 있던 운남(雲南) 대리국은 실재했던 나라이며 김용 선생은 '역사'와 '이야기'와 '전설'을 황당하게 잘 버물려 멋진 무협소설을 만들어낸 것이다. 단예의 아버지 단정순은 대리국의 왕이면서도 타고난 풍류가-바람둥이-이다. 그는 곳곳에서 수많은 여자와 순정을 나눈다. 영화가 시작되면 단정순이 왠 여자와 정사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도 여자는 '진홍면'인 듯. 이때 (아마 남편인 듯한) 한 남자가 나타나서 여자를 두고 싸운다. 단정순은 대리국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