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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성채:무법지대] 1997년의 홍콩의 한 구석 (정보서 감독, 九龍城寨之圍城/Twilight of the Warriors: Walled In2024)

  사이버펑크SF의 걸작인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의 하나는 좁고, 낡은, 허름한 아파트 사이로 뚫린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의 모습이다. 이 그로테스크란 건물이 바로 홍콩 ‘구룡성채’의 이미지이다.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 마지막 장면에서 양조위가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빗는 그 좁은 공간도 이곳이다. ‘구룡성채’의 남루하고, 기이하고, 폐쇄적인 모습은 번잡한 홍콩의 아찔한 슬럼 도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구룡성채’는 마치 가건물들이 우후죽순처럼 자가증식한 것 같은 기묘한 밀집형태로 오랫동안 빈민가, 우범지대, 악의 소굴 등으로 인식되었다. 100년 이상의 오랜 시간을 거치며 ‘역사적으로’ 형성되었던 이곳은 지난 1993년 완전 철거되었다. 이후에도 홍콩 사람들에게 ‘집단 회억(回憶)’의 시공간으로 남아있다. 그 곳을 배경으로 한 홍콩영화 <구룡성채:무법지대>가 16일 개봉한다. 지난여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소개되어 왕년의 홍콩액션영화, 홍콩느와르를 기억하는 영화팬에게 반가움을 안겨줬던 작품이다.  (우선, 홍콩에서 만든 중국영화, 광동어 더빙 영화는 등장인물의 이름부터 혼란을 준다. 특히 한국극장가에 내걸릴 때는 영어이름과 뒤섞여 소개된다. 이 점 혼란을 주기도 하지만, 그런 식으로 홍콩영화를 접한 관객에게는 그러려니 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구룡성채’에 대한 전설, 암흑가의 세력다툼에 대해 잠깐 자막으로 설명한다. 무정부상태에 가까운 이곳을 장악한 것은 레이(雷震東)였다. 그의 수하 찬짐(陳占,곽부성)은 ‘살인왕’이라고 불릴 만큼 잔혹했다. 하지만 사이클론(고천락), ‘추’(임현제), ‘타이거’(황덕빈)와 손을 잡고 일대 전쟁을 벌여 마침내 이곳을 평정한다. 뛰어난 무공과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사이클론은 이곳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며 나름 평화와 안녕을 구가한다. 성채 밖에선 빅보스(홍금보) 무리가 진을 치고 있다.  영화는 홍콩에 밀입국한 천록쿤(...

[천녀유혼 2011] 새로운 섭소천, 새로운 천녀유혼 (倩女幽魂 엽위신 감독,2011)

(박재환.2011) 최근에 극장에서 홍콩영화 보신 적 있나요? 한국극장가에 내걸리는 홍콩영화를 놓치지 않고  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작년에 홍콩과 대만을 합친 중화권영화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겨우 1.2%이다. 그러나 한때는 홍콩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와 나란히 한국시장을 주도하던 시절이 있었다. 주윤발, 유덕화, 장국영의 신작영화들이 매주 쏟아지던 호시절. 그때는 임청하, 장만옥, 왕조현이 여신이었다. 그 시절 진정한 ‘싸나이’의 우정과 의리, 강호의 도를 부르짖던 수많은 홍콩영화들이 한국 영화팬들의 심성을 뒤흔들었다. 그러던 홍콩영화는 지독한 자기복제와 재능의 소진으로 기나긴 부진의 늪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하지만 그 옛날의 영광은 오늘날의 자양분이 된다. 중국의 넘치는 돈은 영화계에도 스며들었고 대중문화의 첨병인 영화산업은 가장 각광받는 블루칩이 되어가고 있다.  최근 들어 중국영화계는 홍콩의 영화자산과 한국의 영화기술과 손잡고 대작 영화에 올인하고 있다. 수많은 중국의 역사 속 인물들이 줄줄이 스크린에서 부활하고 있으며 한 시절을 풍미했던 홍콩영화들이 서서히 동면에서 깨어나고 있다. <천녀유혼>도 그러하다. 1987년 홍콩영화계의 재간둥이였던 서극이 만든 <천녀유혼>은 당시의 홍콩영화의 영광을 오롯이 기억하는 영화팬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장국영의 아우라와 왕조현의 아름다움이 뿜어내는 전설적 러브스토리는 천년만년 갈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20여년 만에 새로운 배우들로 새롭게 해석되어 관객을 찾는다. <천녀유혼2011>이다.  ● 달라진 <천녀유혼2011> 1987년 장국영이 맡았던 영채신 역은 중국의 떠오르는 별 여소군이 맡는다. 장국영은 주막을 돌아다니며 돈을 걷는 수금원 역이었다. 이번에 여소군은 관아에서 산골마을로 파견된 수맥 기술자로 나온다. 왕조현이 맡아 숱한 남성 팬들을 설레게 했던 ‘귀신’ 섭소천 역은 새로이 중국의 유역비가...

[커넥트] 제발 전화 끊지 마세요~ (진목승 감독, 保持通話 Connected)

최근 국내에 소개되는 중국어권 영화는 정말 비참하다. 언제 개봉되었는지도 모르게 곧바로 극장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전엔 고만고만한 배우들이 무더기로 나와 그럭저럭 만든 영화들이라도 극장 내걸리고 비디오로 출시되면 나름대로 마켓 파이를 갖고 있었는데 요즘은 전혀 그러하질 못하다. 그런 리스트에 어울린 영화 한 편이 개봉되었다. <커넥트>라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홍콩영화일수도 있고, 중국영화일 수도 있다. 요즘 이 동네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는 거의 홍콩-중국이 대등한 수준으로 합작을 하고 있으니 어느 쪽 영화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주요 출연진은 홍콩, 중국, 그리고 대만배우이다.   이 영화를 소개하기에 앞서 요즘 영화제작경향의 한 특색을 소개해야겠다. 우리나라의 <엽기적인 그녀>나 <시월애> 등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었고, 홍콩의 <무간도>가 <디파티드>로 만들어져서 아카데미까지 손에 쥐었다. 한국과 홍콩뿐만 아니라 태국영화까지 미국시장에서 리메이크된다. 동시에 할리우드 영화도 홍콩에서 리메이크된다. 이건 패러디나 표절이 아니라 정식 판권계약에 의한 현지화 방식이다. <커넥트>의 오리지널은 2004년 할리우드 영화 <셀룰러>( Cellular)이다.    <셀룰러>는 ‘전화기 스릴러’에는 일가견을 갖고 있는 래리 코엔이 각본을 맡았다. 그의 전작은 <폰 부스>이다. 어느 날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아보니 저쪽에서 다짜고짜로 “살려주세요. 전화 끊지 마세요. 저 납치되었어요”라는 여자의 울먹인 소리가 들린다. 장난전화치고는 너무나 리얼하다. 정말 여자는 납치되었고 겨우 전화를 연결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 남자 끊을 수도 없고... 사건에 휘말려들고 여자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는 것이다. [폰 부스]만큼 관객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시나리오 덕택에 꽤 재밌는 스릴러로 평가받는다.   홍콩에서는 이 ...

[도화선] 견자단 추조룡의 리얼 육박전 영화 (導火線,엽위신 감독,2007)

 거듭 말하지만 홍콩영화의 흥망성쇠는 두 가지 상반된 교훈을 한국영화인에게 던져준다. 홍콩은 작은 나라라는 제한된 영화 시장에서 끊임없이 장르영화를 만들어왔고 자신의 장기에 온 역량을 집중하였기에 수십 년 동안 아시아 최강의 영화제작국이 될 수 있었다. 또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홍콩영화계는 자신들의 제한된 성공에 도취되어 끝없는 대량 자기복제를 저질러왔다. 그래서 인내에 한계를 느낀 영화팬들은 더 이상 극장을 찾지 않았고, 몇몇 스타라고 일컬어지는 존재들의 영화에만 ‘열혈팬’들이 그나마 줄은 서는 컬트 영화로 생명을 이어왔다. ...수많은 액션 배우들이 있지만 이소룡이나 이연걸 같은 브랜드에 걸맞은 액션을 보여주는 배우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면에서 보자면 견자단은 현존하는 최고의 리얼 액션 스타일 것이다.    견자단이 한국 액션 영화팬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아마도 [황비홍2]에서 이연걸과 펼쳤던 화끈한 액션 씬 때문이다. 이후 많은 영화를 통해 견자단은 확실히 ‘급’이 다른 ‘액션’ 연기를 선사했다. [도화선](導火線/Flash Point)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도화선]은 몇 년 전 홍콩액션영화계에서 무척 오랜만에 만나보는 성공적 액션물 [살파랑]의 후속편인 셈이다. [살파랑]에서는 견자단이 홍금보, 오경 이라는 불세출의 액션스타들이 팬을 열광시키는 액션을 보여주었다. 견자단은 엽위신 감독과 함께 [살파랑], [용호문]에 이어 [도화선]을 찍었다. 이들은 그들의 특기를 잘 알고 있었고 팬들의 기대치에 부응하는 액션을 보여준다.   [도화선]에는 홍콩 흑사회를 주름잡는 또 하나의 계보인 월남계 조폭세력을 보여준다. 월남방(越南幇)이라는 일컬어지는 이들 조폭은 적어도 ‘홍콩 조폭영화’에 있어 새로운 신흥세력임에는 분명하다. 가난과 배고픔을 벗어나 홍콩에 스며든 이들 월남출신들 삼형제는 홍콩 삼합회가 판치는 흑사회를 하나씩 접수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월남방’의 면모는 마치 [스카페이스]에서 뉴욕에 ...

[건시열화] 마른 장작이 불이 잘 붙는다?

(박재환 2003.9.22) 홍콩 연예인들은 정말로 '탤런트'라는 말이 무색하도록 올 라운드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양천화 역시 가수로 활동하다가 영화에 출연하면서 정수문과 함께 흥행배우로 인식되고 있다. <건시열화>는 양천화의 풋풋한 매력과 고천락의 매력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홍콩에서 4대째 한약방을 하는 집안의 외동딸로 태어난 양천화. 그는 어릴 때부터 중의학 지식을 익혔지만 가업을 잇는 대신 여성잡지사 <숙녀>의 기자로 일하고 있다. 회사에서 그가 하는 일은 동료들을 진맥해주고 한약을 지어주는 것. 어느 날 잡지사 <숙녀>가 남성잡지사 <신사>와 합병된다. 새로운 회사의 사장은 미모의 인기작가인 미셀. <신사>의 부편집장인 고천락은 너무나 허약하여 가끔가다가 픽픽 쓰러질 정도. 양천화는 고천락을 보고 첫눈에 반하지만 고천락은 이미 미셀을 좋아하고 있다. 양천화는 가슴이 아프지만 고천락과 미셀을 이어주고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결국 이런저런 소동 끝에 고천락은 자신의 진실한 사랑은 양천화였음을 알게 된다.  몇 해전부터 홍콩영화계는 갱스터, 도박 영화의 한 편에는 아기자기한 로맨스 물이 일정한 세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그 선두주자는 양천화와 정수문 등. 양천화는 이 영화에서 굵은 돋보기 안경을 쓴 '범생이' 스타일로 출연한다. 하지만 내적으로는 4대째 내려오는 중의학으로 무장한 지식과 출중한 무공을 지닌 내유외강형 인물. 배우출신의 프로페셔널 연기력을 기대하기 보다는 깜찍한 외모와 귀여운 연기를 지켜보는 것이 더 좋다. 고천락과 밀고 당기는 연애가 좌충우돌, 우왕좌왕 끝에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역시 정석대로 간다.   고천락은 마치 <아이다호>에서 리브 피닉스가 그랬던 것처럼 기면발작증 증세를 보여준다. 물론 이 영화가 양천화 , 혹은 고천락의 매력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홍콩영화의 부실함을 간간히 노출시키는 것은 어쩔 ...

[용재변연] 위기의 남자 (龍在邊緣 곽요량 감독,1999)

(박재환 2003.1.7) 원제의 '변연(邊緣)'이란 일반적으로 '모서리', '가' 라는 뜻이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극한의 상황을 의미하기도 한다. 쉽게 말해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 처한 '龍'(드라곤)이란 뜻이다. 누가? 10년 전 흑사회에서 완전히 손을 뗀 우리의 ‘슈아이꺼’ 유덕화? 아니면 경찰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자마자 흑사회에 위장침투한 고천락?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작년(2002년) 12월 12일에 개봉된 <무간도>는 2002년 홍콩에서 최고흥행기록을 세웠다. 지금도 계속 돈을 벌고 있고 말이다. <무간도>는 홍콩영화평론가들로부터도 호평을 받았다. 유덕화는 흑사회에 위장잠입한 경찰 역을, 양조위는 경찰에 들어간 흑사회 조직원으로 분해서 서로 숙명의 연기대결을 펼쳤다는 평이다. 이처럼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위장잠입한 사람을 중국어로 ‘워띠(臥底:와저)’라고 한다. 그래서 홍콩 느와르, 警輩劇에서 이러한 소재를 다룬 영화를 ‘워띠영화’라고도 한다. 워띠영화는 조직에서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어 비참한 최후를 맡거나, 아니면 원소속 집단에서의 배척(원래 그 사람의 실제신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고위급 인사 한 두명 정도에 불과한데 그 사람마저 암살당해 그의 실체를 증명해줄 사람이 없게된다!)으로 지독한 고통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어쨌든 흥미롭잖은가.  물론, <용재변연>은 '고천락'에 초점을 맞추자면 그러한 워띠 드라마의 성격도 갖지만 그보다는 인물면이나 눈빛의 광도에 있어 '유덕화'에 밀려 갱생드라마로서의 색깔이 더 짙다. 유덕화가 연기하는 비룡은 오래 전에 암흑가에서 손을 떼고 사업가로 변신한 상태이다. 홍콩경찰에서는 오래 전에 아성(고천락)을 잠입시켰고 아성은 흑사회에서 승승장구하여 유덕화의 오른팔이 된 상태이다. 비룡의 친구이자 암흑가의 보스였던 황추생이 음모에 빠져 전신불구가 된다. 영국에 유학 중이던 황추생의...

[배드 보이즈] 2000년 홍콩영화의 자화상

  (박재환 2002.12.21) 비참한 홍콩영화의 현실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영화. '정이건-고천락-서기-양공여-진효동' 등 홍콩에선 나름대로 지명도가 있는 배우들이 나와 열심히 뛰고, 달리고, 뽀뽀하고, 액션을 펼치지만 정말 참고 끝까지 보고 있기가 민망스런 조잡함의 극치를 달리는 영화. 왜 홍콩영화가 몰락의 길을 가고 있는지를 이 영화 한 편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영화가 만들어진 게 아닐까? (영화사 기획실 신작 프로젝트) 사장: 야, 뭐, 새로운 아이템 없어? 직원1: 요즘 유전자조작 이야기가 세간의 화제거리랍니다. 사장: 어, 그래? 어떤 내용이야? 직원2: 뭐, DNA를 추출하여 복제품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장: 뭐, 슈퍼맨을 복제하다가 히틀러같은 놈이 생긴다는거 어때? 직원3: 특수효과에 돈이 많이 들어갈 것 같습니다. 사장: 돈 안들게 만들어야지. 요즘 제작비 건지기도 어려운데. 직원1: 그럼, 대강 시나리오 작가에게 넘기죠. 'DNA조작을 하는 악당들'과 '착한 사람'의 대결로... 사장: 오케이. 주인공은? 요즘 스케줄 남는 애들 있어? 직원2: 이건이가 다음 달에 시간 날 것 같은대요. 사장:그래? 서기 요즘 뭐하지. 연락 취해보고. 시간 남은 애들 빨리 섭외해 봐. 감독은 위민이 시켜.  사장에게 'DNA조작'만을 건네들은 시나리오 작가는 앉은 자리에서 스토리를 뽑아낸다. 어떻게? <블레이드 러너>와 <가타카>, <신투차세대>를 믹싱하면 그럴싸한 영화 한편의 줄거리가 뽑혀져나온다. '정이건-고천락-양공여'는 탐정. 첫사랑을 찾아주는 임무를 맡는다. 첫사랑은 '서기' 그런데. 서기를 닮은 사람이 악당에게 납치된다. '서기'는 이 사람, 저 사람, 요 사람 등 세 명 역할을 하게된다. 정이건은 '이 사람' 서기를 좋아하게 되고, 저 사람 '서기'는 진효동을 좋아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