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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체이스] 히가시노 게이고, 설원을 달리다 (雪煙チェイス/ Blizzard Chase)

일본 추리소설의 대가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가 돌아왔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내놓은 듯한 겨울시즌 맞춤형 소설 <눈보라 체이스> (雪煙チェイス/양윤옥 옭김, 367쪽, 소미미디어)이다. 실제 스노보드를 즐기는 겨울스포츠 마니아로 알려진 히가시노 게이고가 <백은의 잭>과 <질풍론도>에 이어 내놓은 이른바 ‘설산(雪山) 시리즈’의 3번째 작품이다. 취업을 앞둔 평범한 대학생 와키사카 다쓰미는 스노보드 매니아. 이날도 신게스 고원의 설산을 찾아 활주금지구역의 비밀스런 포인트에서 자기만의 스노보딩을 즐긴다. 아무도 밟아보지 않은 파우더 스노우를 활강하는 매력은 아는 사람만 아는 법. 그런데,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그곳에 한 여자가 있었다. 셀카를 찍으려는 그녀를 위해 사진을 찍어준다. 그녀가 남긴 말은 “내 홈그라운드 사토자와야!”라는 말뿐. 그리고 다시 돌아온 도쿄. 그런데, 그 사이에 그는 살인용의자가 되어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희생자는 자신이 이전에 알바를 하면 알던 사람이다. 다쓰미는 법대 친구생의 말대로 자신의 알리바이를 입증해 줄 유일한 사람, ‘스키장의 그녀’를 찾아 나가노현 사토자와 온천스키장으로 떠난다. 마음속으로 ‘여신’이라 불렀던 그녀가 있을지 없을지 모를, 어떻게 만날지도 모르겠지만 절박한 마음으로 설산을 향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살인의 과정, 추리의 과정, 해결의 과정이 모두 흥미진진하게 맞물러 돌아간다. 다쓰미와 다쓰미의 의리파 친구, 그리고 도쿄 경찰의 내부상황, 사토자와 스키장 사람들의 이야기가 풍요롭게 펼쳐진다. 그 재미를 따라가면 스키 활강하듯 스피드하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1958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히가시노 게이고는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1985년 <방과후>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후 전업작가의 길로 나서 수십 편의 소설을 내놓았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국내에 번역출판되었다. 그의 작품은...

[북 리뷰] '제로니모' 아메리칸 인디언의 비극 (포리스트 카터 著 Watch for Me on the Mountain)

.... 사람은 과연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독립군)을 잔인하게 다룬 일본 순사에 대한 우리 식(1970~80년대 영화감독의 미학) 제작방식은 이렇다. 독립투사를 매달아놓고 채찍질을 하거나 손톱을 뽑아 고춧가루를 뿌리는 수준이다. 그런데 같은 시대를 다룬 북한영화를 잠깐 본 적이 있다. 일본 놈들이 말을 타고 와서는 독립군이 숨어있는 집을 불태운다. 아녀자가 울고불고 난리이다. 일본순사는 총검으로 울고 있는 아이 하나를 탁~ 찍어서는 불구덩이로 집어던져버린다. 그 잔인함! 인성의 잔인함일까, 표현방식의 잔인함일까. 인디언과 서부의 악당들을 다룬 작품을 대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문득 든다. ****  태고에 드넓은 대지가 있었다. 엄청난 숫자의 버팔로가 유유히 풀을 뜯어 먹고 산다, 산과 들과 물. 자연을 벗 삼아 평화롭게 자자손손 살아오던 원주민이 있었다. 어느 날 이 땅에 총칼을 앞세운 유럽 사람들이 들이닥쳤고, 이 땅은 유럽 사람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그 땅위에 살던 사람들은 ‘인디언’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 땅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건국되었고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대륙의 서쪽으로 내몰리더니, 조금씩 ‘인디언 보호구역’이라는 집단수용소에서 자유를 억압당하고 비주류로 사라져갔다. 그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다룬 20세기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하나같이 잔인하고, 무식한 폭력모리배로 등장한다. 거의 벌거벗은 그들은 말 위에서 괴성을 내지르며 평화로운 백인마을에 몰려와서는 순박하고 정의로운 백인들을 학살하고, 양민들을 겁탈하고, 도적질하며 불태워버리는 인류문명의 적으로 묘사된다. 나중엔 백인마을의 술집 문밖에서 엎어져 있는 술주정뱅이 하류인종으로 나온다. 과연 그런가? 나중에 할리우드 영화판에서 시각교정이 이루어진 새로운 영화가 등장했다. ‘나쁜 인디언’에 대한 새로운 조명을 하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이들 영화를 ‘수정주의 웨스턴’이라고 한다. 왜 인디언들이 그런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하느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