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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니아] 지구최강, 우주최고의 셀럽 (브랫 래트너 감독, MELANIA,2026)

The Ultimate Icon of Global Glamour   지난 주말 미국에서는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한 편 개봉되었다. 마블 작품도 아닌데 홍보비는 그에 못지않다. 개봉 전날 워싱턴DC 트럼프-케네디센터에서 열린 공식시사회에는 미국 47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팸 본디, 피트 헤그세스, 크리스티 노엠, RFK 주니어, 카쉬 파텔 등 ‘ 슈퍼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New 람보’라도 만들어졌단 말인가? 놀랍게도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를 정면에서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제목부터 거룩한 ‘멜라니아!   이 영화는 시사회에 이어 미국 1500여 개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미국 매체 기자/평론가들은 기사에서 아주 고상한 예술영화를 본 듯한 상투적인 문구를 빠뜨리지 않았다. “극장에는 나 포함하여 두 사람, 세 사람이 앉아서 지루함을 끝까지 이겨내며 영화를 보았다!”는 식으로.   과연 어떤 영화일까. 우선, 영화의 정체부터. 이 영화는 멜라니아의 화려한 20여 일을 담고 있다. 트럼프가 치열했던 대선 레이스 끝에 당선을 확정한 날부터, 취임식까지,(그리고 다음날 아침까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얼마나 흥미로운가. 향후 펼쳐질 트럼프의 또 한 번 ‘위대한 미국 만들기’를 엿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니 말이다. 트럼프의 부유한 친구인 제프 베이조스의 아마존은 무려 4천만 달러에 이 작품의 배급권을 획득한다. 그리고 마케팅 비용은 3,500만 달러를 더 쏟아 부으며 멜라니아 찬가를 만방에 퍼뜨릴 준비를 마친다. 디즈니보다 약 2,600만 달러 더 많은 금액이었다고들 한다.    영화가 개봉된 날 미국 TV 방송사의 입담 좋은 코미디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 영화를 헐뜯기(!) 시작한다. 지미 키멜은 “영화 '터미네이터' 이후로 유럽 출신 사이보그에 대한 영화에 이렇게 큰 기대감이 쏠린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지미, 팰런은 “이번 주말 극장에는 멜라니아 다큐멘터리도 있고, 레이첼 맥아담스의 'Se...

[펭귄의 비밀] 펭귄은 살아있다 (디즈니플러스, 내셔널지오그래픽) *Secrets of the Penguins*

  넷플릭스와 함께 한국 OTT시장에서 치열하게 구독전쟁을 펼치는 글로벌 OTT 디즈니플러스에서는 디즈니, 마블 작품뿐만 아니라 훌륭한 다큐멘터리 채널도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이다. 이 채널에서 지난 21일, '지구의 날'에 맞춰 <펭귄의 비밀>(원제:SECRETS OF THE PENGUINS) 3부작이 공개되었다.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이 총괄프로듀서를 맡았고, 샤크호러 <언더 워터>(The Shallows, 2016)의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제작진만으로도 끌리는 자연 다큐일 것이다.   NG(내셔널지오그래픽)의 <펭귄의 비밀>은 예전에 MBC에서 만든 <남극의 눈물>의 감동을 기억하는 분이시라면 꼭 챙겨보시길 권한다. 제임스 카메론은 남극, 나미비아, 남아프리카, 에콰도르(갈라파고스),아르헨티나, 사우스조지아섬 등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짧은 날갯짓과 뒤뚱거리는 펭귄을 영상에 담는다. 이 다큐를 보면서 펭귄이 의외로 다양한 자연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정말이지 펭귄은 가장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진화의 경이로운 존재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대표하는 탐험가이자 에미상 수상자인 버티 그레고리가 이번 작품의 촬영 감독 및 프로듀서로 합류하며 펭귄들의 위대한 여정은 물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그들의 생태계와 환상적인 볼거리를 선사한다.   펭귄이 이 땅에 나타난 것은 약 6500만 년 전이란다. 지금의 지구 환경과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한 용감한 새는 날 수 있는 날개 대신, 날 수 없는 날개를 선택했을 것이란다. 그리곤 그 후 뒤뚱거리고, 푸드득거리며 땅 위에서, 얼음 위에서, 바다 밑에서 종의 번식을 이어왔다. 현재 18종의 펭귄이 지구 곳곳에 서식하고 있다. <펭귄의 비밀> 3부작은 놀라운 펭귄의 세상을 담는다. 그 혹한의 남극에서 알을 낳고, 영하 50도의 ...

[숨] 우리는 모두 죽는다. 좋은 삶이었든 나쁜 삶이었던… (윤재호 감독) Yoon Jae-ho *Breath*

 그 누구보다도 깊은 사연과 삶의 궤적을 가졌을 것 같은 윤재호 감독이 신작 <숨>으로 돌아왔다. 윤 감독은 <뷰티풀 데이즈>와 <파이터> 그리고 몇 편의 덜 알려진 역작을 통해 꾸준히 소외된 자, 잊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방식으로 영상에 담고 있다. 이번 작품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부자이거나 가난한 자이거나, 높은 곳에 있었거나 낮은 곳에 있었거나 누구나 죽는 인간의 마지막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지금 죽는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정리될까. 육신은 어떻게 되고, 위명과 기억들은 어떻게 사라져갈까. <숨>은 우리의 육신이 누구에게 의탁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곁은 떠나는지 보여준다. 분명, 철학적이거나 종교적인 담론이지만, 그에 앞서 현실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윤재호 감독의 다큐멘터리 <숨>은 사람의 생로병사를 담는다. 물론 ‘생’의 순간은 잠깐이다. 영화 초반 아기가 태어나고 배밀이를 하고, 칸막이에서 걸음걸이를 배우는 장면이 잠깐 나온다. 모든 인간이 태어남은 활기찰 것이고, 청춘은 화려했을 것이고, 인생의 전반부는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곧 나이 들고, 병들고, 죽음의 순간을 맞게 될 것이다. 윤 감독은 그런 인간의 후반부, 마지막 순간을 담는다. (이 영화는 인간의 행복한 삶은 다룬 것이 아니란 것을 명심하고 접근하기 바란다.)  우선 카메라는 병들고, 외롭고, 서글픈 신세의 노년을 보여준다. 자막은 ‘넝마군’이라고 나온다. 폐지 줍는 할머니를 비춘다. 어떤 삶인지 많이 보아왔을 것이다. “1500원 벌어.” 그렇다. 인생이 아름답고, 화려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연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이어 활활 타오르는 다비식 장면을 보여준다. 윤 감독은 이 인물, 저 사연, 또 다른 죽음의 순간을 두서없이 전해주는 것 같다. 그 사이사이, 이들의 죽음과 주검을 정리하는 사람을 보여준다. ‘장례지도사’와 ‘유품정리사’이다. 영화 <파묘...

[힘내라 대한민국] 보수파, 우국충정의 반공영화 *Cheers for Korea*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정치적 색채가 뚜렷한 영화가 개봉되었다. 금기백, 애진아 감독의 <힘내라 대한민국>은 제목부터 정치적 신념을 명확히 드러낸다. 해방 전후의 좌우 대립만큼이나 첨예한 진영 싸움이 펼쳐지고 있는 지금, 정치적 논쟁은 여의도를 넘어 아스팔트 위에서, 그리고 이제는 극장가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과거에도 선거철이나 대형 이슈가 우리 사회를 뒤흔들 때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이 종종 등장했다. 주로 진보진영에서 만든 작품들이 내걸리던 것과는 달리, 최근 들어 보수 진영에서도 적극적으로 극장용 영화를 내놓고 있다. 지난해 이승만 전 대통령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의외의 흥행 성공을 거둔 이후 영화란 매체가 더 이상 단순한 오락거리나 역사기록이 아니라 진영 싸움에서 심리적 ‘깃발’의 역할을 하게 된 듯하다.    <힘내라 대한민국>의 포스터를 보면 윤석열 대통령을 적극 옹호하는 영화임이 분명하다. 임기의 절반도 지나지 않은 현직(직무정지) 대통령을 다룬 영화가 이처럼 서둘러 제작될 수 있다는 점은 기이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 개인을 중심으로 한 영화가 이렇게까지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년 12월 3일을 기점으로 정치적 상황이 급변하면서, 이 영화는 단순한 옹호를 넘어 진영의 깃발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영화는 보수 진영이 느끼는 현재의 위기의식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힘내라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위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위기’를 말한다.  영화는 대량의 흑백 영상자료를 활용해 해방 직후 한반도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묘사한다.  서두에 등장하는 인물은 박헌영이다. 1920년대 공산주의 운동을 하다 일제에 체포된 박헌영의 일화를 다루며, 그가 감옥에서 정신병을 연기해 풀려났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이후 그는 공산주의 운동의 맹주로 김일성과의 권력투쟁을 벌인다고 소개한다. 영화는 남로당의 ...

[프리다 삶이여, 영원하라] “나는 꿈을 그리지 않는다” (Frida Viva la Vida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는 화가이기에 앞서, ‘여자’였으면, ‘인간’이었다. 그의 이미지는 픽사 애니메이션 [코코]에서도 만나볼 수 있고, 한국에서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위대한 예술가 프리다 칼로의 고통과 고난과 역경의 삶을 목도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극장에서 개봉된다. 세계미술사/예술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인물들의 삶과 작품을 조망하는 다큐를 주로 소개하고 있는 일미디어의 최신작 <프리다. 삶이여 영원하라>이다. 6일 개봉한다.  제목에 쓰인 ‘삶이여 영원하라’는 프리다가 죽기 전 그녀의 마지막 그림에 남긴 글귀이다. 영화는 ‘아픔과 좌절, 불행과 비극’으로 가득한 프리다의 삶을 소개한다.   프리다는 멕시코 코요아칸에서 태어났다. 독일계였던 아버지는 딸에게 ‘평화’를 뜻하는 프리다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었다. 프리다는 6살에 소아마비에 걸려 한 쪽 다리가 쇠약해진다. 그리고 18살에는 끔찍한 교통사고까지 당한다. 척추와 다리, 골반 뼈를 으깬 사고로 평생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병실에서, 침대에서, 집에서 그에게 안식을 준 것은 붓이었다. 프리다는 자신의 육신의 고통을 화폭에 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프리다 옆에 평생의 동반자(!)가 등장한다. 그보다 21살이 많았던 멕시코의 국민화가 디에고 리베라였다. <프리다 삶이여 영원하라>는 프리다가 남긴 작품과 기록 사진, 영상들과 함께 그녀의 생을 따라간다. ‘사랑의 동반자’라고 생각한 남편 디에고의 끈질긴 인연까지. 끝없는 외도와 불륜, 이혼과 재결합, 그리고 장례식과 화장터의 마지막 순간까지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프리다 칼로의 전시회가 열린 적이 있다.프리다의 삶을 알게 되면 그의 그림이 왜 그렇게 기괴하고,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지 바로 알게 된다. 멕시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 혼란은 교통사고의 악몽을 딛고 그린 첫 작품 <벨벳 드레스를 입은 자화상>(1926)에서부터 느껴진다....

[풀] 이골이 나는 위험한 '대마' 이야기 (이수정 감독)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는 익숙하지 않은 세상, 미지의 세계를 영화관객에게 소개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해방구의 역할'로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다이빙 벨’이 상징한 것처럼 영화라는 것은 언터처블의 예술작품으로 인식된다. 순전히 영화제 프로그래머의 예술적 심미안에 의해 선택된 영화를 보면서 당대의 시대상을 한 번쯤 되돌아보고, 세계사적 흐름을 나름대로 짚어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지난 주 막을 올린 제16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풀>을 보면 그런 경향성을 이해할 수 있다.  <풀>은 〈깔깔깔 희망버스〉(2012)와 〈재춘언니〉(2020) 등의 작품을 만든 이수정 감독의 신작이다. 그의 작품들이 당대의 이슈와 주류 매체에서 주목 받지 못한 인물군상을 다뤘기에 이번 작품 <풀>도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이번 영화에서는 ‘풀’을 다룬다. 들판에 자라는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을 다루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 되어온 ‘대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오래 전부터 대중문화 쪽에서는 ‘대마초-히로뽕-마약’이 전해주는 이미지가 있다. ‘사회정화의 차원’에서 가끔 터지는 문제이니까. 그런데, 갈수록 강해지는 향정신성 의약품과 세계를 골병 들게 만드는 마약류 틈 사이에서 ‘대마’는 오래도록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이수정 감독은 이 요망한 ‘풀’을 어떻게 설명할까. 그리고, 이 작품을 보는 사람에게 어떤 ‘가이드’를 하려는 것일까.  <풀>은 이 땅에서 ‘금지된 씨앗’ 대마의 씨를 땅에 뿌리고, 가꾸고, 활용하는 사람들을 쫓아간다. ‘대마’가 완전 금지된 독극물은 아니다. 얼마 전 백종원이 백팩을 매고 찾아서 푸짐한 만찬을 펼쳤던 안동포타운에서는 수의 등에 이용되는 대마를 키운다. (tvN <백패커2>) 이런 곳은 관청의 허가를 받아 대마가 재배되고, 수확되고, 활용된다. <풀>에서는...

[국가의 탄생: 메리 개프니의 저항] "옛날 옛적에 여자노예가 있었다" (티빙-파라마운트+) * Birthing a Nation: The Resistance of Mary Gaffney *

  넷플릭스와 힘겨운 ‘구독자 전쟁’을 펼치고 있는 국산OTT 중 하나인 티빙에는 ‘파라마운트+’라는 일종의 ‘채널 속 채널’이 있다. [탑건], [미션임파서블], [트랜스포머]. [대부] 같은 파라마운트 영화사 작품과 함께 ‘라이어니스-특수작전팀’, ‘헤일로’, ‘더 그레이트’, ‘NCIS’ 같은 미니시리즈가 가득 하다. 미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옐로우 재킷’이나 ‘프롬’ ,‘래빗홀’, ‘와이 우먼 킬’을 찾아봤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웹(앱) 목록을 뒤지다 보니 이런 게 있었다. ‘파라마운트+ 오리지널&독점’에 올라온 ‘국가의 탄생: 메리 개프니의 저항’이란 작품이다. 사실 데이비드 그리피스 감독의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a Nation,1915)은 미국 영화사에서 기념비적인 무성영화이다. 물론 이 작품은 아니었다. ‘MTV 다큐멘터리 필름’ 로고가 제일 먼저 뜬다. 궁금해서 봤다. ‘국가의 탄생: 메리 개프니의 저항’(원제:Birthing a Nation: The Resistance of Mary Gaffney)는 ‘Nazenet Habtezghi’ (정확히 어떻게 읽어야할지 몰라서) 감독의 19분짜리 단편 다큐멘터리이다. 영화 시작하면 짧은 자막이 나온다. 1930년대 미국 정부가  WPA(Works Progress Administration,공공사업진흥국)에서 구제사업을 펼쳤는데 그중 하나가 ‘노예 인터뷰 프로그램’이 있었단다. 1930년대라면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 대공황 시기였다. 대규모 공공건설과 다양한 고용정책이 시행되었는데 그중에는 문화예술 영역에서도 ‘일거리창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던 모양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제는 자유인이 된 노예들의 구술(口述)프로젝트가 진행된 모양이다. 모두 2300명에 이르는 ‘옛 노예’들의 기억으로 구성된 '노예체험기'가 미국 국회도서관에 남아있단다.  ‘Nazenet Habtezghi’ 감독은 이중 ‘메리 개프니’의 이야기를 19분짜리 단편 다큐로 만든 것이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소멸되는 사람, 사라지는 이야기 *The Pregnant Tree and the Goblin *

   참으로 슬프고도 슬픈,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한 편 개봉한다. 이 영화를 몇 명이나 볼지 모르겠지만, 이런 이야기의 이런 영화가 있었다는 사실만은 기억해야할 것 같다. 김동령과 박경태가 공동감독한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이다. 제목만 들으면 마치 ‘전래동화’려니 하겠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여성비극을 담은 대한민국 현대사 고발극이다. 영화는 경기도 의정부의 한 동네를 보여준다. 배나무가 많았다고 해서 배벌, 뱃벌, 뱃뻘로 불렀던 곳이다. 이곳에는 오랫동안 미군기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에는 주한미군을 상대로 ‘몸을 파는’ 여자들의 업소가 있다. ‘기지촌 양공주’라고 불리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불편하겠지만 평생 ‘그 일’을 해온 사람이 주인공이다. 이제부터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그 여성의 이름은 박인순이다. 영화는 한 시민단체가 이곳을 찾게 된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잠깐 망각한, 어쩌면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일제강점기 ‘위안부’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국가가 나서서 거든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한미군을 상대로 하는 ‘위안부’의 위생을 행정적으로 관리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미 많은 시사프로그램에서 다룬 ‘기지촌 미군 위안부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 인정 여부’ 사안이다. 그런데 박인순씨의 경우는 이 모든 공방에서 붕 떠있는 느낌이 든다.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서, 너무 상처받은 과거라서 이제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이제는 모든 것을 저주하는 듯하다.  박인순씨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순간은 이렇다. 아주 어릴 적, 아버지가 자신을 짊어지고 내다버렸다는 것이다. 서울역 앞이었단다. 두려움에, 배고픔에 울다 지친 소녀. 한 사람이 다가와 짜장면을 사준다. 세 그릇을 먹어도 배가 고팠다는 기억이 생생하다. 짜장면 값은 그의 생명 값이 된다. 그렇게 포주에게 팔려간다. 그리고, 그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최악의 그림들로 채워진다...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일본에서 분단국 민족으로 살아남기

  (2021.12월) 9일 극장에서 개봉되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크게 보아 일본 식민지배의 부산물이며, 좁혀보면 남북 분단의 비극이다. 해방이 된 후 일본에 체류하던 우리 민족은 수십만에 이른다. 그들은 고향을 찾아, 모국을 찾아 현해탄을 건넌다. 그런데 건너지 않은/못한 사람들이 더 많다. 그들이 나이 들고, 그들이 일본에서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이른바 재일동포 2세, 3세, 4세, 5세로 이어지며 그들의 정체성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들의 DNA와 그들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그 정서를 느낄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바로 김철민 감독의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이다. 이 작품은 일본의 조총련 사람들에게 카메라의 초점을 맞춘다.  사전적으로 말해 ‘재일조선인’은 일본 식민 지배의 결과로 일본에 거주하게 된 조선인과 그 후손들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의 식민 지배 35년간의 뼈아픈 역사를 지나자마자, 그들이 맞닥뜨린 비극은 남과 북의 분단과 계속되는 이념의 대립이었다. 조국의 상황에 따라 일본에 남은 재일조선인 사회는 양분된다. 남쪽을 지지하는 재일대한민국민단(‘민단’)과 북한을 지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이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기간에 이들을 대하는 시선을 분명했다. 북과 교류하는 ‘총련’계는 국가보안법을 내세워 철저히 외면한 것이다. 그리고 ‘민단’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박정희 독재정권은 국내에 유학 온 민단의 청년들을 체제 강화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이들을 북한의 지령을 받아 남한에 암약해 온 ‘유학생 간첩단’으로 조작한 것이다. 1975년의 간첩조작사건이 바로 그것. 이들 130여 명의 희생자 중 재일조선인 2세인 강종헌, 이동석, 이철 등이 영화에 등장해 당시를 증언한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일본의 조선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극심한 차별 속에서 자라왔다. 강해지거나 나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름을 남긴 인물을 숱하다. 최양일 감독의 작품들, 정의신 감독의 <용길이네 곱창집>, ...

[비 워터] 이소룡, 친구여 물이 되거라 (디즈니플러스) * Be Water *

  '비 워터' 트레일러 캡쳐 ⓒESPN 지난 주 한국에서도 디즈니플러스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디즈니, 픽사, 마블, 스타워즈, 스타 채널과 함께 ‘내셔널지오그래픽’이 한 챕터 자리를 잡고 있다. 다큐 매니아라면 이 채널을 절대 비켜가지 못할 것이다.디즈니플러스의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는 이런 작품도 있었다. “비 워터‘(Be Water) 불세출의 쿵후스타 이소룡(브루스 리)을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이소룡 다큐멘터리는 그의 사후 꽤 많이 나왔다. 반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각종 설이 나돌고 있으니 그야말로 전설임에 분명하다. 미국에서 만든,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볼 수 있는 브루스 리의 생애가 궁금하다. 흥미진진! ■ 이소룡 (1940년.11.27 캘리포니아 출생 ~ 1973.7.20. 홍콩 사망 향년 32세)  이소룡(李小龍, Bruce Lee)은 미국에서 태어났다. 경극배우였던 아버지 이해천(李海泉)이 미국 순회공연 중에 낳은 아이이다. 이름은 이진번(李振藩)이다. 그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홍콩으로 건너온다. ‘미국에서 태어난’ 이소룡은 홍콩에서 자라고, 홍콩에서 무술을 배우고, 홍콩에서 아역배우가 된다. 하지만 타고난 말썽장이, 불량학생이었던 그를 보다 못한 아버지는 100달러만 쥐어준 채 미국으로 보내버린다. 그렇게 해서 이소룡은 19살부터 다시 미국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워싱턴대학교에 진학한다. 그는 일찌감치 무술도장(Jun Fan GungFu 振藩功夫)을 열고 중국무술 알리기에 힘썼다. 그러다가 린다 C. 에머리(Linda C. Emery)를 만나 연애하고 결혼한다. 브랜드 리와 새넌 리가 이들의 자녀이다. 쿵푸를 알리던 중 어떤 계기로 영화판에 연결되어 TV시리즈 [그린 호넷]에 출연하게 된다. 밴 윌리엄스가 주연이었고 그는 주인공의 조수 ‘케이토’ 역이었다. 운전도 하고, 악당을 상대로 활극도 펼치는 역할이었다. 이 작품은 크게 성공을 거두진 못했고, 이후 다른 큰 역할도 맡지 못...

[DMZ Docs리뷰] 방탄학교 “미국은 안전하지 않다, 교실도!” * Bulletproof (2020)*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DMZ Docs)가 지난 9일 개막되었다. 경기도 고양과 파주 일대에서 열리는 ‘DMZ Docs’는 다큐멘터리만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대표적 장르영화제이다. 16일까지 열리는 이번 영화제에서는 39개국에서 출품된 120여 편의 최신 다큐멘터리가 소개된다. 비경쟁부문의 글로벌비전 섹션에서 소개되는 토드 챈들러 감독의 [방탄학교](원제:Bulletproof)는 ‘극도로 위험한 미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이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교내 총기사건의 규모는 마이클 무어 감독의 [볼링 포 콜럼바인](2002)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총기소지 규제가 ‘느슨한’ 미국에서는 어린 학생들도 너무나 쉽게 손에 총을 쥘 수 있다. 문제는 그들이 사회에, 체제에, 교우관계 등에 대해 제어할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되었을 경우 발생하는 끔찍한 비극이다. 미국에서는 심심찮게 총기 사고가 터진다. 토드 챈들러 감독은 그런 비극적 사고의 원인을 찾아보려고 한다. 우선, 미국의 학교사정을 알아보자. 챈들러 감독의 카메라는 텍사스, 라스베이거스, 뉴욕, 시카고, 캘리포니아, 미주리 등 미국 곳곳의 학교와 학생 등의 상황을 살펴본다. 미국의 초,중고등학교는 안전한가. 마치, 우리나라에서 소방훈련 하듯이, 일본에서 지진대피 훈련하듯이 미국에서는 ‘총기사고 발생’을 상정한 대피훈련을 불시에 갖는다. ‘총기사건’이란 이런 모습이다. 어제까지 학교 급우였던 학생 하나가 ,혹은 둘이 총기를 갑자기 꺼내들고 마구 쏘아대기 시작한다. 교내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리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우리라면 놀라서 우왕좌왕하겠지만 미국에서는 학습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선생님과 학생들은 신속하게 의자를 쌓아 교실 문을 막는다. 그리고 소등한다. 무엇보다 절대 침묵한다. 총을 든 학생은 교실을 돌아다니면 문이 열렸거나, 복도를 뛰어가는 사람을 발견하면 총격을 가한다. 잊을만하면 발생하는 미국 교내총격사건의 CCTV 화면은 끔찍하고 이에 대비한 피난 훈련은...

[그림자꽃] 나는 북조선의 공민이다 (이승준 감독,2021) * Shadow Flowers *

    1989년 당시, 한국의 대학생이었던 임수경이 방북하여 김일성 주석과 포옹하는 장면이 뉴스 화면을 장식하면서 한국 사회에 일대 핵폭탄급 혼란이 야기됐다. 이후 북한에 대한 우호적, 체제 옹호적 발언이 나오면 다른(!) 진영에서는 조건반사적으로 “그렇게 좋으면 북한으로 가라!”라는 말이 나온다. 남쪽의 자유민주주의를 만끽하며 북쪽의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사람을 ‘빨갱이’라 지칭하며 북송을 권하는 ‘분리의 레토릭’이다. 그런데, 이게 가능한 일일까? 가고 싶다고, 보내고 싶다고 갈수 있는 국가시스템일까? 오늘(27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그림자꽃>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특별한 경우를 다룬다.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탈북자’이야기이다.  <그림자꽃>은 한 ‘탈북’인사를 뒤쫓는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신이 ‘탈북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김련희라는 사람이다. 1969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련희는 1993년 결혼하여 남편과 딸 하나를 두고 평양에서 행복하게 살았단다. ‘북한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주부였던 그는 건강 문제로 고생한다. 다행히 중국에 친척이 있어 치료를 위해 중국으로 나올 수 있었단다. 하지만 엄청난 병원치료비에 절망한 김련희는 북으로 돌아갈 생각이었고, 북으로 가기 전 선양의 조선족 식당에서 잠깐 일을 한다. 여기서 한 달만 일해도 북한에서는 큰돈이라니. 그런데, 그곳에서 그만 운명이 달라진다. ‘브로커’가 등장한 것이다. “남한에 가서 몇 달만 일하면 더 큰 돈을 벌수 있다”는 말에 ‘속아’ 10여 명의 북한 동포들과 함께 ‘탈북자 그룹’이 된다. 중간에 마음이 바뀐 김련희는 한국에 못 가겠다고 했지만 이미 북한여권을 빼앗긴 상태이고, 순진하게도(!) 남한 사람에게 자신의 사정을 잘 설명하면 돌려보내줄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렇게 김련희는 2012년 9월 16일 한국으로 들어왔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탈북자’의 한국 사회 정착이 시작된다. 물론, 김련희는 자신은 여기 잘못 온 사람이며, 한...

[판문점] 뉴스타파, 미국 문서기록청, 그리고 한국전쟁 *Panmunjom *

  이달 초 열린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소개된 126편의 작품 중에 한국전쟁을 다룬 흥미로운 다큐 하나가 포함되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다 아는 ‘판문점’에 대한 역사를 다룬 [판문점](감독: 송원근 김용진)이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안고 사는 우리에겐 그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그런데, 이것 역시 시간이 흐르고, 세월의 풍파 의해 조금씩 망각되는 곳이다. 가끔 남과 북이 첨예하게 갈등하거나, 혹은 평화에 대한 작은 기대감이 넘쳐날 때 이곳이 뉴스에 등장한다. ‘판문점’은 우리나라에서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는 독립언론기관 ‘뉴스타파’의 취재진이 미국의 문서기록청(NARA)에 수집한 자료를 기반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뉴스타파’라! ‘판문점’은 남과 북, 양측에 모두 특이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한국 주소는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에 속하고 북한에선 황해북도 개성리 판문점리라는 행정적 주소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영토인 동시에 북한의 영토이다. 그 판문점을 어떻게 그 곳에 자리 잡게 되었을까. 뉴스타파의 ‘판문점’은 미국 문서기록청(NARA) 소장의 기록을 바탕으로 그 기원을 찾아간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소련군이 평양에 입성했고, 잇달아 9월 미군이 서울에 들어섰다. 그리고 5년간 한반도에서는 불안정한 정세가 이어지더니 결국, 기어이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전쟁의 양상은 널리 알려져 있다. 개전 초기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왔고,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반격에 성공한 연합군은 백두산 앞까지 진격한다. 하지만, 위기를 느낀 중공(중국)의 개입으로 후퇴한다. 그렇게 1951년 여름에 이르기까지 남과 북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거듭한다. 전쟁이 일어나고 1년이 지나자 휴전협상이 시작된다. 미국은 터너 조이 해군제독이, 북한은 남일 대장이 대표가 되어 개성의 고급식당(사진으로 봐서는 그냥 커다란 기와집) 내봉장에서 모여 휴전 협상안을 논의한다. 이때 다뤄진 내용은 ...

[JIFF리뷰] 코로네이션 “중국 반체제작가 아이웨이웨이가 찍은 우한일기” (Coronation, Ai Weiwei,2021)

  이번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코로나 시대에 맞춘 특별섹션으로 [스페셜 포커스: 코로나, 뉴노멀]이 편성되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전주영화제는 코로나 여파로 정상(?)적인 영화제운영이 힘들어졌다. 어쩌면 객석 띄어앉기, 온라인상영 병행진행, 화상인터뷰가 영화판에서는 ‘뉴노멀’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 JIFF를 통해 소개되는 ‘코로나 영화’에서 관심이 가는 작품은 단연 중국의 ‘코로네이션’(Coronation)이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었다는 글로벌 재앙 ‘코로나’를 중국에서는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사실 얼마 전 [최미역행]이라는 중국 프로파간다 스타일의 ‘우한 이야기’가 개봉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의 감독 아이웨이웨이(艾未未)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반체제작가이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설치예술도 하고, 다큐멘터리도 찍는 유명인사이다. 줄곧 중국입장에서는 불편한 소리와 작품만을 쏟아내는 그는 요주의인물이었고, ‘탈세혐의자’로 찍혔고, 감옥생활도 했고, 현재는 망명자 신분으로 유럽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몸은 해외에 있지만 중국내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우한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다큐로 만든다. 우한 현지 사람들이 어떻게든 찍은 영상을, 어떻게든 해외로 반출하였고, 아이웨이웨이는 500시간 분량의 영상을 모아 114분의 다큐로 완성했다. 바로 ‘코로네이션’이다. <코로네이션>은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더니 전격 봉쇄된 우한시의 내부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첫 장면은 외부에서 우한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담고 있다. 우한은 봉쇄된 상태이다. 고속도로에서 외부 번호판을 단 차량으로 어김없이 신고당하고, 공안의 단속을 받는다. 지금 우한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곧이어, 우한의 삶이 펼쳐진다. 76일간 봉쇄된 우한의 모습은 중국당국의 효율적 미디어관리에 의해 ‘ 대한 인민의 승리’만이 회자된다. 그런데 <코로네이션>에는 그 때 우한에서 실제 벌어지는 일들 - 병원에서...

[JIFF리뷰] 첫 54년 - 약식 군사 매뉴얼 “이스라엘은 어떻게 그 땅을 차지했나” * The First 54 Years: An Abbreviated Manual for Military Occupation *

혹자에게 영화감상은 우표수집과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특히 역사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볼 때는  말이다. 지난 주 막을 올린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마스터즈] 섹션에서 소개되는 이스라엘 아비 모그라비 감독의 다큐멘터리 <첫 54년 - 약식 군사 매뉴얼>(원제:The First 54 Years – An Abbreviated Manual for Military)을 보면 그러하다. 러닝타임 110분짜리 이 작품을 보면서 우리가 몰랐던 중동 그 지역의 감춰진 역사의 한 면을 보게 된다.   한국 사람이 갖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생각은 주로 웅장한 음악의 <영광의 탈출> OST와, [탈무드], 그리고 유대인의 우수한 DNA에 관한 전설 같은 이야기이리라. 아마도 21세기 이전, 영문 시사잡지를 보았던 세대라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펼쳐지던 폭동, 테러 등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아라파트와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라는 것도 들어보았을 것이다.   먼저, 그 시절을 약술하면 이렇다.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고 2,000년을 전 세계에 흩어져 살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의 신생국가로 독립한다. 그들은 제국주의 시절 영국령이었던 팔레스타인의 서부 방면, 가나안 지역을 무력으로 접수하여 ‘이스라엘’을 건국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인접한 요르단, 팔레스타인, 이집트, 레바논, 시리아와 싸우면서 성장해 왔다. 1967년, 이른바 6일전쟁의 결과로 요르단 서쪽지역인 ‘서안지구’(웨스트뱅크)와 이집트 북쪽의 가자지구(Gaza Strip)를 점령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곳을 점령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이스라엘 국민이라면 남녀가 모두 2~3년의 병역을 이행해야하고, 40살이 될 때까지 예비군으로서 틈틈이 나라를 지켜야한다. 이들은 점령지의 질서유지에 투입된다. ‘점령군’인 그들은 원래 그 곳에 살던 ‘원주민’ 팔레스타인들을 어떻게 관리했을까. 일제강점기처럼? 영국령 인도처럼? 수십 년 동안 점령지에 ...

[리마스터드: 사자의 몫] "The Lion Sleeps Tonight" * ReMastered:The Lion's Share *

  넷플릭스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신작들을 쏟아내고 있다. 너무 많은 작품들이 쏟아지기에 채 알려지기도 전에 리스트 뒤쪽으로 밀려날 지경이다. 작년 공개된 작품 중에 ‘리마스터드: 사자의 몫’(원제: ReMastered:The Lion's Share 감독: 샘 컬먼)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꼼꼼하게 보지 않으면 존재감 없이 밀려날 그런 수많은 작품 중의 하나이다. 다시 꺼내본다.        넷플릭스는 유명 아티스트의 궤적을 따라가는 8편의 [리마스터드] 시리즈를 내놓았다. 로버트 존슨, 빅토르 하라, 샘 쿡, 잼 마스터 제이, 밥 말리 등이 대상 아티스트이다. 아마 팝송에 관심이 있는 팬이라면 이 시리즈에 매료될 듯하다. ‘사자의 몫’은 어떤 작품일까. ‘The Lion Sleeps Tonight’이란 곡에 대한 추적극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에 나왔던 노래이다. 디즈니는 이 작품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도 만들었고 작년에는 실사판 리부팅도 내놓았다. 이 노래는 다 포함되었다. 아프리카 정글의 느낌이 물씬 풍겨오는 리듬과 멜로디! 누가 만든 곡일까.       이 곡의 기원을 찾아 나선 인물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작가 리안 말란(Rian Malan)이다. 남아공은 오랫동안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라고 철저한 흑백 인종분리정책을 실행한 나라이다. 그 정책을 입안한 사람(D.F. Malan)이 작가의 할아버지뻘이다. 말란은 그런 비인도적 정책에 대해 백인으로서의 죄책감을 느끼며 살았단다. 그가 미국에 거주할 때 이 노래를 듣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가 어릴 적 남아공에서 들었던 멜로디였기 때문이다. 궁금했다. 이 노래가 어떻게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히트칠 수 있었을까.  그 노래는 1939년 요하네스버그에서 녹음되었다. 부른 사람은 솔로몬 린다(Solomon Linda)라는 줄루족 출신의 흑인 노동자였다. 린다는 노동이 끝나면 노래 부르기 좋아...

[먼 바다까지 헤엄쳐 가기] 지아장커 다큐멘터리 Swimming Out Till the Sea Turns Blue *

  지난 주 막을 올린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는 68개 나라에서 출품된 192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코로나사태로 최소한의 범위에서 영화제가 운영된다고는 하지만 상영편수가 대폭 줄어든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영화가 딱 한 차례씩만 상영되는 까닭에 영화팬들의 접근이 쉽지만은 않다. 어렵게 소개되는 영화 중 중국 지아장커(賈樟柯) 감독의 다큐멘터리 <먼 바다까지 헤엄쳐 가기>(원제: 一直游到海水變藍/ Swimming Out Till the Sea Turns Blue)라는 작품이 있다.  중국 산시(山西)성 펀양(汾陽) 출신의 지아장커 감독은 1987년 <소무>로 충격적인 데뷔를 한 후 <플랫폼>, <임소요>, <세계>, <스틸라이프>, <천주정>, <산하고인> 등 내놓는 작품마다 명확히 중국 이전 세대의 영화감독과는 다른 자신만의 영상미학과 주제의식을 관철시키고 있다. <스틸라이프>는 베니스황금사자상을, <천주정>은 칸 각본상을 수상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그가 오랜만에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그는 곧잘 다큐를 만들었다. 화가의 회화세계를 담은 <동>, 중국패션산업을 다룬 <무용>, 그리고 도시이야기 <24시티>같은 작품이었다. 그가 중국현대사의 굽이굽이를 다큐로 담았다고 하니 흥미롭다.  지아장커가 만든 다큐멘터리 <먼바다까지 헤엄쳐가기>는 우리가 기대했던 웅장한 중국의 현대사나, 역사의 광기가 휩쓸고 간 들판에 엎어져 고통스러워하는 인민의 일그러진 얼굴을 담지는 않는다. 어쩌면 서구인의 시선에 익숙해진 우리의 중국바라보기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려고 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지아장커 감독은 오늘날의 중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를 통해 현대중국을 돌아본다. 감독은 2019년 5월, 자신의 고향에서 열린 문학축제에서 그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카메라...

[알피니스트-어느 카메라맨의 고백] 산사나이 산에 묻히다 * Alpinist *

  지난여름 중국영화 <에베레스트>가 잠깐 극장에 내걸렸었다. 1960년, ‘공산’ 중국이 건국하고 어수선하던 그 시기에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정복한 중국등반대의 기적 같은 이야기를 극화한 작품이다. 산은 그곳에 그대로 있는데 인간은 기를 쓰고 그곳을 정복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때로는 눈사태에, 때로는 추위에 목숨을 잃어가면서 말이다. 그곳에 왜 오르려할까. 오래전 영국 산악인은 “산이 있으니까”라는 선문답으로 산악인의 도전을 규정지었다. 15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알피니스트–어느 카메라맨의 고백>은 그렇게 산을 오르는 산악인의 마음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게 한다 .  <알피니스트>는 대한민국 산악영화의 대표적인 촬영감독으로 알려진 고(故) 임일진 감독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4차례의 히말라야 원정에 함께 했던 사람들의 도전과 그 이면의 이야기를 담아낸 다큐멘터리이다.   임일진은 한국 원정등반대의 촬영감독으로 18년간 활동하며 지구상에서 가장 오르기 힘든 산인 히말라야를 여러 차례 오른 경험을 생생한 영상으로 남겼다. 정통산악인 임일진 감독은 2015년 <히말라야>의 특수촬영(VFX) 원정대장으로 참여해 에베레스트의 다양한 모습을 리얼하게 담아내기도 했었다.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은 2016년 제2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알피니스트>라는 제목으로 처음 공개되었다. 그는 2018년 네팔 중부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구르자히말 원정 도중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김민철 감독은 <알피니스트>에 고 임일진 감독의 인터뷰를 추가하고, 편집도 다시 하며 <알피니스트 - 어느 카메라맨의 고백>을 완성시킨다. 김철민 감독은 산악인들의 성공과 실패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관찰하며 그들의 죽음마저 지켜봐야 했던 카메라맨의 시선에 주목했다. 산을 너무나도 사랑했지만, 결국 히말라야에 영면하게 된 어느 카메라맨, 고 임일진의 이야...

[밥정] 님아, 이 상을 받으소서! (박혜령 감독) * Wandering Chef *

  요즘은 TV예능프로그램에서 셰프, 요리사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이전에는 ‘한국의 맛’을 소개하는 다큐 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말이다. 바로 그런 한국의 정통 맛을 소개하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TV 교양프로그램을 만들던 박혜령 감독의 역작 <밥정>이다. 전국을 떠돌며 식재료를 찾아, 독특한 삶의 철학을 담은 음식을 만든다는 방랑의 세프 임지호가 주인공이다. “자연에서 나는 것은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다”라는 음식철학을 가진 그는 잔디, 잡초, 이끼, 나뭇가지 등을 재료로 한 요리들을 선보였다. 이 영화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미슐랑 별을 노리고 만드는 미각의 절정도, 바글바글 손님을 불러 모으는 삼대 맛집의 숨겨진 손맛도 아니다. 혀 끝이 아니라 심장과 영혼을 완전히 잠식하는 소울푸드를 내놓는다. 영화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어는 겨울 산을 걸어가는 임지호 셰프의 발길을 따라가면서 시작된다. 셰프는 추운 눈보라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들풀, 들꽃, 야생의 나물을 채취한다. 이것이 요리의 재료가 될 것이란다. 정말 그는 대한민국 자연산천 곳곳에 난 흔한 꽃, 이름 없는 식물, 생소한 자연의 산물로 요리를 한다. “쓱쓱, 싹싹, 댕강댕강, 탁탁~” 놀라운 것은 그가 호텔 주방이나, 식당 조리실에서 요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산으로 들로 바닷가로 가면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초라한 부엌으로 들어가서 부뚜막에서 보글보글 자글자글 그들의 삶의 공간에서 먹을거리를 뚝딱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유는 모른다. 그러나 차츰 임지호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그렇게 산천을 돌며, 자연의 식재료로, 이 땅의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영혼의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 이유를 짐작하게 된다. 임지호 셰프의 요리 방식은 현장주의이다. 산골에 사는 사람들도 몰랐던 돌담에 핀 야생의 나물로 전채요리를 만들고, 갯벌 소스를 곁들인 백년초 무침을 만들고, 뒷산에서 주운 솔방울로 국수 다시를 낸다. 그렇게 뚝딱 냉이국도, 토란국도 산의 향기와 땅의...

[보테로] 내 그림은 뚱뚱해 (돈 밀라 감독,2020) * Botero *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자신의 심장이 부풀어 오르는 듯한 느낌과 함께 푸근함을 온몸으로 느낄 것이다. 그가 그린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뚱뚱하고, 비만형이고, 모든 것이 풍성하다. 그게 그의 예술혼이고, 창작의 기본 콘셉트다. 보테로 전시회는 우리나라에서도 몇 차례 열렸다. 그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개봉된다. 캐나다 돈 밀라 감독의 <보테로>이다. 보테로와 그의 가족들이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예술가 보테로의 삶과 작품세계를 되돌아보는 형식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박 사장(이선균)네 유치원생 아들(정현준)이 그린 낙서 같은 자화상(실제로는 아티스트가 그린 그림임!)을 보고 박소담이 굉장한 의미를 두며 아동심리학적 평가를 내리는 장면이 있다. 예술세계에서는 흔한 일이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기반으로 자신의 시선으로 자신만의 심미안을 펼치는 것이니 말이다. 보테로의 미술세계도 그러하다. 그의 그림을 두고 다양한 감상평을 내릴 수 있다. 독특하거나, 환상적이거나, 유치하거나, 이상하다고 말이다. 실제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은 데이비드 호크니 만큼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그만의 풍성한 브랜드는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다큐멘터리 <보테로>를 통해, 보테로의 작가로서의 삶의 궤적, 연대기적 작품세계를 쫓아가다보면 간과하기 쉬운 작가의 창작 고뇌를 느끼게 되고, 작품 세계의 변환점을 만나볼 수 있다.  보테로는 1932년 콜롬비아의 메데인(메데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우리나라에 한 때 존재했던 방물장수처럼 나귀에 물건을 싣고 행상을 다니던 장사꾼이었다. 4살에 아버지를 여읜 그는 삼촌에 의해 투우사 훈련학교에 등록했지만 보테로의 관심사는 황소를 그리는 것이었다. 재능을 살려 16살에 신문사 삽화가가 되었고, 유럽으로 건너가서 옛 유명화가들의 작품들을 보며 그림 그리는 방법을 익혀나간다. 그리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