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리뷰(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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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 그해 겨울 가장 조용했던 빙판 (조은령 감독,1998)
(2003년 4월) 아침에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조은령 감독이 뇌진탕으로 사망했다는 기사입니다. 서른 한살이라는 정말 젊은 나이랍니다. 명복을 빕니다. 이전에 쓴 조은령 감독님의 리뷰. (**1998년 11월에 쓴 글입니다**) 먼저 줄거리부터 소개한다. 보영이는 어느날 얼음을 지치려 빙판으로 간다. 원래 같이 가기로 한 친구 경희는 "울 엄마가 못 가게 하는데 어떡해. 공부하래..." 그래서 보영이는 혼자 얼어붙은 강물에서 스케이팅 한다. 혼자 하니 재미없지. 그래서. 소녀는 주섬주섬 챙겨 집으로 갈까 하는데 한 소년을 발견한다. 소녀는 놀래서 뒤로 넘어지고, 소년이 다가와서 일으켜 세우려 한다. 보영이가 순간 당황하고 경계의 눈빛을 보이는 것은 당연. 소년은 갑자기 하얀 눈이 덮인 땅바닥에..
2019.07.30 -
[걸캅스] 웃다가 웃다가 놓친 것들 (정다원 감독 Miss & Mrs. Cops, 2019)
이 극장가를 맹폭하는 이 때에 용감하게 총을 뽑아든 한국영화가 있다. 여배우 둘을 내세운 버디무비 (감독:정다원)이다. 라미란-이성경이 주인공이다. 애매하다. 왕년에 날리던 기동대 형사 출신 주무관 라미란과 꼴통형사 이성경이 손을 잡고 ‘디지털 성범죄’ 나쁜놈들을 일망타진하는 것이란다. 이들은 경찰서 주력(!) 부서에서 밀려난 ‘잉여’ 인력이다. 뻔해 보인다. 당연히 현장의 지원 없이, 여성의 힘만으로,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고 비열한 범죄자들을 통쾌하게 물리칠 것이다. 암. 그래야지. 영화 보기도 전에 다 알 것 같은 스토리이다. 그런데, 영화는 뜻밖의 재미를 안겨준다. 그것은 윤상현의 등장순간부터이다. 관객들은 예상 못한 인물설정에 당황하며 곧바로 걸쭉한 캐릭터의 욕설과 함께 정신없이 재밌는 107분의..
2019.07.29 -
[배심원들] 8명의 성난 사람들 (홍승완 감독 Juror 8, 2018)
법과 관련된 경구 중엔 유명한 것이 많다. “죄 없는 사람이 돌을 던져라”부터, “유전무죄, 무전유죄”까지. 빵 한 조각을 훔친 장 발장이 법정에 섰다고 가정해 보라.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중형을 내릴 판사도 있을 것이다. 세상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 채, 고시원에 틀어박혀 사법전서만 달달 외던 샌님들이 ‘기막힌 사연의 피고’를 어찌 지혜롭게 단죄할 수 있으리오. 그런데 당신이 재판관이 된다면? 미국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법정드라마에서 ‘배심원’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검사와 변호사는 배심원을 상대로 불꽃 공방을 펼친다. 기실, 그 배심원들은 법을 잘 알지도, 피고인을 알지도 못한다. 법전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일반 ‘법’ 상식의 눈높이에 맞춰 ‘죄와 벌’을 평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2019.07.29 -
[기생충] 버닝 패밀리 (봉준호 PARASITE,2019)
봉준호 감독의 신작 은 작금의 한국 경제상황에 비추어보면 반지하에 사는 전형적인 ‘하층’ 서민가족의 자급경제를 다룬 블랙코미디이다. 호구지책으로 박스 접기 같은 단순노동으로 살아가는 이들 가족에겐 ‘계획’이란 것은 사치일 수도 있다. 어느 날 백수 아들 기우(최우식)의 친구(박서준)가 찾아와서 괜찮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넘겨준다. 박서준은 이 집에 재물운과 합격운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육사 출신의 할아버지가 수집했다는 산수경석을 선물한다. 이를 두고 기우는 “아, 상징적인 거네”라고 말한다. 이 때부터 관객들은 천재감독 봉준호의 ‘상징’과 ‘은유’를 찾아 영화에 빠져든다. 인물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 소품배치 하나하나에 대해 숨겨진, 대단한 의미를 찾기 위해 집착하게 된다. 기우에..
2019.07.28 -
[나랏말싸미] 영화가 정설과 달라 서로 사맛디 아니할새 (조철현 감독 2019)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필연적으로 ‘역사왜곡’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오랫동안 ‘한글창제’와 관련된 신화 가운데 하나는 집현전에서 밤새 연구하다 잠이 든 정인지에게 세종이 곤룡포를 덮어주었다는 것이다. 이 장면은 이야기에서 소설로 전승되면서 ‘애민의 상징 세종, 고뇌의 결과물 한글’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데 일조했다. 그런데, 한글이 집현전에서 만들어지지 않았고, 세종의 힘이 아니었다면? 하늘에서 떨어졌나? UFO를 타고 온 외계인이 전해주었나? 조철현 감독은 ‘한글 창제설’에 얽힌 많은 버전 중에 신미대사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불러낸다. 영화에서 거듭 나오는 말이 고려는 불교 때문에 망했고, 조선은 반면교사로 삼아 유교를 숭상하고, 명을 받들어 천세만세 살..
2019.07.25 -
[산나물처녀] 순심과 달래, 찰스와 리처드 (김초희 2016)
(박재환 2018.08.13)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에 수십 개의 국제영화제가 사시사철 열리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만 있는게 아니다. 9월엔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영남알프스에서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올해로 3회째. 장르적 특성을 보여주는 영화제이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 맞춰 KBS 시간에서는 영화제가 제작지원을 한 세 편의 독립영화를 소개한다. (김초희 감독), (최진영 감독), (김준성 감독)이다. 김초희 감독의 는 우리나라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순심(윤여정)은 미지의 행성에서 온 70세 노처녀. 짝을 찾아 지금 막 지구에 도착한 것이다. 그가 도착한 곳은 ‘남자’라고는 코빼기도 안 보이는 숲속. 순심은 혼자 나물을 켜고 있는 달래(정유미..
2019.02.11 -
[공작] 롤렉스와 호연지기 (윤종빈 감독 The Spy Gone North, 2018)
(박재환 2018.08.13) ‘블랙리스트’ 정권을 지나자마자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류의 영화가 쏟아지고 있다. 윤종빈 감독의 도 그 중의 하나이다. ‘공작’은 YS정권 시절에 있었던 대북스파이활동을 다룬 작품이다. 정확히는 1993년, ‘북핵위기’가 고조될 때이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둘러싸고 의문스런 행보를 이어간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를 선언하면서 클린턴은 이른바 외과수술식 폭격도 불사하겠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올 때이다. 당시 YS정권의 안기부(국정원 전신)에서는 이 엄중한 사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왔는지 은 흥미진진하게 전해준다. 영화는 당시 중국에서 활동한 한 안기부 요원의 활약상을 저본으로 삼는다. ‘박채서’란 인물이다. 정보사 요원이었던 그는 안기부..
2019.02.11 -
[뼈] 1949년 4월의 제주도 (최진영 감독,2017)
(박재환 2018.08.14) 올해는 제주도 4.3항쟁 70주년 되는 해이다. 광복의 길목에서 제주도는 비극의 섬이 되어버렸다. 당시 수많은 제주도민이 어이없게도 국군과 경찰의 손에 학살당했다.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을 영혼들. 제주 4.3항쟁과 그 무고한 희생자를 다룬 영화가 띄엄띄엄 만들어지고 있다. 최진영 감독의 단편영화 도 그런 작품의 하나이다. 할아버지 이장(移葬) 문제로 제주에 내려온 동희(류선영)는 선배의 부탁으로 마침 일본에서 제주도로 온 하루코 할머니(이영원)를 모시게 된다. 하루코 할머니는 어머니의 유골을 옛 고향 산천에 모실 생각이다. 동희는 잠시 주저하더니 곧 하루코 할머니를 따라 산으로 오른다. 산에서 할머니로부터 옛날이야기를 듣게 된다. 1949년의 제주도의 그 산에서 있었던 ..
2019.02.11 -
[목격자] 살인자와 방관자 (조규장 감독 The Witness, 2017)
(박재환 2018.08.16) 한밤의 아파트, 훤히 트인 공간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부녀회장은 집값이 떨어지는 게 걱정이다. 그런데 살인사건이 일어날 때 그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사람이 있다. 비명소리에 밖을 내다보던 남자. 하필, 살인범의 무시무시한 눈과 마주쳤다. 살인자는 여유 있게 이 남자가 사는 집을 확인하고 있다. 1층, 2층, 3층.... “6층이군!” 경찰에 신고하면 다 해결될 것 같은 단순한 상황. 그런데, 이 남자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영화 이다. 2005년 유연석-문채원의 로맨틱 코미디 의 조규장 감독이 내놓은 작품은 가장 안전하다고할 자기 집 앞마당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둘러싸고 보이는 소시민의 현실적 갈등을 다룬다. 신고하지 못하는..
2019.02.11 -
[운동회] 운동회의 목적 (김진태 감독,2016)
(박재환 2018.08.21) 아시아인들이 스포츠를 통해 우정과 평화를 나누는 제18회 아시안게임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팔렘방에서 열리고 있다. 아시안게임 기간에 어울리는 ‘스포츠영화’ 한 편이 '무려‘ KBS 시간에 편성되었다. 올 봄 극장에서 개봉된 김진태 감독의 이다. 초등학교 운동회, 그 열띤 현장으로 시청자를 몰아넣는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의 그 운동회로! 영화는 단순한 초등학생들의 이어달리기아 엄마,아빠와 함께 하는 이인삼각 경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 각기 처한 고달픈 상황을 ‘그랜드호텔’식으로 보여주면서, 갈등은 증폭하고, 마침내 운동회장에서 그 대단원의 막을 구성한다. ‘독립영화’로서는 거창하고도, 거대한 스토리 전개이다. 주인공은 9살 소녀 승희이다...
2019.02.11 -
[소금별] 소금별의 눈물은 특별히 짜다 (이준학 감독, 소금별 The Salt Planet 2014)
KBS 독립영화관 2018년 9월 4일 방송 오늘(2018.9.4) 밤 KBS 시간에 방송되는 영화 은 꽤 슬픈 영화이다. 오래 전 유승호가 나왔던 ‘집으로’가 생각나는 사람도 있을 테고, 개그콘서트에서 블랑카가 말하던 “사장님 나빠요”란 유행어가 떠오를지 모른다. ‘소금별’은 그런 이야기이다. 열세 살 소녀 지우(박서연)는 아빠의 손에 이끌려 시골 할아버지 댁에 맡겨진다. 아빠 엄마가 이혼했단다. 엄마는 미국으로 가 버렸고 아빠는 일이 많아 제대로 키울 수가 없어 방학동안 시골집에 맡긴 것이다. 할아버지는 염전을 하신다. 그런데, 자기 또래의 남자애가 고된 염전일을 거들고 있었다. 시골집도, 시골생활도 마뜩찮은 지우는 그 남자애 이름이 ‘미잔’(박희건)이고, 피부색이 달라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는다는 사..
2019.02.11 -
[물괴] 한양의 괴물 (허종호 감독 Monstrum 2018)
(박재환 2018.09.27) 지난 2012년 개봉되어 1,230만 관객을 동원한 (추창민 감독)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록된 에 기재된 단 한 줄의 문장에서 출발한다. 광해가 내린 전교, “숨겨야할 일들은 기록에 남기지 말라 이르다”(傳敎曰曰 可諱之事 勿出朝報)라는 짧은 문장에 숨은 비밀을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드라마를 확장시킨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그야말로 이야기의 보고이다. 중종 대에는 ‘물괴’(物怪)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중종 22년(1527년)의 기록에 따르면 "삽살개 같고, 크기는 망아지 같은 것이 나타나 궁궐 안을 소란스럽게 했다“고 기록했다. 당시 한양을 공포로 몰아넣은 ‘물괴’의 정체는 무엇일까. 충무로의 상상력은 이 괴물을 블루 스크린으로 완성시킨다. 조선 중종 대에 한양에 역병이..
2019.02.11 -
[협상] 지정협상가 손예진 (이종석 감독 THE NEGOTIATION 2018)
(박재환 2018.09.27) 추석시즌에 맞춰 영화사들은 저마다 공들인 대작들을 내놓았다. 그 중 ‘협상’(이종석 감독)은 윤제균 감독의 ‘JK필름’이 CJ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배급하는 스릴러이다. 충무로의 타고난 이야기꾼이 선택한 ‘협상’에는 어떤 흥행요소가 포진하고 있을까 멜로 퀸일뿐더러 다양한 작품을 통해 충무로의 믿을 수 있는 배우로 굳건한 위상을 지키고 있는 손예진은 이번 작품에서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위기협상팀 하채윤을 연기한다. 위기협상팀? 사무엘 잭슨이 나왔던 할리우드 영화 ‘네고시에이터’에 등장하는 경찰이다. 테러나 인질극이 발생하면 어디선가 나타난다. 경찰과 대치 중인 급박한 상황에서 폴리스 라인을 넘어가 “내겐 무기가 없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다. 요구사항을 이쪽 책임자에게 잘 전달..
2019.02.11 -
[명당] 왕후장상이 될 땅은 따로 있다 (박희곤 감독 明堂, FENGSHUI 2018)
(박재환 2018.09.27) 영화 의 영어제목은 ‘FENGSHUI’이다. ‘풍수’(風水)의 중국어 표기이다. ‘명당’이라 함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몰라도 ‘좌청룡우백호’이고, 장사하는 사람에게는 지하철 초역세권을 의미할 것이다. 대선 때가 되면 “유력주자가 조상 묘를 이장했다”라는 뉴스를 볼 수 있을 만큼 일상적이다. 조선시대에는 어땠을까. 권력욕에 불타는 야심가들이 최고의 지관(地官)들로 하여금 최고의 묏자리를 찾게 한다. 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어떤 사람에게는 ‘믿거나말거나’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목숨과 가문의 존폐가 달린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영화 (박희곤 감독)은 조선 후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 왕(헌종,이원근)은 존재하지만 진정한 왕의 권력을 휘두르지 못한다. 그의 배후에는 수렴청정하는 ..
2019.02.11 -
뷰티풀 데이즈 “그녀의 삶은 계속된다” (윤재호감독,2018)
(박재환 2018.11.26) 지난달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은 오랜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이나영 주연의 저예산영화 ‘뷰티풀 데이즈’였다. 이나영은 10대의 나이에 북에서 중국 땅으로 넘어온 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20대를 보내고 지금은 한국에 정착한 여인을 연기한다. 어느 날 그에게 뜻밖의 사람이 찾아온다. 14년 전, 훌쩍 떠났던 그곳에 남겨둔 피붙이 아들이다. 아들은 “아버지가 죽기 전에 엄마를 무척 보고 싶어 해요.”라고 말한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어던 것일까.감독, 여자의 일생을 이야기하다윤재호 감독은 프랑스에서 미술을 공부하다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단다. 프랑스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한 ‘조선족’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단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중국에 두고 온 아들이야..
2019.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