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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별희] 力拔山氣蓋世라도 어찌하리오 (Farewell My Concubine 진개가 감독 霸王别姬,1993)

  천카이거(진개가) 감독의 <패왕별희>는 깐느영화제에서 제인 캠피온 감독의 <피아노>와 함께 황금종려상을 공동수상했고,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외국어작품상 후보에 오른 홍콩영화이다. 물론, 장국영의 사후 장국영 팬들로부터 “장국영의 숨결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꼽은 영화이기도 하고 말이다. <패왕별희>는 홍콩의 베스트셀러작가 이벽화(李碧華)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벽화는 <인지구>, <청사>, <진용>, <반금련 전세금생> 등과 같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운명과 사랑의 이야기를 주로 펼치는 작가이다. <패왕별희> 또한 그러한 역사의 소용돌이라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지 못하는 파트너와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다. 원래 ‘패왕별희’의 이야기는 진시황 기 죽은 뒤, 다시 사분오열될 중원을 두고 대격돌을 벌였던 한나라 유방과 초패왕 항우의 이야기에서 연유한다. 유방은 결국 항우를 무찌르고 중국을 다시 통일한다. 그게 바로 ‘漢’제국이다.  중국문화사나 예술사, 희곡사를 잠깐 들여다보면 경극(京劇,베이징 오페라)의 역사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와 유사한 퍼포먼스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수도 북경에서 융성한 경극은 당시 고관대작의 즐거운 볼거리였고 일반 서민에게도 환상을 안겨주는 놀이문화였다.   영화는 1924년 겨울, (이미 황제의 지배는 무너지고 겉으로는 민주공화정이라는 분장을 하였지만, 실속은 외세에 의해, 군벌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진 중국의) 북경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찬바람이 불던 어느 날 기녀의 어린 애가 경극단에 넘겨진다. 이 ‘여자애’같이 생긴 꼬마애의 이름은 ‘샤오뚜오즈(小豆子-콩돌이–;)’. 그 콩돌이를 친형처럼, 오빠처럼 돌봐주는 경극단 사형은 샤오셔토우(小石頭-돌머리 –;). 경극단 아이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엄격한 관 사부의 지도 아래 내일의 ‘경극 스타’가 되기 위해 하드 트레이닝을 한다. 이 꼬마들...

[나라야마 부시코] 살아남고, 대를 잇는 법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楢山節考/ The Ballad of Narayama,1983

 스페인에는 아직도 해마다 좁은 골목길에 황소들을 풀어놓고 달음박질을 하는 풍습이 있다. 소에 밟혀 중상을 입는 사람들이 속출하지만, 전 세계 뉴스의 초점이 되는 전통놀이이다. 그리고 또 어떤 나라에는 불덩이를 상대 측에게 집어 던지는 풍습도 있다. 불 대신 돌멩이를 서로 집어던지는 종족도 있고 말이다. 물론 조금 다르지만 식인종이 아니면서도 식인 풍습이 남아 있는 곳도 있단다. 아프리카에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수십 미터 나무에서 발끝에 줄을 매달아 뛰어 내리는 풍습이 있다. 땅바닥에 부딪혀 절명 하면 끝이고, 살아나면 성인으로 대접 받는 것이다. 번지점프의 유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코사크 족은 갓 태어난 아기를를 차가운 강물에 담겨 살아남으면 키우고 죽으면 버린단다. 아프리카에는 남성만이 아니라 여자에게도 할례를 시킨다. 과다출혈로 죽는 경우가 많다. 이들 모든 풍습은 오늘 날의 문명인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당시의 사회경제적 상황, 혹은 지리적, 기후적 여건에 비추어 보자면 전혀 이해 못할 상황은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를 보자.  영화를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풍습이 설명되어 있다. 살아남기 힘들었던 시절. 사람들은 그들만의 원칙을 정한다. 결혼은 장남만이 할 수 있고, 아이를 낳아도 두 번째 아이가 사내라면 버려지고, 여자아이라면 한 줌의 소금과 맞바꾼다. 남의 음식을 훔치는 것이 가장 큰 죄로 그 가족은 산 채로 매장된다. 그리고 누구나 나이 들어 '70'이 되면 산속에 버려진다. 그러한 습관은 수백 년 전 일본의 한 산간 마을에 있었던 풍습이(란)다. 한겨울 눈이 마을의 집들을 폭 뒤집어설 만큼 내리는 이 태산준령 산골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그들만의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네의 보리고개나 보쌈, 혹은 고려장보다 훨씬 치열한 인간생존의 욕구가 깔려있는 풍습인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새하얗게 눈덮인 산을 보게 되고, 눈 속에 파묻힌 집들을 보게 되고, 눈...

[사탄의 태양아래] 주님의 이름으로 (모리스 피알라 감독 Under Satan’s Sun,1987)

1999년 깐느 심사위원 대상 작품인 <휴머니티(위미니떼)>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적이 있다. 그 영화와 관련하여 <시골 사제의 일기>라는 영화가 언급되었다. 호기심 발동! 프랑스 작가 죠르쥬 베르난노스(Georges Bernanos)의 1936년 작품 을 영화로 처음 옮긴 것은 1950년 로베르 브레송이었다. 물론 그 작품도 꽤나 호평을 받은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구할 수가 없었다. 대신 1986년에 모리스 피알라가 두 번 째로 영화화한 것은 우리나라에도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이전에 중앙일보가 팔리지도 않는 예술영화들을 비디오로 출시한 적이 있을 때 같이 출반된 것이다. 이제는 그런 돈 안 되는 비디오를 내는 업체도 없다. –; 이 영화는 그래도 <휴머니티>보다는 지루하지 않지만 그 무게만은 만만찮다.   시골사제 도니상 신부가 프랑스의 한 시골마을 사제로 부임한다. 도니상 신부는 제랄드 드빠르디유가 연기한다. 관객은 이제 칙칙한 프랑스의 한 농촌을 배경으로 주님에 대한 신념과 희생으로 가득한 한 시골 사제의 고행담을 보게 된다. 영화는 아주 신비롭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도니상 신부의 고뇌. 그것은 ‘聖’의 이야기이며 인간의 상층부적 갈등이다. 그의 눈에는 세상이 온통 惡으로 가득차 있고 그는 혼자서 이 모든 사악한 존재에 맞서 싸워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축은 산드린 보네르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무세뜨의 이야기이다. Sandrine Bonnaire는 최근 <거짓말의 색깔>과 <이스트 웨스트>에 출연한 배우이다. 무세뜨는 영화에서 아주 어린 소녀로 나온다. 하지만 그녀의 내부에는 정욕과 신분상승의 욕구로 가득차 있다. 다분히 ‘俗’의 현신이다. 그는 후작과 관계를 맺어 임신한 상태이지만, 그가 사랑하려고 하는 대상은 마을의 시장이다. 그는 파리로 나가고 싶어 하고 자신의 부와 명예를 지켜줄 남자-유부남-를 선택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손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