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며 영화팬의 주목을 받았던 올리베르 라셰(Oliver Laxe) 감독의 영화 <시라트>가 한국에서 정식으로 개봉되었다. 길/통로를 뜻하는 ‘시라트’(sirāt)는 이 영화에서 종교적인 의미를 더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이슬람 경전에서는 시라트는 지옥 위에 놓인 가느다란 다리로,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칼날보다 날카로워 의로운 자만이 다리를 건너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설명해 준다. 어떤 운명의 아랍 사람들이 그 아슬아슬한 길을 걷게 되는 것일까. 영혼을 흔들고 심장을 끝없이 쿵쾅거리게 하는 음악과 함께 관객들은 그 고행의 길을 함께 한다.
모로코 남부 사막지역에 수많은 사람들이 집시처럼 모여든다. 수많은 캠핑카와 트럭, 밴들이 보이고 유랑자들이 강한 비트의 테크노/신디사이저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이른바 ‘레이브 파티’이다. 사람들은 약에 취해, 술에 취해, 음악에 취해 흐느적댄다. 그 사람들 사이를 루이스(세르지 로페즈)와 어린 아들 에스테판이 누군가를 찾아 헤맨다. 이들 부자는 오래 전 소식이 끊긴, 실종된 딸 마르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찾을 수가 없다. 이들을 불쌍히 여긴 사람이 이곳 파티가 끝나면 모리타니아 쪽에서 또 다른 레이브 파티가 열리니 그 곳으로 가보라고 일러준다. 그때 트럭을 탄 군인들이 몰려온다. 축제는 끝났다고. 어디선가, 무슨 일로 전쟁이 일어났고 EU시민권자는 안전지대로 신속히 이동해야한단다. 하지만 딸을 찾으려는 생각뿐인 루이스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약속된 땅을 향해 길을 떠난다. 끝없는 황야, 붉은 돌산, 깎아지른 절벽의 좁다란 도로를 따라.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아야할 것 같다. 치지직대는 라디오에서는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는 뉴스를 전한다. 총을 든 군인의 모습은 잠깐 보였지만 이곳, 황량한 사막은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인 듯하다. 이들은 흙먼지를 날리며, 낡은 차에 올라 국경을 통과해야한다. 그렇게 아프리카 서북부, 모로코 사하라 사막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한국 관객에게는 이곳은 낯선 지역이다. 그곳에는 ‘서사하라’(사하라아랍민주 공화국)라는 애매한 지위의 나라가 있다. 마치 이스라엘 땅의 팔레스타인 같은. 오랜 세월 사막 위에서 방치된 잊힌 땅이다. 놀랍게도 모로코는 이곳에 무려 2600킬로미터의 장벽을 쌓아 접근을 통제한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 DMZ 철조망 같은 장벽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 그 끔찍한 금단의 땅을 직접 목도하게 된다.
‘레이브 파티’에 참여한 사람은 마치 마리화나에 취해 록앤롤에 취해 밤새도록 광란의 축제를 벌이는 히피들의 모습 같다. 그들이 왜 사막에 모여, 그렇게 춤을 추는지 모른다. 유명한 록커도, 조앤 바이즈도 없다. 가사는 의미를 상실했고, 오직 쿵쾅대며 심장을 두들기는 신디사이즈의 음률이 그 사람들을 흐느적거리게 하고 관객을 몽환에 빠뜨린다.
그곳에서 딸을 찾아 헤매는 아버지 루이스의 절박한 모습에 이 영화는 부성애를 그리는 영화인 듯 하지만, 음악이 계속될수록, 절망이 쌓일수록 영화는 심오해진다. 함께 여정을 하며 사선을 넘나드는 우연한 동반객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깎아 지르는 돌산의 옆구리를 굽이굽이 도는 좁은 찻길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지나면서 관객들은 마침내 그 ‘사막의 시라트’를 마주한다. 과연 이 영화는 살아남는 자의 영광인지, 살아야하는 의지인지, 살기 위한 신의 선택인지 여러 가지 단상을 관객에게 남겨놓는다.
영화는 오래도록 기억될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사막의 비극이 찌릿한 아픔을 남긴다. 우리가 왜 저 길을 달려왔는지, 우리가 무엇을 찾아 헤맸는지 의문을 남긴 채 말이다. 운명도 숙명도, 구원도, 종말도 모든 의미가 거대한 두 개의 탑, 스피커에 갇힌다. 이 영화는 정년 올해의 ‘영화’이다. (박재환.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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