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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마] 쇼브러더스 장철 감독의 역사 액션물 (刺馬,장철 감독,1973)

   만청(晩淸)시기 정치는 부패했고 사회는 혼란스러웠다. 그 시절(동치 9년=1870년)에 양강총독(兩江總督)이었던 마신이(馬新貽)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이른바 청말 4대 미스테리(清末四大奇案)의 하나로 손꼽히는 '자마안(刺馬案)‘이다.    실제 마신이 총독의 암살사건은 단순했다. 동치(同治) 9년 7월 26일 상오, 연병장에서 열병의식을 마친 마신이가 총독부서로 돌아오는 길에 자객 장문상(張文祥)의 습격을 받는다. 장문상은 달아날 생각은커녕 그 자리에서 오히려 "자객은 나, 장문상이다"고 소리 지르기까지 했다. 총독이 살해되자 청 정부는 발칵 뒤집어졌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이런저런 이유로 신속하게 처리될 필요가 있었다. 마신이에 대한 추문이 흉흉했고, 정권 실세였던 서태후는 통치기반의 동요를 막기 위해 서둘러 봉합에 나선다. '태평천국의 난' 진압에 큰 공을 세운 증국번에게 처리가 맡겨졌다. 결국 마신이의 좋은 관리였고, 장문상은 도적과 내통 관리를 살해한 것으로 사형에 처했다. 장문상의 심장은 도려내져서 마신이의 제단에 바쳐졌다. 이상이 전해오는 마신이 암살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이다.  이 이야기는 100년이 넘도록 소설과 연극 등으로 충분히 각색된다. 내용도 거의 천편일률적이다. 당시 정국이 혼란스러울 때 마신이가 반란군의 포로가 되었고 그곳에서 도적 패거리에 불과했던 황종(黄緃)과 장문상과 의형제를 맺게 되며, 나중에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워 결국 양광총독이라는 자리에까지 오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신이가 황종의 아내 미란(米蘭)과 부적절한 관계를 갖게 되고, 마신이는 황종을 죽음에 몰아넣게 된다. 이를 알게 된 장문상은 배신감을 느끼게 되어 마신이를 살해하였다는 것이다. 형제간의 의리를 중시하는 ‘협객/무협소설’의 관점에서 보자면 마신이는 못된 놈이고, 출세를 위해 온갖 음모를 저지르는 악당인 것은 당연하였다.   중국인(특히 광동-홍콩인)에겐 너무나 잘 알려진...

[황비홍2] 진정한 '영웅'은?

(박재환 2002.12.4)  <황비홍2>을 다시 본 이유는 간단하다. 곧 개봉될 장예모 감독의 <영웅>과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영웅>은 '진시황'을 둘러싸고 그를 죽이려는 '자객들'의 이야기이다. 물론 이연걸, 양조위, 장만옥, 장쯔이, 이연걸, 견자단 등이 자객이다. 천하를 혼란과 살육의 지경에 몰아넣은 독재자, 절대권력의 황제를 암살하려는 것이 장대한 중국사에 있어 당랑거철인 것은 분명하고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진시황의 폭악무도한 집정이 있었기에 향후 2,000년간 중국은 대중화제국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객들은 자신의 출신지역(우리 식으로 따지자면 지역성)을 탈피하지 못한 분권주의자임에 분명하다. 오늘날의 시점으로 보자면 진시황을 무조건 독재자로 몰아세울 수는 없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진시황을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경영자적 측면에서 그의 공과를 논하기도 한다. 그리고, 협객의 관점에서 보아도 '무사'의 역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사는 자신의 '의'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협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비록 적이지만 마지막까지 군주를 위해, 의를 위해 희생하는 모습'인 것이다. 시황제를 죽을 때까지 보필하는 모습. 그것이 진정 아름다운 무사의 모습인지 모른다.   장예모가 배우로 출연했던 <진용>을 보면 몽천방 장군은 진시황을 위해 기꺼이 진흙으로 산화한다. <영웅>의 줄거리를 보니 양조위가 진시황을 암살할 기회를 제일 먼저 잡는다. 하지만 진시황의 위대한 중국통일관에 무릎을 꿇는다. 이연걸은 나머지 자객의 도움을 받아 진시황 앞에 칼을 뽑아드는 기회를 갖게 된다고. 자 어떻게 될 것인가......  10년 전 <황비홍2>에서 우리가 놓친 장면이 있다. <황비홍2>의 시대적 배경은 1895년이다. 2,000년 전제권력의 중국은 외세...

[쌍룡회] 깔깔깔 낄낄낄 우하하하하하 (임영동&서극 감독, Twin Dragons 1992)

‘쌍룡회’는 성룡 출연작 중 재미로 따지자면 상위권에 맴도는 그런 영화이다. 줄곧 보면서 미친 듯이 웃어댔으니 말이다. 아, 성룡은 이제 이렇게 방방 뛰고 정신없이 웃긴 영화를 만들기에는 너무 늙어버린 모양이다. 너무너무 아쉽다.   이 영화 다 끝나고 기대했던 NG장면은 없었다. 성룡영화 중에 이런 것도 있었나? 아님 비디오 출시할 때 빼버렸나? 여하튼 영화 끝 자막 오를 때 이름이 한참이나 올라가는데 홍콩영화감독협회모임이라도 있었던지 이 영화제작에 참여한 감독들 이름이 쭈욱 올라가는데, 수십 명의 명단이 올라갔다. 그들이 이름이 왜 올랐을까?   그 답은 쉽게 구했다. 작년에 출간된 성룡의 자서전(성룡은 ‘문맹’으로 알려졌는데 --;) <我是誰 成龍自述 (上海人民出版社발행>)의 후반부에 그가 말하는 그의 작품해제를 보면 이 ‘쌍룡회’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나와 있다. 이 영화의 수익은 원래 홍콩감독협회의 새 건물 건설에 보태질 예정이었단다. 비록 1998년 초까지 그 건설계획은 채 시작도 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의 성과는 거두었단다. 감독은 서극과 임영동이 공동으로 맡았고, 카미오 내지 제작지원으로 나선 홍콩영화인은 서극, 임영동, 왕정, 증지위, 오사원, 장애가, 진가신, 오우삼, 장완정, 장견정, 유위강, 나탁요, 황지강, 허안화, 황점, .. 등등 엄청나게 많다. 그래서 아마 이 영화는 홍콩 영화감독과 영화인의 잔치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내용은 홍콩에서 갓 태어난 쌍둥이가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각각 다른 운명의 길로 가게 된다. 한명은 좋은 부모 밑에 자라난다. 미국으로 이민 가서 교향악단 지휘자로 성공하고, 또 다른 하나는 태어나자마자 인질로 잡혀 탈취(!)되었다가 알코올중독 술집여자 손에 들어가게 그렇게 자란다. 그러니 싸움 잘하는 뒷골목의 사나이로 성장한 것은 당연지사. 이들 형제가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까. 지휘자가 홍콩으로 건너 와서 음악회를 하게 되는데 그 숙소 호텔에서 둘은 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