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노트] 영화를 찍는 천만가지 방법 중 하나‘

2012. 1. 19. 15:59한국영화리뷰


당신은 자신의 드라마틱한 삶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들고 싶지 않은가. 아마도 한때는 영화감독이 되어 자신의 가족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고, 자신의 꿈을 그리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거대자본과 대단한 테크놀로지, 그리고 카리스마 넘치는 감독의 연출역량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누구나 영화감독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남이 보든 말든 자신의 영화를 찍고 유튜브에 올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어떻게? 우리에겐 ‘아이폰’이 있으니깐.

불과 얼마 전까지 그랬다. 거대한 영화촬영카메라가 아니어도 ‘아이폰’만 있으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박찬욱과 그의 친동생 박찬형 감독이 아이폰으로 만든 영화 <파란만장>이 깐느국제영화제에서 상을 타기도 했다. KT는 아이폰의 국내 안착을 위해 서둘러 유명 영화감독에게 아이폰 영화촬영을 의뢰하여 작년 아이폰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영화를 해본 ‘진짜’ 영화감독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여파는 넓고 멀리 퍼진다. 아이폰을 손에 쥔 사람들이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물론, 영화학도, 영상원 재학생, 영화매니아들이 주축이지만.

그리고 2012년이 되면서 새로운 디지털 디바이스가 등장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라는 물건이다. 갤럭시 노트는 5.3인치 대화면에 스타일러스 펜이 마케팅 포인트인 줄 알았는데 얼마 전 뜻밖의 이벤트를 펼쳤다. <<갤럭시노트로 만든 시네노트>>라는 영화시사회를 가진 것이다. 아이폰에 대항해 삼성이 내놓은 야심작이다.

<시네노트>는 유명 웹툰작가 손제호와 이광수의 작품을 모티브로 3명의 유명 영화감독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만든 것이다. 물론 안드로이드 2.3, 1.5GHz 듀얼코어, 5.3인치 HD슈퍼아몰레드, 터치스크린을 가진 5.3인치 갤럭시 노트로 만든 단편영화이다. 지난 화요일 서울 청담동 CGV에서는 시네노트의 시사회가 진행되었다.


 

아이폰으로, 그리고 캐논 DSLR 디카로 영화를 찍는 세상에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행사일 수도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웹툰 작가를 앞세웠고 충무로 톱 클래스 감독들을 활용했다는 것. <써니>의 강형철, <고지전>의 장훈, 그리고 <여배우들>의 이재용 감독이 합류했다. 이들 감독이 만든 세 편의 단편에서 하정우가 모두 주연을 맡아 팔색조 연기를 선보인다. 게다가 이승철이 이 영화의 음악을 맡았으니 <시네노트>는 꽤 공들인 상품 광고이며, 예술작품이며, 디지털 아트인 셈이다.

웹툰작가 노블레스는 콤비 작가이다. 손제호가 글을 쓰고 이광수가 그림을 그린다. <시네노트>는 이들이 만든 짧은 만화 인트로를 바탕으로 각 영화감독의 실사작품이 이어진다. 세 감독의 개성미 넘치는 쾌활한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 장훈<로스트 넘버>

웹툰으로 시작된다. 한 남자-하정우-가 핸드폰 벨소리에 잠을 깬다. 그는 숫자 난독증을 가진 건축설계사이다. 매번 CAD로 근사한 빌딩을 짓지만 마지막 시뮬레이션 테스트에서 합당한 숫자를 정하지 못해 매번 건물이 붕괴되고 만다. 어느 날 자신의 트라우마랑 싸우는 와중에 여자친구가 유학을 떠나게 된다. 인천공항에서 여친을 배웅하고 차에 오르는 순간 교통사고를 당하고 코마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1년.  마침내 자신의 트라우마를 깨고 ‘숫자’를 찾아낸다. 여친과 마지막 사진을 찍은 바로 그 날짜!

이재용< 십분 만에 사랑에 빠지는 방법>

하정우는 광고주로부터 신개념 영화콘텐츠제작을 의뢰받는다. 빠듯한 예산과 일정으로 작품을 만들어야하지만 하정우는 스튜어디스와 열애에 빠진다. 하정우는 하와이 해변이 그려진 캠핑카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다. 하정우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스튜디오에 폭탄선언을 한다. 여기는 하와이이고, 진짜 새로운 신개념 영화를 찍겠다고! 화상통신으로 원격연출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 전대미문의 영화촬영 소동은 유쾌하게 이어진다.

강형철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그다지 잘난 것 없는 미팅남 하정우. 소개팅녀가 자동차 키를 가지러 간 사이 지하주차장에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에게 마법의 ‘갤럭시 노트’가 주어진다. 하정우는 이때부터 갤럭시노트가 시키는 대로 엘비스 프레슬리가 되기도 하고, 쿵푸 달인이 되기도 하고, 서부의 건맨이 되기도 한다. 생각나는 대로 무엇이든 소원을 이루는 하정우. 소개팅녀와는 잘 될까.

세 편의 단편영화는 감독들의 자유분방한 생각들을 맘껏 영상화시킨다. 있을 듯한 디지털세상을 그럴싸하게 만들어내는 것이다. 세 감독의 자신의 장기를 살려 액션, 코미디, 멜로라는 각기 다른 장르를 완성시킨다. 물론, 그 와중에 스폰서인 ‘삼성전자’의 신제품 갤럭시노트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이게 소니 캠코더로 찍었는지 캐논DSLR로 찍었는지 아이폰으로 찍었는지 알 수 없다. 영화를 보는 사람 입장에선 “와우, 이걸 갤럭시노트로 찍었다고? 몇 만화소지? 야간 씬 장면은 어떻게 찍었지?”하는 궁금증이 들 정도.

정말 갤럭시노트로 이렇게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흥미로운 방식이다. 10년 쯤 전 BMW는 토니 스코트, 왕가위, 존 우(오우삼), 이안 등 세계적인 감독들을 동원하여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작품 구성은 감독들에게 일임하고 오직 BMW만 나오면 된다고 주문했다. 그런데 왜 찍었을까. BMW가 멋있게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은 CF감독이 더 잘 할텐데... 그만큼 홍보효과가 있었겠지. 장훈, 이재용, 강형철 감독이 왜 하정우를 캐스팅하여 이 영화를 찍었을까. 시네노트의 막강한 기능을 자랑하기 위해서겠지.

앗, 그런데 일반인들도 시네노트만 있으면 이렇게 멋진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하정우를 캐스팅하지 않아도, 이승철의 노래가 없더라도 멋진 영상이 나올까. 박찬욱 감독의 아이폰 영화가 그냥 아이폰 영화라고? 제작비가 13만달러 (1억 5천만원) 들었단다. 시네노트는 얼마짜리 영화일까. 여하튼 재미있긴 하다. 

참, 중요한 이야기를 빠뜨렸다. <시네노트>는 갤럭시노트 홈페이지에 가면 공짜로 볼 수 있다. 순차적으로 ‘개봉’한다니 한번쯤 보시길.   주소는 http://howtolivesmart.com/cinenote    (박재환, 2012.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