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접촉사고가 나면 블랙박스부터 찾고, 아파트 경비원 폭행사고가 나면 현장 CCTV부터 탐문하는 세상이다. ‘자백’은 법정증거로 소용이 없다. 뚜렷한 영상이 있어야 한다. 이른바 ‘빼박’증거로. 그런데, 그 CCTV가 조작된 것이라면? 여기 그 음모론의 최신판이 나왔다. BBC에서 지난 가을에 방송한 영드가 있다. 국내 OTT서비스인 웨이브(wavve)에서 지난 달 공개한 6부작 드라마 <더 캡쳐>(The Capture)이다. ‘전 세계적 음모론’에 ‘인텔리전스 드라마’를 잘 만드는 영국이 내놓은 스릴러이다.
(6부작 중 1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참전하며 공을 세웠던 영국군인 숀 에머리(칼럼 터너)가 재판을 받는다. 아프가니스탄 헬만드 전투에서 부상당한 탈레반을 사살한 것이 문제다. 뒤를 따르는 전우에게 “저리 가!” 외치며 피를 흘리는 쓰러진 탈레반을 쏘아 죽이는 것이 헬멧에 장착한 바디캠에 고스란히 찍혀있다. 인도적 범죄인 셈이다. 그런데 이 빼박 증거를 뒤집어 놓은 것은 인권변호사 한나 로버츠(로라 하드독). 영상전문가의 감정은 이렇다. “고프로 하위기종의 바디캠의 경우 영상과 오디오의 싱크가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이 비디오가 5초 정도의 시차가 있다는 것을 밝혀낸다. 즉, 그 탈레반은 쓰러지면서 총을 쏘려고 했고, 숀은 전우를 구하고 적을 무찌른 것이다. 당연히 영상전문가의 시의적절한 증언으로 숀은 무죄로 석방된다. 그런데, 그날 밤 축하 파티를 하고 버스정류소까지 한나를 배웅하던 숀이 갑자기 한나를 폭행하고 끌고 간다. 이 장면은 근처 CCTV에 고스란히 찍힌다.
대테러부서에서 막 테러분자의 음모를 사전 분쇄하는 공로로 강력부로 승진한 레이첼 캐리(홀리데이 그레인저)가 이 사건을 맡는다. ‘한나’의 행방을 찾는 게 급선무. 그런데, 숀은 자신은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뻗댄다. 이제, 몰락한 참전군인과 CCTV의 진실게임이 펼쳐진다. 이것은 보이는 것 이상의 거대한 진실게임이다. 우리가 몰랐던 여러 비밀스러운 정보기관이 얽히고설킨 음모론적 책략이 이어진다.
CCTV는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다!
<더 캡쳐>는 작금의 보안/감시/정보시스템의 진화를 잘 보여준다. 중국이 전 국민을 감시하는 안면(얼굴)인식 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번 코로나19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신용카드 사용정보 조회로 개인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다. PC방 IP나 게임 로그기록으로, 그리고 스마트폰 사용기록, 곧 자동주행모드 차량 정보 등이 결합하면, ‘빅브라더’가 모든 것을 감시할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다. 의도와 목적, 합법성 여부의 문제를 떠나서 말이다. 그게 국정원이 되었든, 국세청이 되었든, 구글이 되었든 말이다.
드라마에서는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세력(탈레반이나 테러단체)을 분쇄하기 위한 정보/수사기관의 엄청난 능력을 보여준다. 만약 여기에 반기를 드는 에드워드 스노든 같은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더 캡쳐>는 정보기관에 맞서는, 혹은 공생/기생하는 여러 경우를 보여준다. 만약, 모든 것을 감시하는 CCTV 정보시스템에 접근(해킹)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역으로 이용할 정도의 능력을 가졌다면? <더 캡쳐>는 1차적으로 과학기술의 엄청난 활용과 더불어 2차적으로 그것에 대한 정치적 접근법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6부작 <더 캡쳐>는 빅브러더(시스템)의 출중한 능력과 함께, 그 빈틈을 파고드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현재의 모습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그린다. 이제 남은 것은 합류하든지, 디지털의 희생자가 되는 것이리라. 단순한 ‘정의의 폭로’라기에는 세상이 온통 페이크 투성이다.
홀리데이 그레인저, 컬럼 터너와 함께 벤 마일스, 소피아 브라운, 론 펄먼, 팜케 얀센, 로라 하드독 등이 출연한 <더 캡쳐>는 BBC방송 후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시즌2’ 제작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시청자로서는 ‘희생자’ 숀 에머리와 ‘야심가’ 레이첼 캐리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박재환 202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