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윤재호 감독의 <뷰티풀 데이즈>는 한국으로 훌쩍 떠나간 어머니를 찾아 한국에 온 조선족 청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탈북자였던 엄마는 중국을 거쳐 한국에 와서 한국 남자와 결혼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아들은 남북문제를 떠나 또 다른 혼란을 겪는다. 윤재호 감독의 ‘북한 사람 남한 오기’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번에는 권투를 하는 여자 탈북민 이야기이다.
지나(임성미)는 다른 탈북민처럼 중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 5개월간 하나원에서 '남한'사회 적응교육을 받았고, 정부의 지원으로 작은 원룸을 얻어 홀로서기에 나선다. 지나는 식당 일을 한다. 다른 탈북민처럼 지나에게도 큰 짐이 있다. 북에 남은 아버지를 데려오는 문제. 돈을 더 벌기 위해 권투체육관에서 청소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지나는 자연스레 글로브를 끼고 복싱을 배우기 시작한다. 링 위에서 이기든 지든 문제가 아니다. 살아있다는 것을,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온통 주먹에 싣는다.
탈북한 사람이, 여자가, 남에서 그럴듯하게, 즉 인간답게 살기는 힘든 모양이다. 집 앞에서 치근대는 남자는 집을 구해주는 데 도움을 주던 그 사람이었고, 체육관에서 매몰차게 대하는 사람은 같이 권투를 배우는 사람(김윤서)이다. 지나는 한국에서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아버지를 데려올 수 있을까. 권투로 영광을 누릴 수 있을까. 볼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부산 출신의 윤재호 감독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두 편의 신작을 소개했다. 극영화 <파이터>와 다큐멘터리 <송해 1927>이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가족 찾기가 중심이다. <송해 1927>에서도 '전국노래자랑'의 송해 선생님의 가족사가 나온다. <파이터>는 이제 우리 주변에서 분명하게 존재하는 탈북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이 어떤 고난을 겪고 국경을 넘어 중국에서 떠돌다가 이렇게 한국 땅에 정착하게 되었는지 안다. 구구절절한 생존의 아픔과 가족 해체의 비극이 숨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그들이 자본주의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탈하는 사례가 늘수록 그들의 출발부터 부인 당하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지나는 아마도 '하나원'에서 그리고 같은 탈북자 사회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분명 북과 다른 남에서 살아남는 방식을 터득해야 하고, 북에 남은 가족을 데려오는 길을 찾을 것이다.
꾸준히 북한 사람의 남한 정착기, 그 과정을 작품에 담고 있는 윤재호 감독은 이번에는 여자 탈북자에게 복싱을 도전장으로 던진다. 지나는 "왜 남한 사람들은 다들 우리를 특전사 나온 사람으로 봅니까. 왜 하나같이 우리가 싸움을 잘할 것이라 이야기합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무리 그들의 분노가 높더라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 것이리라. 지나는 권투를 시작하는 것은 단지 돈을 더 벌기 위해서이지, 챔피언벨트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제 관객에게 남은 것은 차별 없는 시선과 따뜻한 마음일 것이다.
윤재호 감독은 <뷰티풀 데이즈>와 <파이터>에 이어 또 한편의 '가족'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단다. 가제는 <아버지의 비밀>이란다. 그리고 북한사람 이야기가 아닌 또 다른 작품 <바닷사람>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정말 열심히, 부지런히 이야기를 쓰고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할 날을 기대한다. (박재환.2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