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AN리뷰] '풍류소녀살인사건' 계엄해제 전야, 불온한 대만

2025. 9. 8. 07:48대만영화리뷰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 영화팬이라면, 대만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챙겨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 하나 포함되어 있다. 대만 홍웨이팅(洪瑋婷) 감독의 런닝타임 12분의 <풍류소녀살인사건>이란 작품이다. 영화 속 배경은 1980년대이다. 대만현대사에 대한 정보가 조금이라도 있어야 이 영화를 오롯이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등굣길 여학생, 샤오밍을 비추며 시작한다. 샤오밍은 노점상 앞에 멈춘다. 대만청춘영화에서 많이 보았던 교복차림이다. 수박을 쪼개 믹서기에 갈아 쥬스를 만든다. 지금처럼 플라스틱 컵이 아니라 비닐봉지에 넣어 끈으로 묶어서 건네준다. 샤오밍 뒤를 남학생 샤오스가 농구공을 튕기며 걸어오고 있다. 샤오밍은 학교가 아니라 극장으로 향한다. <애적미살>(愛的迷殺)이라는 B급 감성 물씬 풍기는 포스터 보인다. 샤오스도 그 영화관으로 들어간다. 계단에서부터 대만국가가 들려온다. 두 사람은 잠시 멈춰 서서 ‘애국가’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극장 안은 거의 비었다. 영화가 상영되고, 이어 샤오밍과 샤오스가 수박을 나눠먹는 장면이 나오더니, 갑자기 여학생이 비키니 차림으로 해변에서 화보를 찍는다. 그러더니 그 여학생 갑자기 칼을 뽑아들고는 남자를 난자한다. 그리고는 어지럽게 여학생의 모습을 모자이크한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 <풍류소녀살인사건>(風流少女殺人事件)의 영어 제목은 ‘A Brighter Summer Day for the Lady Avengers’이다. 양더창(에드워드 양) 감독의 걸작 <고령가소년살인사건>(원제:牯嶺街少年殺人事件)의 영어제목인 바로 ‘A Brighter Summer Day’이다. ‘고령가소년살인사건’은 우리와 비슷한 현대사의 굴곡을 겪은 대만의 암울했던 한 시절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중국 공산당에게 대륙을 빼앗기고 대만섬으로 내쫓긴 국민당 장개석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대륙수복을 위해 매진하던 그 시절, 1961년을 배경으로 한 ‘고령가소년살인사건’은 타이베이 고령가에서 실제 일어났던 청소년 살인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14살 중학교 야간부 학생 샤오스가 예쁘장한 여학생 샤오밍을 칼로 찔러 죽인 것이다. 이 사건은 당시 대만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이 영화는 일종의 전복이다. 그 소녀가 그 소년을 칼로 처단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 영화는 페미니즘 무비로 분석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양덕창 영화 말고 또 한 편의 작품에 기댄다. 1981년 대만에서 상영된 <풍광여살성>(瘋狂女煞星)이란 작품이다. 스타배우가 성폭행을 당했지만 사회적 분위기와 사법체제의 문제로 정의의 심판에 이르지 못하자 극단적 복수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그 영화의 영어제목이 ‘The Lady Avenger’이다. 

<풍류소녀살인사건>은 대만의 암울한 시대, 청소년 샤오밍과 샤오스의 역할 바꿈으로 ‘사회부정의’를 처단한다는 내용인 것이다. 홍웨이팅 감독은 이 작품에서 여학생 샤오밍이 더 이상 시대의 희생양이 아니라 대담하게 은막의 주인공이 되고, 온전히 자기의 감정으로 사회 부조리를 척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산화 위협에 맞서 민주화가 저당 잡히고 국가적 산업화에 매진한다는 신화를 공유하는 대만과 한국의 1980년대에 기이하게도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극장에서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애국가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만의 국가는 사실 국민당의 당가(黨歌)이다. 오랫동안 장개석의 국민당이 집권하며 벌어진 현상이다. 대만은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되면서 그런 관례가 사라져갔다. 우리나라도 비슷하고 말이다. 극장에서 애국가 나오고, 대한뉴스 나왔던 것은 그리 오래된 이야기는 아닌 셈이다. 

이 영화는 2025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부천 초이스: 단편’(국제경쟁) 작품상'을 수상했다. 

▶풍류소녀살인사건 (원제:風流少女殺人事件/A Brighter Summer Day) ▶감독:홍웨이팅(洪瑋婷/버디 웨이팅 홍) ▶주연: 황웨이(黃惟) 천이쥔(陳奕均)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초이스 상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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