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뢰한 리뷰] 못난 사랑 '무뢰한'
‘무뢰한’을 감독한 오승욱 감독은 서울대 미대(조소과) 출신이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에서 유려한 미장센을 먼저 논할 필요는 없다. 미술 대신 영화가 좋아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살고 싶다’(93) 연출부를 거쳐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97) 조감독을 했다. 심은하가 출연한 멜로 ‘8월의 크리스마스’(98)의 각본도 썼고, 마침내 지난 2000년에 하드보일드 액션 ‘킬리만자로’로 영화감독 데뷔전을 치른다. (전국 관객은 겨우 9만 5천 명!) 그리고 15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감독작품이 바로 이 ‘무뢰한’이다. 15년의 세월이 걸린 것은 그만큼 충무로에서 작가주의 영화, 혹은 장르영화를 제대로 만든다는 것이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몇 번의 좌절 끝에 전도연과 김남길이 주연으로 나섰다.
전도연은 한 때는 잘 나가던 ‘텐프로’ 출신의, 이제는 퇴물이 된 클럽 술집여자이고, 김남길은 형사이다. 두 사람이 엮이는 것은 박성웅 때문이다. 박성웅이 살인을 저지르고 사라지자 경찰은 박성웅의 애인 전도연의 집 앞에 진을 치고 지루한 잠복근무에 들어간다. 김남길은 박성웅을 붙잡기 위해 전도연이 다니는 클럽의 영업부장으로 잠입한다. 그러다가 형사 김남길은 범죄인의 애인 전도연에게 마음이 조금씩 기운다. 전도연은 오로지 도망 다니는 박성웅만을 생각할 뿐인데 말이다. 전도연의 마음을 얻기 위해, 박성웅을 잡기 위해 형사 김남길의 갈등은 이어진다.
영화에서 ‘무례한’은 전적으로 김남길이 연기하는 정재곤 형사일 것이다. 이 사람은 불 꺼진 창을 확인하고 도청장치를 통해 흘러나오는 신음소리를 들으며 늦은 저녁을 도시락으로 때운다. 그런 ‘독고다이’ 스타일로 수사를 이어가다 수사목적/대상의 미끼에 불과했던 한 여인에게 미묘하게 흔들리는 것이다. 감독은 두 남녀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최대한 줄인다. 과거가 무슨 필요가 있으리오. 그래서 관객들은 여자만큼 남자에 대해서도 제한된 ‘저간의 사정’을 짐작만 할 뿐이다. ‘이혼한 아내’ 이야기와 ‘중국으로의 도피’ 등의 에피소드는 두 사람이 이곳에서는 그다지 밝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음을 짐작케 한다.
오승욱 감독은 ‘킬리만자로’에서 박신양에게 두 사람의 역할을 시켰다. 해식과 해철이라는 쌍둥이. 한 사람은 형사이고 한 사람은 깡패이다. 형사는 죽은 깡패 동생의 궤적을 따라 사건에 휘말려든다. 사건이 깊어지고 인간관계가 끈끈해지면서 혼돈을 겪게 된다. ‘무뢰한’도 사건이 진전되면서 형사는 자아를 잃어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여자와 함께 딴 세상으로 도망갈 것 같지는 않다. 기타노 다케시 류의 흉악한 비리경찰이 될 수 없는 형사의 마음을 지녔음을 영화초반에 간파할 수 있다. 전도연, 그리고 박성웅에 비해, 김남길의 캐릭터는 한없이 가볍고 여리다. 베테랑의 중후함이 사라지고 인간관계의 처연함만이 얼굴에 남아있다.
박성웅은 이제 너무 악인의 이미지가 굳어버린 것 같다. 곽도원과 김민재의 사악한 연기도 이 영화의 어둡고 불안정한 남녀의 관계를 연소시키는 휘발유로 작용한다. (박재환 2015.6.3. +KBS TV특종 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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