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리뷰(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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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자] 남자의 눈물은 피보다 진하다
한국영화가, 그리고 한류드라마가 아시아에서 인기를 끌게 되면서 ‘한국적 정서’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같은 아시아인들이 보아도 한국인은 끈끈한 가족애와 유교적 질서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흥미로운 전범인 모양이다. 그런 한국에서 홍콩의 대단한 영화 하나가 리메이크된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컸다. 기대하는 사람은 1986년에 만들어진 은 멋진 영화이긴 한데 기본적으로 B급 정서의 홍콩스타일(대강 찍은 액션영화!)이기에 주윤발-장국영-적룡을 능가하는 매력적인 오늘날의 아시아 톱스타들을 끌어 모은다면 충분히 ‘걸작은 아니지만’ 명품 화보집 영화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생각해 보라. 한국의 원빈, 일본의 기무라 타쿠야, 태국의 닉쿤이라도 캐스팅 했다면 얼마나 간지가 좔좔 흐르는 영화가 될 것인가. 문제는..
2010.09.09 -
[맨발의 꿈] 축구가 만드는 이상적인 세상 (김태균 감독 A Barefoot Dream, 2010)
남아공 월드컵이 시작되었다. 한국은 첫 경기에서 그리스를 2:0으로 호쾌한 승리로 이끌면서 화려한 서전을 장식하였다. KBS, MBC를 압박수비로 꽁꽁 묶어두고 SBS의 단독 드리볼로 중계된 이 게임은 시청률이 70%에 달했다. 한국 팀이 잘하면 잘할수록 시청률도 따라 올라갈 것이다. 축구는 시청률을 견인할뿐더러 여러 가지 파급효과를 낳는다. 이전엔 축구 때문에 지역감정 차원이 아니라 국가간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이번 그리스 전 축구가 끝나고 편의점에선 콘돔판매가 4년 전에 비해 5배가 늘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역시 대단한 축구이다. 그 대단한 축구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영화가 월드컵 열기에 얹혀 개봉될 예정이다.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는 아니다. 바로 이다. 동티모르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쳐주는 ..
2010.06.17 -
[섹스 볼란티어]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는 영화 (조경덕 감독 Sex Volunteer , 2009)
* 이 영화리뷰는 영화 자체만큼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은 내용과 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글이 불편함과 불쾌함을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비위 약하신 분은 읽지 마시길 바랍니다. * 언젠가 들은 이야기이다. 장애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의 가장 절실한 소망이 무엇인지. 사회의 질시와 제대로 구축되지 못한 사회안전망과 복지제도의 미비 등으로 가슴에 큰 멍에를 안고 사는 장애인 부모들의 단 하나의 소망은 “우리 아이보다 하루 더 사는 것!”이라고. 무슨 말인가 생각했는데... 그 장애아이, 그리고 장애인으로 살아갈 자식에게 쏟아질 사회의 편견과 눈길을 너무나 잘 알기에 부모마음이 그런 것이란다. 그나마 아이를 돌보던 엄마마저 먼저 세상을 떠나면 세상에 홀로 남은 그 장애인은 누가 돌볼 것인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2010.04.15 -
[파주] 박찬옥+이선균+서우, 원더풀~
파주 괴물같은 배우의 놀라운 영화 파주는 경기도 서북단에 위치한 휴전선 접경지역 마을이다. 모르긴 해도 그런 지리적 특성상 군부대가 많을 것이고, 뒤늦게 이곳저곳에 불도저식 개발이 진척되면서 그 곳에 터를 잡고 사는 토착주민들에겐 특별한 저항심리가 자리 잡고 있을 듯하다. 적어도 ‘파주’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려는 박찬옥 감독이 생각하기에는 말이다. 마치 ‘밀양’을 바라보는 이창동 감독처럼. 박찬옥 감독 (박찬욱이 아니다!)은 ‘파주’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만들었다. 제목까지 쿨하게 ‘파주’이다. 어제 서울 시내 한 극장에서 의 기자시사회가 열렸다. 영화 상영 뒤에는 감독과 주연배우들이 참석한 가운데 영화 뒷이야기를 나누었다. 는 어떤 영화이고, 감독이 말하려고 한 ‘파주’는 어떤 이야기를..
2009.10.22 -
[국가대표] 우린 대한민국 국가대표야~
김용화 감독의 란 영화를 보았다. 올 여름 윤제균 감독의 와 함께 나란히 한국영화의 수준과 위상을 드높인 영화로 영화팬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영화이다. 두 영화를 다 보고 나온 관객이 “이 영화가 좋다”, “저 영화가 더 낫다“라고 논쟁이 붙을 정도이니 정말 한국영화계로서는 2009년 여름이 축복받은 씨즌임에 분명하다. 와 의 전작을 통해 사회현상에 대해 범상치 않은 시각을 보여주었던 김용화 감독의 신작 또한 그 전작 못지않은 화제성과 휘발성을 흥행성 뒤에 숨기고 있다. 굉장하지 않은가.삼류, 따라지, 루저의 삶 영화는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스키 점프 팀이 급조되면서 시작된다. ‘바덴바덴’을 기억하는가? 그런 일이 있었다. 동계올림픽을 위해 무주와 평창이 힘겨루기한 일도 있었다. 그런 대규..
2009.08.12 -
[해운대] 해운대가 살아있는 영화
윤제균 감독이 [해운대]라는 ‘블록버스터’ 재난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영화계(저널포함) 일부에서는 반신반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윤제균 감독은 , , 그리고 등의 전작이 말해주듯 우선은 스케일에서는 아기자기한 코미디가 장기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윤제균 감독이 영화판에 뛰어들기 전에 광고회사에서 일했었고 영화가 좋아 영화판에 뛰어들었다는 것을 안다면 그의 재능을 너무 한쪽으로 재단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윤제균 감독은 주위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형 블록버스터, 윤제균 스타일의 재난영화를 만들어낸다. 그것도 놀랍도록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말이다. 작년(2008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던 어느 날. 부산 해운대 백사장 이면도로에서는 아침부터 교통 통제가 시..
2009.07.28 -
[사과] 사랑이 우물에 빠진 날 (강이관 감독, 2005)
지난 주 극장에서 개봉된 강이관 감독의 [사과]는 푸릇푸릇한 ‘신작’이 아니다. 지난 2004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관객에게 선을 보였던 ‘구작’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창고에서 4년을 썩히더니 이제야 개봉된 것이다. 지난 몇 해 동안 한국영화는 외형적으로 초호황을 누린다고 생각했었다. 해마다 한국영화가 100편 이상씩 제작되었지만 극장에서 개봉을 못한 영화가 꽤 된다. 그러다가 올해 들어 한국영화 위기를 맞으며 제작편수가 ‘확~’ 줄어들면서 그동안 운 나쁘게 극장에 내걸리지 못한 영화들이 빛을 발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후죽순처럼 멀티플렉스가 들어선 이 땅에서 말이다.연애와 결혼, 그리고 이혼 영화는 결혼적령기에 충분히 접어든 여인의 연애담, 혹은 이혼담이다. 괜찮은 회사에..
2008.10.20 -
'놈놈놈'만큼 재밌는 만주 웨스턴 특별전
1940年代 만주 벌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피 끓는 사내들의 대활극 베이징올림픽 야구경기만큼 한국 사람을 단합시켰던 2002년 월드컵. 서울에는 상암동에 월드컵경기장이 세워졌다. 그 월드컵경기장 인근 상암동 DMC(디지털 미디어 센터)는 최근 몇 년 사이 멀티미디어-콘텐츠관련 기관, 업체들이 하나둘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한국영상자료원도 있다. 원래 서초구 예술의 전당에 있던 한국영상자료원이 최신식 건물의 상암동으로 이전한 것은 올 봄의 일이다. 영상자료원은 예전부터 열혈영화팬들에겐 은밀한 성지였다. 적어도 옛 한국영화에 대한 배고픔과 목마름을 ‘상상 이상’으로 해소시켜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매달 특이하면서도 획기적인 영화전이 열린다. 얼마 전 괴짜 김기영 감독의 전작 회고전이 열린데..
2008.08.22 -
[아가씨 참으세요] 정윤희를 기억하시나요?
영화관련 현장에 쫓아다닌지도 꽤 된다. 사실 가장 만나보고 싶은 영화인은 왕가위 감독도 아니고 김태희도 아니다. 바로 정윤희이다. 1970~80년대 한국 최고의 영화배우였던 바로 그 정윤희 말이다. 결혼과 함께 완전히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진 불세출의 스타이다. 딱 한번 그녀를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회가 있었다. 어느 해인가 한국영상자료원(서초동에서 있을 때)에서 무슨 회고전을 열었는데 정윤희가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었다. 결론은? 정윤희는 참석하지 않았고 대신 부군과 딸이 참석했었다. 그때 상영된 작품은 정진우 감독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였다. 정말 보고 싶다. 정윤희가!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정윤희 출연작품을 제대로 본 게 없다. 소싯적에 동네 삼류극장(재재개봉관)에서 본 [뻐꾸기] 아니면 [..
2008.07.23 -
[반금련] 김기영 그 감독, 진짜 기이하다
요즘 젊은 영화팬들은 김기덕 감독의 일련의 영화에 대해 ‘엽기’나 ‘비주류’, 혹은 ‘독창적’, ‘전위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김기덕 감독 훨씬 이전에 그러한 평가를 받았던 충무로 기인 감독이 있었다. 바로 김기영 감독이다. 김기영 감독은 1919년생이다.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경성의전(서울의대 전신) 출신이다. 그는 모두 32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영화는 23편이다. 그가 만든 작품 중에는 흥행성공작도 있고, 참패작도 있다. 그가 활동하던 시절은 박통시절이었고 적어도 영화계 현실로 보자면 암흑기에 해당한다. 영화저널리즘이란 것도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고 말이다. 그의 작품들은 거의 검열과 편집에 의해 걸레짝이 되어 너덜거리는 상태로 전해졌다. 그가 찍었던 오리지널은 어떤 모습이었..
2008.07.04 -
[크로싱] X같은 ‘인생은 아름다워’ (김태균 감독 Crossing, 2008)
(박재환 2008.6.25.) 지금부터 10년 전인 1998년 12월 20일 오후 8시, KBS 1TV [KBS스페셜]에서는 충격적인 르포 프로그램을 하나 방송했다. 제목은 >였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RENK(북한민중긴급행동네트워크)가 여러 경로를 통해 위험하게 촬영한 북한 주민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당시 한국 매체에는 북한이 연이은 수재로 ‘굶어 죽는 사람’이 생기고 있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전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북한의 어느 하늘 아래서 실제로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를 속 시원하게 알기란 어려웠다. 그런 시점에 목숨을 건 몇몇 비디오 액티비스트들이 찍어온 영상물은 당시 한국 시청자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방송내용은 북한의 어느 도시의 모습을 통해 당시 북한의 헐벗은..
2008.06.25 -
[주유소습격사건] 공짜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올해 대한민국 출판계에 최고의 화제를 몰고온 책은 상명대 중문과 김경일교수의 작품 라는 책이다. 물론, 탤런트 서갑숙의 자전적 에세이 책이 더 화제거리일수도 있지만, 우리나라 전체의 문화인식과 사회체제의 변화의지 측면에서 보자면 이 '공자죽이기' 책이 더 중요할 것이다. 이 책은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런 형편이 되어버린 것은 맨날 공자가 어쩌고하는 주입식 교육과, 위선과 비도덕으로 똘똘 뭉친 어줍짢은 어른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그 사람의 주장을 좀더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그 결과 현락한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를 위한 도덕이었고, '남성'을 위한 도덕이었고, '어른'을 위한 도덕이었고,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이었고, 심지어..
2008.03.10 -
[가문의 영광] 영광스런 영화
나 라는 영화에도 혹평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 2001년 대박영화 나 2002년 흥행대박영화 같은 조폭 찌라시 영화에 혹평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 땅 400만 영화팬을 홀리고, 적어도 그 만한 수의 인구가 비디오로 다시 본-게다가 이번 설 명절에 SBS-TV에서 방송된 의 시청률은 24.3%였단다 우와~ 그러니 이런 현실적 수치 앞에서 의 휘황찬란한 전과를 부정하는 것은 이 나라 400만 영화팬에 대한 모독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미국 땅에서 쓰레기 같은 영화가 1억 달러, 2억 달러를 꾸역꾸역 벌어들일 때에도 경건하게 지켜보았다. 이제 우리 땅에서 그런 경우가 벌어졌다고해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소리를 해서는 안된다. 산업으로서의 영화와 트랜드로서의 영화, 그리고 향유하는 오..
2008.03.10 -
[밀양] 사람의 아들
[밀양]은 소설가 출신의 이창동 감독이 소설가 이청준의 단편 [벌레이야기]를 영화로 옮긴 것이다. 소설가 이청준은 문학가로서도 톱클래스 작가일뿐더러 한국 영화판에서도 꽤 대접받는 작가이다. 오래 전 [이어도]가 있었고 최근엔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이 바로 그가 쓴 소설이 바탕이다. 원작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 보았기 때문인지 영화를 보면서 제일 먼저 든 느낌은 이 영화는 ‘문학적인 영화’임에 분명한데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마치 빌려 온 남의 옷에 그럴싸한 장식을 단 것 같은 부조화, 비록 화려한 옷의 어떤 비밀을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뿌린 흙탕물 자국을 바라다보는 것 같은 불편함들. 도서관에서 이청준 원작 소설을 찾기 시작했다. 원작은 지난 1985년 계간지 >에 처..
2008.03.01 -
[꼬방동네 사람들] 질박한 사람, 진실된 영화 (배창호 감독 People in the Slum 1982)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신문에 난 영화광고를 스크랩하는 것이 취미였다. 아직도 기억하는 것은 이 의 신문광고이다. ‘일간스포츠’에 전면광고가 났었는데, 요즘이야 칼라로 2면 광고까지 나는 시대이지만, 당시에는 영화 전면광고가 극히 이례적이었다. 시커먼 잉크가 여전히 묻어나는 그 영화광고. 그 영화는 사실 굉장한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푸른극장’이란 곳의 개관기념작이었을 것이다. (나야 당시 부산 살던 아이라서 그게 얼마나 크고, 어떤 정도의 극장인지는 몰랐다. 아마 이 극장은 폐관되었든지 아니면, 연흥극장으로 이름을 바꾸었을 것이다.) 다른 것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노란 우산을 썼던 김보연이 무척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었다. 이 영화 감독은 배창호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한국의 스필버그’..
2008.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