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아니 대한민국 영화판에 조성규라는 특이한 사람이 있다. 직함은 소극장 스폰지하우스 대표이자, 영화사 스폰지이엔티 대표이며, 배급사 조제의 대표이다. 영화를 만들고, 수입하고, 자기 극장에 내거는 일괄공정의 완성자인 셈이다. 그렇다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수입하거나 원래 잘나가는 한류스타 캐스팅하여 ‘CJ급’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아니다. 이른바 ‘작은영화’ 옹호론자이다. 듣보잡영화‘만을 줄기차게 수입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여길 만하다. 하지만 아는 사람에겐 매니아용, 오타쿠영화를 수입하는 빛과 같은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짐 자무쉬, 기타노 다케시, 빔 벤더스, 프랑스와 오종, 페드로 알모도바르,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 작품이 그를 통해 수입되어 국내영화 팬의 목마름을 축여줬다. 물론 그가 수입한 영화는 천만관객이 들어야 어깨에 힘을 좀 줄 수 있는 충무로에서 1만 밑도는 영화가 대부분이다. 기이하게도 그런 척박한 한국(극장현실)에서 여태 살아남았다. 그런 조성규 대표가 언젠가부터 ‘영화감독’ 타이틀도 달았다. 아니면 1만 이하 영화만을 다루다보니, 아니면 홍상수, 김기덕 영화에 투자하다보니 “에이, 나도 찍겠다.”라는 도전의식이 생겼던 모양이다. 그래서 찍은 첫 작품이 바로 ‘맛있는 인생’이다. 어젯밤(2015.8.26) KBS 1TV ‘KBS독립영화관’시간에 방송되었다.
꼭 자기 같은 영화사 대표(류승수)가 주인공이다. 만들기만 하면 망하는 전설적인 제작자! 방금 제작한 영화도 극장에 내걸리기가 무섭게 망작으로 판정된다. 영화사 사무실과 핸드폰으로 전화가 쏟아진다. “내 돈 내놔라”라는 빚 독촉전화. 이 사람 탈출구가 필요하다. 그래서 무작정 차를 돌려 강릉으로 간다. 근데 이곳 강릉- 호텔현대경포 해금강식당-에서 아르바이트 여학생과 마주친다. 어딘가 낯이 익다. “혹시...” 20년 전, 대학시절 강릉에 처음 왔다가 당시 예쁜 여자를 만나 원나잇 사랑을 나눴고 그 다음날 아침 서울로 줄행랑친 생각이 떠오른다. 게다다 이 여자, 자신을 알아보지 않는가. “저 대표님 잘 알아요. 대표님이 만든 영화 너무 좋아하고요. 극장에도 갔어요.”란다. 아무도 안 보는 영화만을 만들어 자기극장에서 잠깐 상영하는데 그 영화들을 다 보았단다. 불안하다. 확인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표는 강릉에 시나리오 준비하려 왔다면서 며칠 강릉을 가이드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고선 그 며칠을 강릉, 주문진, 화진포, 대진항을 돌아다니며 횟집, 식당, 커피숍 등 맛집기행에 나선다. 회도 먹고, 도치알탕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와인에 막걸리에.....
술 나오고, 여관(여기서는 숙소로 호텔이 잠깐 나온다) 등장하고, 영화판 사람이 주인공이니 영락없는 홍상수영화이다. 그런데 홍상수영화와는 또 다르다. 영화는 중년의 남자가 “혹시 젊은 날 실수로.. 잉태된 내 딸 아닌가?”가 이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장치이다. 하지만 영화의 맛에 더하여 음식을 첨향한 것이다. 영화 제목에 ‘맛’이 들어간 이유가 있다. 줄기차게 강릉의 미식탐험에 나선 음식프로 피디같다.
영화사대표 류승수는 실감나는 위태로운 아저씨 역을 자연스레 해낸다. 그의 ‘혹시 딸’ 민아 역에는 이솜이 출연한다. 이솜은 극중에서 이상은의 ‘언젠가는’을 열창한다. 횟집 주인으로는 고창석이 등장한다.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출연진을 보여주는데 ‘강릉 운용이네 슈퍼’, ‘강문교회’ 등 단역들이 모두 현지인들이다. 그들에겐 정말 ‘재밌는 영화’일 것이다.
조성규 감독은 자신의 두 번째 연출작 ‘내가 고백을 하면’에서 전작 ‘맛있는 인생’이 한 평론가로부터 별 반개 평가를 받은 것에 대해 ‘셀프 디스’를 하기도 했다. 물론, 조성규는 평론가들 별점에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맛있는 인생’은 영화진흥위원회의 박스오피스통계에 따르면 관객이 ‘딱’ 900명 들었단다. 조성규 감독은 이 작품 이후에도 ‘설마 그럴 리가 없어’(1679명), ‘내가 고백을 하면’(11,969명), ‘산타바바라’(16,626명), ‘플랑크상수’(604명)에 이어 ‘어떤 이의 꿈’, ‘거꾸로 가까이, 돌아서’ 등 줄기차게 ‘작은 영화’에 도전하고 있다.
이 영화는 별 반개짜리 영화는 절대 아니다. 강릉의 커피 맛을 아는 사람에겐, 그리고 젊은 날 “혹시...” 같은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막연하게 영화가 꿈인 사람에게는 너무너무 재밌는 영화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멀티플렉스 초대형 화면에서 보는 것 보단, 스폰지하우스 작은 스크린에서 보는 것보단, ‘KBS 독립영화관’ TV로 보는 것보단, 스마트폰에 다운받아 보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는 사실이다. 놀랍다! 작은 영화의 발견!!!
사족. 그제 강릉발 뉴스. 제7회 강릉커피축제 홍보대사로 걸그룹 카라의 박규리와 `커피 프린스 1호점'에 출연한 미남 바리스타 김재욱, 그리고 영화 `거꾸로 가까이 돌아서'의 조성규 감독이 선정됐다고. 조성규는 이 영화를 강릉에서 촬영했다한다. 이 사람의 강릉사랑은 영화사랑만큼 꾸준하다! (박재환)
문제적인물 '조성규' (2007.3.30 김기덕 감독 영화 '숨' 시사회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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