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영화리뷰(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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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코니의 여자들] 개 같은 날의 오후 (노에미 메를랑 감독)
2020년 개봉된 은 꽤 많은 지지를 받은 작품이다. 의 셀린 시아마 감독과 주인공 노에미 메를랑이 다시 뭉쳤다. 이번엔 노에미 메를랑이 감독과 배우로, 셀린 시아마는 각본에 참여했다. 9일 개봉된 영화 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이야기를 여성이 전하는 여성의 영화이다. 영화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1954)처럼 시작된다. 후덥지근한 지중해의 열기가 끈쩍끈쩍 피부로 느껴지는 프랑스 마르세유의 한 아파트.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물에 사는 주민의 모습을 찬찬히 훑는다. 마치 훔쳐보기라도 하듯이. 이런 남자, 저런 여자 다양하다. 니콜(산다 코드레아누)은 소설을 쓰려고 하지만 글이 풀리지 않는다. 건너편 창가에 웬 섹시한 남자가 옷을 벗고 있다. 절로 눈이 간다. 또 다른 집에서는 아내에게 폭..
2025.09.08 -
[BIFAN 리뷰] ‘가이노이드’ 여자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셀리아 갈란 감독)
지난 (2025년 7월) 3일 개막한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BIFAN)에서는 200편 넘는 영화들이 소개된다. 장편, 단편, AI영화, XR콘텐츠 등 다양한 작품들이 영화팬의 기대에 부응할 예정이다. 이들 상영작 중에는 현재의 놀라운 과학기술의 발달에 발맞춘, 재기 넘치는 창의적 SF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중 눈길을 끄는 작품 중 하나는 스페인 셀리아 갈란(Celia Galán) 감독의 (원제:Ginoide)이다. 런닝타임 22분의 단편영화이다. ‘안드로이드’가 진화/분화하면서 이제 성별도 생긴 모양이다. ‘가이노이드’는 여성형 안드로이드라 보면 된다. 여기서 잠깐, ‘여성형 안드로이드’는 무슨 용도로 만들어진 것일까. 불온한 생각은 잠깐 접어두고 우리 곁으로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온 미래를 접해..
2025.09.07 -
[인생은 아름다워] 살아남은 자의 기억법, 그리고 삶의 의미
1999년 3월에 열렸던 제7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오래 기억될 장면이 하나 연출되었다. 이탈리아의 레전드 배우 소피아 로렌이 최우수외국어영화상 수상작으로 를 발표하자 로베르토 베니니는 기쁨에 들떠 벌떡 일어나 앞사람의 의자등받이에 우뚝 올라선다. 베니니는 남우주연상까지 두 개의 오스카를 손에 쥔다. 그 요란하고, 정신없는 시상식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이 영화도 혼란스럽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인류 최고의 비극이랄 수 있는 홀로코스트를 이렇게 동심의 눈으로, 판타지한 이야기로, 우스꽝스럽게 묘사해도 되는 것인지. 실제 홀로코스트를 너무 가볍게 접근한 것 아니냐는 반응도 많다. 그 영화 가 지난 주 극장에서 다시 공개되었다. 26년 만에 다시 보는 ‘인생은 아름다워’는 여전히 아름다운가, 혹은 여전히 ..
2025.09.07 -
[미치광이 피에로] 장 뤽 고다르, 누벨바그 걸작
‘누벨바그 걸작’이라고 했지만 요즘 누가 누벨바그를 추앙할까. 마치 ‘바로크의 걸작’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서지학적 명제이다. 물론, 아직도 영화사적으로 영화를 보고, 이미지적으로 영화를 탐독한다면 극장에서 를 만나볼 수 있는 이번 기회를 놓칠 수는 없을 것이다. ‘누벨바그’는 익히 알려진 대로 1950~60년대 영화사의 페이지를 장식한 프랑스의 영화사조이다. 그 동안 이어져온 영화들의 제작방식이나 미학에 저항하는 일단의 움직임이었다. 굉장히 현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장폴 사르트르와 알베르 카뮈의 실존주의 철학에 기초하고, 관념적인 영화미학에 반대하는 방식이다. 어떻게? 느슨한 이야기 구조, 즉흥적 연기, 야외에서의 촬영방식 등등이다. 프랑스의 영화잡지 의 열혈 청년평론가들이 그렇게 직접 카메라를 들고 영화..
2025.09.07 -
[엑스테리토리얼] 아프간 PTSD, 가스라이팅,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넷플릭스,2025)
지난 달 말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어 차트 정상을 차지한 넷플릭스 영화 은 독일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넷플릭스 덕분(!)에 독일 신작도 전 세계 사람들과 함께 보는 동시대적 감성을 향유하게 된 것이다. 제목 ‘엑스테리토리얼’은 ‘치외법권’을 일컫는다. 사법권이 미치지 못하는 범죄물이 아니라, 한 국가의 권력이 통용되지 않는 국제법상의 특수한 땅을 말한다. 여기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미국 영사관이다. 그 영사관 내에서 어떤 엄청난 국제적 음모가 꾸며지고 있는 것일까. 영화가 시작되면 사라(잔 구르소)가 어린 아들 조쉬와 함께 공원을 거닐고 있다. 아이들이 장난치다 조쉬를 스치는 순간, 마치 아들의 위협을 감지한 듯 순식간에, 본능적으로 아이를 제압한다. 사라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한 전직 특수부대원이었다...
2025.05.12 -
[자전거를 탄 소년] 달리는 자전거에서 아슬아슬 균형 잡기
벨기에 출신의 다르덴 형제(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감독의 2011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이 최근 극장에서 재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한 소년의 방황과 구원, 그리고 인간관계의 복잡한 면모를 사실적이고 절제된 스타일로 그려내며 관객에게 감정적 울림을 선사한다. 다르덴 형제 특유의 네오리얼리즘 카메라 워킹이 소년의 고통을 응시하며, 진정한 영화적 숭고함을 증명한다. 12세 소년 시릴(토마 도레)은 애처롭게 전화 통화에 매달린다. 여기는 보호소. 아버지가 더 이상 돌볼 수 없다며 시릴을 이곳 보호소에 맡긴 것이다. 시릴은 그럴 리가 없다며 아버지와 통화하고 싶다고, 집으로 찾아가서 확인하고 싶어 한다. 열두 살 시릴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힘들게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가 쓸쓸하게 돌아..
2025.05.02 -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1938년, 용서와 구원의 스탈린 앞잡이
‘나타샤’, ‘아나스타샤’ 같은 낭만적 이야기가 넘칠 것 같은 러시아 제국은 20세기 들어서면서 레닌과 볼세비키, 공산주의 같은 무서운 얼굴로 바뀐다. 결국 왕정국가는 무너지고 1922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 들어선다. 그리곤 1991년 고르바초프를 마지막으로 그 제국이 무너질 때까지 미국에 맞서는 초강대국가로 존재했다. 어떻게? ‘공산주의’라는 숭고한 이데올로기로? 시계추는 1938년으로 돌아간다. 레닌의 뒤를 이어 1922년 소련공산당 서기장을 맡은 스탈린은 죽을 때까지 30년 동안 소련과 세상의 절반을 ‘공산주의’로 장악했다. 물론 마르크스 사상만으로 인민을 무장시킨 것은 아니다. 영화 는 스탈린 치하의 한 시기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트로츠키도, 미제(!)와의 전쟁도, 카레스키의 강제이..
2023.11.24 -
[리턴 투 서울] 내 마음의 안식처는 어디인가 (데이비 추 감독, 2022)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해외로 입양 간 아이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는 많다. TV 아침교양 프로그램에서, 사회고발 시사프로그램에서, 애니메이션에서, 절망적인 영화로도 만나봤다. 이런 해외 입양아의 처연한 모습은 한국전쟁 이후 대규모로 발생한 전쟁고아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개발시대에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 갓난아기는 버려지거나 고아원을 거쳐 해외로 나간다. 그렇게 떠나간 한국출신의 해외입양아의 수가 20만을 뛰어넘는다고. ‘고아수출’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써야 했다. 거기까지이다. 각자의 사연이 있으니. 오늘(3일) 개봉하는 프랑스 영화 은 그렇게 떠난 한국입양아에 관한 이야기이다. 전쟁고아는 아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씩씩한 프레디(박지민)의 모습이 보인다. 프랑스인이다. 2주의 휴..
2023.07.23 -
[자전거 도둑] 살아남아라, 훔쳐서라도!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1948)
75년 전 영화가 한국 극장에서 개봉된다. 이탈리아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1948년 작품 이다. 파시스트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뒤 이탈리아의 모습은 짐작 가능할 것이다. 전쟁은 모든 국민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다. 당장 생계가 급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 은 냉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쟁이 막 끝난 뒤. 로마의 발 멜라이나(Val Melaina)에 사는 안토니오(람베르토 마지오라니)는 아내 마리아(리아넬라 카렐), 아들 브루노(엔조 스타이올라), 그리고 갓난 아이를 부양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자리를 찾고 있다. 겨우 일자리를 하나 구했는데 자전거가 꼭 필요하단다. 결국 아내는 침대시트를 전당포에 맡기고 예전에 저당잡힌 자전거를 찾아온다. ..
2023.07.23 -
[6번 칸] 무르만스크 행 기차의 우연한 여행자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2021)
지구본, 아니 구글맵을 펼치고 러시아 북쪽을 찾아보자. ‘무르만스크’(Мурманск)라는 동토의 땅이 있다. 이 영화는 그곳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로드 무비이며, 기차 영화이며, 힐링의 고행길이다. 8일 개봉하는 영화 (영어제목:(COMPARTMENT NO.6)은 핀란드 유호 쿠오스마넨(Juho Kuosmanen) 감독 작품이다. 핀란드 배우 세이디 하를라와 러시아의 유리 보리소포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전체가 러시아에서 촬영되었다. 모스크바의 좁은 아파트를 떠나, 숨 막히는 러시아 장거리열차를 타고 무르만스크로 길을 떠난다. 추위와 눈, 불친절해 보이는 러시아 사람들과 부대끼는 한 핀란드 여자 유학생의 길을 따라가 보자. 영화는 1970년대 영국의 인기 록그룹 ‘록시뮤직’의 ‘Love Is The..
2023.07.22 -
[슬픔의 삼각형] 벌거벗은 평등과 공정의 모계사회
올해도 5월이 되었고, 어김없이 칸에서 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작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스웨덴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이 개봉되었다. 스웨덴과 황금종려상이라.. 품격과 파격이 기대되는 작품일 것이다. 감독은 이미 (2018)로 한 차례 황금종려상을 받았었다. ,품격‘과 ’파격‘에 집착하는 칸의 선택을 한 번 보자. 영화는 젊은 패션모델 커플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둘은 젊고, 잘 생겼고, 그 나이의 젊은이답게 세상을 보는 눈이 자기중심적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젊은 남자들이 한껏 기대에 부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패션모델 오디션을 보는 중이다. 카메라를 든 남자가 그 사이를 누비며 가벼운 유튜브 영상이라도 찍는 모양이다. 관객들은 이 짧은 순간에 모델업계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 발..
2023.07.21 -
[말없는 소녀] “사려 깊은 아일랜드 연풍”
존 포드 감독과 존 웨인이 함께 한 영화 중에 (원제:The Quiet Man,1952)이라는 작품이 있다. 아일랜드(에이레)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이다. 아일랜드는 영국 제도의 왼쪽에 있는 '독립국가'이다. 수도는 더블린이고, 시인 예이츠와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를 배출한 나라이다. 31일 개봉하는 영화 는 바로 이 나라에서 만들어진 영화이다. 예이츠가 읊은 이니스프리의 목가적 풍경을 기대하거나, '벨파스트'의 총성을 떠올리게 하는 혁명의 영화일지 기대가 된다. 영화는 1981년의 아일랜드의 한 시골 마을에 사는 아홉 살 소녀 코오트(Cáit)의 이야기이다. 도박에 빠진 아버지, 자식이 네 명이 있지만 또 동생을 임신한 어머니의 방치 속에 위태롭게 자라고 있다. 학교에서 우유 잔을 엎질러 치마를 적시자 왠..
2023.07.21 -
[멘] 남성 폭력의 대물림, 혹은 악몽의 릴레이 (알렉스 가랜드 감독2022)
알렉스 갈랜드 감독의 데뷔작 [엑스 마키나]는 윤기가 흐르는 세련된 SF였다. [서던 리치: 소멸의 땅]과 [데브스]에 이어 내놓은 신작 ‘멘’(원제:MEN)은 ‘컨츄리 하우스 호러’이다. 그런 장르가 있다면 말이다.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시골마을로 내려온 여자주인공은 계속되는 악몽에 시달린다. 그것은 ‘마을의 남자들’이 모두 그녀에게 불친절하게 대하거나 무례하게 굴거나,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런던의 명물 런던아이(London Eye)가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에서 하퍼 말로위(제시 버클리)는 남편 제임스에게서 폭력적인 위해를 당하자 나가라고 소리 지른다. 그런데 남편이 그 아파트에서 추락하여 죽는다. 사고사인지, 자살인지 모르지만 하퍼는 떨어지는 남편의 눈을 보았기..
2022.10.24 -
[더 렛지] 클리퍼행어 브리트니 애쉬워스
지난 주말 TV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스릴러 영화 한 편을 소개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영화 한 편을 다 본 듯한 친절한 줄거리 소개였다. 내용은 이랬다. 두 여자가 암벽 등반여행을 떠났다가 그곳에서 나쁜 남자들을 만나게 되고, 이 남자들이 한 여자를 죽인다. 나머지 여자가 이들을 피해 도망간다. 도망갈 곳은 위로! 깎아지른 듯한 높은 암벽을 타고 올라가는 것이다. 남자들이 뒤를 쫓는다. 이제 암벽등반실력만이 살 길이다. 여자는 살아날 수 있을까. 까마득한 절벽, 송진가루를 묻힌 손가락으로 아슬아슬 매달리고, 외줄에 의지하여 절벽 틈새에 뛰어든다. 시시각각 조여 오는 살인마 추적자들. 아이고, 조마조마해라. 그렇다. 영화는 결과가 궁금해진다. 그래서 끝까지 보게 된다. 물론, 관객들은 여자주인공이 살아남을..
2022.10.24 -
[뮤지컬 ‘킹키부츠’ 라이브] 커뮤니티, 정체성, 그리고 변태부츠 (Kinky Boots: The Musical, 2019)
“Everybody say yeah!” [박재환 2022.04.25] 뮤지컬 [킹키 부츠](원제:Kinky Boots)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콘텐츠이다. 21세기 들어 영국 노샘프턴에서 벌어진 일련의 산업적 변화과정을 담고 있다. 오랫동안 이 지역 사회를 지탱하고 있던 제화공장들이 불경기로 잇달아 문을 닫게 된다. 프라이스 제화공장을 물려받은 젊은 사장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4대 째 동고동락한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해고되고, 공장건물은 사라지고 그 곳에 번듯한 신축아파트거 들어서면 되는가? 그때 찰리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드랙 퀸’이다. 밤무대에서 여장을 하고 높은 하이힐을 신고 춤을 추는 인물이다. 문제는 거구(!)의 남자들이 신기에 하이힐의 뒷축이 부실하다는 것. 제화전문가의 눈에 새로운..
2022.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