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리뷰(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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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화염 속으로 (곽경택 감독, 주원 곽도원 주연)
불(火)은 고마우면서도 위험한 것이다. 가장 스마트한 전기차에서도 불이 나고, 인덕션을 건드린 고양이 때문에도 화재가 발생한다. 불이 나면 119로 전화할 것이고, 소방차는 긴급 출동한다. 불이 얼마나 더 번질지 모르니, 한 대만 달랑 출동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소방차는 좁은 골목길 초입에서부터 난관에 부딪친다. 이중주차, 불법주차 차량 때문에. 이제부터 육중한 소방복을 입은 소방관은 각종 장비를 메고, 지고, 긴 소방호스를 들고 불구덩이 속으로 달려간다. 소방관의 임무이다. 그 판단이 숙명이기도 하다. 지난 4일 개봉된 곽경택 감독의 은 그런 대한민국 소방관의 애환을 다룬 작품이다. 순전히 지어낸 억지감동의 드라마가 아니다. 2001년 실제 발생했던 화재를 모티브로 해서 만든 인간극장이다. 화재는 ..
2025.01.11 -
[대가족] 영광의 가문 (양우석 감독, 김윤석 이승기)
영화 은 이승기가 머리를 삭발해서 놀란 것이 아니라 양우석 감독이 휴먼드라마를 찍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양우석 감독은 ‘인권변호사’ 노무현의 이야기를 담은 (2013), 북한의 군사정변으로 촉발된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막으려는 정치스릴러 (2017), 그리고 첨예한 남북 군사대립의 한복판에 미국대통령까지 끌어들인 (2020)까지 드라마틱한 정치적·군사적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그가 한반도와 동북아의 시한폭탄을 접고, 가족이야기에 집중한다. ‘내 아들의 이야기’를 정자은행과 만두로 빚어낸다. 서울 시내 고층빌딩 사이의 금싸라기 땅에 자리 잡은 오래된 한옥식당 ‘평만옥’은 한국전쟁 때 피난 온 함무옥(김윤석)이 오랫동안 운영해온 맛집이다. 화장실 종이 한 칸까지 아끼며 모든 것을 만두 빚는 것에만 쏟아 부..
2025.01.11 -
[조명가게] 강풀이 그리고, 김희원이 켜다 (디즈니플러스)
디즈니플러스 최고의 '아웃풋'이라고 할 수 있는 의 성공에 힘입어 강풀 작가의 또 다른 원작 웹툰이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2011년 연재된 이다. 이 ‘우리 안에 숨어있는’ 초능력자들의 커밍아웃이었다면, 는 사바세계와 겹친 사후세계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명운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들이 이승의 인연을 끊고, 영원히 저 세상을 사라질지 아니면 생의 불꽃을 다시 피울지. 바로 그 림보(Limbo)의 공간이 ‘조명가게’이다. 필라멘트가 파르르 떨면서 마지막 숨을 쉬는 곳이다. 강풀 작가의 원작 웹툰처럼 드라마는 사연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어두운 골목을 헤매다가 불빛이 빛나는 ‘조명가게’를 찾아오는 모습을 그린다. 그들은 친구가 있고, 가족이 있고, 연인이 있으며, 삶이 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
2025.01.11 -
[오징어게임 2] 업라이징 게임 (황동혁 감독,2024)
지난 2021년 9월 공개된 황동혁 감독의 (시즌1)은 K콘텐츠의 위상을 적어도 몇 단계 끌어올린 엄청난 작품이었다. 흥행지표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한국 콘텐츠의 산업적 측면을 다룬 수많은 논문이 쏟아졌다. 은 하나의 현상이었고, 이후 ‘K-콘텐츠’는 확실히 글로벌 시장에서 트렌드가 되었다. 3년 만에 그 속편이 나왔다. 작품에 대한 고민으로 치아가 7개 빠졌다는 황동혁 감독의 피와 땀과 눈물, 그리고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든 속편이라 아니할 수 없다. 시즌1이 9개의 에피스드였고, 오늘(26일) 공개되는 시즌2는 7개의 에피소드로, 그리고 내년 공개되는 시즌3도 7개의 에피소드로 이야기가 완성될 예정이다. 시즌1에서는 쌍문동의 성기훈(이정재)이 엄마가 시장에서 고생하며 번 돈을 ..
2025.01.11 -
[가족계획] “주목! 땡냥꿍의 비밀, 특교대의 그랜드디자인” (쿠팡플레이)
2020년 10월 런칭한 쿠팡플레이는 꾸준히 오리지널 드라마와 예능 콘텐츠를 내놓고 있지만 여타 OTT 플레이어에 비해 작품 수도 적고 완성도도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스포츠 관련 콘텐츠 제외하고!) 그나마 (2022)와 (2023)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올해, 단 한 편의 쿠팡작이라면 이 될 것 같다. 은 '쿠팡플레이'만큼 미스터리한 작품이다. 김선, 김곡이라는 개성 넘치는 창작자 형제감독의 첫 번째 OTT 연출작품이지만 제작발표회에서부터 감독은 보이지 않고 극본가 김정민을 내세웠다. 김정민 작가는 드라마 [슈츠](18)와 [허쉬](20)의 극본을 썼던 작가이고, 이번 작품에서는 일종의 쇼러너로 참여했다. 은 6부작으로 심플하다. ‘위대한 가족’의 탄생을 그린다. 영화는 ‘특교대’(특수교육대..
2025.01.11 -
[하얼빈]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이등박문을 총으로 척결하였다”
의사(義士) 안중근(1879~1910)의 거사(擧事)를 다룬 작품이 또 한 편 만들어졌다. 오래 전 충무로에서는 (1959)과 (1972>을 만들었고, 서세원도 (2004)을 직접 감독했었다. 하다못해 유튜브에서는 북한에서 만든 안중근영화를 찾아볼 수 있다. MZ세대에게는 정성화의 장엄한 뮤지컬 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과 의 우민호 감독이 지금 이 시점에 안중근 의사를 다시 불러낸 이유가 무엇일까. 이 시점에 구국, 항일, 애국을 내세우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하얼빈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FN M1900’ 자동권총으로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쏘아죽인 곳이다. 우민호 감독과 함께, 그리고 홍경표의 카메라와 함께 그날의 현장으로 떠나보자. 영화는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동토를 하..
2025.01.09 -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특히 청년에게는..
세상이 워낙 초광속으로,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한국사회다보니 1997년의 국가적 비상사태를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그해 연말 우리나라는 ‘IMF사태’를 맞았다. 제대로 말하자면 ‘흥청망청, 우왕좌왕, 오리무중’의 상태에서 외환위기를 맞았고, IMF(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리를 받아들이며 체질개선을 위한 ‘펀더멘털’ 구조조정에 나서야했다. 그때 나락에 떨어졌던 많은 사람들이 자살에 내몰렸다. 그리고, 일부는 한국 땅을 떠나기도 했다. 살기위해, 재기하기 위해. 그 중에 국희네 가족도 있었다. 지난 31일 개봉한 김성제 감독의 영화 이다. 그들은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로 향한다.온라인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 19살 국희(송중기)는 IMF 직격탄을 맞아 도산한 아버지(김종수)와 함께 한국을 떠나 보..
2025.01.09 -
[동화지만 청불입니다] "영화는 청불이지만, 박지현은 동화입니다.”
“뭐라고? 카메라 앞에서 밥 먹는 걸로 돈을 번다고? 내가 카메라 앞에서 벌거벗고 돈 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렇다. 10년 전에는 저런 반응이 나왔음직하다.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카메라 뒤에서 밥을 먹어도, 밥을 먹으며 옷을 벗어도 다 돈이 된다. 그럴 재주가 있다면. 그러니, 안정적인 직장 찾는다고 머리 싸매고 공부할 필요 없이 핫한 아이템을 찾고, 그 재주를 이용하면 된다. 여기 그런 영화가 있다. 8일 개봉하는 라는 제목부터 노벨문학상감인 영화이다. 동화작가가 아름답고, 순수하고, 풋풋할 필요는 없다. ‘히든 페이스’ 박지현이 그 길로 나선다. 귀여운 음란마귀가 되어 어둠의 세상으로~~ 단비(박지현)에겐 꿈이 있다. 동화작가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죽은 아버지의 ..
2025.01.09 -
[댓글부대] 여론은 막는 게 아니고, 만들어내는 거야~ (안국진 감독, 손석구 주연)
‘생계밀착형 코믹잔혹극’이라고 홍보된 를 감독했던 안국진 감독이 신작 로 다시 한 번 ‘한국사회’를 잔혹하게 들여다본다. 이번엔 ‘여론’이다. 사람들은 어떤 말에 귀가 솔깃하여 자신의 주의주장을 보강/합리화하고 개인과 사회의 운명을 결정지을 ‘판단’을 내리게 될까. 이건 결국 인간의 뇌를 자극하는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발휘되는 대중심리전이다. 단순한 루저들의 키보드전쟁으로만 봐서는 절대 안 될 고도의 정치적 수단인 것이다. 정.말.로! 2015년 출판된 장강명 작가의 는 ‘온라인으로 대동단결한’ 한국사회의 맹점을 지적한다. 온라인(인터넷)세상이 얼마나 대단하고도 허술한지를. 인간 자체의 순진함에 기댄 온라인 댓글부대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먼저 원작소설부터 읽어보자. 소설은 임상진 기자라는 인터넷매체..
2024.04.09 -
[1980] 그 날, 그들의 마지막 만찬 (강승용 감독, 김규리 백성현 주연)
1980년 5월의 광주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의 함성과 피로 채워진 그날들의 비극은 이제 역사의 유물이 되어간다. 해마다 5월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그날의 함성, 그날의 피울음을 되새기지만 피해자도, 가해자도, 방관자도 늙어가고, 죽어가고, 기억에서 사라져간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독특하다.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해준다는 것이, 잊지 말라고 보여준다는 것이. 영화 ‘1980’은 영화 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전두환과 군인들이 광주시민들의 숭고한 민주화 의지를 총과 탱크, 그리고 헬기 소사로 무참하게 짓밟아버린 이야기이다. 이 장대한 비극의 서사시를 어떻게 영화에 다 담을 수 있을까. 강승용 감독은 광주도청 뒷골목에서 중국집을 하는 철수네 가족 이야기를 통해 그날의 이야기를 전한다. ..
2024.04.09 -
[당신이 잠든 사이] "리멤버 썸딩" (장윤현 감독, 추자현 이무생 주연)
장윤현 감독이 오랜만에 돌아왔다. 장윤현 감독은 ‘충무로’로 대변되던 한국영화가 새로운 물결로 꿈틀거릴 때 독립영화단체 ‘장산곶매’에서 활동하며 독립영화 를 찍었던 인물이다. 그는 1997년 한석규, 전도연 주연의 영화 을 통해 화려하게 상업영화계에 데뷔했다. 이어 이라는 하드코어 스릴러를 내놓으며 한국영화의 장르적 확장을 주도했다. 이후 그의 행보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중국에서 한 작품을 만들었지만 ‘정치적 유탄’을 맞아 개봉이 좌절되었고, 사드로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에 돌아왔지만 이번에 코로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만든 작품이 바로 오늘(20일) 개봉하는 라는 소품이다. 미스터리 스릴러이다. 혹은 미스터리 멜로이다. 그의 대표작 멜로와 미스터리를 기억하는 영화팬에게는 반가운 귀환작이 아닐..
2024.04.09 -
[닭강정] "힘내세요,넷플릭스" (이병헌 감독, 류승룡 안재홍 주연)
2013년 [힘내세요,병헌씨]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주인공을 통해 청춘의 열정과 현실을 그린 유쾌한 작품이다. 극중 주인공 이름이자, 그 영화감독의 이름이 무려 ‘이병헌’이었다. ‘배우 이병헌’ 말고! 톱스타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메리트가 되거나 혹은 항상 (검색에서) 발목이 잡히는 모태 딜레머의 화신이다. 이병헌 감독은 과 을 거치더니 에서 드디어 “빵~” 터뜨린다. 그리고 그에겐 항상 ‘영화미학’이라는 영화감독의 잣대 말고 ‘말맛’이라는 미슐랭가이드 같은 기대심리가 덧붙었다. 지난 15일(금) 공개된 도 그러하다. 공개 전부터 류승룡과 안재홍의 말맛과 닭강정의 레시피가 더 궁금하다니! 영화는 ‘박지독’의 원작 웹툰을 따라간다. 인천 송도인지, 서울 여의도인지 그런 도..
2024.04.09 -
[로기완] “원웨이 티켓” (김희진 감독, 송중기-최성은 주연)
넷플릭스 영화 은 멜로드라마인가, 정치드라마인가, 액션물인가. 용필름이 제작했다고 하니 느와르를 기대했을 수도, 송중기가 나왔으니 멜로가 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탈북자가 주인공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분명 자유를 찾아, 목숨 걸고 사선을 넘었을 테니. 그런데 이상하다. 적어도 원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은 자유를 위한 투쟁은 아닐지라도 ‘살아야한다는 절박함’은 느껴야할 것인데 말이다. 이야기는 송중기가 한밤에 차가운 도로를 적신 핏자국을 걸레로 문지르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누군가 죽은 차가운 땅. 이곳은 중국 연길이다. 로기완은 2019년 엄마와 함께 탈북, 연길에 숨어살다가 공안의 단속에 쫓기다 엄마가 트럭에 치어 죽고, 기완만이 어렵게 위조여권으로 벨기에 브뤼셀에 도착한 것이다. 로기완은..
2024.04.09 -
[파묘] “나 한국 사람이에요!” (장재현 감독)
장재현 감독이 꾸준히 한 우물을 파고 있다. 과 에 이어 이번엔 로 오컬트 무비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파묘’는 파 들어간 땅의 깊이만큼, 첩첩이 쌓인 관의 무게만큼 한국적 신비로움과 우리 땅의 소중함을 전해준다. 덤으로 공포감과 긴장감, 극강의 몰입감으로 영화 감상의 재미를 더한다. 영화는 전반부와 후반부가 나뉜다. 이 둘은 하나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감독은 영화의 허리를 동강 자른다. 영화를 처음 볼 때는 이상했지만, 두 번 볼 때 더 많은 것이 보이고, 그 ‘동강난 허리’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영화가 시작되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이른바 ‘MZ세대’ 무속인인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을 만난다. 스튜어디스는 화림이 일본사람인줄 알고 일본말로 서비스하고 화림은..
2024.03.08 -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호기심은 지구소녀를 각성시킨다” (김다민 감독)
진화론을 이야기하거나 인간의 지적 능력의 획기적 도약 순간을 설명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그때 외계인이 지구에 왔다!”이다. 도 그랬고, 에서도 그랬다. 이제 한국 영화판에서 엄청난 우주 비밀을 밝히는 초특급 SF가 만들어졌다. 와 와 함께 나란히 극장에서 영화팬을 매혹할 영화 이다. 김다민 감독의 장편영화 감독데뷔작이다. 넷플릭스의 의 극본작업에 이름을 올렸던 인물이다. 특이하다. 어쨌든 일단 이 막걸리를 마셔보자. 이 영화는 저예산 독립영화이다. UFO도 광선검도, ET도 등장하지 않는다. 애당초 그런 할리우드 SFX는 기대하지 마시라. 영화는 유치원 나이의 어린 동춘이가 아빠의 휑한 정수리를 쳐다보다가 질문을 던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아빠, 대머리가 영어로 뭐에요?”라고. 질문은 좋은 것이다...
2024.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