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싱퀸] 선거는 쇼다!

2012. 1. 26. 11:05한국영화리뷰

 


올해는 선거의 해이다. 4월 11일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가 있고, 12월 19일에는 MB의 뒤를 이어 우리나라를 이끌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 지난 1월 14일에 열린 대만 총통선거를 필두로 3월 4일에는 러시아 대선이, 11월 6일 미국 대선이 있다. 이런 절묘한 시점에 선거를 소재로 한 영화가 한 편 개봉되었다. 이전에 <방과 후 옥상>이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꽤 절묘한 학교폭력 코미디를 만들었던 이석훈 감독의 신작이다. 이 영화, <댄싱퀸>은 정치적 외피와 연예계 스타탄생이라는 당의정을 입힌 확실히 웃긴 코미디이다. 그리고 코끝이 짜릿한 감동코드도 내재되어있다. 설 특선영화, 선거의 해에 안성맞춤인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다뤄지는 선거는 서울특별시장 선거이다. 참고로 현 박원순 시장의 임기는 2014년 6월 30일까지이다.

남편은 서울시장 후보, 아내는 슈스케 후보

옛날 대학 캠퍼스에 최루탄 날릴 때 인근 디스코텍에서는 날라리 언니들이 필을 받아가며 춤을 추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육법전서 끼고 살던 남자 대학생은 얼떨결에 민주투사가 되고 후일 ‘평범한’ 인권변호사가 된다. 날라리 여대생은 그 평범한 변호사의 평범한 아내가 되었다. 세월이 흘렀다고 그 옛날의 열정과 꿈이 완전히 사그라진 것은 아니다. 시대가 그 남자와 그 여자를 세상 밖으로 불러냈기 때문이다. 왕년에 ‘우연한 민주투사’였던 변호사는 어느 날 지하철에 떨어진 사람을 등 떠밀려 구하면서 한순간에 시민영웅이 되고, 몰래몰래 가수의 꿈을 키우던 아내는 온 국민을 오디션 광풍에 빠뜨린 <<슈스케>>에 나간다. 분명 세상은 변했다. 하루아침에 전국지명도 1위의 정치인이 되는 게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닌 세상이 된 것이다. 자, ‘민주열사 +시민의 영웅’ 변호사는 서울특별시장이 될 수 있을까? 왕년의 ‘카수’ 지망생 정화는 늦깎이 아이돌 걸그룹이 되어 공중파TV에 나올 수 있을까. 때는 바야흐로 2012년 선거의 해, 대한민국이다! 먼저 신문을 보자!

사회면

자고나면 학교폭력과 사회적 범죄이야기가 신문지면을 채운다. 각양각색의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인권변호사를 찾는다. 분명 경기가 어려운 시대이지만 개발독재시절, 혹은 법률서비스가 남의 나라 이야기일 때는 상상도 못했던 극단적 법률논쟁의 최전선에 살아가는 변호사는 호황일 것 같다. 그런데 황정민 변호사의 형편으로 봐서는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세상엔 왜 이리 억울한 일이 많고 인권변호사 황정민은 왜 그리 허술한지. 

연예면

대세는 걸 그룹이고, 섹시 댄스이다. 어느 날 <<전국노래자랑>>에서 엉덩이 한번 흔들었다고 누구나 가수가 될 수는 없다. <<슈스케>>에 나와 드라마틱한 사연을 풀어놓을 ‘백그라운드 인생’이 있어야한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기획사에 묶여 마르고 닳도록 기량을 갈고 닦아야한다. 그런 과정에서 콜로라도로 호적을 옮기든지 애 딸린 아줌마이면서도 처녀행세를 해야 할 수밖에 없는 기막힌 라이프 스토리, 즉 ‘드라마’가 있어야한다. 그런 면에서 서울시장후보의 아내임을 숨겨야하는 드라마틱한 요소가 또 어디 있으리오.

정치면

정권교체가 반복되면서 ‘여와 야’라는 개념도, 선거가 거듭되면서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도, 인터넷이 기본이 되면서 ‘기성세대와 신진세력’이라는 판 가르기도 애매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다들 홈페이지는 갖고 있으며 SNS를 기본으로 다룰 줄 알며, 한 정당의 운명을 전화여론조사에 맡겨도 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지하철에서 시민을 구한 영웅은 기존의 돈봉투 의원나리들보다 백만 배는 경쟁력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 인터넷을 활용한 선거유세나 트윗 인증샷 같은 이야기는 안 나온다)

황정민, 여의도에 가다 



어찌 보면 한국인들은 특히나 정치에 민감하고 열정적이다. 9시 종합뉴스나 일간지 1면 기사가 항상 정치이야기이고, 트윗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은 연예인관련 아니면 정치적 멘트인 것만 보아도 말이다. 그런데 막상 영화에서 정치드라마를 다루면 재미가 없고 호응도가 낮다. TV사극에서 조선시대 궁중 음모극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댄싱퀸>은 똑똑하게도 생활정치를 다루면서 연예계에 한발을 걸친 코미디로 완성되었다. 게다가 설에 맞춰 개봉되었으니 기획-제작-홍보 등이 잘 맞아 떨어진 셈이다.

줄곧 우직한 남자에 성실하다는 이미지를 주는 역할을 맡았던 황정민이나 연예계에 들어오기까지와 연예계 입문이후가 진짜 드라마인 엄정화가 ‘자기 이름 그대로’ 영화에 등장하니 관객들은 기묘한 시청의 동질감까지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영화는 확실히 영화일 뿐. 수많은 영화에서 보여준 정의의 정치인이나 우리 서민의 친근한 벗을 선거 바로 다음날부터는 만나보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투표권을 가진 시민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우선은 비토세력, 후보 결격사유에 대한 지평을 넓히게 된 계기가 된다. 

험한 말로 딴따라, 좋은 말로 대중문화의 수호자들도 이제 평범한 정치인으로 여의도를 밟을 수 있다는 것이고, FTA나 전략적 대외관계 등 고담준론보다는 애들 밥 걱정, 콩나물가격걱정이 더 피부에 와 닿는 선거구호라는 것이다. 4대강 콘크리트 건설 같은 이야기는 달나라우주경쟁처럼 피부에 ‘안’ 와 닿는다는 아젠더가 된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변한 모양이다. 아니라고? 아직도 이데올로기를 걱정하고, 미래 후손을 위한 지속가능한 경쟁을 이야기한다고? 글쎄, 선거를 통해 결정 나겠죠.

이태리에서는 오래 전  포르노배우(치치올리나)가 의원이 되었다. 거의 실신할 정도로 기진맥진하면서 시민사회정의를 울부짖던 스미스 씨(<스미스씨 워성턴에 가다>▶리뷰보기)의 동네에선 이런 영화도 만들어졌었다. 에디 머피가 나왔던 <제이 제이>(원제: The Distinguished Gentleman)라는 영화가 있다. 제프 존슨이라는 의원이 급사하자 하필이면 이름이 같았던 사기꾼 하나가 순전히 ‘그 이름만을 기억’하는 유권자들의 혼란과 오판을 근거로 선거에 당선되어 국회에 진출한다. 사기꾼 하나가 국회에 들어갔다고 더 나아지거나 더 나빠지거나 하진 않을 것 같다. 코미디에서는 말이다.

아마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제작자는 욕심을 부릴 것 같다. 서울시장 재선이 아니라.. “그래, 이번엔 대선이야!”라고.  (박재환, 2012.1.26)


정치영화로 <올 더 킹즈 맨>(모두가 왕의 사람들)이란 명작도 있습니다. ▶리뷰는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