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투기] 찌질이들의 파이트클럽

2013. 11. 22. 10:58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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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투기] 찌질이들의 파이트클럽

 

‘잉여’(剩餘)라는 단어는 사실 일상생활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단어이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배고픈’ 우리나라 사람에게 먹을거리로 (남은) 밀가루나 분유 등을 주었을 때 ‘잉여물자 공여’라는 말로 사용될 때가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된 예일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인터넷사회가 되면서 ‘잉여’라는 말이 ‘찌질이’,‘마이너’라는 개념으로 널리 사용된다. 경제적 의미에서 사회적의미로 확장/재발견된 사례일 것이다. 여하튼 최근 개봉된 영화 ‘잉투기’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감독은 “-ing’와 ‘투쟁기’를 합쳐서 ‘여전히 싸움이 진행 중이다’라는 다이내믹한 의미로 ‘잉투기’라 지었단다. 그런데 어느 모로 보나 이 작품은 인터넷 잉여인간들의 머저리 같은 ‘쌈박질’을 다룬 영화임에 분명하다. 이제 영화를 보고 남은 것은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저 인간들을 어찌해야할 것이냐는 기층세대의 고민이다.

 

현P(PK)시대의 자아실현

 

‘칡콩팥’이라는 아이디로 인터넷 커뮤니티에 활동하고 있는 ‘잉여인간’이 하나 있다. 어느 날 커뮤니티에서 사사건건 대립하던 또 다른 잉여인간과 ‘현P 뜨러’ 간석오거리에 나갔다가 불의의 습격을 받고 다운된다. ‘x팔린’ 것은 그 장면이 현장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의 손에 들린 핸드폰에 고스란히 찍혔고 그날로 바로 인터넷에 순식간에 퍼진다. 이 어이없는 치욕감이란! 칡콩팥은 그날부터 상대 ‘젖존슨’을 찾아 나선다. 절친 희준과 함께. 그러다가 종합격투기 도장에서 ‘맹랑’ 격투소녀 영자를 만난다. 이제 이 세 명의 대책 없는 청춘들이 ‘복수’와 ‘자아실현’의 투쟁을 시작한다. 이들에겐 학교공부도, 사회생활도,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창조경제도 없다. 오직 ~ing하는 정신만이 남은 것이다.

 

대단한 신인감독의 등장

 

이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 감독 엄태화에는 과찬에 가까운 평가가 쏟아졌다. 실로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 맞먹는 대단한 신인감독의 등장이라 치켜세운다. 실제 충무로 주류영화사에서 내놓는 영화들과는 여러 면에서 색다른 영화임에 분명하다.


놀라운 신인감독 엄태화는 인터넷시대 골방에 갇힌 ‘잉여들의 수준’을 ‘제한적 폭력’을 통해 세계관의 문제를 생각해보게 한다. 지금도 ‘골방의 잉여인간들’은 인터넷게시판에 언어폭력을 마구 행사 중이다. 그들로선 자아실현까지는 모르겠지만 나름의 쾌감을 얻고 있을 것이다. ‘PK문화’라는 것이 골방의 문을 열고 맑은 공기를 맞으며 서로 얼굴 마주보고 육신의 땀을 흘리고 피를 조금 흘리는 것이 어쩌면 진화해가는 디지털 시대, 퇴보하는 인간정신의 현주소일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녹다운 게임’이란 신종오락거리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길거리에서 그냥 아무나 한 주먹에 다운시켜버리는 역시 ‘아메리칸 머저리들의 오락’이다. 피해자의 입장은 황당하다. 백주에 길을 걷다 갑자기 한 대 얻어맞고 정신을 잃고 길바닥에 쓰러져버리다니.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사람이 죽은 경우도 있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사건이 자꾸 일어나자 미국의 경찰관계자만큼 사회심리학자들도 바빠지게 생겼다. 왜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지 대해서. 그 원인은 아마도 “폭력적 게임에 노출된...” 혹은 “폭력영화가 만연하다 보니...”라고 결정지을 것이다. 좀 더 나가자면 “획일화된 사회적 시스템에서 작은 일탈을 시도함으로써 자아실현을 이루기 위한... ”이라고 할지 모른다. 즉, 이런 류의 행태는 확실히 기형적 사회가 만든 결과라는 것이다. 찌질한 잉여들만의 문제인 것은 아니다. ‘아메리칸 사이코’에서도 (비록 환상이지만) 월 스트리트의 돈 많은 엘리트 펀드매니저도 이런 어이없는 일탈에 동참할 지경이니 말이다.

 

분명한 것은 엄태화 감독은 대한민국에 분명히 존재하는 한 모습을 여과 없이 다 담아냈다는 것이다. 좌표 없이 방황하는 청춘의 문제부터 나 홀로 이민까지 감행하는 가족의 해체, 밀가루가 뿌려진 학교풍경 등. 물론 엄태화 감독은 이 모든 것을 정밀화로 묘사하진 않는다. 이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현상일 뿐이니까.

 

‘칡존슨’ 역을 맡은 배우 엄태구는 감독 엄태화의 동생이란다. 정말 류승완-류승범의 재림인 듯하다.  (박재환,2013.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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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투기 (15세 관람가, 2013년 11월 14일 개봉)
감독: 엄태화
출연: 엄태구, 류혜영, 권율, 김준배, 길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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