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8. 07:46ㆍ한국영화리뷰
이번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도 영화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많은 장단편 영화들이 소개되었다. 최민지 감독의 단편 <위빙>은 ‘손가락을 찾는 방법’(손윤희 감독), ‘눈 내리는 밤’(대만 정치아오윈 감독), ‘네크로필리아’(나상준 감독)와 함께 [엑스라지2]에 묶여 상영되었다. ‘위빙’의 복싱에서 상대의 훅 공격을 피하고 반격하기 위한 회피 기술이다. ‘뎀프시롤’ 이후 영화에서 다시 만나는 복싱의 기술이다. 과연 최민지 감독은 사각의 링에서, 그리고 그 밖에서 어떻게 상대를 요리할까. 공이 올렸다!
복싱체육관. 수현(석희)는 오늘도 열심히 연습 중이다. 관장이 방어만 하지 말고 좀 더 공세적으로 ‘위빙’ 테크닉을 연습하라고 일러준다. 이때 등장한 민경(박정인)은 수현에게 복싱에 대해 물어본다. 자세를 어떻게 할지, 손에 붕대를 어떻게 감는지. 수현은 민경의 팔과 허리를 조심스럽게 만지며 자세를 고쳐준다. 그렇게 가까워진 둘은 함께 바에 가고, 좀 더 친밀해진다. 하지만 시합을 앞두고, 둘의 사이는 금이 가고 그 여파로 경기에서 흔들린다. 하지만 수현은 과거를 훌훌 털고 혼자서 열심히 복싱 훈련에 정진한다.
<위빙>은 뜨개질을 하던 소녀가 복싱을 배우 사각의 링에서 인생을 깨닫는 스포츠성장영화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위빙>은 섬세한 감정이 조율된 LGBTQ 로맨스물이다. 묵묵히 체육관에서 땀을 흘리며 복싱만을 생각하던 수현은 갑자기 그의 바운드리 안에 나타난 맹랑한 민경에게 마음이 빼앗기고, 저도 모르게 조금씩 조종당한다. 경기를 앞두고 술을 권하는 ‘악마의 유혹’은 이겨내지만 어쩌면 애써 숨겨온 자신의 깊은 본성은 어찌할 수가 없다. 하지만, 민경은 많은 청춘물의 커플의 상대들처럼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었다. 이제 또 다시 혼자가 된 수현은 K.O.당해 무릎 꿇든지, 다시 당당하게 펀치를 날려야할 것이다.
대학을 나와, 영화의 꿈을 좇아 한예종에 들어간 최민지 감독은 운동을 좋아했고, 복싱을 오래 했단다. 감독은 복싱은 링 위에 올라간 순간,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싸워줄 수 없는 외롭고, 처절하고, 뜨거운 운동이란다. 하지만 시합 내내 주먹을 주고받고, 엉겨 붙고, 야성의 대결을 펼치는 순간 어느새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단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사랑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런 감독의 생각이 <위빙>에 고스란히 투영된 셈이다. 한예종에서 처음 만든 작품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분노의 주먹>을 오마쥬한 단편이었단다. BIFAN을 통해 소개된 두 번째 작품 <위빙>은 복싱에 녹아든 인간관계의 드라마가 한층 돋보인다. 결국 승부가 펼쳐지는 공간은 사각의 링이든, 네모난 베드이든, 두 사람의 밀고 당기는 헤게모니 쟁탈전인 셈이다. 물론, <위빙>은 그 승부의 과정을 세밀하게 쫓아간다. 훈련하고, 연습하고, 몸에 익히고, 대상을 찾고, 목표를 찾고, 돌진한다. 쓰러지면 다시 털고 일어서면 되는 것이다.
▶위빙▶감독/각본:최민지 ▶출연:석희(수현), 박정인(민경), 김태엽(관장), 유은영(엄마), 장혜수(선수) ▶무술감독:김태엽 ▶제작지원:동원육영재단 ▶배급:인디스토리 ▶제29회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엑스라지2] 상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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