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영화리뷰(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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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레 신의 분노] 조금씩, 완전히 미쳐가는 사람 (베르너 헤르조크 감독 Aguirre, the Wrath of God 1972)
독일 베르너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1972년 (Aguirre, the Wrath of God)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영화는 지금부터 450년 전인 1560년 지구 건너 편 남미 땅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극화한다. 콜롬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이랍시고 입구에 위치한 섬 하나)을 발견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때의 이야기이다. 스페인은 새로운 땅을 찾아 이곳에 군인과 선교사를 보낸다. 한때는 찬란했던 문명이, 오랫동안 평화로웠던 이곳에 몹쓸 문명의 칼날과 새로운 병균으로 무너지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에르난 코르테스는 멕시코를 가로질러 아즈텍을 정복한다. 1521년의 일이다. 이곳에 도착한 정복자들은 황금으로 둘러싸였다는 전설의 도시 엘도라도(El Dorado)를 찾겠다면 광분한다. 그들은 페루 쪽에..
2020.04.28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옆에서 본 여인, 앞에서 본 연인 (셀린 시아마 Céline Sciamma 감독, Portrait of a Lady on Fire 2019)
풍속사(史)에서 ‘사진신부’(Picture-Bride)라는 걸 만날 있다. 특정시기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오직 사진으로만 결혼할 상대를 간택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세기 초,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간 남성이 고국의 여인네를 오직 사진으로만 보고, 결혼하여 일가를 이룬다. 조금 앞선 시기 미국 서부로 간 일본남자의 형편도 비슷했다. 미국 항구에 도착한 일본 예비신부들은 자신의 신랑을 알아볼 수 없었단다. 노동자가 한껏 꾸민 사진과 실제 부두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의 모습이 너무나 판이했기에. 아마도 ‘사진후반작업의 원조’이리라. 하지만 신랑은 그림 속 신부를 기꺼이 배필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영화 의 출발은 그러하다. 영화는 18세기 신부의 초상을 그리는 화가의 이야기이다. 사진도, 전화도, 인터..
2020.02.17 -
[페인 앤 글로리] 알모도바르의 시네마 파라다이소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Pain and Glory 2019)
[리뷰] 페인 앤 글로리, 알모도바르의 시네마 파라다이소 스페인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에게 거장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은 꽤 오래 된다. 알모도바르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는 신작 (Dolor y gloria)가 개봉되었다. 9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스페인영화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과 나란히 올랐다. 이 칸에서 작품상(황금종려상)을 받을 때 의 주인공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었다. 영화는 무척 오랜만에 돌아온 왕년의 영화감독이 자신의 삶을 회상하는 형태이다. 무엇이 자신을 영화감독으로 이끌었는지, 어떤 일로 창작의 열정이 불타올랐는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지난 30년간 활동을 중단했는지를 들려준다. 영화는 오래 전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들을 보여준다. 아이를 업고 있는 여성이 주인..
2020.02.11 -
[경계선] “인간은 기생충이고, 악마야!” (알리 아바시 Ali Abbasi 감독 Border 2018)
스웨덴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의 은 그동안 보아온 뱀파이어 이야기와는 조금 결을 달리한다. 인간 족속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를 내세우면서도 인간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흥미롭게 그려냈다. 원작소설은 스웨덴과 할리우드에서 잇달아 영화로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선 연극으로도 무대에 올랐었다. 오랜 세월을 어둡고, 축축하고, 외로운 공간에서 ‘뱀파이어’의 운명을 살아가야하는 여자주인공의 고통, 번뇌,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린드크비스트의 단편소설 ‘경계선’(Border)도 그러한 독특한 ‘존재’를 특이한 사건과 함께 버무린다. 이번에 등장하는 존재는 ‘트롤’이다. 물론 ‘트롤’은 이나 를 통해 낯설지는 않은 존재이다. 북유럽 신화(전설)에 등장하는 이 괴물은 지구인을 어떻게 쳐다볼까. 영화가 시작되면 북유..
2019.11.14 -
[헨리 5세] Sir. 케네스 브래너의 헨리 5세 (케네스 브래너 감독, Henry V 1989)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1599년경 쓴 것으로 추정되는 희곡 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는 이미 두 편의 걸출한 작품이 세상에 나와 있다. 2차 대전 말기, 전시 체제의 영국민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만든 로렌스 올리비에 감독/주연의 클래식 (1944)와 역시 영국출신의 배우 케네스 브래너의 혁신적인 세익스피어극 (1989)이다. 이 두 작품은 곧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티모시 샬라메 주연의 와 달리 세익스피어 원작에 충실하다. 특히 케네스 브래너 작품은 더욱 그러하다. ‘헨리 5세’와 세익스피어 (나중에 ‘헨리5세’가 되는) ‘할’은 1386년 헨리 오브 볼링브룩(헨리 4세)의 큰아들로 태어나서, 웨일스 공이 되었고 아버지가 죽자 1413년 왕위에 오른다. 당시 머리에 씌워진 왕관의 무게는..
2019.10.28 -
[셀레브레이션] 아버지는 죽었다! (토마스 빈터버그 감독 Festen/The Celebration,1998)
(박재환 1998.9.22.) 어느 해인가 칸에 모인 발칙한 젊은 영화인들이 기존영화의 타성 – 주제 뿐만 아니라, 촬영, 영상효과 등 제작기법에까지 스며든 모든 타성을 타파하겠다며 ‘도그마95’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그에 따라 새로운 영화미학으로 중무장한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데뷔작은 이제, 그러한 경향의 대표적 작품으로 우리에게 충격과 당혹감을 안긴다. 이 영화는 그러한 현대 영화의 한 조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만도 훌륭한 작품이며, 이런 영화를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부산영화제는 정말 좋은 영화제일 수도 있다. 이 영화는 덴마크 영화이다. 아마, 덴마크는 우유-낙농제품만 만들든지, 아니면, 그 동네가 풍차의 나라인지 아닌지 그것조차 헷갈리는 것이 우리의 관점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
2019.08.27 -
[킬러 콘돔] 은밀한 살인마 (Killer Condom, 1996)
이 영화는 퀴어 무비이다. 이 영화는 상당히 복잡한 내용과 주제를 담고 있다. 포장은 단순한, 그리고 보기에 따라선 지저분한 호러물이지만 한 꺼풀씩 파고 들어가면,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심상찮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영화의 배경은 뉴욕이다. 미국사회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미국 대통령 후보를 논하면서도 독일어로 서사구조를 엮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낯설게하기 방법이다. 영화의 배경은 그럭저럭 활기 넘치는, 그리고 잡다한 잡범과 다양한 경력의 형사들로 우글거리는 NYPD를 보여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요 배경은 게이들이 득실 되는 모텔이다. 이곳에는 거래를 위해 들락거리는 여장한 게이, 남창, 뚜쟁이, 창녀, 그들의 고객, 욕망으로 가득한 남자들. 그런 사람들이 버글댄다...
2019.08.18 -
[사보타지] 히치콕 감독 초기 걸작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Sabotage 1936)
(박재환 2001-9-3)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21년 만에 재편집하여 내놓은 이 최근 한국에서도 개봉되었다. 이 영화에 대해서 모든 영화평론가들이 앞 다투어 격찬을 해대고 있지만, 내가 정작 보고 싶어하는, '영문학자가 쓴' 리뷰는 아직 볼 수가 없다. 이 영화의 원작이 된 소설 는 조셉 콘라드(Joseph Conrad 1857-1924)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학교 다닐 때 영문학과의 한 원서강독 시간을 청강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 작가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조셉 콘라드는 1857년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세익스피어 작품을 번역하고 애국적인 작품을 남긴 시인이었지만 반역을 꾀했다는 혐의로 폴란드를 떠나 러시아 북부로 피신했다. 그 후 어린 조셉 콘라드는 유럽 각국을 전전했고, 선..
2019.08.18 -
[차타레 부인의 사랑] 로렌스 에로스 (쥬스트 쟈킨 감독 Lady Chatterley's Lover, 1981)
영국 소설가 D.H.로렌스(1985.9.11~1930.3.2)의 대표작 은 처음 발표되었을 때 논란이 일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매달 문학작품 한 권씩을 꼭 읽으라며 그 대상작품까지 일일이 선정해 주었다. 그 때 읽은 '교장선생님 추천필독서' 중에는 이어령 교수의 에세이 와 김성동의 , 그리고 놀랍게도 D.H.로렌스의 도 있었다. 요즘 같은 영상시대 세대가 텍스트 기반의 의 매혹적인 에로티시즘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은 출판될 때 영국과 미국에서 외설시비에 휩싸였다. ( 의 백낙청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이 D.H.로렌스 관련 논저였다.) 소설은 1928년 이태리 피렌체에서 출판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출판사의 인쇄공은 영어를 전혀 몰랐다고. 초판은 단지 100부..
2019.08.17 -
[로망스] 아름다운 여인의 아름다운 방황 (카트린느 브레야 감독 Romance, 1999)
성인드라마가 제대로 평가받기란 쉽지 않다. 진지한 삶의 모색, 진정한 사랑의 의미, 철학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담히 그린 이야기는 더더구나 관객에게 접근하기 어렵다. 지난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2000)에서 최고의 화제를 불려 일으켰던 작품 중의 하나인 이다. 이 영화는 전주영화제 기간 동안 기자 대상 시사회 한 번과 일반 상영 두 번으로 5백명 가까운 관객이 미리 관람할 수 있었다. 국제영화제의 힘이란 것이 적어도 한국영화팬에게는 색다른 기회를 제공한다. 도, 도, 도 그런 식으로 소개되었다. 일부관객들은 그러한 영상에 쉬이 동의할 수 없어 자리를 뜨는 경우가 있었다. 이 영화는 프랑스에서도 선정적인 화제를 몰며 제작이 시작되었다. 여성감독 까트린느 브레이야가 이태리의 유명 포르노 배우 로코 시프레디..
2019.08.15 -
[베즈 무아:거친 그녀들] 델마와 루이스 완전성인판 (Baise-moi, 2000)
'Baise-moi'(베즈 무아)라는 프랑스 영화가 있다. 영어 제목으로는 'Rape Me'나 'Fuck Me'이다. 제목만으로도 자극적인 이 영화에 대한 사실 몇 가지만 더 이야기하면 이렇다. 그 자신이 무척 험한 삶을 살았다는 버지니 데팡트(Virginie Despentes, 비에르지니 데스펭떼)는 자신의 삶을 소설로 썼고, 직접 감독이 되어 영화를 만든다. 공동감독으로 이름이 올라있는 꼬랄리(Coralie)라는 사람의 전직이 포르노 배우였단다. 그리고 이 영화의 두 여주인공 카렌 랑카우메(Karen Lancaume)와 라파엘라 안드르송(Raffaela Anderson)도 포르노 배우 출신이란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표현 수위는 '문자 그대로' 리얼하다. 영화는 프랑스 한 교외의 두 여자를 둘러싸..
2019.08.15 -
[에너미 엣 더 게이트] 문앞의 적 (장 자크 아노 감독 Enemy at the Gates 2001)
(박재환 2001-4-15)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에서 전쟁의 피비린내를 내뿜으며 구현한 것이 ‘라이언 일병’의 생사확인과 무사귀환이라는 기막힌 휴머니즘이었던 것에 비해, 이 영화 는 바로, 국가와 민족의 영광을 위해 하나의 전쟁 우상이 만들어지는 프로파간다의 드라마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이쪽 계통의 고전이랄 수 있는 안소니 퀸 주연의 에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영화가 시작되면, 그 곳이 러시아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 같은 폭설과 추위가 휘몰아치는 우크라이나 벌판을 보여준다. 총의 노리쇠로 날카롭게 저쪽 들판의 늑대 한 마리를 응시하는 소년이 조용히 속삭인다. “나는 돌이 된다.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라고… 그 소년 옆에는 상처 입은 노인이 소년에게 삶의 기술을 가르친다..
2019.08.14 -
[엘리자베스] 신념,복종,종교,단두대,궁중음모,고문,자백, 그리고 왕실의 영광 (세카 카푸르 감독 Elizabeth 1998)
역사극은 사전지식이 필요하고, 좀 각오를 하고 봐야한다. 이 영화의 배경은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1세) 시절이다. 영국史는 사실 복잡하다. 월드컵에서 모든 회원국가의 예선전 티켓은 공평하게 한 장씩임에도 불구하고, 영국이란 나라는 잉글랜드팀, 스코트랜드팀 등 몇 장 더 가져간다. 왜 그럴까? 챨스 황태자의 정식명칭은 ‘프린스 오브 웨일즈’이다. 웨일즈 지방의 왕자인 셈이다. 그러니 ‘킹 오브 그레이트 브리턴’. 이런 것은 사실 찾아보기 어렵다. 나라가 쪼개진 채 통치되어온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지방색 뚜렷하게 버텨내고 있는 그 나라의 상황은 이상하게 보일만도 하다. 영국의 헨리 8세는 결혼을 여섯 번 했단다. 첫 번째 부인이 아기를 못 낳자 이혼하려 한다. 카톨릭은 이혼을 인정하지 않자, 카톨릭..
2019.08.14 -
[늑대의 제국] 프랑스식 테러분쇄법 (크리스 나흔 감독 |L’Empire Des Loups, Empire of the Wolves 2005)
(박재환 2006.6.16.) ** 이 영화는 KBS 2006 KBS프리미어 영화제 상영작입니다**] 할리우드에 대항하는 프랑스식 영화 만들기는 두 가지 방향으로 진보했다. 예술적 취향의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 내거나 자신들만의 블록버스터를 개발해내는 것이다. 때로는 역사물로, 때로는 전쟁 드라마로, 때로는 참신한 스타일의 SF로 할리우드에 대적할만한 흥행작품을 내놓았다. 그 대열에는 ‘프랑스의 존 그리샴’이라고 종종 비교되는 베스트셀러 작가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도 포함되어 있다. 그랑제는 독특한 소재와 스타일의 소설을 잇달아 써내어 프랑스 영화판의 훌륭한 콘텐츠 제공자가 되었다. 그의 베스트셀러 소설 와 이 잇달아 영화화되었고 프랑스에서 큰 흥행성공을 거두었다. 그랑제의 원작소설 는 알프스 산자락에서..
2019.08.14 -
[캐릭터] 인간의 조건, 혹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마이크 반 디엠 감독 Karakter,1997)
(박재환 1998.9.29.) (1998년 3회부산국제영화제 관람리뷰입니다) 오늘 네 번 째 관람영화이다. 세 번 째 영화부터 아프기 시작한 골반 부위와 허리의 통증으로 거의 탈진상태였다. 그러나, 오랜만엔 보게 되는 아카데미 외국어작품상이라기에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버티고 앉았었다. 그러나, 솔직히 엄청난 실망감만을 안겨준 영화였다. 이 영화는 올 4월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네덜란드 작품이다. 그 시상식에서는 아카데미 회원들이 영화만으로 얼이 빠진 게 아니라, 이런 영화에도 상을 준 걸 보니, 그 영화제의 수준-수준이라기보다는, 엄격하게 말하면 어떤 경향을 짐작할 수 있겠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김빠진 맥주 같은 영화이다. 처음엔 제임스 아이보리 스타일의 시대상 묘사로 시..
2019.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