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가지 유혹] 뻔한 소원, 뻔한 결말 (해롤드 래미스 감독, Bedazzled, 2000)

2019. 8. 15. 21:41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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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01/2/23] 알라딘이 요술램프를 문지른 후 펼쳐지는 이야기보따리가 오늘날 미국 SF판타지의 원류가 되었을 것이다. 이번에 미국에서 건너온 <일곱 가지 유혹 (원제: Bedazzled)>도 그러한 판타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주인공은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는 요술쟁이를 만나 어떤 '특별한' 계약을 맺은 후 믿기 어려운 모험을 거친다. 그리고는 지금의 자신이 가장 행복하다는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내적으로 성숙하게 되고, 독자(혹은 영화관람객)는 즐거운 시간과 함께 진부한 교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자신과 똑같은 복제를 만들어 집안일과 직장 일을 동시에 해낸다는 클론시대 SF <멀티 플리시티>를 만들었던 해롤드 래미스 감독은 이번에는 아예,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일곱 가지를 다 들어주겠노라고 제의한다. 물론, 제의를 하는 사람은 몸에 딱 달라붙는 빨간 가죽옷의 악마 '엘리자베스 헐리'이고, 이런 황당한 제의를 받는 사람은 직장에서 왕따, 고문관 소리를 듣는 '브랜든 프레이저'이다.

 

당신이 회사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한 여자를 두고 가슴앓이를 하는 왕따라면, 악마에게 영혼을 저당 잡혀 일곱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데 뭘 망설일까? 게다가 누추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며 냉동식품이나 먹고, TV보다가 울다 잠이 드는 이 왕따에게는 이보다 더 귀가 솔깃할 제의는 없을 터이다.

 

물어볼 것도 없이 지구상의 30억 남자들의 첫 번째 소원은 똑같다.(정신병자가 아니라면) "돈 많고, 권력가이고, 그리고, 그리고... 4년 동안 바라보기만한 여자 프랜시스 오코너와 결혼하는 것!" 물론, 6천 년 동안 악마 일을 해온 '엘리자베스 헐리'에게는 그런 소원을 말할 것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뜬 프레이저 옆에는 프랜시스 오코너가 누워있다. 소원을 이룬 것이다! 그는 콜롬비아의 마약 왕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프랜시스 오코너가 바람을 피우다니. 게다가 아내와 정을 통한 놈이 반란을 일으키다니.. 첫 번째 소원은 완벽한 실패였다. 두 번째 소원은? 소원을 듣기 전에 투명인간이 되어 샤워하고 나온 프랜시스 오코너의 일기장을 보게 된다. "내 주위엔 남자가 많아. 하지만 난 섬세한 남자가 좋아..." 물론, 프레이저의 두 번째 소원은 "섬세한 남자"가 되는 것이다. 아이고, 지는 저녁놀에 그냥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감수성의 소년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이후 펼쳐지는 모든 소원은 완벽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악마에겐 허점투성이의 희망사항인 것이다.

브랜든 프레이저는 재작년 <미이라>라는 뜻밖의 흥행대작으로 폭발적인 인지도를 쌓은 배우이다. 짐 캐리나 로빈 윌리엄스랑은 비교가 되지 않는 캐리어지만 적당한 코미디물에서 적당한 연기로 적당한 인기를 쌓아온 배우이다. 그가 영화 전반부에서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왕재수'역할을 귀엽게 해내더니, 하나씩 무너져가는 자신의 헛된 꿈들을 통해 하나의 성숙된 인간으로 변해 가는 것이다.

 

물론, 영화에서 묘사되는 '소원'이란 것이 '남자의 허영'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프랜시스 오코너의 눈높이'에 기인한다는 것이 이 영화를 십대영화로 추락시키고 만다. 그러니, 남자의 거시기는 커야하고, 게이는 상종 못하고, 마마보이는 질색이고, 기타 등등. 까다로운 입맛의 여자를 사랑한 브랜든이 깨달은 마지막 교훈은 "내 소원은 그녀의 행복일 뿐이야"라는 것 아니겠는가?

 

요즘 시대의 '악마'는 섹시하고 고달프고 또한 유머감각이 넘쳐서 관객들은 브랜든 프레이저의 소망이 하나하나 무너져서 또다시 그 악마가 출연하기를 기다린다. <오스틴 파워>에서 마이크 마이어스의 수다에 가려 몸매 밖에 기억에 남아있질 않다면, 이 영화에서는 몸매에 덧붙여 허스키 보이스도 기억에 남을 듯하다. 파워풀한 악마와 기장 지구인적인 '브랜든 프레이저'의 정신없는 해몽놀이를 보다보면, 영화 보는 것이 결국 '관객의 소원'을 감독이 얼마나 잘 풀어주는가라는 게임 아니겠는가.

 

자신의 소원은 무엇인가? 평생 무료극장 입장권이라고? (박재환)

 

 

Bedazzled (2000 film) - Wikipedia

Bedazzled is a 2000 black comedy film directed by Harold Ramis and starring Brendan Fraser and Elizabeth Hurley. It is a remake of the 1967 film of the same name, written by Peter Cook and Dudley Moore, which was itself a comic retelling of the Faust legen

en.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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