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성왕](싱싱왕) 홍콩에서 만든 킹콩 영화. 그것도 1976년도에. (하몽화 감독 猩猩王, 1975)

2009. 11. 3. 11:56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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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콩’(King Kong)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1933년에 처음 영화로 만들어졌다. 물론 할리우드에서. 대박영화를 꿈꾸는 영화감독이 풋내기 여배우를 데리고 인도네시아 근처 섬까지 가서는 그곳에서 야생 거대 고릴라를 발견하여 뉴욕에 데려와서 흥행을 펼친다는 내용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올라가다 전투기의 공격을 받고 죽는다는 슬픈 내용이다. 이 영화는 그해 곧 바로 속편이 만들어졌다. 제목은 <콩의 아들>(Son of Kong)이었다. <킹콩>은 괴수영화, 거대동물영화의 컬트로 대접받는다.

  1976년에는 디노 레 라우렌티스라는 걸출한 제작자에 의해 리메이크되었다. 이 영화에서 킹콩은 이제는 사라진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기어 올라간다. 1976년도 작품의 특징은 여배우 제시카 랭이 너무나도 연기를 못한다는 것. 두고두고 화제가 될 정도였다. (제시카 랭은 이후 아카데미 조연상 한번, 주연상 한번을 수상한다!) 라우렌티스는 86년에 속편<King Kong Lives>를 만들어졌다. 린다 해밀턴이 여자 주인공이었다. 76년 판에서 죽은 줄 알았던 킹콩이 코마상태에서 보존되고 있다는 등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동안 가장 못 만든 영화 100편’에 꼭 끼는 ‘걸작’이다. 물론 요즘 세대에 가장 유명한 킹콩 영화는 <반지의 제왕>의 피터 잭슨 감독이 만든 2005년판 <킹콩>일 것이다. 제작비만 무려 2억 달러를 쏟아 부은 이 괴수영화에는 나오미 와츠가 ‘어설픈 여배우’ 역으로 나온다.

  킹콩 영화라면 할리우드 말고 그 외의 나라에서 만든 영화도 관심을 끈다. 일본에서는 도호(東寶)필름에서 <<고질라>> 시리즈를 꾸준히 내놓아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여전히 마니아를 갖고 있는 컬트영화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좀 다르지만 심형래가 <공룡쭈쭈>를 만들면서 ‘킹콩의 현지화’에 노력했다. 여기까지~

  그럼, 홍콩에서는? 1976년 할리우드에서 <킹콩>이 화제를 모으자 홍콩 제일의 영화스튜디오인 쇼 브러더스는 서둘러, 황급히, 후다닥 홍콩버전을 만들었다. 제목은 <성성왕>(猩猩王,싱싱왕)이다. ‘성성’(猩猩)은 오랑우탄을 이야기한다. (원숭이, 고릴라, 오랑우탄, 침팬지 등을 구분할 수 있나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동물원을 보여주세요! 여기 서울동물원)

  위키피디아의 생물분류(종속과목강문계)를 보니   오랑우탕은 동물계界-척삭동물문門-포유강綱-영장목目-직비원아목亞目-원숭이하목下目-사람상과小目-사람과科에 속한다. 뭔 말이냐고?  ▶위키 참조하시길  

우선 홍콩 싱싱왕 이야기

   영화가 시작되면 인도의 한 촌락에 거대한 동물이 나타나서 쑥대밭은 만드는 장면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달아나고 이놈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초가집을 밟아 부수고, 사람을 짓밟아 죽인다. “으악~”  그리곤 장면전환. 홍콩의 쇼 흥행업자 루톈(고봉)은 탐험대를 구성하여 전설 속 동물을 잡아오기로 한다. 도서관 자료에서 15년 전에 히말라야 부근 촌락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대한 발자국 사진을 본다. 그놈의 키는 50척(15미터)란다. 탐험대를 이끌 사람은 최근 실연에 빠진 진정풍(陳正風)이 선정된다. 바로 당시 쇼 브러더스의 스타 이수현(李修賢)이다. 그래서 탐험대를 꾸리고 인도로 출발~

 

  도착하자마자 코끼리 떼의 습격을 받는다. 코끼리는 이유도 없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대원들을 짓밟는다. 그 소동에 몇 명의 짐꾼이 죽는다. 갑자기 호랑이(치타인가?)이가 나타나고... 대원들은 슬슬 공포에 휩싸인다. 이렇게 죽을 필요가 있냐면서 밤새 도망가 버리고 이수현 혼자 탐사를 계속한다. 그런데 갑자기, 슬며시 나타난 ‘싱싱왕’의 거대한 손. 이수현을 잡아채어 한손에 으스러뜨릴 순간.어디선가 여자 하나가 나타나서 “아왕(阿王) 그를 다치게 하지 마”라고 소리친다. 이 여자는 비키니 복장의 야생의 처녀. 타잔女였다. 타잔녀는 이수현을 데리고 밀림에 추락하여 형체만 앙상하게 남은 비행기 잔해를 보여준다. 어릴 때 이걸 타고 오다가 추락하였고, 부모는 죽고, 혼자 살아남아 싱싱왕의 손에 자랐다는 것이다. 그리곤 화면은 영락없는 70년대 충무로 로맨스가 펼쳐진다. 이수현과 야성의 타잔女는 정말 ‘타잔과 제인’이 되어 밀림에서 “나 잡아봐라~“하며 뛰논다. 이때 뱀 한 마리가 갑자기 나타나서 여자를 문다. 하필이면 허벅지 안쪽 부위를. (앗! 이 여자를 살려야 된다!) 이수현은 여자의 허벅지 안쪽에 급히 입을 갖다 대고는 쪽쪽 빤다. 독을 빼내야한다.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세요. 당신을 살려야해요~ 동굴 속에서 두 남녀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밖에서 우두커니 속상한 듯이 쳐다보는 불쌍한 싱싱왕. 그는 나뭇잎을 따다주고 이수현은 그것을 짓이겨 상처부위에 붙여준다. 역시 즉효. 여자는 살아나고 두 남녀는.. 동굴 속에서........  그것을 속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스토커 싱싱왕. “뭐야~”

   결국 이수현은 타잔女와 싱싱왕을 데리고 화물선을 타고 홍콩에 온다. 화물선에서 에피소드가 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위 일엽편주 화물선에 거대한 싱싱왕이 쇠사슬에 묶여있고 타잔녀는 가슴이 아파 풀어달라고 애원하고.. 선원들은 어림도 없다고 비웃고, 이수현은 타잔녀에게 예쁜 옷을 주며 이걸로 갈아입으라한다. 하지만 한번 입어보더니 원래 옷(자연산 비키니)이 좋다며 새 옷을 밖으로 던져버린다. 물론 옷 갈아입을 때 눈요깃감도 보여주고...

   싱싱왕은 홍콩에서 구경거리로 전락한다. 관객들 앞에서 힘자랑도 하고... 타잔녀는 가슴이 아파 풀어달라고 하다가 나쁜 놈 루톈에게 겁탈 당할 위험에 놓인다. 쇠창살 우리에 갇힌 싱싱왕은 그 모습을 보고는 미쳐 날뛴다. 쇠창살 우리를 부수고 탈출한다.  루톈은 타잔녀를 인질삼아 달아나고 싱싱왕은 홍콩 시내를 쑥대밭으로 들쑤셔놓는다. 홍콩경찰(군대)은 싱싱왕을 잡기 위해 군대와 헬기와 탱크를 동원한다. 싱싱왕은 가장 높은 건물 위로 기어 올라가고... 이수현은 일단 타잔녀를 구해내고  대장에게 “우리가 저 놈을 진정시킬 테니 죽이지만 말아주시오”라며 약속을 받아낸다. 이수현과 타잔녀가 건물꼭대기에서 싱싱왕과 재회한다. 하지만 대장은 약속을 어긴다. 폭약을 터뜨려 싱싱왕을 죽이고 만다. 폐허가 된 건물 옥상에서 이수현은 쓰러진 타잔녀를 안고는 홍콩 야경을 본다.

   이수현의 또 다른 쇼브러더스 특촬물 <중국초인>이 일본의 <가면 라이데>를 표절(?), 베낀 것이라면 이 영화는 확실히 할리우드 <킹콩>에 일본 <고질라>류를 접합시킨 것이다. 쇼 브러더스는 이 영화를 찍을 때 일본의 특수촬영팀의 협조를 받았다. 일본 도호 출신의 유명 특수효과맨  아리카와 사다마사(有川貞昌)의 도움을 받아 <싱싱왕>을 완성시킨 것이다. 촬영 후일담으로 일본 특촬팀이 조기 귀국하는 바람에 쇼브라더스 사람들이 고생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싱싱왕이 쇠창살을 뚫고 나와 쑥대밭을 만드는 홍콩모습은 홍콩 관객에게 익숙한 자기 동네 모습이었으니 열광했으리라.

   <킹콩>은 물론 오락영화이다. 그런데 저 멀리 (수마트라 근처의) 자연에서 잘 먹고 잘 살던 놈을 억지로 데려다가 구경거리를 삼은 인간의 탐욕을 보여주는 드라마 구조는 생각할 구석이 있다. 아니면 연약한 여자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바치는 거대 파워의 야성적, 원시적 남성미를 그리워하는 남자들의 로망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잇고 말이다.

   타잔녀로 나오는 배우의 이름은 이블린 크래프트(Evelyn Kraft)이다. 홍콩 포스트에는 이부련가(伊芙蓮嘉,이푸렌쟈)로 나온다. 배우하겠다고 홍콩까지 와서는 화끈한 몸매를 내내 보여주는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솔직히 1976년 존 길라민 감독의 <킹콩>의 제시카 랭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고, 야성적이다. 만약 제작자가 이 배우에게서 원한 게 화끈한 눈요깃감이었다면 충분히 효율적이었고 말이다. 아쉽게도 이 영화 이 후 쇼브러더스의 <Deadly Angels>(俏探女嬌娃)에 한편 더 나오고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크래프트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갑자기 킹콩 보다 이 아가씨의 후일담이 더 궁금해진다..... 그런데 IMDB를 보니 이 배우 1951년 러시아 출생이란다. 이 영화 찍을 땐 26살 이었다. 그런데 이 여자 올 1월에 세상을 떠났단다. 오호.. 명복을 빈다.  (by 200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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