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장사-여섯 명의 대장부] 홍콩 여감독이 그린 남자의 눈물

2008. 4. 17. 21:14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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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d by 박재환 2004-9-10]   [육장사](六壯士 )는 지난 주 홍콩에서 개봉되어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한 홍콩영화이다. 어떤 영화일까? 영화 첫 장면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홍콩 마천루의 한 초고층 빌딩 옥상을 보여준다. 지금 네 남자가 함께 세상을 원망하며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이른바 세상이 싫어 투신자살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육장사]의 감독 황진진(黃眞眞)은 여성이다. [육루후좌]에서 여섯 젊은이의 이야기를 유려하게 펼쳤다는 평가를 받은 황진진은 이번에는 갑갑한 홍콩의 삶에 찌든 남자들의 마지막 탈출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펼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섯 남자는 각기 그렇고 그런 '패배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정이건은 아침부터 밤까지 회사에 충성한다. 죽어라 출근시간에 맞춰 가까스로 사무실에 도착하고 끊임없이 기획서를 올리지만 직장상사의 압력에 숨이 다 막힌다. 이극근은 일급 헤어디자이너-미용사이다. 수많은 모델 애인이 있지만 8년 동안 사귀어온 여자친구(노교음)가 결혼하자고 하니 세상이 막막하다. 천하의 바람둥이 허지안에게는 말도 안 되는 운명에 놓인다. 어느 날 언제 사귀었는지 모르는 여자친구의 전화를 받고 나갔다가 갓난 아이 하나를 덜컥 넘겨받는다. 두문택은? 아내(황혁)는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는 캐리어우먼, 자신은 어느 날 회사에서 밀려나서 집에서 집안일 하는 남편이 되어 있다. 실업자라는 절망감보다는 아무도 자기와 상대해주지 않는다는 절망감이 더욱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어느 날 빵가게를 하는 옛 여자친구(임가흔)를 만난다. 두문택은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새로운 삶의 활력소를 찾는 듯하다. 기본적으로 이들 네 남자에 또 다른 사연을 가진 남자 둘이 있다. 인터넷 온라인게임에서 가진 보물을 다 잃은 젊은이(담준언)는 절망감에 옥상에 올라갔고, 엄청난 부자 장인 때문에 기를 못 펴는 임자상은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 자살을 꿈꾼다.

  이 영화에는 당연히 '육장사'를 연기한 여섯 명의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다. 특히 [무간도] 이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두문택의 연기는 그동안 그를 코믹 배우 정도로만 인식하던 영화팬에게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를 둘러싼 두 여인, 임가흔과 황혁의 연기도 결혼한 남자의 가정적 비애를 공감할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펼쳤다.

  영화는 단순히 코미디 같지만 그 내용은 결코 웃을 수 없는 비극적 삶을 담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두 주먹 불끈 쥐고 새 출발한다."라는 희망적 메시지를 안겨주는 것 같으면서도 의외의 돌발적 비극으로 영화의 무게를 더해준다. 아마도 이런 영화가 홍콩에서 평가받는 이유는 그만큼 삶이 어려워졌고 그만큼 개개인의 삶의 중요도가 높아졌다는 반증일 것이다. 출세와 부, 아니면 최소한의 삶의 권위만을 지키러 발버둥치는 홍콩 소시민들에게는 '자살충동'이 남의 일만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황진진 감독은 미국에서 영화공부를 한 후 미국 TV방송사에서 [60분]같은 유명 시사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참여하기도 했다. [육루후좌]에 이어 발표한 [여자들의 이야기](女人那話兒)는 '홍콩영화사상 최초의 여성 에로물'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선정적인 평가가 아니라 선구자적인 창작의욕을 가진 감독에의 상찬이다.

  이 영화는 홍콩에서는 악비의 시가인 [만강호]와 연결시킨다. 남송시절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에 분연히 대항한 민족영웅 악비(岳飛)의 만강홍(滿江紅)은 구구절절 애국심에 넘쳐난다. 비장감 넘치는 이 노랫말은 TV드라마 [사조영웅전] 삽입곡으로도 쓰였다. 오랑캐라 비하하는 이민족에게 나라를 빼앗긴 비분강개의 한족 영웅 악비와 홍콩의 소심한 현대인의 자살의지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굳세게 살아남자는 공통의지는 물론 아니리다.

怒髮沖冠,憑闌處,瀟瀟雨歇
抬望眼,仰天長嘯,壯懷激烈
三十功名塵與土 八千里路云和月
莫等閑,白了少年頭,空悲切
靖康恥,猶未雪;臣子恨
何時滅.駕長車踏破
賀蘭山缺.壯志飢餐胡虜肉
笑談渴飲匈奴血
待從頭,收拾舊山河,朝天闕

관을 찌르는 성난 머리칼로
난간에 기대서니 오던 비도 그친다.
치켜뜬 찢어진 눈빛
하늘을 우러러 길게 포효하노니
장사의 가슴에 피가 끓는다
삼십년 공명은 티끌 같고
전선을 달려온 팔천리
공허한 구름과 달빛뿐
한시인들 한가했던가
소년의 머리가 이제 희어졌으니
공허하고 슬픈 마음뿐
그러나 나라가 망한 치욕을
아직 설욕하지 못했으니
신하된 자의 한을 한순간인들 잊으랴
가란산의 허점을 뚫고 전차를 몰아 돌파하리니
이 병사의 굳은 마음
배가 고프면 오랭캐의 살을 씹고
목이 마르면 오랭캐의 피를 마시며
맨 선두에 서서 빼앗긴 산하를 수복한 후
천자의 궁궐에 조회하리라

  그런데 제목 [육장사]를 처음 들었을 때는 중국민항을 납치하여 한국에 불시착했던 탁장인 일행을 말하는 줄 알았다. 그들은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기 전인 (그러니깐 중국을 중공이라 부를 때) 1983년 5월 5일 중국민항기를 납치하여 한국(춘천)에 불시착했다. 그 후 이들은 한국에서 재판을 받고 추방형태로 대만으로 보내졌다. 이들은 대만에서 '공산주의의 압박을 피해' 자유를 찾아 넘어온 '육의사'라는 칭호를 붙였다. 그 뒷이야기? 탁장인과 몇몇은 대만 정부 보조금으로 이런저런 사업을 하다 망한 후 결국 살인사건을 저지르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데올로기와 정치선동에 이용된 이들의 애달픈 이야기도 충분히 영화거리가 될 것 같다. 탈북자(북한지역이탈 주민)의 암울한 뒷이야기도 어찌 보면 단순하게 드라마틱이라는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박재환 200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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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壯士 (2004) Six Strong Guys
감독: 황진진
출연: 임자상, 정이건, 두문택, 이극근, 허지안, 담준언, 황혁, 노교음, 임가흔
홍콩개봉: 200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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