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대 당시 영국 땅을 다스리던 헨리 8세는 앤 볼린이라는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진작부터 마음에도 없는 아내와 이혼을 강행한다. 그 과정에서 로마 카톨릭과의 관계를 끊고, 이에 반대하는 수많은 신하들의 목을 쳐버린다. 이때의 이야기는 <천일의 앤>에서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당시 목이 날아간 신하 중에 토마스 모어라는 정치가=법률가가 있었다. 그 사람을 중심인물로 다룬 영화가 바로 <사계절의 사나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67년에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6개 부문을 휩쓸었다. 그럼, 영화의 이해나 박재환 리뷰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토마스 무어에 대한 ‘백과사전’식 설명부터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런던의 법률가 존 모어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 캔터베리 대주교(大主敎) 존 모턴을 섬기고, 나중에 옥스퍼드대학에 입학 했으나, 아버지의 요구로 중퇴하여 법률가가 되려고 링컨 법학원에 입학하였다. 대학 재학 중에 대륙의 르네상스 문화운동의 영향을 받아.. 1515년에는 통상(通商)문제로 네덜란드에 건너가, 외교교섭에 수완을 발휘하였다. 이상적 국가상(國家像)을 그린 명저 《유토피아》………..탁월한 수완과 식견으로 헨리 8세의 신임을 얻어 1529년에는 대법관(大法官)에 임명되었으나, 왕의 이혼에 끝내 동의하지 않고 1532년 관직에서 물러났다. 1534년 반역죄로 런던탑에 갇혔다가, 1535년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1935년, 로마 교황은 그에게 ‘성인(聖人)’의 칭호를 주었다. 헨리 8세는 ‘앤’을 차지하기 위해 이혼을 결심했고, 자신의 결혼문제, 나아가 정치적 견해, 종교적 신념에 맞서는 모든 반대파들을 숙청할 준비가 되어 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단 한사람, 토마스 모어 경에 대해서만은 만감이 교차한다. 토마스 모어가 자신의 뜻에 따라만 준다면 모든 영국이 자기를 따를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마스 모어는 원리원칙을 내세운다. 자신의 이혼을 위해 카톨...
극장에서 본 영화, TV/OTT/비디오/DVD 등등 모든 영화를 리뷰하는 박재환 영화리뷰 사이트. 북 리뷰와 공연전시 리뷰는 덤입니다. 박재환리뷰사이트의 오리지널 아지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