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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영화리뷰

[베네데타] 수녀원, 신성모독, 그리고 폴 버호벤

by 내이름은★박재환 2022.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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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12월) 1일 극장가에 아주 논쟁적인-그리고 선정적인, 영화가 한 편 개봉되었다. 폴 버호벤 감독의 신작 [베네데타](원제:Benedetta)이다. 폴 버호벤 감독은 샤론 스톤이 나왔던 ‘원초적 본능’ 말고도 소재나 표현 측면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킨 작품이 많다. 하다못해 [스타쉽 트루퍼스]에서는 남녀 신병들의 샤워씬 촬영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 그런 그가 17세기 유럽의 닫힌 공간 ‘수녀원’ 내부의 은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하니 마음의 준비는 충분히 해둬야 할 것이다. 수녀들의 은밀한 일탈행동과 충격적 신성모독, 그리고 중세 화형식이 ‘분명’ 펼쳐질 것이니 말이다.

● 베네데타, “주님이 제게 말씀하셨어요”

배경은 17세기 이탈리아 토스카니 페샤(Pescia)의 테아티노회 수녀원(Theatine Convent)이다. 주님에 대한 신심으로 가득한 어린 소녀 베네데타 까를리니에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수녀원에 들어온다. 이제 평범한 가족의 사랑받는 딸이 아니라, 주님의 수녀로 평생 이곳에서 주님의 위한 삶에 헌신할 것이다. 세월이 흘러, 베네데타에게 신비한 현상이 나타난다. 손바닥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처럼 상처가 생기고, 이마에는 면류관의 가시들이 찌른 듯한 핏자국이 선명하다. 베네데타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부름과 사랑을 받은 신부라고 주장한다. 상상 속의 그리스도인지, 환상 속의 그리스도인지, 아니면 순전히 지어낸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수녀원에서는 파문이 일고, 페샤는 성인의 도래에 흥분한다. 지금 세상은 온통 흑사병이 도져 모두들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주님의 사랑이 가득한 베네데타는 직접 주님의 이야기를 들었다며 자신의 기도로 페샤를 안전하게 보호할 것이라 말한다. 그런데, 베네데타가 수녀원장이 되면서, 베네데타의 욕망은 꿈틀대고, 주님의 사랑은 신성모독의 도구가 된다.

● 베네데타와 바르톨로메아의 금지된 사랑

폴 버호벤의 이 영화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전문가인 주디스 C. 브라운 교수가 1986년에 내놓은 [수녀원 스캔들-르네상스 이탈리아의 한 레즈비언 수녀의 삶]이란 저서에서 출발한다. 책은 1619년부터 1623년까지 이뤄진 베네데타에 대한 종교적 심문기록을 담고 있다. 감독은 이 책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어느 선까지 보여줄지 결정해야했다. 17세기 종교 심문 기록은 잔인하고, 잔혹하고,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자세하다. 베네데타가 경험한 종교적 환상에 대한 증언은 물론이며, 그녀가 수녀원장실에서 펼친 음란한 행위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수녀 바르톨로메아와 펼쳤던 ‘Immodest acts’까지. (브라운 교수의 책 제목이다)

영화는 논쟁주의자답게 두 가지 굵직한 이야깃거리를 다룬다. 숭고함이 철철 흘러넘치는 당시의 ‘종교적 판결’과 시대를 앞서간 ‘여성의 사랑’이다. 

● 환상 속의 계시, 황홀한 결합

[장미의 이름]을 비롯하여 수많은 중세 이야기에서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던 잔인무도한 ‘심문과 자백’의 역사를 익히 알고 있다. 바르톨로메아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던(그 장면에서는 ‘잔다르크’도 거명된다) 고문의 모습을 보고, 그 비명을 듣게 된다. ‘사랑’은 어떤가. 수녀와 주님의 사랑은 종교적으로 미화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아니 태어나면서부터 주님의 은총과 성령을 받은 베네데타는 신앙적 믿음과 인간(육체)적 욕망을 하나로 받아들인다. 물론, 이런 신앙적 고통과 시련, 열정과 고백을 흑사병 시대, 죽음의 길목에 선 중세 사람들은 기이한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신에 대한 믿음은 상처받고 학대 받으면서 인정받고, 통제할 수 없는 본능적 욕망은 육신에 가하는 물리적 박해로 정당화 된다. 어떤 방법이었던 간에 베네데타 수녀의 몸에 나타난 거룩한 표시는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상징이었던 것이다.

 ‘베네데타’는 중세 유럽, 르네상스 시대의 종교관, 당대 사람들의 인성을 잘 보여준다. 실제 베네데타가 태어날 때 난산이었단다. 산모와 태아가 다 위험한 순간, 그 아버지는 신에게 기도했고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아이의 이름은 ‘신의 축복을 받은’(Blessed)이란 뜻이다. 아이는 태어나면서 신에게 봉헌될 운명이었다. 그리고 당시 많은 ‘딸’들의 운명처럼 결혼지참금보다는 훨씬 저렴한 '종교지참금'으로 수녀원에 보내지는 것이다. 당시 수녀원이 그렇게 성심 충만이 아닐 수 있음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비르지니 에피라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

비르지니 에피라(베네데타)와 다프네 파타키아(바르톨로메아)의 불타는 연기와 함께 베네데타의 성흔을 의심하면서도 마지막에 의미심장한 반전을 펼치는 수녀원장을 맡은 샬롯 램플링의 연기가 관객을 17세기 어두운 수녀원으로 이끌기 족하다. ⓒ박재환 20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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