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연극 맨 프럼 어스] 지루한 삶, 반복되는 삶, 영원한 삶 (The Man From Earth_Play, 유니플렉스 2014)

휴전선 넘어 북한군이 귀순해 왔다면, 임진강 하류에서 표류하던 북한 주민이 구조된다면, 해외공관에 북한 고위직 인사가 망명신청이라도 한다면? 합동신문(訊問)조라는 것이 꾸려지는 모양이다. 각계 전문가가 모여 그 사람의 말과 행동거지 등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발언의 신빙성을 찾고 진실성을 검토하는 것이다. 위장귀순자, 혹은 가짜 허풍쟁이일수도 있으니. ‘고문‘으로 못 풀어내는 해답까지 찾아내는 것이 이들 합동심문조의 역할이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존 올드맨이라는 이름의 대학 역사학과 교수이다. 그냥 10년 동안 열심히 봉직한 교수 정도으로 알았는데. 어느 날 짐을 싸더니 이곳을  떠날 것이란다. 동료 교수들이 환송연을 열어준다. 그런데 이 남자가 갑자기 “사실, 나는 지난 1만 4천 년 동안 (한 번도 죽지 않고) 지구에서 계속 살아온 사람이다. 나랑 함께 지내던 사람들이 한 10년 쯤 되면 나의 얼굴이 전혀 늙지 않는다는 것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그러면 짐 꾸려서 또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게 나의 반복된 삶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는 옛날에 동굴 인간에서부터 진화를 거듭하는 인류와 함께 지구 이 곳 저 곳에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만났다며 ‘썰’을 푸는 것이다.

  동굴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이야기도, 한때는 인도에서 부처의 제자였다는 사실도, 유럽의 어느 산에선 화가 고흐의 친구로 지냈다는 경력도 밝힌다. 콜롬부스와 항해를 했다는 경험도 있다. 동료 교수들은 자신들의 전공에 맞게 질문을 던지면서 맹점을 찾아보지만 이 남자는 빈틈없이 대답하고, 확실하게 그 시대를 마치 살았던 것처럼 이야기한다. ‘합동신문조’라도 믿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진지하게.

‘맨 프럼 어스’는 옛날 TV외화시리즈였던 ‘트왈라이트존’의 각본을 썼던 작가 제롬 빅스비의 대표작이다. 1만 4천 년이라는 그야말로 영생의 삶을 산 한 남자, 그리고 무엇보다 10년마다 정체를 숨기고 직업을 바꿔야 했던, 엄청나게 지루한, 혹은 다이내믹한 삶을 살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는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마저도 매혹시켰다. 이후 다른 감독이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바로 그 작품이 지난 11월부터 대학로에선 연극으로 상연되고 있다.

다양한 직업을 전전해서 모든 것에 만물박사였다는 설정은 흥미롭다. 그런데 이 연극은 그런 ‘모든 것을 경험한 천재 인류’의 활동담보다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와 충격적인 과거를 이야기한다. 사실 10년의 한정된 삶에서 행복과 사랑을 얻을 수 있었을까. 아니, 10년이면 떠나가야 하는 입장에서 그는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 그는 1만 4천년동안 너무나 많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봤기에 사랑을 믿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도에서 부처의 가르침에 동화된 이 남자는 또 다른 10년의 삶을 전전하다 이번엔 게세마네 동산에 도달했단다. 그곳에선 또 누구로 지냈을까.

불멸의 삶이 과연 축복인가를 묻는 작품은 아니다. 수많은 기회와 경험이 주어진 ‘반복 인간’의 눈에는 인간이 얼마나 영물로, 혹은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보일지는 자명한 일일 것이다. 작품에서 존 올드맨은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거의 영겁의 삶에서 그는 얼마나 ‘아는 사람’의 죽음에 고통스러웠을까. 연극 ‘맨 프럼 어스’는 자기성찰적인 삶을 이야기한다. 특히 해가 바뀌는 이 시점에서 ‘시간의 소중함’과 ‘아는 사람의 따뜻함’을 생각하게 한다. 문종원, 박해수, 여현수, 김재건, 최용민, 이대연, 이원종, 손종학, 서이숙,김효숙, 이주화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한다. 대학로 유니플렉스2관에서 2월 22일까지 공연이 이어진다. (박재환 2015-01-02) 

▶대본:배삼식 ▶연출:최용훈 ▶프로듀서:이원종  ▶공연:2014/11/07 ~ 2015/02/22 유니플렉스 2관
박재환
박재환 영화리뷰
“영화가 끝났습니다. 박재환의 리뷰가 시작됩니다.”
🌐전체
OTT
한국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리뷰 보관함을 열고 있습니다...
의견 남기기 영화에 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공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