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리뷰(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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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살인의뢰, “우리들의 불행한 시간”
흉악범은 자신이 저지른 죄에 해당하는 무거운 벌을 받아야한다. 인륜을 저버린, 도저히 인간이 저지른 짓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죄를 지은 자들은 마땅히 극형을 받아야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것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 임기를 두 달 남겨둔 1997년 12월 30일이었다. 이날 그동안 집행이 미뤄진 사형수 23명이 한꺼번에 교수형 당했다. 이후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 까기 그 어느 법무부장관도 사형집행을 결재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는 국제엠네스티가 인정한 ‘사형제도는 폐지되지 않았지만’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실질적 사형폐지국가로 분류하고 있단다. 현재 사형판결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된 자는 58명에 이른단다. 사형제도가 중범죄에 어느정도 예방..
2015.03.16 -
[리뷰] 순수의 시대, ‘세 남자와 한 여자’
이안 감독의 영화 ‘색,계’(色,戒 Lust,Caution)는 제목부터 철학적이었다. 더군다나 중간에 ‘쉼표(,)’를 넣은 것은 뭔가 한 단계 더 생각하게 만든다. 내일 개봉하는 안상훈 감독의 ‘순수의 시대’는 제목부터 문학적이다. 게다가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을 다룬다니 뭔가 근사한 작품이 나올 것도 같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제목부터 관객을 단단히 속인다. 아무리 보아도 순수하지 않은 캐릭터가 치명적이지도 않은 사랑이야기를 펼치기 때문이다.‘순수’의 상징은 주인공 김민재 장군(신하균)일 것이다. 여진족 어미의 소생으로 정도전이 거둬 키운 민재는 정도전의 승승장구와 함께 태조 이성계의 오른팔이 될 정도로 출세가도를 달린다. 강골 무사 기질의 그에게 태조가 직접 자신의 왕권과 조선의 운명을 부탁할..
2015.03.04 -
[리뷰] 연애의 발견 이승기와 문채원이 연애를 한다면...
젊은 사람들의 연애 방정식은 정해져 있다. 최근 개봉된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에서도 확인(!)된 바이지만, 적정연령에 도달한 청춘남녀는 생물학적으로 이성에 끌리게 되고, 각자의 재능이나 현재수준에 맞게 작전을 짜고, 없는 시간과 돈마저 투자하여 상대의 마음을 끌어당기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 그러고는 마침내 소기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물론 이런 표준화된 정석보다는 찰라적 선택의 성과담이 주위에 넘쳐난다. 보통 “그놈이 술이 웬수”거나 “불타는 금요일밤의 추억”으로 연애가 완성된다. ‘죽어도 좋아’(02), ‘너는 내 운명’(05), ‘내 사랑 내 곁에’(09) 등 범상치 않은 남녀의 이야기를 그려낸 박진표 감독이 이번에는 요즘 젊은 사람들의 연애의 모습에 눈을 돌렸다. 기다림의 미학이나 손..
2015.01.15 -
[리뷰] 님아, 그 강을 '혼자' 건너지 마오 (진모영 감독,2014)
서로 사랑하여, 서로 인연이 되어 부부의 연을 맺은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운명의 시간은 얼마나 될까. 백년해로(百年偕老)라고는 하지만 한 남자가 한 여자를, 한 여자가 한 남자를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하고, 같이 삶을 마무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문학적 수사일 뿐이리다. 그런데 최근 개봉된 영화 한 편이 블록버스터 공세 속에서 그야말로 아날로그적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바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독립영화이다.영화는 강원도 횡성군 산골마을에 사는 조병만 할아버지와 강계열 할머니의 오순도순 백년해로극이다. 지난 2011년 KBS 인간극장에서 ‘백발의 연인’으로 소개된 커플-노부부이시다. 두 분의 러브스토리가 얼마나 리얼하냐면 실제 나이가 정확하지 않단다. 단지 두 분의 기억과 나중에 ..
2014.12.29 -
[ 현기증] 악몽의 시작 (이돈구 감독 Entangled, 2014)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1958년 ‘현기증’(Vertigo)는 오늘 현재 세계적인 영화사이트인 imdb닷컴에 67위에 랭크되어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현기증을 느끼는 고소공포증을 가진 전직 형사 제임스 스튜어트가 금발미녀를 뒤쫓다 미스터리에 빠지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반세기가 더 지나 한국에서 같은 제목의 영화가 한 편 개봉된다. 조두순사건에 분노를 느껴 단돈 300만원으로 ‘가시꽃’이란 작품을 완성시켜 영화계를 놀라게 한 이돈구 감독이 만든 두 번째 장편영화이다. 이 영화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소개되면서 영화팬들의 호평을 받았다.영화는 ‘현기증’ 느끼는 한 여자로 인해 행복해야할 한 집안이 완전히 붕괴되는 비극을 보여준다. 그러나 단순한 메디컬 공포물이 아니라 그 속에 인간의 본능적 공포와 ..
2014.11.05 -
[리뷰] 나의 독재자, 나의 아버지
‘김씨 표류기’라는 작품을 내놓았던 이해준 감독의 신작 ‘나의 독재자’가 최근 개봉되었다. ‘나의 독재자’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청와대에서 기발한 준비과정을 했었다는 신문기사에서 모티브를 찾은 영화이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시절, 당시 이후락 중앙정부부장이 직접 평양를 다녀와서는 중대발표를 했었다. “청산가리를 품고 죽을 각오로 북한에 다녀왔다. 곧 김일성과 정상회담을 할 것이다.”는 것이었다. 이후 중정에서는 김일성 대역을 내세워 정상회담을 준비한다. 그의 말투는 기본, 사고방식까지 수령에 가깝도록 연습 또 연습한다. 물론, 유신과 함께 이 프로젝트는 파기되었다. 그럼, 김일성이 되기 위해 발버둥쳤던 그 대역배우는 이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이해준 감독은 평범한, 아니 사실 연극판에선 형편없었던 한..
2014.11.03 -
[리뷰] 해무, 뜻밖의 호러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이 이 영화의 제작에 적극 참여했다는 사실을 과도하게 홍보하지만 않았더라면 영화 ‘해무’에 대한 기대치가 달라졌을지 모른다. ‘해무’는 자유를 찾아 목숨 걸고 거친 바다를 건너는 ‘보트피플’의 드라마, 혹은 공산사회에서 막 자본주의의 맛을 깨닫기 시작한 연변조선족들의 ‘코리안 드림’을 다룬 위대한 사회드라마로 인식될 뻔한 작품이다. 2001년 한국에 밀입국하려는 중국인들이 바로 그 배에서 처참하게 죽은 실제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이 영화는 실제사건을 얼마나 충실하게, 아니면 얼마나 더 보탰는지 모르겠다. 그 최종결과물은 어정쩡한 호러에 공감이 덜 가는 순정드라마가 되고 말았다.김 선장의 위험한 선택여수에서 20년 넘게 안강망어선 전진호로 고기잡이를 해온 철주 선장(김윤석..
2014.09.02 -
[리뷰] 해적, “그래 네가 넘버 투다”
올 여름 극장가만큼이나 흥행대전이 치열했던 적은 없었다. 그것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은 뒷전이고 한국영화들끼리 이렇게 화제가 된 적은 더더욱 없었다. ‘지리산 웨스턴’이라는 유별난 민중봉기(!)를 소재로 다룬 ‘군도:민란의 시대’가 스타트를 끊었고 뒤이어 영원한 민족영웅 이순신장군의 ‘필사즉생’의 영화 ‘명량’이 극장가를 완전장악했다. 그리고 연이어 ‘해적:바다로 간 산적’이라는 순전히 오락영화의 본령에 충실한 영화가 개봉되어 극장주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어느 것을 걸어야 더 많은 관객을 불러들일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해적’은 용케도 ‘군도’와 ‘명량’이 이야기하고자한 것을 다 이야기할 뿐 아니라, 그것이 갖추지 못한, 그 어떤 것까지 용해시켜 영화팬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명나라가 새로 ..
2014.08.29 -
[명량] 이순신 장군의 심정으로…. (김한민 감독 ROARING CURRENTS 2014)
박시백의 ‘만화 조선왕조실록’ 같은 우리나라 역사서를 읽다보면 머저리 같은 임금에 등신 같은 신하들, 그리고 그런 상전에게 전혀 신뢰가 없던 백성들이 어울러 살던 조선이 “왜 하루라도 일찍 망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조선 선조 때가 대표적이다. 임진왜란을 앞두고 일본을 다녀온 통신사들이 조선은 물론 명을 칠 준비를 차곡차곡 진행하던 일본에 대해 정세분석이랍시고 내놓았다는 논쟁의 극한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쥐같이 생긴 몰골로 두려워할 만한 인물이 못 돼 보입니다”였으니. 어쨌든 일본은 쳐들어왔고 불쌍한 백성들만 도륙된다. 그리고 잠깐의 수습기간. 어이없게도 이순신은 쫓겨나고, 고문당하고, 백의종군한다. 그리고 또 다시 왜군이 쳐들어온다. 정유재란이라고도 하고 임진왜란의 연장이라고도 한다. 바로..
2014.07.30 -
[리뷰] ‘신의 한 수’, 사각의 링
‘바둑’은 참여하는 사람에게 적극적이며 전략적인 사고를 요하는 유희이다. 가로 세로 각각 19줄이 그어진 딱딱한 바둑판 위의 361개 교차점에 흰색과 검은색 돌을 번갈아 놓아 최종적으로 ‘차지한 집’의 많고 적음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아마도’ 중국에서 처음 개발되어 ‘적어도’ 2천 년은 되었을 인류의 문화적 게임이다. 지난 2010년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선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스포츠이기도 하다. 그런 바둑을 소재로 영화로 만든다면 은행금고를 노리는 하이테크 갱들의 치밀한 두뇌게임을 연상할지 모른다. 그런데 지난 주 개봉된 한국영화 ‘신의 한 수’는 예상 밖으로 ‘육체와 육체’가 맞부딪치는 액션영화로 세상에 등장했다. 근사한 전략적 포석과 치열한 수 싸움은 없다. 대신, 기원에서 펼쳐지는..
2014.07.10 -
[리뷰] 도희야, 유유상종 혹은 동병상련
정주리 감독의 데뷔작 ‘도희야’는 많은 이야기를 담은 것 같지만 단 한 가지 감정을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영화이다. 상처받은 영혼을 어루만져줌으로써 자신의 영혼도 치유된다는 것을. 너무나 힘든 삶을 사는 두 영혼의 어울림이 영화의 전편을 묵직하게 울려준다. 여학생 김새론, 여경 배두나를 만나다 생수통의 물을 글라스에 따라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 영남(배두나)은 바닷가 파출소 소장으로 새로 부임해온다. 노인네밖에 없는 외딴 바닷가마을에 사건사고란 것이 뭐 있으리오. 거의 유일한 젊은 남자 용하(송새벽)는 불법체류 동남아 노동자를 데리고 바다 일을 시킨다. 이 평화로운(?) 마을에서 영남은 도희(김새론)를 만난다. 한밤에 울면서 뛰어가는 도희를, 그리고 친구들에게 맞고 있는 도희를. 어느 날 도희의 온몸이 상처..
2014.05.23 -
[리뷰] ‘인간중독’ 지상에서 영원으로 1969년 버전
오래 전 이미숙과 이정재의 아찔한 사랑이 담긴 영화 ‘정사’의 시나리오를 썼던 남자, ‘방자전’과 ‘음란서생’으로 재밌는 사극을 만들었던 남자. 바로 그 남자 김대우 감독이 이번엔 1969년의 군(軍) 관사로 시선을 돌린다. 그것도 베트남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1969년. 신록이 푸르던 어느 여름날부터 펼쳐지는 은밀하고도 불안스런 영관급 장교의 불륜드라마이다. 한류스타 송승헌과 미지의 신인 여배우 임지연의 뜨거운 만남은 진작부터 화제가 되었다.김진평 대령, 종가흔을 만나다월남전에서 놀라운 무공을 세웠고, 군단장 장인어른의 백 그라운드까지 있는 김진평 대령은 지금 너무나 평화롭고 고즈넉한 곳에 자리 잡은 교육대대의 부대장이다. 주위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그이지만 월남전의 악몽으로 불면과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2014.05.14 -
[표적] 광수대의 개들 (창감독 2014)
살인범으로 의심되는 총상 환자가 병원으로 실려 왔고 강력계 형사와 광역수사대가 잠깐 관할권 다툼을 한다. 범인을 제때 잡아 인질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까. 지금 극장가에서는 ‘창감독’의 액션물 ‘표적’이 개봉되어 현빈의 ‘역린’과 함께 쌍끌이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누가 악인인가 비가 추적거리며 내리는 어느 날 밤. 한 낡은 빌딩에서 한 남자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 이 남자는 총을 맞았고 겨우 도로로 도망 나왔다가 달리는 차에 친 뒤 병원으로 옮겨진다. 용병으로 단련된 여훈(류승룡)이란 사람이다. 그 빌딩에선 누군가가 살해되었고 여훈이 살인용의자가 된다. 병원에서 여훈을 응급조치한 의사 태준(이진욱)에겐 뜻밖의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눈앞에서 만삭의 아내가 누군가에게 납치된다...
2014.05.08 -
[리뷰] 역린, '죄인의 아들, 정조를 죽여라!
조선 22대 임금 정조가 다시 한 번 극화되었다. 이번엔 현빈이 정조를 맡은 영화 ‘역린’이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고, 숨죽인 듯 살아서 마침내 용좌에 올랐던 인물 정조. 아버지가 그렇게 비명횡사했듯 정조 또한 세손시절부터 늘 죽음의 위협에 시달려야했다. 영화 ‘역린’은 정조 이산(李祘)이 왕의 자리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발생한 ‘정유역변’의 이야기를 다룬다. ‘정유역변’은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1777년 7월 28일 밤, 정조의 서고이자 침전인 경희궁 내 존현각(尊賢閣)에서 발생했던 암살미수를 말한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지, 그리고 기타 여러 사료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 물론, 영화에서는 훨씬 많은 상상력과 설정이 동원된다.정조를 죽이려는 자 vs. 정조정..
2014.04.24 -
[레바논 감정] 지푸라기 인간 (정영헌 감독,2013)
작년(2013년) 전주국제영화에서 상영된 후 호평을 받고 곧바로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 참가하여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 있다. 정영헌 감독의 ‘레바논 감정’이란 독립영화이다. 충무로에서 조감독으로 현장실력을 다지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나온 정 감독의 극영화 데뷔작이다. 영화제목 ‘레바논 감정’은 시인 최정례가 2005년에 발표한 시의 제목이다. 정 감독은 그 시를 읽고는 강한 영감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렇게 자신의 데뷔작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영화 내용에 어울리는 멋진 제목이긴 하다. 남자, 여자와 만나다 어머니 기일을 맞아 헌우(최성호)는 납골당을 찾는다.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헌우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여전히 애통해한다. 비틀거리듯 초점 잃은 눈빛의 헌우는 선배의 집에 잠시 머무르게 된다. ..
2014.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