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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무대 위의 두 사람 (国宝,Kokuhō 이상일 감독,2025)

우리나라의 ‘인간문화재’에 비견할 만한 것으로 일본에는 '인간국보‘(人間国宝)가 있다. ‘가부키’계의 인간국보의 세계를 영화에서 만날 수 있다. 19일 개봉하는 이상일 감독의 영화 <국보>이다. 영화 <국보>는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이상일 감독은 <악인>, <분노>에 이어 세 번째로 요시다 슈이치 소설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가부키’에 대한 짧은 소개 자막이 나온다. 17세기 처음 등장한 가부키는 큰 인기를 끌었지만 풍속적인 이유로 여성의 출연을 금지했단다. 그 때문에 ‘온나가타’(女形)라는 여성을 연기하는 남성연기자가 등장한다. 우선은 ‘가부키’에 대해서는 이 정도만 알아도 이 영화를 감상하는데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경극과 판소리처럼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일생을 걸고 ‘생과 사’를 노래하는 것이니 말이다.  1964년 일본 나가사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는 야쿠자 보스 타치바나의 저택에서 새해맞이 술자리가 펼쳐지고 있다. 손님이 북적대며 덕담을 나누고 있는 가운데 유명 가부키 배우 하나이 한지로(와타나베 켄)가 찾아오며 일순 술렁거린다. 손님들의 여흥을 위해 타치바나의 어린 아들 키쿠오가 가부키 분장을 하고는 짧은 공연을 펼친다. 한지로가 ‘온나가타’로 분한 키쿠오의 실력에 놀라는 것도 잠시. 야쿠자 무리들이 난입하며 신년 축하연자리는 엉망이 된다. 아버지를 비극적으로 잃은 키쿠오는 이제 한지로의 집에 들어가서 정식으로 가부키를 배우기 시작한다. 가부키의 길은 야쿠자의 길만큼 험난하다.  <국보>를 보면서 한국의 관객들은 가부키에 입문하게 된다. 노래와 연기를 잘한다고 가부키 배우가 되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가부키는 가문에서만 승계되는 비기(祕技)이다. 키쿠오는 곧바로 한자이의 아들 슌스케의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동년배인 키쿠오와 슌스케는 함께 가부키를 배우지만 그들의 미래는 어쩌면 이미 정해져 있다. 야쿠자의 아들이 ...

[8번 출구] 라벨의 볼레로가 울려 퍼지는 기묘한 지하철.(카와무라 겐키 감독, Exit 8)

   똑같은 하루이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붐비는 지하철을 타고 오늘도 선 채로 일터로 향한다. 모바일 쇼츠영상을 무심하게 쳐다보며, 이어폰으로 세상과 단절된 채로. 지하철에 어떤 사람들이 탔고, 지금 저 임산부석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이 없다. 지하철에 내려서 인파에 떠밀려 계단을 오른다. 전화가 온다. 일방적인 통보이다. 인파 속에서 주춤한다. 이쪽 방향인가 저쪽 방향인가.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기만 한다. 어디가 잘못 되었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지하철을 잘못 탄 것인가, 6호선이 아닌가? 삼각지역을 통과했는가? 이어폰 때문에, 쇼츠 영상 때문에, 지하철에서 임산부석에 앉은 저 남자를 놓친 것인가. 다시 돌아간다. 이번엔 디지털미디어시티역이다. 그런데 6호선인가, 경의중앙선인가, 공항철도인가. 이 남자는 오늘도 헤맨다. 지난 달 개봉된 일본영화 <8번출구>는 지하철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역사 안에서 무한루프에 빠진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는 무슨 생각에 빠져, 어떤 사연으로 헤매는 것일까. 안내표지판을 보라. ‘8번출구’를 찾아야한다.   지난 달 개봉된 카와무라 겐키 감독의 일본영화 <8번출구>는 동명의 게임을 원작으로 한다. 게임은 리얼하면서도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리미널(liminal) 스페이스 게임이다. 일상에 익숙한 지하철 지하보도를 끝없이 걸어간다. 벽에 붙은 포스터, 안내표지판, 조명,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봐야한다. ‘다른 모습’이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니 돌아서서 다른 길로 가야한다. 일종의 ‘숨은 그림 찾기’이다. 이 제한된 공간에서, 구분하기 힘든 배경에서, 몇 안 되는 등장인물로 영화를 만든다고? 탈출이 목표인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캐릭터의 고뇌와 일본인의 집단의식을 녹여낸다고? 영화 <8번출구>는 그 어려운 미션을 하는 작품이다. 관객은 라벨의 ‘볼레로’ 음악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다른 승객을 무시하고, 자신이 내...

[여름정원] 그 할아버지의 오래된 비밀 (Shinji Somai, The Friends,1994)

 <이사>, <여름정원>, <태풍클럽> 등 소마이 신지(相米慎二, 1948~2001) 감독의 영화가 잇따라 개봉된다. 소마이 신지 감독은 80~90년대 작가주의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후대 감독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 시네마테크 등을 통해 소개되었던 그의 작품을 극장에서 온전히 감상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여름정원>은 1994년에 일본에서 개봉되었고, 작년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되어 DVD와 해외영화제에서 리바이블 상영되었다. 영화는 1994년의 일본 고베의 한적한 주택가, 고즈넉한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키야마, 카와베, 야마시타는 하루 종일 붙어 다니는 죽마고우, 영혼의 단짝친구들이다. 할머니의 장례에 다녀온 야마시타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호기롭게 이야기해준다. “2시간 동안 화장하고 나면 뼈만 남아.” 그러자 카와베가 동네의 한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낸다. “혼자 사는 그 할아버지 오래 못 살 것 같대. 그러니 우리가 할아버지가 지금 죽었는지 살았는지 가보자”고. 이 호기심 많고, 엉뚱한 친구들은 아무도 돌보지 않아 안마당엔 잡초만이 무성한 할아버지의 단독주택을 기웃거린다. 한바탕 혼이 날 것 같았지만 의외로 할아버지와 세 꼬맹이는 이내 친해진다. 같이 마당의 잡초도 뽑고, 꽃씨도 뿌리고, 집안 청소도 하고, 문도 고치고, 빨래도 같이 한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집은 세 친구들의 놀이동산과 휴식공간이 된다. 태풍이 몰아치던 날, 할아버지가 걱정이 된 아이들이 그 집을 찾는다. 아이들은 평소 궁금했던 것에 대해 물어본다. 왜 혼자 사는지, 결혼은 했는지, 자녀는 있는지. 할아버지는 그제야 오래된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야기는 따분한 학교생활에서 탈출구를 찾고 있는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괴소문의 진상을 직접 밝히려고 모험을 떠나는 구조이다. 마치 스티븐 킹의 <스탠드 바이 미>처럼. 예상과는 달리 할아버지는 도깨비도 아니고, 비...

[해피엔드] 진앙 위의 일본, 흔들리는 우정 (Happyend, Neo Sora 감독)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에 이르기까지 스크린을 더욱 풍성하고 다채롭게 장식한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의 음악 세계를 만나볼 수 있었던 다큐멘터리 <사카모토 류이치: 오퍼스>를 감독한 소라 네오 장편극영화 감독데뷔작 <해피엔드>가 지난 달 30일 개봉되었는데 영화팬의 입소문을 타고 있다. 근(近)미래의 도쿄. 고등학교 음악동아리의 다섯 친구들-유타, 코우, 아타, 밍, 톰-은 '무엇이 그리 불만이지' 밤거리를 쏘다니며 젊음과 치기, 분노와 좌절을 분출하려고 기를 쓰고 있다. 그들은 테크노음악이 흘러나오는 클럽에 들어가려다 제지당하지만 유타와 코우는 기어코 잠입에 성공한다. 이제 이들 다섯 친구의 행복하지 않은, 일탈과 불만, 불안한 일본 청소년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한국계도 있고, 미국계도 있고, 중국계도 있다. 일본의 학교는 감옥같고, 사회는 세기말적이다. TV뉴스에서 등장한 총리가 지진에 대한 공포심을 극도로 조장하고, 시도 때도 없이 지진경보가 울린다. 악동인 유타와 코우는 교장의 노란색 스포츠카를 기하학적으로 세워두는 장난을 치고, 이 일을 계기로 학교는 학교 곳곳에 AI감시망 '파놉티콘'을 설치한다.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고, 벌점이 부과된다. 사회는 혼란스럽다. 엄습할 지진에 대한 공포감은 외국인 배척을 주장하는 정치적 선동에 더욱 긴장감이 고조된다. 유타와 코우, 아타, 밍, 톰은 그런 사회분위기에 휩쓸리고, 학교의 강압적 훈육에 그들의 '우정과 결기'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영화는 무시무시할 정도의 일본 현 사회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다.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수업 중에 자위대 대원이 들어와서 '리크루트'하는 장면이 있다. 일본인이 아닌 사람은 교실에서 나가도 된다고 하는데 교실 구성원의 상당수가 ‘자위대에 들어갈 수 없는 비(非)일본인이다. 이 영화가 중요한 이유는 아마도 일본영화인의 ...

[새벽의 모든] 것의 그 후, 동병상련의 마음 (미야케 쇼 감독)

 때로는 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할 때가 있다. 저 사람이 왜 저러는지, 저 사람이 꼭 저래야하는지 짜증을 내며, 화를 내기도 하고, 저런 사람과는 같은 공간에 머무르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아픈 것이라면? 자기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리고 말이다. 내가 그러하다면?  미야케 쇼 감독의 신작 <새벽의 모든>에는 아픈 여자와 아픈 남자가 등장한다.  ‘후지사’는 PMS(premenstrual syndromepms, 생리 전 증후군)가 심하다. 그 날이 되면 짜증을 억제할 수가 없고, 신경을 거슬리는 모든 것에 대해 마음의 소리를 여과 없이 내뱉고 만다. 직장생활이 수월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겨우겨우 살았을 후지사와는 이제 ‘쿠리타과학’(栗田科学)이라는 자그마한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직장동료들은 후지사와를 이해하고, 잘 보듬어주려고 노력한다. 어느 날 옆자리 ‘야마조에’에게 화가 나서 감정조절에 실패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야마조에에게도 아픔이 있다. 공황장애를 갖고 있다. 이제 PMS의 여자와 공황장애의 남자는 서로의 처지를 남들보다는 조금 더 이해하고, 서로가 일상을 평화롭게 유지하기 위해 응원하기 시작한다. 세오 마이코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새벽의 모든>은 전작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에 이어 미야케 쇼 감독이 다시 한 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집중한다. 이른바 루저의 로맨스가 아니라, 독특한 남과 여가 연애 이외의 방법으로 서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작품이다.  ‘쿠리타과학’이라는 행복한 회사에서 둘은 우연히 옆자리에 앉았을 뿐인데, 마치 천생배필을 만난 듯하다. 하지만 둘은 연애를 하지는 않는다. 야마조에 집의 좁은 방에서 책을 읽고, 과자를 먹는 장면에서 둘은 가장 편안한 자세로 일상을 행복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PMS의 고통이 어떤지 (남자인 필자는) 솔직히 체감할 수 없다. 똑같은 이유로 공황장애의 ...

[물은 바다를 향해 흐른다] 히로세 스즈가 깨달은 것! * Water Flows Toward the Sea *

잔잔한 일본 ‘감성’ 영화 한 편이 오늘 개봉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막내였던 히로세 스즈가 열 살이나 어린 고등학생과 함께 섬세한 인연에 대해 이야기하는 <물은 바다를 향해 흐른다>이다. <물은 바다를 향해 흐른다>는 타지마 렛토의 동명의 인기만화를 영화화 작품이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교외의 한 기차역에 나오타츠가 내리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고등학생’ 나오타츠는 학교 근처로 이사를 온 셈이다. 삼촌 시게미치의 집에 얹혀 지낼 생각이었는데 역으로 마중 나온 사람은 묘령의 여자 사카키 치사였다. 이 여자는 누구? 삼촌과는 무슨 관계? 함께 우산을 쓰고 집까지 걸어가며 의구심을 커져간다. 알고 보니 셰어하우스였다. 사카키와 삼촌을 포함하여 이제 5명이 이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그런데, 첫날부터 사카키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호의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왠지 까칠하다. 등굣길에 발견한 아기고양이를 매개로 나오타츠는 카에데와 친구가 된다. 나오타츠는 사카키가 자신을 불편해 하는 이유를 이내 알게 된다. 10년 전. 나오타츠의 아버지가 사카키의 어머니가 각자의 가족을 내버려두고 불륜도피 행각을 펼쳤던 것이다. 당시 어렸던 나오타츠는 그 일을 몰랐지만, 사카키에게는 엄청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사카키는 나오타츠에게 “그 일로 난, 죽을 때까지 연애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란다. 이제, 연애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카키를 바라보면서 ‘순진한’ 나오타츠는 괜히 미안하다. 오래된 부모세대의 연으로 지금까지 맘고생하는 사카키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옆에서 위로하고 말벗이 되어준다. 또,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카에데는 속이 상한다. 이제, 이 복잡한, 악연의 감정들은 어떻게 풀릴까.   영화는 과거의 어떤 사건으로 마음을 닫아버린, 그와 함께 삶의 열정이 식은 듯한 26살의 사카키가 악연이랄 수 있는 열 살 연하의 남고딩을 만나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는 우정극이다. 어쩌면 연애극일...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2024) * 悪は存在しない/Evil Does Not Exist *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최근 들어 가장 각광받는 일본 영화감독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로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칸영화제 각본상을, <우연과 상상>으로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심사위원 그랑프리)을 수상하더니 신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로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까지 거머쥐었다. 세계 3대영화제를 석권한 감독이라니! 대단하지 않은가. 그야말로 초(超)기대작이다. 이 영화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음악작업을 한 이사바시 에이코의 의뢰로 시작되었다. 먼저 기존방식으로 영화를 완성한 뒤, 라이브공연을 영상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 기획대로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와 라이브 무성영상 [GIFT]가 완성된다. 영화는 음악가의 작업실이 있는 나가노현 야쓰가타케산(八ヶ岳)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단다. 도쿄에서 차로 두어 시간 달리면 도착하는 곳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아직 눈이 녹지 않은 산림을 보여준다. 나가노(長野)현 미즈사키마치(水挽町)의 풍광 좋은 마을이다. (인구가 7천이라고 한다) 우뚝 솟은 나무들을 로우 앵글로 한참이나 보여준다. 이 숲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그리고 소녀 하나(니시카와 료)를 잠깐 보여준다. 이곳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까. 카메라는 산속 집 앞에서 나무를 자르고 있는 타쿠미(오이카 히토시)를 비춘다. 타쿠미는 전기톱으로 커다란 나무둥치를 세 등분하고, 도끼질을 한다. 땔감을 만드는 모양이다. 한 번, 두 번, 세 번.... 카메라는 무심한 듯, 아니면 뭔가 비장함을 감추려는 듯 이 모든 모습을 따라갈 뿐이다. 이어 타쿠미는 물가에 가서 맑은 물을 통에 담기 시작한다. 꽤 많은 양의 물을 담는다. 그러더니 ‘아차’하면 차를 몰고 학교로 달려간다. 오늘도 딸 ‘하나’를 데려오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한가롭게, 평화롭게, 심심하게 흘러가는 시골마을의 일상일지 모른다. 그곳에 도시(도쿄)에서 잇속을 챙기려는 비즈니스맨이 찾아온다. 이...

[루팡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미야자키 하야오는 즐거워" ルパン三世 カリオストロの城/ The Castle Of Cagliostro

미야자키 하야오(宮﨑駿) 감독의 첫번째 극장판 애니메이션인 <루팡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이 한국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1979년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7년 메가박스에서 단독개봉한 적이 있으며 이번엔  CGV에서 단독개봉한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84), <천공의 성 라퓨타>(86), <이웃집 토토로>(88)보다 앞서 만든 이 영화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등장할까, 여자 주인공 캐릭터는 여기서도 씩씩할까, 항상 보게 되는 캐릭터들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을까하고 말이다.  <루팡3세>는 일본의 만화가인 ‘몽키 펀치’(본명은 카토 카즈히코)가 1967년부터 후타바샤(双葉社) 출판사의 [주간망가액션]에 연재한 동명의 만화가 원작이다. 망가대국 일본답게 이 작품은 1971년부터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을 시작으로 영화, OVA, 게임 등 파생상품이 수도 없이 만들어졌다. 미아자키 하야오는 타카하타 이샤오와 함께 TV애니메이션 작업에도 참여했고, <루팡 VS 복제인간>(요시카와 소지 감독,1978)에 이어 두 번째 극장판 <칼리오스트로의 성>의 단독 감독을 맡게 되었다. 무려 45년 전 이야기이다.   만화 <루팡 3세>는 신출귀몰한 도둑의 어드벤처물이다. 주인공은 감히 ‘아르센 루팡’의 직계손자라는 설정이다. 반세기 전에 그런 ‘국가적 문화재’를 절도(!)한 작가의 창의력과 상상력이 대단할 뿐이다. <루팡 3세>에는 신묘한 도둑 ‘루팡3세’와 그의 쿨한 파트너인 명사수 ‘지겐 다이스케‘, 루팡의 연인인지, 라이벌인지, 악당인지 모르는 미스터리한 바이크걸 미네 후지코, 이 작품이 일본작품이란 걸 잊지 말라는 듯 결정적 장면에 등장하여 칼을 휘두르는 검객 이시카오 고에몽’, 그리고 오랫동안 루팡을 추적하는 일본형사이며 인터폴인 제니가타 코이치가 항상 등장하여 엎치락뒤치락 희...

[여기는 아미코] “아미코에겐 친구가 필요하다, 오버!” (모리이 유스케 감독,こちらあみ子/Amiko)

  지난 주 개봉된 일본영화 <여기는 아미코>(원제: こちらあみ子)는 같은 날 개봉된 한국영화 <막걸리가 말해줄거야>와 함께 본다면 영화적 충격이 배가될 듯하다. <막걸리가 말해줄거야>의 11살 소녀 동춘이는 순수한 호기심이 안드로메다까지 뻗어가는 작품이고, <여기는 아미코>의 주인공 아미코는 순수한 호기심이 비극을 잉태한다. 그렇다. 이 작품은 철저한 비극이다. 영화는 이마무라 나쓰코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바다가 보이는 히로시마의 교외에 살고 있는 아미코는 순진하고 순수한 아이이다. 하교 종이 울리자 아미코는 열심히 ‘노리’를 찾는다. 아미코는 노리가 좋지만, 노리는 귀찮아하는 모습이다. 호기심이 많은 것인지, 아직 철이 덜 들었는지 아미코의 산만한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 하지만 아미코는 아빠, 엄마, 오빠와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아이답게 정원에는 ‘금붕어 무덤’이라는 팻말까지 달아놓는다. 아마 기르던 금붕어가 죽은 모양이다. 이 아이의 순수함의 끝은 어디일까. 어느 날 엄마가 병원에서 유산한다. 동생을 바라던 아미코는 순수한 마음에 정원 한 쪽에 ‘남동생의 묘’라고 팻말을 붙여놓는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엄마의 손을 끌고 보여준다. 엄마는 대성통곡하고 그날로 이 집안은 온통 우울해진다. 엄마는 말을 잃고, 오빠는 집을 나가버리고, 아빠는 의욕을 잃는다. 이제 아미코는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다. 몸에선 냄새가 나고, 학교는 맨발로 돌아다닌다. 그렇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지만 아무도 아미코에 신경 쓰지 않는다. 아미코는 베란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무섭다. 어쩌면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은 남동생의 귀신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귀신은 없어! 귀신은 무섭지 않아!”라고 소리쳐도, 무섭고, 외로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곤 언젠가부터 이상한 사람들이 보인다. 어쩌면 오래 전에 죽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들. 순수하고 순진한 아미코가 또래의 모습을 보이며 시작하는 영화는 얼...

[오키쿠와 세계] “라 비타 에 벨라” (사카모토 준지 감독) Okiku and the World

일본영화 <오키쿠와 세계>가 20일(수) 개봉한다.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몇 편의 영화가 소개된 사카모토 준지(阪本順治) 감독의 최신작이다. 일본 원제는 <せかいのおきく>(세계의 오키쿠)이다. ‘세계’(世界) 속에 존재하는 ‘오키쿠’에 대해 알아보는 작품이다. 여자이다. 오키쿠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고, 주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삶은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오키쿠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아름다운지 지켜보게 된다. 영화는 흑백이다. 간간이 컬러풀한 순간이 캐치된다.  영화는 일본 에도(江戸)시대 말기를 배경으로 한다. 17세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지금의 도쿄)에 막부 체제를 확립하고 200년 이상 이어온 ‘권력 시스템’이 무너져 내리던 시절이다. 내부적으로는 권력층이 와해되고, 외부에서 ‘신문물’(종교 포함)이 개방의 문을 쿵쿵 두드리던 시절이다. 민초, 혹은 서민의 삶은 고달프다. 받들어 모실 영주가 몰락하며 사무라이들도 각자 제 살 길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비가 쏟아지는 날, 야외 헛간(‘변소’) 처마 자락에 세 명의 청춘이 비를 피하고 있다. 똥 푸는 남자 야스케, 파지(폐지) 줍는 청년 추지, 그리고 몰락한 사무라이 가문의 딸 오키쿠다. 이제부터 살기 어려운 시절을, 버티며 살아가는 청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체적으로 분뇨수거를 업으로 하는 남자의 이야기이기에 영화는 온통 똥내가 진동할 지경이다. 다행이다. 흑백이고, 모든 것이 아날로그스럽다.  야스케와 추지, 오키쿠는 저마다 힘든 삶을 살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동네 돌아다니며 수거해서는 쪽배나 시원찮은 수레에 싣고는 교외로 나가 거름으로 쓸 농가에 판다. 냄새 나고, 다들 꺼려하는 일자리지만 어쩔 수 없다. 추지도 야스케와 함께 그 일에 나선다. 이들은 지켜보는 오키쿠와, 오키쿠를 훔쳐보는 추지. 어느 날 오키쿠의 아버지(몰락한 사무라이)가 칼을 들고 나갔다가 결국 칼에 쓰러진다. 오키쿠도 목을 다쳐 그날 이...

[스미코구라시 1편] "옹기종기, 도란도란, 힐링힐링~”

 스미코구라시 –튀어나오는 그림책과 비밀의 아이 어제(24일)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 <스미코구라시 –튀어나오는 그림책과 비밀의 아이>는 런닝타임 65분의 애니메이션이다. ‘스미코구라시’가 뭔지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구석’(ぐらし)+‘살이’(ぐらし)이다. 앞에 나서지 못하고, 구석에 모여 사는 존재들이다. ‘인생의 루저’까지는 아니고, 평범한 삶이다. 수업시간에 뒷자리에 간다거나, 카페에 가면 구석자리부터 찾는 사람들 말이다. 일본의 캐릭터 상품 메이커인 ‘산엑스’는 2012년부터 그런 존재들의 심정을 기막히게 잘 표현해낸 캐릭터, ‘구석탱이 삶’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수많은 캐릭터들을 만들어냈다.  일본의 캐릭터 상품은 문구류부터 만화책, 게임, 인형, 피규어, 기타 등등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튀어나오는 그림책과 비밀의 아이>는 2019년에 처음 공개된 극장판이다. 3편까지 만들어져서 일본에서는 개봉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차례로 공개될 예정이란다. 일본의 엄청난 ‘캐릭터’ 산업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아, 이 작품은 산업 전문가가 보는 다큐가 아니다. 아동용 애니메이션이다!!!! <스미코구라시- 튀어나오는 그림책과 비밀의 아이>에는 많은 구석탱이 친구들이 등장한다. 추위를 싫어하는 북극곰 ‘시로쿠마’, 스스로 펭귄이 맞는지 고민 중인 ‘펭귄?’, 누군가 먹어주는 것이 꿈인 돈카츠 끄트머리 ‘돈카츠’, 부끄럼쟁이 고양이 ‘네코’, 사실은 공룡이지만 도마뱀인척 하는 ‘토카게’, 시로쿠마의 짐(보따리)인 후로시키, 웨딩부케가 되고 싶은 긍정마인드의 풀 잣소, 그리고 무려 먹다남은 새우튀김의 꼬리인 에비후라이노시포, 밀크티에 따라오는 펄 타피오카 등등 귀여운 외모에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캐릭터는 원작자인 요코미조 유리가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 공책에 그린 낙서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구석이 마음이 놓여요’를 테마로 따뜻한 느낌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이렇게 살았노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지브리의 명장 미야자키 하야오(宮﨑駿) 감독이 은퇴작이라고 공언한 <바람이 분다>(風立ちぬ,2013) 이후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내놓은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원제: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가 지난 달 개봉되었다. <이웃집 토토로>가 되었던, <모노노케 히메>가 되었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되었던 미야자키의 지브리 세상에 입문한 영화팬이라면 이 거장의 신작에 관심과 기대를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전의 영화 개봉 때와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였다. 사전에 홍보(선전) 활동을 전혀 펼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그랬고, 한국에서도 언론시사회 같은 행사 없이 바로 극장에 내걸렸다. 지브리의 자존심인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기대인지는 몰라도, 오랜만에 ‘작품만을 오롯이 보고, 영화의 숨은 의미를 찾아보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이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거대한 산, 지브리라는 장대한 산맥을 오르는 작품이다. 그의 인생과 영화 미학, 혹은 철학이 이 한 편에 집대성된 것이다.  1944년, 도쿄는 불타오른다. 까만 밤하늘이 시뻘건 불꽃으로 휩싸인다. 공습으로 병원이 불타고 그 화재로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은 11살 소년 마히토가 있다. 마히토는 도쿄를 떠나 새엄마의 거대한 저택으로 향한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군수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새엄마 ‘나츠코’는 (죽은) 엄마를 많이 닮았다. 죽은 엄마의 동생이었다. 전쟁 막바지, 모든 것이 빈곤하던 시절이었지만 마히토의 집안은 어쩌면 풍요롭고, 평화로울지 모른다. 어느 날 새엄마 나츠코가 사라지고, 마히토는 신비한 왜가리 한 마리를 뒤를 쫓아 미스터리한 탑 안으로 들어간다. 이제 새로운 세상에서 신비한 모험을 시작한다.   영화제목으로 쓰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일본작가 요시노 겐자부로(吉野源三郞)가 1937년 쓴 소설 제목이다. 미야자키 감독이 어릴 때 읽고 감동받은 아동서...

[스즈메의 문단속] “스즈메,너의 임무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

   지금부터 12년 전, 일본열도의 동쪽 바다에서 커다란 해일(츠나미)이 몰려온다. 311 도호쿠(東北)대지진이라고 불리는 자연재난이었다. 그 때 지진은 일대 해안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후쿠시마의 원자력발전소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사건이 크면, 사람을 잊을 때가 있다. 그때 그곳이 삶의 터전이었던 사람들은 아침이면 “학교 다녀오겠습니다.”하거나 “여보 출근할게요”하고 집을 나섰을 그 사람들 말이다. 여기에 그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가 있다.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원제:すずめの戸締まり)이다. ‘스즈메’는 극중 주인공의 이름이다. '문단속'이라니?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미지였다.  영화가 시작되면 꿈속의 장면을 만나게 된다. 어린 소녀 하나가 폐허가 된 마을, 초원을 마냥 걷는다. 애타게 엄마를 찾다가 지쳐 웅크리고 있다. 그 때 한 여자가 걸어오고 있다. 소녀를 바라보다가 ‘스즈메’는 꿈에서 깨어난다. 아마도 오래된 꿈이며, 기억이며, 악몽인 듯하다.  일본 서남쪽 규슈의 미야자키 현의 조용한 마을에서 이모와 살고 있는 17살 소녀 스즈메는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향한다. 언덕길을 내려올 때 저 멀리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다. 순간 눈길을 사로잡은 그 남자는 근처에 폐허가 있는지 물어본다. 알고 보니 이 남자, 무나카타 소타는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며 폐허가 된 곳을 찾는 토지시(閉じ師)란다. 소타의 임무는 폐허의 땅에서, 무너져 내리는 건물에서, 그 문을 찾아, 입구를 봉쇄하고, ‘요석’을 박아 ‘또 다른 재앙’이 쏟아지는 것을 봉인하는 것이란다. 땅 밑에는 들끓는 마그마 같은 거대한 지렁이 ‘미미즈’(ミミズ)가 꿈틀거리고 있단다. 이제 스즈메도 소타와 함께 미미즈를 막고, 재앙을 봉인하는 길에 나선다. 그러다가 소타는 저주에 걸려 ‘세 발 의자’가 되어버리고, 말하는 고양이 ‘다이진’...

[버드 우먼] 지하철의 여자들이여 가면을 써라! * Bird Woman * (BIFAN2022)

  지난 주 막을 올린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는 49개국에서 출품된 268편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그중 비주얼 면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단편 [버드 우먼](원제:Bird Woman)이다. [오징어 게임]을 연상시키는 빨간 패션의 인물이 괴이한 마스크를 쓴 스틸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도대체 일본 지하철 안에서 어떤 일이 발생한 것일까. 오오하라 토키오(大原とき緒) 감독의 21분짜리 히어로, 아니 ‘히로인’ 무비이다. 출퇴근 시간, 한국 버금가는 지옥철을 보여주는 일본 도쿄의 지하철 안. 직장여성 토키는 오늘도 변태들의 틈바구니에서 일터로 향한다. 저 변태들의 눈길과 손길을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토키는 마스크샵을 운영하는 친구에게서 특이한 형태의 마스크를 부탁한다. 커다란 부리가 달린 ‘따오기’ 마스크이다. 남들은 코로나 때문에 다들 하얀 마스크 차림으로 지하철을 탈 때 토키는 따오기 마스크 차림이다. 모든 가면 히어로들이 마스크를 쓰고, 쫄쫄이를 입으면 슈퍼 파워를 가지듯이 토키도 이제 내면에 숨겨두었던 정의의 힘이 분출된다. 지하철의 변태남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발길질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일본의 여성들은 맨 얼굴로는 항의조차 못하는 모양이다) 어쨌든 따오기 버드우먼의 활약상이 SNS를 타고 일본 전역에 알려진다. 이제 따오기의 숭고한 뜻에 동참하는 수많은 ‘버드우먼’이 지하철에 등장하게 되고 ‘변태 치한’에게 응징을 가한다. 남성(?)들의 항의에 직면한 도쿄도지사는 공권력을 동원, ‘버드 마스크’들을 단속하기 시작한다. 여성의 자발적 치한 퇴치 프로젝트는 여기서 멈출 것인가.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마스크’라면 사회적 격리, 차단의 수단을 최우선적으로 떠올릴 것 같은데 오오하라 토키오 감독은 ‘마스크’에서 슈퍼 히어로의 ‘정체 숨기기’에 초점을 맞춘다. 여느 이름 없는 영웅(하지만 모두가 아는 시민들의 네임드 영웅!)들처럼 버드우먼은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긴다. 몰래 화장실에서 마스크를 쓰고 출퇴근 지...

[시크릿 카운터] 오징어게임 같은 세상에서 평안을 얻으려면...(신지 아키라 감독, ,2020) *人数の町/The Town of Headcounts*

  코로나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가운데 극장가는 또 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미룰 만큼 미루고, 버틸 만큼 버티고 있는 영화사, 제작사, 수입사들이 개봉을 마냥 기뻐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일본영화 <시크릿 카운터>(원제: 人数の町/ The Town of Headcounts)는 그런 상황 속에서 극장 개봉한다. 아라키 신지 감독의 이 영화는 재작년(2020) 일본에서 개봉된 작품이다. 무엇이 ‘시크릿’할까. 영화는 미스터리한 세상사를 다룬 디스토피아 드라마다. 빚 독촉에 쫓기던 아오야마(나카무라 토모야)가 사채업자에게 곤욕을 당할 때 한 남자가 나타나 구원의 손길을 뻗는다. 그를 따라 어떤 특별한 시설로 들어간다. ‘오징어게임’이라도 할 것인가?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으며 아오야마는 이 시설에 적응한다. 각자 ‘룸’이 배정되어 있고, ‘튜터’라 불리는 노란 점프슈트를 입은 사람의 지시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 지시에 따라 인터넷에 접속하여 ‘칭찬’을 하거나 ‘악플’을 단다. 그러면 먹을 것이 제공된다. 가끔 가다 ‘펠로우’라 부르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외부로 나간다. 누군가에게 투표하거나, 피케팅 시위에 참여한다. 핵폐기물, 노인 고독사 등 사안은 다양하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먹고, 입고, 사는데 기본적인 인간적인 조건이 충족되는 희한한 커뮤니티이다. 이곳에 수용된, 자의로 입소한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밖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아웃되거나, 배제되거나, 도망가거나, 절망에 빠졌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곳에 사라진 동생(타치바나 에리)을 찾으려 한 여자(이시바시 시즈카)가 들어오면서 아오야마는 ‘자유의지’, ‘인간의 조건’, ‘사회공동체’에 대한 근본적 회의에 빠지게 된다.  아오야마가 머무른 곳은 ‘헤드카운트 타운’(人数の町)으로 불린다. 각자 이름은 사라지고 번호로만 인식된다. 무슨 일로 결원이 생기면 또 다른 (외부) 사람으로 충원된다. 밖에서 행복하지 못했던 사람이 이곳에서는 이름 없는 한 조각으로...

[드라이브 마이 카] 그 남자는 거기 있었다 (Drive My Car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2021)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시나요?”  “예! 그렇고말고요.” 누가 싫다고 하겠는가. 장편도 좋고, 단편도 좋고, 소설도 좋고, 에세이도 좋다. 그 정도 읽었으면 하루키가 마라톤 광이며, 비틀즈 매니아라는 것도 잘 알 것이다. 하루키가 2013년 쓴 단편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비틀즈가 1965년 발표한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여하튼 그 제목의 그 소설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상영시간은 179분. 충분히 길다.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고,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류스케 감독이 직접 부산을 찾은 가운데 소개되었고, 마침내 어제 한국극장가에 개봉되었다. 하루키를 좋아하거나, 류스케를 좋아하거나, 일본영화 감성을 좋아하신다면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 남편, 아내, 정부, 그리고 남편의 운전수   배우 가후쿠(家福)와 아내 오토(音)는 부부이다. 남편은 연극연출가이고, 아내는 배우를 그만 둔 뒤 드라마 각본을 쓰고 있다. 가후쿠가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 연극을 무대에 올린 날 아내가 쓴 드라마에 출연한 젊은 배우 다카츠키가 찾아와서 인사를 한다. “오토의 글도, 가후쿠의 연출도 너무 좋아한다.”고. 그런데, 얼마 뒤 가후쿠는 자신의 집에서 아내와 다카츠키가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 마음을 추스를 틈도 없이 아내가 갑작스런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2년의 세월이 지난 뒤 가후쿠는 히로시마국제연극제에 초빙된다. 연극 <바냐 아저씨>의 연출을 의뢰받은 것이다. 이제 가후쿠는 도쿄를 떠나 히로시마에 머물며 한 달 반 동안 배우를 캐스팅하고, 연습을 한 뒤 보름 동안 공연을 할 예정이다. 그동안 스물 세 살의 와타리 미사키가 그의 빨간색 사브900을 운전하게 된다. 가후쿠는 오디션을 거쳐 몇 명의 배우를 뽑는다. 그중에는 ‘다카츠키’도 포함되어 있다. 가후쿠는 그 남자에게 주인공 ‘바냐’ 역을 맡긴다. ● 그 남자는 거기 있었다 하루키도 모르고 체호프를 몰라도 남편 가...

[JIFF리뷰] 해변의 금붕어, “아무도 모른다, 하나만 안다” * The Goldfish: Dreaming of the Sea ,2021) *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JIFF) 국제경쟁부문에 출품된 일본 오가와 사라(小川紗良) 감독의 영화 <해변의 금붕어>(원제:海邊の金魚)에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지금 현재 일본 사회의 한 면을 엿볼 수 있는 ‘유사가족’을 다룬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는 지금 위탁시설에서 살고 있다. ‘고아원’ 같은 커다란 건물은 아니지만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이 꽤 많이 모여 사는 위탁가족 집 같다. 아주 어릴 때 이곳에 와서 이제 18살이 된 하나는 시설을 떠날 때가 되었다. 그동안 정이 든 이 곳에서 아저씨와 함께 어린 아이들을 돌보며 잘 살아간다. 어느 날 8살 하루미가 새로 들어온다.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언젠가 부모가 찾아와서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는 하루미를 바라보며 자신의 과거가 떠오른다. 그런데 하루미의 몸에 난 상처, 흉터를 보고서는 하루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짐작하게 된다. 하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하루미를 보호하고 싶다. 그것은 하나가 10년 동안 체득한 또 다른 본능인지 모른다.  <해변의 금붕어>는 배우로 활동하던 오가와 사라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오가와 사라가 배우로 출연했던 <열 다섯의 순수>는 18회 JIFF(2017년) 때 상영되었었다. 고교시절부터 영상작업에 흥미를 가졌던 그는 와세다 대학에 진학한 후 운 좋게 고레에라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강의를 들을 수 있었단다. 고레에다 감독은 <해변의 금붕어> 시나리오를 보고 의견과 함께 아역 연기에 대한 조언도 해주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촬영은 <아무도 모른다>의 야마사키 유타카가 맡았다.   하나는 위탁시설에서 자라면서 악몽 같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잊기 위해 작은 어항 속 금붕어를 자주 쳐다본다. 금붕어는 하나뿐만 아니라 하루미에게도 의미가 있다. 작은 어항에 갇힌 금붕어에 왜 집착하는지. 영화 마지막에 하나는 어항 속 금붕어를 바다에 풀어준다. 이 장면은 ...

[스파이의 아내] 구로사와 기요시, “731부대를 고발한다”

  일본식 독립영화 시스템에 성장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큐어>(1997)를 기점으로 부산국제영화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일본의 대표적 작가주의 영화감독이다. 호러를 시작으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온 그의 최신작은 1940년대 일본의 불온한 분위기를 담은 <스파이의 아내>(スパイの妻)라는 작품이다.  <스파이의 아내>는 (일본의 입장에서 보자면) ‘파격적 내용’의 작품이라 투자를 받지 못해 하마터면 엎어질 뻔한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의 지원으로 ‘8K’ 화질로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현재 보급되는 UHD(울트라HD)가 4K인데 이보다 더 선명하다는 것이다. 8K는 풀UHD로 불리기도 한다. 찍어도 내보낼 방송사도, 볼 TV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올림픽’을 앞두고 NHK가 자사의 4K/8K채널에 내보낼 콘텐츠로 기획, 제작한 것이다. 작년 6월 NHK에서 방송된 뒤 화면비 변경과 색 보정을 거쳐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되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용감한 도전정신’ 때문인지 은사자상(감독상)을 수상했다. 이어 11월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한국팬에게 극장판이 선보였다. 8K 오리지널과 달리 극장용은 2K스크린 버전인 셈. 저예산 시대극이다 보니 화질논쟁은 무의미해 보인다.  일본의 야심이 극한으로 치닫던 1940년, 유사쿠(타카하시 잇세이)는 고베에서 무역상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헌병대가 무역상에서 일하는 영국인을 스파이 혐의로 체포하는 등 불안이 고조된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와는 달리 유사쿠는 아내 사토코(아오이 유우)와 조카 후미오(반도 료타)와 함께 신선놀음에 가까운 삶을 살아간다. 유사쿠의 취미는 영화촬영. 아내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찍고 있다. (물론, 흑백 무성영화이다!) 스파이 역을 맡은 아내는 마치 히치콕 스타일로 금고를 몰래 열다가 한 남자에게 발칵댄다. 여자는 체포되고 어디론가 끌려가서 처형되는 스토리이다.  촬영놀음은 실제가 된다 ...

[굿바이] 마지막 화장사 (おくりびと,2008) *Departure *

  혹시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적이 있는지. 정신없이 어수선한 시간들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관속에 누워있는 마지막 모습을 보면 회한의 눈물이 쏟아진다. 세월이 흐른 뒤 그때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려보게 된다. 수많은 영화에서 봤던 그런 장면. 그런데, 누가 마지막으로 그의 육신을 어루만지고, 거친 수의를 입혔고, 어떻게 관을 장식했는지 모르겠다. 여기 일본영화 [굿바이](원제:おくりびと,2008)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우리와는 장례의식, 절차가 조금 다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절차와 과정, 수습의 결정적 순간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도쿄의 한 오케스트라 첼리스트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가 막 베토벤의 합창 연주를 끝내고 주섬주섬 자신의 첼로를 챙길 때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는다. 오케스트라가 오늘부로 해체된다고. 갑작스런 악단 해체로 실업자가 된 다이고는 결국 대출로 겨우 구한 값비싼 첼로를 처분하고 아내 미카(히로스에 료코)와 함께 고향인 야마가타현 사카타로 돌아온다. 도쿄 첼리스트의 허세를 뒤고 하고 그는 ‘연령무관, 경험 무관, 정규직 보장’이라는 ‘NK여행사’ 광고를 보고는 찾아간다. 이쿠에이(야마자키 츠토무) 사장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합격시킨다. 그런데, 이 NK여행사는 인생의 마지막 여행인 죽음을 배웅하는 일종의 상조(喪助)서비스업체였다. 초상집에 가서 시신을 관에 넣기 전에 옷을 곱게 갈아입히고, 얼굴에 분칠하여 유족에게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는 일을 한다. 그런 다이고의 새 일자리에 아내는 기겁하고, 고향친구들은 화를 낸다.  직업의 귀천, 소명  아주 오래 전, 동네 친구 중에 ‘연탄집’하는 아이를 좀 꺼려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쓰레기나 분뇨수거(X차)일을 하는 집안의 아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걔 아버지가 장례업자라면? 모르긴 해도 기겁을 했을 것이다. 불결해서인지, 재수가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철없는 아이...

[해수의 아이] "생명은 방울방울"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 海獣の子供 2019) * Children of the Sea *

  시각적으로 동공이 활짝 열리는 판타스틱한 애니메이션이 개봉한다. 지난 여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소개된 일본 애니메이션 <해수의 아이>(원제:海?の子供)이다. ‘바닷물’의 아이가 아니라 ‘바다괴물(짐승)’의 아이다. 영화는 <리틀 포레스트>의 이가라시 다이스케가 2006년에서 2011년까지 잡지에 연재했던 동명의 만화가 원작이다. 판타스틱한 이미지와 조금은 난해한 이야기의 <해수의 아이>는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에 의해 환상적인 영상물로 완성되었다. 일본의 한 고즈넉한 해안마을에 사는 루카는 외로운 소녀이다. 여름방학 첫날을 맞이했지만 상황은 더욱 위축된다. 학교 핸드볼팀에서 그야말로 훨훨 나는 활약을 보이지만 혼자 꿍하는 스타일의 루카는 팀원과 트러블이 생기고 결국 팀에서 쫓겨난다. 의기소침한 루카가 향한 곳은 아버지가 일하고 있는 아쿠아리움. 그곳 수족관에서 ‘우미’라는 이상한 소년을 만난다. 우미는 저 멀리 필리핀 바다에서 듀공과 함께 자랐다고 한다. 우미와 해변에 나왔다가 우미의 형 ‘소라’를 만난다. 바다 속에서 마치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유영하는 우미와 소라. 그런데 이 바닷가 마을에 기이한 자연현상이 벌어진다. 심해어들이 해변으로 밀려올라와 떼죽음 당하고, 거대 고래가 출연하고,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지고, 바다가 붉게 불타오르고, 새로운 하늘이 열리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해수의 아이>는 우주적 규모의 세계에서 인간 생명을 이야기한다. 영화 첫 장면은 아직 어린 루카가 아빠의 손을 잡고 아쿠아리움을 구경하는 장면이다. 루카의 작은 손을 따라 움직이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들, 그리고 이어 나타나는 거대한 고래의 이미지. 루카는 그때부터 바다와, 바다생명체와 작은 끈을 이어온 셈이다. 영화는 환상적인 바다 속 광경과 함께 소녀의 눈에 비친 자연의 신비, 생명의 경이로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와 대비된 속된 인간들의 모습을 노정시킨다. 우미와 소라라는 특별한 존재, 그리고 그들이 가져오는 바다의 미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