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작가 에밀리 브론테가 쓴 단 한 편의 소설 <폭풍의 언덕>(1847)이 다시 영화로 만들어졌다. 아마 어려서 [세계명작동화]판 소설을 읽었거나 로렌스 올리비에 주연의 흑백영화를 TV를 통해 본 사람이라면 이번 작품을 아주 기대했을 것이다. 독자와 시청자는 세월이 지나며 찬바람 휘몰아치는 그 황량한 언덕과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집착, 죽어서도 잊지 못하는 옛사랑이 사무치게 그리울 것이다. 하지만 성폭행당하고 자살한 절친의 복수를 위해 7년의 세월을 담금질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프라미싱 영 우먼]의 에메랄드 페넬 감독의 <폭풍의 언덕>은 적어도 [세계명작동화]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영화는 18세기 영국의 읍내에서 행해지는 공개 교수형 장면을 보여준다. 황량하고, 거칠고, 무례하고, 건조하고, 으스스한 마을에서는 그나마 사람들에게 즐거운 볼거리이다. 사형수의 목이 걸리는 순간 구경꾼들은 기이한 모습에 열광한다. 캐서린은 그런 요크셔의 바람 부는 황무지 ‘폭풍의 언덕’에 위치한 언쇼 집안의 딸이다. 술주정꾼 아버지가 어느 날 거리에서 꼬질꼬질한 아이를 하나 구해 집으로 데려온다. ‘히스클리프’는 그렇게 캐서린의 애완동물이자, 술주정꾼의 학대의 대상이 되어 자란다. 하지만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어느새 친구가 되어 차가운 워더링 하이츠의 소울메이트가 된다. 하지만, 캐서린이 에드거와 결혼하면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끔찍한 호러 드라마로 변한다.
● 폭풍의 언덕에는 지금도 차가운 바람이 분다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은 ‘두’ 집안이 ‘세’ 세대에 걸쳐 펼치는 ‘한’ 커플의 이뤄지지 않은 격렬한 사랑과 집요한 복수, 그리고 문학적 화해를 담고 있다. 136분의 영화는 원작의 등장인물과 사건을 대폭 압축한다. 폭풍의 언덕에 위치한 언쇼 집안과 ‘티티새 지나가는 저택’의 린턴 집안의 이야기이다. 소설은 린턴 집의 세입자가 하녀 넬리에게서 듣게 되는 두 집안의 오래된 이야기이다. 길에서 데려온 아이는 ‘어두운 피부’를 가졌다지만 영화는 그 설정부터 바꾸면서 힌들리와 리틀 캐서린 등 주요 인물을 빼버리고, 캐서린–히스클리프의 자녀세대로 이어지는 이야기까지 뭉뚱그려 마고 로비와 제이콥 엘로디의 폭풍전개로 압축한다. 에메랄드 페넬 감독은 언쇼와 린턴 가문의 슬픈 연애사를 두 사람의 어깨에 올려 로맨스의 감정을 집중시키는 선택을 한 것이다.
어린 시절의 캐시(샬롯 멜링턴)와 히스클리프(오웬 쿠퍼)의 정서적 교감은 충분히 성인의 로맨스를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술주정꾼 아버지의 행동이 보여주듯 허울뿐인 귀족과 별 수 없는 하인의 급진적 결합의 희망은 사라진다. 어른이 된 두 사람은 가슴 속 열망을 표출할 수가 없다. 그 와중에 린튼 가의 에드거와 이사벨라가 그들 사이에 끼어든 것이다. 소설에서는 단지 이야기를 전달자인 하녀 넬리가 중요한 관찰자가 된다. 물론 넬리에게는 위대한 연애를 성사시킬 명분과 힘은 없다.
에메랄드 페넬 감독은 아름다운 동화를 완숙한 러브스토리로 옮기는 것을 뛰어넘어 파멸적 에로물로 바꿔버린다. 소설에서는 그저 하인이었던 조셉이 헛간에서 ‘캐서린의 야성’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고, 히스클리프의 분노를 한 몸에 받는 이사벨라는 기꺼이 히스클리프의 ‘개’가 되는 것이다. 이 지점까지 오면 에밀리 브론테의 불멸의 로맨스는 현대적 집착과 광기의 드라마로 장르가 바뀐다.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은 곧잘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과 함께 언급된다. 아쉽게도 펜넬 감독은 그 공통점의 가장 저급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면서 사랑의 감정과 문학의 무게를 요크셔의 안개와 할리우드적 비주얼에 빠뜨려버렸다.
로렌스 올리비에의 <폭풍의 언덕>을 다시 볼 수 없다면 차라리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을 꼼꼼히 읽기를. (박재환.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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