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8. 07:49ㆍ유럽영화리뷰
2020년 개봉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꽤 많은 지지를 받은 작품이다. <타여초>의 셀린 시아마 감독과 주인공 노에미 메를랑이 다시 뭉쳤다. 이번엔 노에미 메를랑이 감독과 배우로, 셀린 시아마는 각본에 참여했다. 9일 개봉된 영화 <발코니의 여자들>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이야기를 여성이 전하는 여성의 영화이다.
영화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이창>(1954)처럼 시작된다. 후덥지근한 지중해의 열기가 끈쩍끈쩍 피부로 느껴지는 프랑스 마르세유의 한 아파트.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물에 사는 주민의 모습을 찬찬히 훑는다. 마치 훔쳐보기라도 하듯이. 이런 남자, 저런 여자 다양하다. 니콜(산다 코드레아누)은 소설을 쓰려고 하지만 글이 풀리지 않는다. 건너편 창가에 웬 섹시한 남자가 옷을 벗고 있다. 절로 눈이 간다. 또 다른 집에서는 아내에게 폭력적이던 남편이 결국 아내의 삽에 맞아 죽는다. 이 모든 것이 평화롭고, 일상적인 모습처럼 보인다. 니콜의 친구들이 하나씩 찾아온다. 루비(수헤일라 야쿠브)는 ‘캠걸’이다. 인터넷으로 ‘남성구독자’의 요청에 따라 갖은 음란행위를 하는 직업인이다. 마릴린 몬로 분장으로 등장한 엘리즈(노에미 메를랑)는 이런 저런 영화에 출연 중인 배우이다. 이들이 함께 건너편 섹시 가이 집에 놀려갔다가 하루 밤을 보내는데 다음날 그 남자가 잔인하게 죽어있다. ‘발코니의 여자’ 세 친구는 시체를 치우고, 남성사회의 폭력적 시선에서 제 갈 길을 가기 위한 험난한 투쟁을 시작한다.
<이창>처럼 매혹적인 훔쳐보기로 시작하는 <발코니의 여자들>은 세 친구의 우정극이며, 가부장적 사회, 폭력적 남성시선에 대항하는 위대한 프랑스 여자들의 발칙한 도발극이다. 프랑스에서도 여자가 저런 대우를 받는구나 느끼기도 전에, 프랑스 여성감독은 여자 배우를 저렇게 활용하구나 놀라게 된다. ‘여성의 대상화’는 이 영화의 핵심 시선이다. 카메라는 여성을 향하고, 여성은 카메라 앞에서 활보한다.
노에미 메를랑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묘사되는 ‘남성의 폭력적 행위’에 대해 "모델 활동을 시작했던 17살 때 사진작가에게 당했던 언어적, 신체적 폭력과 사귀던 남성의 교제폭력 등의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자신이 몸소 겪은 이야기라고 전한다. 그 폭력의 목록에는 이른바 ‘시선폭력’ 뿐만 아니라 ‘부부강간’ 뉘앙스도 포함된다.
영화는 뜨거운 여름날, 치명적 복수를 하는 굳건한 연대의 세 친구를 보여준다. 그 열정이 뜨거워도 너무 뜨겁다. 참, <개 같은 날의 오후>는 1995년 개봉된 이민용 감독의 페미니즘 영화 제목이다.
▶발코니의 여자들 (원제:Les femmes au balcon) ▶감독:노에미 메를랑 ▶출연: 노에미 메를랑, 수헤일라 야쿠브, 산다 코드레아누 ▶수입/배급:그린나래미디어㈜ ▶제공/공동배급:(주)플레이그램 ▶2025년 7월 9일/ 104분/ 청소년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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