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리뷰 175

[긴 하루] 먹고, 마시고, 어떻게든 영화찍기 (조성규 감독,2021)

살다보면 참으로 길고긴 하루를 경험할 때가 있다. 뜻밖의 전화를 받고 허둥지둥 집을 나와 미친 듯이 돌아다니고, 사람을 만나고, 오해하고, 싸우고, 얻어터지고, 울고불고, 끼니를 거르며 뛰어다니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서 엎어져서는 “이게 무슨 일인감?”하고 말이다. 보통 째깍거리는 시계침을 BMG로 하는 액션스릴러 장르의 영화가 이렇다. 관객들도 영화를 보면 진이 다 빠질 만큼 피곤해진다. 그런데, 조성규 감독이 그리는 ‘긴 하루’는 어떨까. 분명 먹고, 마시고, 돌아다니느라 피곤해질 것이다. 그의 영화를 몇 편 봤다면 말이다.  오늘(30일) 개봉하는 영화 [긴 하루]는 조성규 감독 작품이다. 정확히 몇 번째 연출작인지는 모르겠다. 조성규는 영화제작, 배급, 시나리오, 감독 등 멀티형 영화인이다. 자..

한국영화리뷰 2022.01.24

[해피 뉴 이어] “우리의 새해는 지난해보다 따뜻하리라!”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비키 바움의 소설을 충실하게 영화로 옮긴 [그랜드 호텔](원제:Grand Hotel)은 1932년 제 5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 세모의 ‘그랜드호텔’을 배경으로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한곳에 모여 다양한 인간군상극을 보여준다. 이후 특정한 공간에서 우연이든, 인연이든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모여 그들의 삶의 모습을 다양하게 풀어가는 방식을 ‘그랜드호텔식 구성’이라고 한다. ‘에어포트’가 될 수도 있고, ‘포세이돈 어드벤처’일 수도 있다. 29일 개봉하는 [해피 뉴 이어]도 그런 작품이다. 사람들은 서울의 가상의 호텔인 ‘엠로스 호텔’로 모여든다. 집에 보일러가 터져 호텔에 숙식하게 된 호텔 대표님을 비롯하여 수많은 호텔 근무자, 그리고 수많은 호텔 투숙객들, 그리고 그..

한국영화리뷰 2022.01.24

[반칙왕]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낸 그 느낌처럼 (김지운 감독, 웨이브)

최근 개봉된 마블-소니의 히어로무비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이 예상대로 태풍급 흥행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역대 스파이더맨의 활약을 지켜보면서 큰 책임이 따르는 ‘스파이더맨’의 결정적 순간이 떠올랐다. 토비 맥과이어는 ‘거미인간’이 된 후 돈을 벌기 위해 어둠의 경기(레슬링)에 나선다. “3분만 버티면 3천 달러를 주겠다”는 말에 현혹되어 복면을 쓰고 링에 오르는 것이다. 슈퍼히어로의 슬픈 데뷔식이다. 함께 떠오른 영화가 있다. 김지운 감독의 2000년 개봉영화 [반칙왕]이다. 송강호가 쫄쫄이를 입고, 타이거마스크를 쓰고 링에 오른다. 무엇을 위해? 챔피언벨트를 위해? 상금을 위해? 사랑을 위해? ‘큰 힘도 없고, 큰 책임도 없는’ 소시민 송강호의 도전이다.은행원 임대호(송강호)는 오늘도 콩나물 지하철에 갇..

한국영화리뷰 2022.01.22

[소설가 구보의 하루] 걷고 방황하다 길을 찾다 (임현묵 감독)

임현묵 감독의 ‘흑백’ 독립영화 가 오늘(9일) 개봉된다. 문득 박태원 작가의 중편소설 을 읽어본 영화팬이 얼마나 될지 궁금해진다. 소설가 박태원이 을 발표한 것은 1934년이다. 박태원은 한국전쟁 발발 초기 월북하여 북에서 작가 생활을 계속하며 대작 을 집필했다. 여하튼, 은 흥미롭다.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구보씨는 번듯한 직장을 구하라는, 그리고 참한 아가씨 선을 보라는 엄마의 걱정 반 근심 반 잔소리를 뒤로 하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하루밤낮을 서울 거리를 돌아다니며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만나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늦은 밤, 혹은 새벽에 집으로 돌아온 구보씨가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임현묵 감독은 일제 강점기 룸펜의 방황기를 2021년 버전으로 바꾼다. 무명소설가 구보는 집을 나서..

한국영화리뷰 2022.01.22

[유체이탈자] 이 안에 이안 있다! (윤재근 감독,2021)

윤계상 주연의 영화 [유체이탈자]가 지난 24일 개봉이후 꾸준히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키고 있다. 윤재근 감독은 [선물](2001)의 스크립터를 시작으로 꽤 오랫동안 충무로 현장을 지켜온 영화인이다. 2011년 [심장이 뛴다]로 감독데뷔를 했지만 두 번째 작품을 내놓기까지는 또 10년을 기다려야했다. 다행스럽게 오랜 시간을 갈고닦은 시나리오가 빛을 발했다. ‘유체이탈자’는  따라잡기 힘든 설정과 받아들이기 어려운 비밀이 산재한 영화이다.    ‘유채이탈자’의 주인공은 ‘윤계상’이다. 영화의 시작은 교통사고 현장. 사고의 충격인지 윤계상은 차 옆에 주저앉아 멍한 상태이다. 차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낯설고, 병원에 실려 간 뒤에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 자신의 지갑에 든 출입카드로 찾아간 집. 나는 누구이고 ..

한국영화리뷰 2022.01.22

[연애 빠진 로맨스] “지금, 뭘 기대하시나요” (정가영 감독)

정가영 감독 작품을 혹시 보셨는지. ‘밤치기’(2017), ‘조인성을 좋아하세요’(2017), ‘하트’(2019) 등 독립영화를 찍었다. 물론 저 영화에 조인성은 나오지 않는다. 감독, 각본에 연기까지 너끈히 해치우는 정가영 감독의 의도는 너무나 분명하여 보기 민망하기도 하다. 정가영 감독의 신작은 ‘연애 빠진 로맨스’이다. 전종서와 손석구가 주연을 맡은 이른바 ‘상업영화’이다. 정 감독은 여기서도 자신의 장기를 펼친다.  영화가 시작되면, 서른 즈음의 남자 ‘박우리’(손석구)가 처한 상황을 보여준다. 잡지사 편집실, 지금 편집장(김재화)이 펑크 난 ‘섹스 컬럼’ 집필을 그에게 떠넘긴다. 문창과 나온 실력을 발휘하라면서. 난감하다. 그 시각 서른으로 달려가고 있는 여자 ‘함자영’(전종서)의 모습이 보인다..

한국영화리뷰 2022.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