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개봉영화(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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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 사이에] 쪼코, 휠체어, 그리고 산모 (성지혜 감독, 김시은 설정환)
여기 한 여자가 건널목 앞에 멈칫 서 있다. 좌우로 지나가는 차들. 지나갈 타이밍을 재고 있다. 그 여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다. 18년의 평범한 삶을 살다가 사고를 당한 뒤 휠체어의 삶이 17년을 이어온다. 그의 곁에는 다정한 남편 호선이 있다. 달콤한 신혼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른다. 은진이 임신을 한 것이다. 태명을 ‘쪼코’라 지었다. 행복할까. 이제부터 휠체어를 탄 장애인 은진의 출산분투기가 시작된다. 후천적 장애, 척추 장애를 갖고 있는 은진의 출산은 고난의 연속이다. 병원에서도 각종 위험성을 이야기해주고, 당사자도, 남편도 잘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를 갖고 싶다는 열망은 더해간다. 12주, 24주, 34주가 되면서 행복한 출산의 희망보다는 좌절과 죄책감을 더 갖게 된다. 성지혜..
2025.09.08 -
[BIFAN리뷰] ‘층’ 타란티노식 층간소음 해결법 (조바른 감독)
열대야가 극성을 부리는 염하(炎夏)의 날이 이어지고 있다. 간밤에 잘 주무셨는지. 혹시 아파트 ‘층간소음’으로 고통스러운 밤을 보내지는 않는지. 최근 들어 ‘층간소음’으로 야기된 이웃 간의 다툼이 비극적 결말로 이어지는 뉴스를 심심찮게 접한다. ‘층간소음’을 다룬 영화와 연극도 만들어지고 있다.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공개된 이란 단편영화도 ‘층간소음’을 다룬다. 은 2017년 BIFAN에서 이란 단편으로 작품상을 수상하고, 2021년 액션영화 와 공포물 을 감독한 조바른 감독의 단편영화이다. 은 이런 저예산단편공포영화에 어울리는 허름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다. 평화롭게 자고 있는 부부. 아내는 위층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깨서는 남편에게 올라가서 말 좀 해보란다. 어두운 복도, 소..
2025.09.08 -
[발코니의 여자들] 개 같은 날의 오후 (노에미 메를랑 감독)
2020년 개봉된 은 꽤 많은 지지를 받은 작품이다. 의 셀린 시아마 감독과 주인공 노에미 메를랑이 다시 뭉쳤다. 이번엔 노에미 메를랑이 감독과 배우로, 셀린 시아마는 각본에 참여했다. 9일 개봉된 영화 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이야기를 여성이 전하는 여성의 영화이다. 영화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1954)처럼 시작된다. 후덥지근한 지중해의 열기가 끈쩍끈쩍 피부로 느껴지는 프랑스 마르세유의 한 아파트.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물에 사는 주민의 모습을 찬찬히 훑는다. 마치 훔쳐보기라도 하듯이. 이런 남자, 저런 여자 다양하다. 니콜(산다 코드레아누)은 소설을 쓰려고 하지만 글이 풀리지 않는다. 건너편 창가에 웬 섹시한 남자가 옷을 벗고 있다. 절로 눈이 간다. 또 다른 집에서는 아내에게 폭..
2025.09.08 -
[BIFAN리뷰] '풍류소녀살인사건' 계엄해제 전야, 불온한 대만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 영화팬이라면, 대만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챙겨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 하나 포함되어 있다. 대만 홍웨이팅(洪瑋婷) 감독의 런닝타임 12분의 이란 작품이다. 영화 속 배경은 1980년대이다. 대만현대사에 대한 정보가 조금이라도 있어야 이 영화를 오롯이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등굣길 여학생, 샤오밍을 비추며 시작한다. 샤오밍은 노점상 앞에 멈춘다. 대만청춘영화에서 많이 보았던 교복차림이다. 수박을 쪼개 믹서기에 갈아 쥬스를 만든다. 지금처럼 플라스틱 컵이 아니라 비닐봉지에 넣어 끈으로 묶어서 건네준다. 샤오밍 뒤를 남학생 샤오스가 농구공을 튕기며 걸어오고 있다. 샤오밍은 학교가 아니라 극장으로 향한다. (愛的迷殺)이라는 B급 감성 물씬 풍..
2025.09.08 -
[BIFAN리뷰] ‘위빙’ 레이징 걸 (최민지 감독)
이번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도 영화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많은 장단편 영화들이 소개되었다. 최민지 감독의 단편 은 ‘손가락을 찾는 방법’(손윤희 감독), ‘눈 내리는 밤’(대만 정치아오윈 감독), ‘네크로필리아’(나상준 감독)와 함께 [엑스라지2]에 묶여 상영되었다. ‘위빙’의 복싱에서 상대의 훅 공격을 피하고 반격하기 위한 회피 기술이다. ‘뎀프시롤’ 이후 영화에서 다시 만나는 복싱의 기술이다. 과연 최민지 감독은 사각의 링에서, 그리고 그 밖에서 어떻게 상대를 요리할까. 공이 올렸다! 복싱체육관. 수현(석희)는 오늘도 열심히 연습 중이다. 관장이 방어만 하지 말고 좀 더 공세적으로 ‘위빙’ 테크닉을 연습하라고 일러준다. 이때 등장한 민경(박정인)은 수현에게 복싱에 대해 물..
2025.09.08 -
[BIFAN 리뷰] ‘가이노이드’ 여자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셀리아 갈란 감독)
지난 (2025년 7월) 3일 개막한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BIFAN)에서는 200편 넘는 영화들이 소개된다. 장편, 단편, AI영화, XR콘텐츠 등 다양한 작품들이 영화팬의 기대에 부응할 예정이다. 이들 상영작 중에는 현재의 놀라운 과학기술의 발달에 발맞춘, 재기 넘치는 창의적 SF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중 눈길을 끄는 작품 중 하나는 스페인 셀리아 갈란(Celia Galán) 감독의 (원제:Ginoide)이다. 런닝타임 22분의 단편영화이다. ‘안드로이드’가 진화/분화하면서 이제 성별도 생긴 모양이다. ‘가이노이드’는 여성형 안드로이드라 보면 된다. 여기서 잠깐, ‘여성형 안드로이드’는 무슨 용도로 만들어진 것일까. 불온한 생각은 잠깐 접어두고 우리 곁으로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온 미래를 접해..
2025.09.07 -
[바다호랑이] 민간잠수사가 심연 속에서 마주본 것 (정윤철 감독)
누군가에게는 그 날의 시계바늘은 영원히 멈춰버렸을 것이다. 2014년 4월 16일의 아침 말이다.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에는 수학여행 가던 단원고 학생 325명, 인솔교사 14명, 일반인 137명 등 모두 476명이 타고 있었다. 밤새 파도를 헤치며 남으로 향하던 그 배는 운명의 날 오전 8시 49분경 전남 진도군 조도면 맹골수도에서 침몰한다. 배가 뒤집힌 채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때 모습이 뉴스화면에 잡혔다. 그 때만해도 우리 해경이, 우리 해군이 신속하게 현장으로 가서 학생들을, 사람들을 건져내고, 구해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2014년의 대한민국에는 그런 안전의 신화가 없었다. 배는 완전히 가라앉았고, 그 배에는 학생들이 갇혀있었고, 파도는 사나웠다. 이제 그 뒷이야기가 펼쳐진다. 세월..
2025.09.07 -
[엘리오] 저 넓은 우주, 우리뿐일까 (픽사 애니메이션)
는 '토이 스토리'와 '인 아웃', '코코' 등 걸작 애니메이션을 만든 픽사의 최신 작품이다. 미국의 한 소년이 '지구에서의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애타게 '우주로의 픽업'을 원하다가 마침내 외계인의 UFO로 ‘빔업’되어 우주적 모험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부모를 여읜 소년 엘리오는 캘리포니아 해안 기지에서 우주쓰레기를 감시하는 공군소령인 고모 올가의 집에 살고 있다. 항상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외계인에게 납치당해 지구를 떠나고 싶어하는 엘리오는 항공우주박물관에서 본 보이저 우주선의 활약에 매료된다. 그리고 고모의 사무실에서 우주로 보내는 메시지에 자신을 데려가라는 메시지를 전 우주로 발신하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광활한 우주에서 그 메시지를 캐치한 외계인이 UFO로 날아와서는 엘리오를 코뮤니버스로..
2025.09.07 -
[퀴어] 윌리엄 S. 버로스의 귀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오늘(2025.6.20)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 는 다분히 문학적인 작품이다. ‘퀴어 문학’에 일정한 지분이 있는 미국작가 윌리엄 S.버로스의 소설을 영화로 옮겼다. 겉보기에 자유롭게 각색한 듯하지만, 인물의 환상적 여정은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17), ‘본즈 앤 올’(22), ‘챌린저스’(24)로 국내에도 많은 영화팬들을 홀린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고통스러운 로맨틱 드라마이다.영화는 1950년대 멕시코시티와 에콰도르를 떠도는 미국인 윌리엄 리(다니엘 크레이그)가 술집에서 만난 젊은 남자 유진 앨러튼(드류 스타키)에게 반하고, 애절하게 매달리려고 하는 중년 남자의 서글픈 육신의 여정을 담고 있다. 먼저 원작소설 이야기. 윌리엄 S.버로스는 를 시작으로 , 등 이 쪽(!)..
2025.09.07 -
[마운틴헤드] 세계를 불태우는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
최근(2025년 6월) 두어 달 동안 지구의 자전속도가 두 배는 빨라진 것 같다. 제 정신이 아닌 많은 뉴스 중 하나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일런 머스크의 브로맨스일 것이다. 천재 억만장자와 비정상적 대통령이 작심하고 충돌할 경우 누가 이길까, 그나저나 그 와중에 세계는 온전할까. 그 미묘한 시점에 이 작품이 나왔다. 쿠팡플레이에서 공개된 HBO드라마 이다. 겨울별장 ‘마운틴헤드’에서 짧은 휴가를 즐길 요량으로 모인 미국의 최고 천재 네 명이 펼치는 블랙코미디이다. 억만장자들은 스키나 타고, 코카인 파티나 할 만큼 한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명의 부유한 천재들이 유타 주 파크시티 설산의 한 외딴 산장에 모인다. 서로를 ‘브루스터’라 부르는 이들은 미국의 IT와 세계의 인터넷을 좌지우지하는 인물이다.(마..
2025.09.07 -
[인생은 아름다워] 살아남은 자의 기억법, 그리고 삶의 의미
1999년 3월에 열렸던 제7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오래 기억될 장면이 하나 연출되었다. 이탈리아의 레전드 배우 소피아 로렌이 최우수외국어영화상 수상작으로 를 발표하자 로베르토 베니니는 기쁨에 들떠 벌떡 일어나 앞사람의 의자등받이에 우뚝 올라선다. 베니니는 남우주연상까지 두 개의 오스카를 손에 쥔다. 그 요란하고, 정신없는 시상식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이 영화도 혼란스럽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인류 최고의 비극이랄 수 있는 홀로코스트를 이렇게 동심의 눈으로, 판타지한 이야기로, 우스꽝스럽게 묘사해도 되는 것인지. 실제 홀로코스트를 너무 가볍게 접근한 것 아니냐는 반응도 많다. 그 영화 가 지난 주 극장에서 다시 공개되었다. 26년 만에 다시 보는 ‘인생은 아름다워’는 여전히 아름다운가, 혹은 여전히 ..
2025.09.07 -
[귤레귤레 ’ 웃는 자, 우는 자, 화내는 자 (고봉수 감독 No.8)
현존(!)하는 한국영화계 최고의 작가주의 감독 고봉수 감독의 신작이 오늘(11일) 개봉한다. 고봉수 감독이 누군지 모른다고? ‘델타 보이즈’(2017)를 필두로 ‘튼튼이의 모험’, ‘습도 다소 높음’, ‘빚가리’ 등을 감독한 사람이다. 본 작품이 없다고? 그럼,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의 작품을 아직 못 봤다는 것이다. 고봉수 감독은 김기덕, 홍상수 감독만큼이나 넘치는 영화(제작)열정을 가지고 있다. 항상 영화를 만들 때마다 눈물겨운 ‘초저예산’ 제작담을 남기던 고봉수 감독이 이번에는 무려 ‘100퍼센트’ 해외로케를 감행한다. 튀르키예이다. 생각도 못한 카파도키아의 벌룬투어도 만나보게 된다. 고봉수 감독은 왜 저 멀리 튀르키예까지 갔을까. 자동차부품 수출업체의 대리 ‘대식’(이희준)은 팀장 원창..
2025.09.07 -
[광장] 열혈남아 소지섭, 넷플릭스 천하평정
넷플릭스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K-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있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는 넷플릭스가 최인훈의 소설을 드라마로 만드는가 싶었다. 그런데 넷플릭스는 수많은 K-조폭작품 목록에 피 한 바케스를 더하는 것이다. 오세형-김균태 작가의 웹툰 은 인기가 많았단다. 네이버웹툰으로 잠깐 보니 손가락으로 휙휙 페이지를 넘겨봐도 되는 ‘액션 느와르’이다. 조그만 모바일 화면을 뚫고 나온 넷플릭스 은 어떨까. 한국의 암흑가(조폭)은 두 개의 파벌이 완전 장악하여 겉으로는 평화롭다. ‘주운’(허준호)파와 ‘봉산’(안길강)파이다. 이들은 마치 일본 야쿠자처럼 겉으로 보면 기업인지 조폭인지 알 수 없다. 주운과 봉산의 두 오너 밑에는 참모, 칼잡이, 행동대원이 있고, 외곽에는 검찰과 경찰, 언론이 악의 카르텔을 구축하..
2025.09.07 -
[브링 허 백] 죽은 내 딸을 되살리기 위한 엄마의 강령술
요즘 극장가(멀티플렉스)에 개봉되는 영화를 보면 옛날 영화 리바이벌 상영이나 ‘단독 상영’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다. 대니 필리포와 마이클 필리포 형제 감독의 영화 은 CGV에서 단독 개봉하는 신작 호러영화이다. 를 재밌게 본 영화팬이라면 이 영화에도 관심이 있을 듯하다. 독특하고 무섭다. 그리고 비호감 지수가 특히 높을 수 있는 요소가 가득하다. 불길한 모성애로 가득한 독특한 호러물이다.앤디와 파이퍼는 이복남매이다. 시각장애를 가진 여동생 파이퍼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는 것이 오빠 앤디로서는 마음 아프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버지가 샤워실에서 혼자 쓰러져 죽어있다. 이제 앤디와 파이퍼는 고아가 된 것이다. 앤디는 동생을 보살피며 함께 살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아직 18세가 안 된 미성년자이기에. ..
2025.09.07 -
[미치광이 피에로] 장 뤽 고다르, 누벨바그 걸작
‘누벨바그 걸작’이라고 했지만 요즘 누가 누벨바그를 추앙할까. 마치 ‘바로크의 걸작’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서지학적 명제이다. 물론, 아직도 영화사적으로 영화를 보고, 이미지적으로 영화를 탐독한다면 극장에서 를 만나볼 수 있는 이번 기회를 놓칠 수는 없을 것이다. ‘누벨바그’는 익히 알려진 대로 1950~60년대 영화사의 페이지를 장식한 프랑스의 영화사조이다. 그 동안 이어져온 영화들의 제작방식이나 미학에 저항하는 일단의 움직임이었다. 굉장히 현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장폴 사르트르와 알베르 카뮈의 실존주의 철학에 기초하고, 관념적인 영화미학에 반대하는 방식이다. 어떻게? 느슨한 이야기 구조, 즉흥적 연기, 야외에서의 촬영방식 등등이다. 프랑스의 영화잡지 의 열혈 청년평론가들이 그렇게 직접 카메라를 들고 영화..
2025.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