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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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 리마스터링] “탕웨이는 왜 편지를 뜯어 삼켰을까?” (김태용 감독,2010)
탕웨이와 현빈이 주연을 맡은 김태용 감독의 (2010)가 10여년 만에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다시 극장에 내걸렸다. 탕웨이는 김태용 감독과 2014년 결혼하였고, 현빈은 손예진과 결혼했다. 는 10년이 지나서 다시 봐도, 잘 만든, 완숙한 멜로 드라마이다. 아마 시간이 갈수록 더 가치를 발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된다. 탕웨이가 한적한 주택가 도로를 정신없이 뛰어내랴오더니, 순간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누군가 쓰러져 있고, 탕웨이는 허겁지겁 편지를 뜯어서 꾸역꾸역 삼킨다. 경찰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그리고, 7년 뒤, 탕웨이가 연기하는 안나는 엄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사흘의 가석방을 얻는다. 쓸쓸한 모습의 안나가 장거리버스에 앉아 하염없이 허공을 바라볼 때, 누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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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에서 7시까지의 주희] '생의 마지막 2시간' (장건재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1998)에서는 사람이 죽은 뒤 머무르는 1주일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람들은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소중했던 순간을 박제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누군가는 첫사랑이었을 것이고, 누구에게는 엄마의 따뜻한 품속을 기억할 것이다. 그렇게 그 사람은 그 순간을 기억하며 정말 세상과 헤어지는 것이다. 장건재 감독의 영화 라는 영화에서도 그런 삶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게 만든다. 물론, 다른 식으로 진행되는 기억의 정리인 셈이다. 주희(김주령)는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유방암이란다. 이제 자신의 삶을 차분히 정리하든지, 건강을 되찾기 위해 운동을 하든지 할 것이다. 주희가 돌아간 곳은 대학 연구실. 교수로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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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란] “형님이라 하지 말고 형이라 해!” (김창훈 감독)
영화 ‘화란’속 17세 소년 연규는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술만 마시면 폭력을 행사하는 의붓아버지의 집에서, 좁은 방에서 의붓 여동생과 생활하면서, 시궁창 같은 삶이지만 꿋꿋하게 버틴다. 연규는 악착같이 돈을 모아 이곳을 뜰 생각이다. 대학도, 군대도, 연애도 그의 목표가 아니다. 그가 꿈꾸는 도피처는 뜬금없이 ‘화란’이다. ‘네덜란드’ 말이다! 떠들썩한 운동장. 연규는 한참 생각한 끝에 돌멩이를 하나 움켜지더니 달려가서 학생 하나의 머리를 내리친다. 이복여동생 하얀을 괴롭힌 것에 대한 응징이다. 하지만 연규는 정학 당하고, ‘합의금 300만원’을 고스란히 떠안아야한다. 그의 편은 아무도 없다. 엄마도, 아빠도, 선생님도, 그 어떤 어른도 없다. 그때 그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동네 건달 치건이다. 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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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일] ‘구조조정 앞에 선 노동자의 불안과 고뇌.. 인사담당자의 경우’ (BIFF2023 리뷰)
2021년, 정재영, 문소리가 나온 드라마 는 직장인의 치열한 생존기를 다루었다. 이 땅의 회사원, 직장인들은 그 드라마에서처럼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를 위해 보낸다. 직장으로 가기 위해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고, 죽도록 일하고, 다음날 다시 출근하기 위해 잠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일하고, 그렇게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한다. 아이들을 키우고, 집을 장만하고, 애들 대학, 결혼까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직장이란 그런 곳이다. 개인의 영달이나 인간관계의 확장 같은 이야기는 한가로울 때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여기 그런 직장인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인사팀이다. 인사팀이 평소, 그러니까 한가할 때 무슨 일을 하는지는 익히 안다...
할리우드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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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킬러] "프로페셔널 킬러의 길" (데이비드 핀처 감독)
‘세븐’과 ‘파이터클럽’의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에 이어 다시 넷플릭스과 손잡고 만든 영화 (원제:The Killer)가 내달 10일 공개된다. 네온사인 조명과 스타일리쉬한 액션이 펼쳐질 영화를 작은 핸드폰, 혹은 좀 큰 TV화면으로 본다는 것은 영화팬으로서는 억울한 일일 것이다. 다행히 오늘(25일)부터 극장에서 잠깐 상영된다. 우리나라 CGV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극장(잠깐)공개 – OTT’방식으로 선보인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애플TV+ 무비 도 그런 방식이다. 어쨌든 영화팬으로서는 다행인 셈이다. 영화는 ‘킬러’가 주인공이다. ‘레옹’보다는 스마트하고, ‘존 윅’보다는 육체적 부딪침을 덜 하는 살인청부업자이다. ‘킬러’ 마이클 파스팬더는 지금 초고성능 저격총을 앞에 두고 새로운 타켓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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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워 킬링 문]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1776년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은 남북전쟁을 거친 뒤 그 약속의 땅을 독차지한다. 원래 이곳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여러 인디언 부족들이 말 타고 뛰어다니던 신의 땅이었다. 탐욕적인 백인은 광활한 서부로 내달리기 시작했고, 그 땅의 인디언들은 백인들에 의해 죽고, 학살당하고, 도륙당하고, 박멸 당한다. 살아남은 인디언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백인들에게 빼앗기고 수 백 킬로 떨어진 황야로 내몰린다. ‘인디언보호구역’이라는 아주 성스러운 이름을 가진 황무지로. 당시 인디언을 내몰아내던 군사작전을 펼쳤던 필립스 세리던 장군이 코만치 족 토사휘(Tosahwi) 추장에게 했다는 말은 여러 버전으로 전해지는데 바로 “좋은 인디언이란 죽은 인디언이야!”라는 말이다. 당시 미국 백인들은 원주민 인디언을 그런 식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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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 “인간은 AI를 만들었다. HAL~” (가렛 에드워즈 감독)
올해 들어 AI와 챗GPT가 인간계(界)를 흥분에 빠뜨리고 있다. 인간이 만든 로봇이, 소프트웨어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어 아예 인간을 지배하거나 어쩌면 파멸에 이르게 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젠 ‘AI’에 감성을 입혀 '인간미'를 뛰어넘는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가고 있다. 아마 할리우드계(界)에 잠입한 AI들이 시나리오 작가의 펜을 원격제어하여 그렇게 AI프로파간다를 만들고 있는 모양이다. 여기 할리우드 최신작 ‘크리에이터’가 그런 세상을 보여준다. 영화는 2055년 AI의 위협에 대항하는 미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AI가 LA상공에 핵폭탄을 터뜨려 엄청난 인명피해가 생겼던 것이다. 미국은 AI에 맞서기 위해 초강력/초대형 무기(우주항모 NOMAD)를 하늘에 띄우고 지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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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 같은 과학자, 트루먼 같은 정치인, 그리고 여기에 히틀러 같은 적(敵)이 있을 경우, 지구는 굉장히 불안정할 것이다. (원자핵처럼 말이다) 지난 달, 광복절에 개봉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는 다양한 레이어의 감상을 안겨준다. 놀란 감독은 ‘지구인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할 여러 요인 중에 ‘핵문제’를 내놓았고, 그 이야기를 ‘핵폭탄의 아버지’라는 오펜하이머를 통해 불안정한 세계촌을 그린다. 이제 “칼을 휘두른 사람을 단죄해야지, 칼을 만든 사람을 단죄할 수 없다”는 이야기에서 한걸음 나아가 후쿠시마 앞 바다의 삼중수소에까지 이어질 원죄론을 살펴보자. 오펜하이머는 미국으로 건너온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런데 유태인으로서의 자부심이나, 정체성은..
유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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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1938년, 용서와 구원의 스탈린 앞잡이
‘나타샤’, ‘아나스타샤’ 같은 낭만적 이야기가 넘칠 것 같은 러시아 제국은 20세기 들어서면서 레닌과 볼세비키, 공산주의 같은 무서운 얼굴로 바뀐다. 결국 왕정국가는 무너지고 1922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 들어선다. 그리곤 1991년 고르바초프를 마지막으로 그 제국이 무너질 때까지 미국에 맞서는 초강대국가로 존재했다. 어떻게? ‘공산주의’라는 숭고한 이데올로기로? 시계추는 1938년으로 돌아간다. 레닌의 뒤를 이어 1922년 소련공산당 서기장을 맡은 스탈린은 죽을 때까지 30년 동안 소련과 세상의 절반을 ‘공산주의’로 장악했다. 물론 마르크스 사상만으로 인민을 무장시킨 것은 아니다. 영화 는 스탈린 치하의 한 시기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트로츠키도, 미제(!)와의 전쟁도, 카레스키의 강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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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투 서울] 내 마음의 안식처는 어디인가 (데이비 추 감독, 2022)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해외로 입양 간 아이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는 많다. TV 아침교양 프로그램에서, 사회고발 시사프로그램에서, 애니메이션에서, 절망적인 영화로도 만나봤다. 이런 해외 입양아의 처연한 모습은 한국전쟁 이후 대규모로 발생한 전쟁고아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개발시대에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 갓난아기는 버려지거나 고아원을 거쳐 해외로 나간다. 그렇게 떠나간 한국출신의 해외입양아의 수가 20만을 뛰어넘는다고. ‘고아수출’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써야 했다. 거기까지이다. 각자의 사연이 있으니. 오늘(3일) 개봉하는 프랑스 영화 은 그렇게 떠난 한국입양아에 관한 이야기이다. 전쟁고아는 아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씩씩한 프레디(박지민)의 모습이 보인다. 프랑스인이다. 2주의 휴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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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둑] 살아남아라, 훔쳐서라도!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1948)
75년 전 영화가 한국 극장에서 개봉된다. 이탈리아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1948년 작품 이다. 파시스트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뒤 이탈리아의 모습은 짐작 가능할 것이다. 전쟁은 모든 국민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다. 당장 생계가 급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 은 냉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쟁이 막 끝난 뒤. 로마의 발 멜라이나(Val Melaina)에 사는 안토니오(람베르토 마지오라니)는 아내 마리아(리아넬라 카렐), 아들 브루노(엔조 스타이올라), 그리고 갓난 아이를 부양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자리를 찾고 있다. 겨우 일자리를 하나 구했는데 자전거가 꼭 필요하단다. 결국 아내는 침대시트를 전당포에 맡기고 예전에 저당잡힌 자전거를 찾아온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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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 칸] 무르만스크 행 기차의 우연한 여행자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2021)
지구본, 아니 구글맵을 펼치고 러시아 북쪽을 찾아보자. ‘무르만스크’(Мурманск)라는 동토의 땅이 있다. 이 영화는 그곳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로드 무비이며, 기차 영화이며, 힐링의 고행길이다. 8일 개봉하는 영화 (영어제목:(COMPARTMENT NO.6)은 핀란드 유호 쿠오스마넨(Juho Kuosmanen) 감독 작품이다. 핀란드 배우 세이디 하를라와 러시아의 유리 보리소포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전체가 러시아에서 촬영되었다. 모스크바의 좁은 아파트를 떠나, 숨 막히는 러시아 장거리열차를 타고 무르만스크로 길을 떠난다. 추위와 눈, 불친절해 보이는 러시아 사람들과 부대끼는 한 핀란드 여자 유학생의 길을 따라가 보자. 영화는 1970년대 영국의 인기 록그룹 ‘록시뮤직’의 ‘Love Is The ..
대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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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묻혀진 이야기] 대만 백색테러 시기, 녹도의 비극 (주미령 감독)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중화권 영화는 이런저런 이유로 극장에서 제때에 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부산이나 전주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에서나 화제의 작품을 겨우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에 소개된 도 그런 작품 중 하나이다. 주미령(周美玲, 쩌우메이링=제로 츄) 감독의 2022년 영화이다. 국내에 소개되는 대만영화는 몇 가지 경향성이 있다. 청춘멜로드라마이거나 LGBTQ 영화, 아니면 그들의 슬픈 현대사가 응축된 작품이다. 한국영화팬에겐 양조위의 슬픈 눈빛으로만 이미지가 남아 있는 를 비롯하여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소개된 이 그런 역사물이다. 에는 어떤 슬픈 대만 현대사가 숨어있을까. 의 대만 원제목은 ‘류마구15호’(流麻溝十五號)이다. 대만 섬 동쪽 앞바다의 작은 섬 녹도(綠島)의 한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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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마이 데드 바디] 허광한이 귀신과 공조수사를 하게된 기이한 사연 (청웨이하오 감독,2022)
또 한 편의 대만영화가 한국 극장가에 공개된다. 한국에 개봉되는, 즉 한국 영화팬에게 소구되는 대만영화는 청춘로맨스, (대만현대사의 비극을 다룬) 역사물, 퀴어를 곁들인 가족드라마가 대세이다. 이번 영화는 대만의 청춘스타가 출연하는 코미디이다. 그런데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다. 경찰 활극이며, 버디물이다. 그런데 말이다. 파트너가 이미 ‘죽은 사람’이다. 동성(同性) 원귀(冤鬼)와의 버디물이라니. 참신하다. 기대된다. 대만에서는 큰 흥행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제목인 ‘메리 마이 데드 바디’(‘내 죽은 몸과 결혼해)라니! 어떤 상황일까. 대만 신베이(新北)의 정항분국(正港分局) 소속 형사 우밍한(허광한)은 마약사범 체포를 위해 동료형사 린자칭(왕정)과 함께 할리우드 액션 버금가는 카 체이스를 벌인다. 죽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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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총통을 쏘았나] 대만 대통령선거 총격사건의 재구성 (幻術, 티빙)
[박재환 2022.03.10] 대한민국의 앞으로의 5년을 이끌 20대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선거 운동기간 후보와 진영 간에 펼쳐졌던 다이내믹한 열기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기고, 흥미로운 정치영화 한 편을 소개한다. 현대사의 궤적에서 한국과 아주 흡사한 과정을 겪은, 그야말로 데칼꼬마니라고 할 수 있는 대만 정치판 이야기이다. 2004년, 대만 총통(대통령) 선거일 하루 전날 발생한 총격사건을 둘러싼 음모론이다. 티빙에 올라온 영화 ‘누가 총통을 쏘았나’(원제:幻術,2019)라는 영화이다. 흥미진진하다. 먼저,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대만현대사를 잠깐 알아둘 필요가 있을 듯하다. 1910년 마지막 황제 푸이가 5천년 왕정시대를 끝장내고 대륙은 인민의 나라가 된다. 모택동(마오쩌뚱)의 중국공산당과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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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탄적일천] 여자의 길, 대만의 운명 (양덕창 감독,1983)
세계영화사를 다룬 책에는 1950년대와 60년대를 장식한 프랑스 누벨바그에 대한 설명이 있다. 기존 영화들이 답습(!)한 문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상미학을 추구한 일련의 감독들이 나열되어 있다. 시차는 있지만 낡은 것을 깨부순다는 의미에서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서극과 허안화 등이 이끈 홍콩, 후효현과 양덕창이 이끈 대만의 경우이다. 중국어로는 ‘신낭조’(新浪潮)이다. 그냥 ‘새로운 물결, 파도’라는 뜻이다. 6일, 대만 양덕창(양더창, 에드위드 양) 감독의 ‘해탄적일천’이 개봉한다. 양덕창 감독의 데뷔작이자, 대만 신낭조의 신호탄이 된 작품이다. ● 도시와 어촌 마을, 남편이 사라졌다 영화가 시작되면 파도가 치는 해변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하다. 한..
중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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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투 플라이] 타산지섬(他山之殲).. "Made in China 스텔스의 위협"
한국극장에서 중국영화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한국관객들은 ‘느와르 아니면 갬블러’ 일색인 홍콩영화도 안 보는데, ‘중화제일주의’로 무장한 중국영화를 볼 리가 있겠는가. 그리고 중국이 자기네들 인민해방군 건군90주년(2017), 중화인민공화국 건국70주년(2019),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2021)을 맞으며 쏟아낸 기념대작 역사물들은 더더욱 한국영화팬들의 발길을 끊어놓았다. 게다가 한국전쟁(중국에서 말하는 이른바 ‘항미원조전쟁’) 70주년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한국인의 신경을 건드리기도 했다. 그 와중에 한국극장가에 이른바 ‘국뽕스타일’의 중국영화 한 편이 개봉되었다. 다행히 한국역사를 건드린다거나, 우리 땅을 도발하는 프로파간다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 국방관계자, 방위산업체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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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야] 판빙빙-이주영의 녹초가 된 하룻밤 (한슈아이 감독,2023)
지난달(2023년 10월)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중국의 판빙빙과 한국의 이주영 배우가 주연한 중국영화 (원제:綠夜/Green Night)가 지난 1일 한국극장가에 개봉되었다. 는 ‘LGBT’스타일의 느와르 영화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지독한 멜로물이기도 하다. 영화는 한국 인천항의 국제여객터미널 보안검색대에서 시작된다. 판빙빙이 연기하는 진샤는 이곳을 이용하는 승객의 입국심사를 담당하고 있다. 검사대에서 ‘삐~’소리가 나면 좀더 꼼꼼하게 승객의 휴대품 검사를 한다. 방금 가방 하나만 메고 온 ‘녹색머리’의 여인(이주영)이 수상하다. 그리고 진샤는 이 녹색여인과 함께 악몽 같은 이틀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초록머리’ 여자는 인천과 중국(옌타이)을 오가며 마약을 옮기는 운반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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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강홍: 사라진 밀서] "배고프면 오랑캐의 살로 배를 채우며,목마르면 흉노의 피를 마시리라" (장예모 감독)
지난 주 막을 내린 아시안게임은 중국 쩌장(浙江)성 항저우(杭州)에서 열렸다. 항저우의 서호(西湖) 인근에 악왕묘(岳王廟)가 있다. 우리나라로 친다면 ‘이순신’급 민족영웅으로 떠받드는 중화민족의 영웅 악비(岳飛) 장군의 묘이다. 중국 인구는 14억 정도이고, 다민족국가이다. 물론 한(漢)족이 90%이상을 차지한다. 중국도 오랜 역사를 거쳐 이민족의 침략을 받았다. 12세기경에는 북방민족이었던 여진족이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금(金)을 세운 뒤 남쪽의 송(宋)을 정벌하려 남하한다. ‘금’의 군사공세에 젊은 악비(岳飛)는 의용군에 입대하여 혁혁한 군사적 승리를 이끈다. 악비의 군대가 고군분투했지만, 송은 연전연패하더니 1126년 ‘정강의 변’이라는 일컬어지는 변고가 생긴다. 결국 송은 금나라에 패하고, 화북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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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지구2] 사과나무 대신 로켓을 개발하는 인류 (곽범 감독,2023)
[삼체](三體)로 휴고상을 받은 중국 작가 류츠신(劉慈欣)이 2000년에 SF잡지에 처음 발표한 는 중국작가, 혹은 중국SF의 스케일이 할리우드 버금가고, 사이즈가 롤랜드 애머리히 뺨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단편을 곽범(郭帆 구오판)감독이 영화로 옮겼는데 그야말로 어머어마했다. 설정은 대단히 과학적이다! 어느 날 태양이 급속팽창, 급속 노화한다는 것이다. 중국과학자는 300년 내에 태양이 팽창하여 지구를 삼키고, 태양계가 소멸될 것이란 것이다. 이런 천문현상은 별들의 역사에서 일반적인데, 과학자들은 100억 년 뒤에 실제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단다. 아주 먼 미래의 일로 여겨지던 재앙이 300년 뒤에 발생한다면? 과연 인류는 사과나무를 심을 것인가? 미래 세대를 위해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소..
일본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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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STAND BY ME (고레에라 히로카즈 감독)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포스터의 한 줄 태그라인이 궁금해서 어두운 극장 안으로 들어가서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 푹 빠져들 때가 있다. 아마도 고레에라 히로카즈 감독의 이 그런 영화일 것이다. 이 영화는 보기 전에 (이런, 영양가 없는) 영화리뷰도 읽지 말고, TV영화 프로그램의 상세한 소개도 보지 말고, 유튜브 짜깁기 영상도 멀리한 채 편안한 마음으로 머리와 가슴을 비우고 스크린을 응시하기를 권한다. 당신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과 소신, 사고방식, 철학관의 반영일 테이니. 에는 초등학교 학생과 학부모, 선생님, 그리고 교장선생님이 나온다. 어린 학생들이 학교에서, 교실에서 어떤 생각으로, 어떤 장난을 치고, 어떤 친구를 사귀는지, 그 친구와는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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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이렇게 살았노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지브리의 명장 미야자키 하야오(宮﨑駿) 감독이 은퇴작이라고 공언한 (風立ちぬ,2013) 이후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내놓은 영화 (원제: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가 지난 달 개봉되었다. 가 되었던, 가 되었던, 이 되었던 미야자키의 지브리 세상에 입문한 영화팬이라면 이 거장의 신작에 관심과 기대를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전의 영화 개봉 때와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였다. 사전에 홍보(선전) 활동을 전혀 펼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그랬고, 한국에서도 언론시사회 같은 행사 없이 바로 극장에 내걸렸다. 지브리의 자존심인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기대인지는 몰라도, 오랜만에 ‘작품만을 오롯이 보고, 영화의 숨은 의미를 찾아보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이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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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메의 문단속] “스즈메,너의 임무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
지금부터 12년 전, 일본열도의 동쪽 바다에서 커다란 해일(츠나미)이 몰려온다. 311 도호쿠(東北)대지진이라고 불리는 자연재난이었다. 그 때 지진은 일대 해안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후쿠시마의 원자력발전소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사건이 크면, 사람을 잊을 때가 있다. 그때 그곳이 삶의 터전이었던 사람들은 아침이면 “학교 다녀오겠습니다.”하거나 “여보 출근할게요”하고 집을 나섰을 그 사람들 말이다. 여기에 그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가 있다. 과 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 (원제:すずめの戸締まり)이다. ‘스즈메’는 극중 주인공의 이름이다. '문단속'이라니?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미지였다. 영화가 시작되면 꿈속의 장면을 만나게 된다. 어린 소녀 하나가 폐허가 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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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우먼] 지하철의 여자들이여 가면을 써라! (BIFAN2022)
지난 주 막을 올린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는 49개국에서 출품된 268편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그중 비주얼 면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단편 [버드 우먼](원제:Bird Woman)이다. [오징어 게임]을 연상시키는 빨간 패션의 인물이 괴이한 마스크를 쓴 스틸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도대체 일본 지하철 안에서 어떤 일이 발생한 것일까. 오오하라 토키오(大原とき緒) 감독의 21분짜리 히어로, 아니 ‘히로인’ 무비이다. 출퇴근 시간, 한국 버금가는 지옥철을 보여주는 일본 도쿄의 지하철 안. 직장여성 토키는 오늘도 변태들의 틈바구니에서 일터로 향한다. 저 변태들의 눈길과 손길을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토키는 마스크샵을 운영하는 친구에게서 특이한 형태의 마스크를 부탁한다. 커다란..
3세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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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웅] 테헤란의 명예전쟁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2021)
이란 영화 한 편이 극장에서 개봉된다. 와 으로 아카데미외국어영화상(국제장편영화상)을 두 차례 받은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2021년 작품 이다. 아쉬가르 감독은 베를린과 깐에서도 상을 받았었다. 은 2021년 칸 영화제에서 핀란드영화인 ‘6번 칸’과 함께 공동으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이란 영화는 어떤 경향성이 있다. ‘저예산+서민+아동+휴머니즘’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까지 소개되는 이란영화라면 말이다. 이번 작품은 어떨까. 이 영화를 통해 이란의 사법시스템, 특히 교도소의 재소자 관리가 어떻게 이뤄지는 엿볼 수 있다. 라힘 솔타니는 이틀간의 귀휴(교도소에서 며칠 가석방되어 집에 다녀오는 것)동안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처남인 바람(Bahram)에게 15만 토만의 빚이 있었는데 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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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자마 ‘해변의 자마, 밀림의 비쿠냐 포르토’ (루크레시아 마르텔 감독,2017)
(2021년 8월) 25일 개봉하는 아르헨티나 루크레시아 마르텔 감독의 [자마](원제:ZAMA)는 우리에겐 낯선 공간, 잘 알지 못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인간의 고통을 담고 있다. 그 남자의 고통은 시대적 상황에서 기인한다. 18세기 말, 스페인에서 왕에 의해 저 먼 남미 땅, 식민지에 왕실관리로 근무하고 있는 관리는 악화되기만 하는 상황에서 발버둥 친다. 영화는 1956년 안토니오 베네디토라는 작가가 쓴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옮겼단다. 영화는 따라잡기 힘들만큼 느릿느릿, 띄엄띄엄 서서를 이어간다. 식민지 작은 마을에 근무하는 디에고 데 자마(다니엘 지메네스 카초)는 치안판사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지만 그다지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거나 원주민을 수탈하는 제국주의 충실한 종으로 보이진 않는다. 어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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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FF리뷰] 야수의 밤 “아이언 메이든 공연, 꼭 보고 싶습니다”
지난 12일 개막하여 오늘(17일) 개막하는 제17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는 모두 116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청풍명월의 고장’의 고장 제천에서 열리는 JIMFF는 ‘영화’와 ‘음악’이 조화를 이루는 매력적인 영화축제이다. “얼쑤~” 판소리에서 해드뱅잉 헤비메탈까지 다양한 음악과 소음이 별과 함께 쏟아지는 영화제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소개되는 [야수의 밤](원제:THE NIGHT OF THE BEAST)은 콜롬비아의 마우리치오 레이바 콕(Mauricio LEIVA-COCK) 감독의 데뷔작이다. 콜롬비아의 헤비메탈 매니아를 만나게 되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헤비메탈! [야수의 밤]은 콜롬비아 보고타의 고등학생 처키와 바르가스의 현실적 삶이 녹아있다. 술만 마시고 아들에겐 관심도 없는 아버지와 살고 있는 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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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리카투] 인도 물소 폭주하다
여름 극장가에 인도영화가 한 편 개봉된다. 인도영화라면 아주 오래 전 TV에서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신상’(神象,1971)이라는 영화를 내보냈었다. [춤추는 무뚜] 이후 소개되는 영화는 대부분 신나는 음악과 활달한 군무, 유쾌한 스토리가 주를 이뤘다. ‘볼리우드’라고 불릴 만큼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지만 한국에 소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부산영화제 아니면 만나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5일 개봉하는 리조 호세 펠리세리 감독의 인도영화 [잘리카투](원제: Jallikattu,2020)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인도가 국제영화상(이전의 외국어영화상)후보로 올렸던 작품이다. 위키를 잠깐 찾아보니 인도에는 총 780개의 언어가 존재하며 이중 10만 명 이상의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는 216개, 헌법이 인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