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7. 12:44ㆍ유럽영화리뷰
1999년 3월에 열렸던 제7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오래 기억될 장면이 하나 연출되었다. 이탈리아의 레전드 배우 소피아 로렌이 최우수외국어영화상 수상작으로 <인생은 아름다워>를 발표하자 로베르토 베니니는 기쁨에 들떠 벌떡 일어나 앞사람의 의자등받이에 우뚝 올라선다. 베니니는 남우주연상까지 두 개의 오스카를 손에 쥔다. 그 요란하고, 정신없는 시상식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이 영화도 혼란스럽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인류 최고의 비극이랄 수 있는 홀로코스트를 이렇게 동심의 눈으로, 판타지한 이야기로, 우스꽝스럽게 묘사해도 되는 것인지. 실제 홀로코스트를 너무 가볍게 접근한 것 아니냐는 반응도 많다. 그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지난 주 극장에서 다시 공개되었다. 26년 만에 다시 보는 ‘인생은 아름다워’는 여전히 아름다운가, 혹은 여전히 지켜보기가 고통스러울까.
1939년, ‘파시스트’ 이탈리아는 사회적 분위기가 흉흉했다. 젊은 유대인 귀도가 아레초의 삼촌 레스토랑에서 일하기 위해 도착한다. 익살스럽고, 모든 것이 긍정적인 그는 첫날부터 온갖 소동을 일으킨다. 그리고 처음 만난 도라를 ‘공주님’이라 부르며 반해 버린다. 거만한 공무원과 결혼을 앞뒀던 도라는 결국 귀도와 결혼하고, 어린 아들 조수아를 낳는다. 그렇게 행복한 가족을 꾸렸지만 나치가 점령하고 유대인들은 모두 기차에 실려 강제수용소로 끌려간다. 귀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은 어린 조수아에게 이 모든 비극이 한 편의 연극이고, 장난이고, 게임이라고 속이는 것이다. 감옥 같아 보이지만, 모두들 중노동하고 있지만, 그러다가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지만 이 모든 것이 게임이라고. 1000점을 얻으면 상품을 얻을 것이라고 일러준다. 장난감 탱크가 아니라 진짜 탱크를 상품으로 줄 것이라고.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조수아는 그렇게 수용소에서 숨죽이고 숨어서 견뎌낸다. 패전이 가까워지자 독일군은 모든 수용자를 처형하려고 한다. 귀도는 마지막 명연기를 펼쳐야한다. “에구, 아빠는 잡혔구나, 넌 꼭꼭 숨어있어야 해!” 하고 윙크하며 건물 뒤로 사라진다. 그리고 총소리. 종일 숨어있던 조수아가 벽장에서 나오자 수용소는 온통 적막이 흐를 뿐. 그리고, 저쪽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미군 탱크가 다가온다. 잘 참고, 잘 숨었기에 게임에서 이겼고, 상품을 탄 것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내레이션이 흐른다. 어른이 된 조수아는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로베르토 베니니는 유대인이 아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런 그가 이런 영화를 만든 것이 흥미롭다. 그의 아버지는 2차 대전 중에 독일 나치에 의해 강제수용소에 수감된다. 인종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나치 점령 하의 이탈리아에서 반파시스트 저항 운동에 가담하다가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에서 3년을 보냈었단다. 전쟁이 끝난 뒤 끔찍한 경험을 아들에게 자주 들려주었단다. 그런데 아버지는 끔찍한 수용소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했단다. 그게 베니니 코미디의 자양분이 된 듯하다. 실제 베니니는 "웃는 것과 우는 것은 영혼의 같은 지점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나는 스토리텔러이다. 문제의 핵심은 아름다움, 시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게 희극이든 비극이든 말이다."고 미학을 밝힌 바 있다. 그리고, 또 하나. 홀로코스트 생존자 루비노 로메오 살모니(Rubino Romeo Salmonì)에게서도 영감을 받았다. 루비노는 나치 말기에 포솔리 강제수용소로 끌려간다. 그는 굶주림과 추위 속에 강제노역을 하다 연합군에 의해 자유의 몸이 된다. 전쟁 후 그는 그의 경험을 강연 등을 통해 세상에 알린다. 그의 저서 『결국 나는 히틀러를 이겼다』(In the End, I Beat Hitler)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서 나왔고, 훌륭한 가족이 있으며, 금혼식을 축하했고, 12명의 훌륭한 손주가 있습니다. 히틀러가 내게 세웠던 계획을 망쳤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고. 영화는 제작과정에서 유대인 단체와 논의를 하며 조심스럽고, 사려 깊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아무런 정보 없이 이 영화를 대하게 되면 ‘홀로코스트’를 고통스럽지 않게, 악독하지 않게 묘사한 것에 대해 의아하고, 불쾌할지도 모른다. 전적으로 베르토니 베니니의 예술적 대담함과 용기가 이런 작품을 탄생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이 영화는 그 전에 만들어진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와 그 이후 만들어진 <존 오브 인터레스트>와 함께 실제 일어난 비극, 홀로코스트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창의적 접근방식을 알려준다.
극중 '공주님' 도라는 실제 베니니의 아내(니콜레타 브라스키)이다. '귀도'와 '도라'는 아내의 삼촌 이름에서 가져왔단다. 삼촌(귀도 바실레)은 반파시스트 활동으로 체포되어 강제수용소에서 사망했단다. 베니니는 이 영화로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역사와 감정의 교차점에 세운다. 유대인의 역사와 홀로코스트의 비극은 <인생은 아름다워>의 무게감을 더한다.
▶감독: 로베르토 베니니 ▶각본: 로베르토 베니니, 빈첸초 세라미 ▶주연: 로베르토 베니니, 니콜레타 브라스키 ▶아카데미영화상 3관왕(최우수외국어영화상, 남우주연상,오리지널음악상), 칸 영화제 대상 ▶개봉: 개봉: 2025년 6월 11일(재개봉) / 1999년 3월 16일(개봉) /116분
'유럽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발코니의 여자들] 개 같은 날의 오후 (노에미 메를랑 감독) (0) | 2025.09.08 |
---|---|
[BIFAN 리뷰] ‘가이노이드’ 여자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셀리아 갈란 감독) (0) | 2025.09.07 |
[미치광이 피에로] 장 뤽 고다르, 누벨바그 걸작 (0) | 2025.09.07 |
[엑스테리토리얼] 아프간 PTSD, 가스라이팅,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넷플릭스,2025) (1) | 2025.05.12 |
[자전거를 탄 소년] 달리는 자전거에서 아슬아슬 균형 잡기 (0) | 2025.05.02 |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1938년, 용서와 구원의 스탈린 앞잡이 (0) | 2023.11.24 |
[리턴 투 서울] 내 마음의 안식처는 어디인가 (데이비 추 감독, 2022) (0) | 2023.07.23 |
[자전거 도둑] 살아남아라, 훔쳐서라도!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1948) (0) | 2023.07.23 |
[6번 칸] 무르만스크 행 기차의 우연한 여행자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2021) (0) | 2023.07.22 |
[슬픔의 삼각형] 벌거벗은 평등과 공정의 모계사회 (0) | 2023.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