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환 2002.2.25.) 미국 영화 팬이 만든 영화사이트 중에 ‘무비 푸퍼’라는 사이트가 있다. "내가 범인을 알려줄게"라는 캐치플레어 아래 영화감상의 공적이라 할 '범인 까발리기', '결론 미리 알려주기'를 자행하고 있는 페이지이다. 예를 들자면 <식스 센스>를 이렇게 설명한다. "Malcolm Crowe (Bruce Willis) is dead." 이 사람이 이런 페이지를 개설한 이유에 대해서는 마지막 깜짝 쇼를 보기위해 8달러라는 입장료를 지불하는 영화팬이 불쌍해서라고 한다. 물론, 이 페이지를 개설한 또 다른 이유는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의 가물거리는 결론을 다시 환기 시켜주기 위해서라고. 오늘 흥미로운 옛날 영화를 한 편 다시 보았는데 바로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가스등>이다. ‘무비푸퍼’에는 다행히 <가스등>의 비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 박재환이 밝힌다!!! ^^
<가스등>은 원래 영국에서 연극무대에서 첫선을 보였고, 영국에서 한차례 영화화되었다. 인기를 끌자 미국에 건너와서 역시 연극무대에도 올랐고, 마지막으로 잉그리드 버그먼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원작소설과 영국 쪽 작품에 대해서는 모르니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원작극본을 쓴 패트릭 해밀턴은 알프레드 히치코크의 <Rope>의 작가이기도 하다. <가스등>의 감독은 죠지 쿠커. 언제나 '여배우의 감독'이란 호칭이 따라붙는다. 그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이 언제나 각광을 받았기 때문. 요즘 식으로 보자면 '여배우를 키워주는 감독'인 셈.
<가스등>의 오리지널 제목은 ‘Angel Street’이다. 영화의 또 다른 제목은 ‘Murder in Thornton Square’(손톤 스퀘어 살인)이다. 안개가 잔뜩 낀 영국 런던의 손튼 스퀘어의 한 집에서 넋을 잃은 소녀 하나가 집을 나선다. 그 집에서는 유명한 프리마 돈나 앨리스 앨퀴스트가 살해당했다. 이모가 살해당하자 폴라(잉그리드 버그먼)는 그 집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10년 후 잉그리드 버그먼은 피아노 작곡가와 결혼하면서 다시 이 집에서 살게 된다. 하지만 첫날부터 이상한 일이 생기면서 잉그리드 버그먼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눈썰미 있는 사람은 곧바로 범인이 누군지 짐작하게 되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몇 가지 혼란이 뒤따른다. 남편은 계속하여 잉그리드 버그먼의 망각증세를 강조하고 그와 외부인과의 접촉을 제한하려 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두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하나는 잉그리드 버그먼이 실제로 정신병적 경향이 있다거나 피해망상증이 있다는 것. 또는 남편 샤를르 보와이어가 아내를 정신병으로 몰면서 무언가 거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이트가 ‘무비푸퍼’가 아닌 이상 결론은 밝힐 수 없지만, 굉장히 매력적인 드라마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이 작품이 다시 리메이크된다면 훨씬 공포스럽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1944년 안개 낀 런던의 우중충한 주택가의 빅토리아풍 가득한 고풍스런 집안에서 펼쳐지는 격리와 의심의 드라마는 관객에게 충분히 영화적 재미를 안겨준다. 잉그리드 버그먼의 애매모호한 정신상태(실제/ 혹은 남편의 간계에 의해서.), 혹은 샤를르 보와이어의 음모가적 풍모(실제/혹은 영화관객의 추론) 사이에서 진실을 파헤치는 사람은 오래 전 앨리스 앨퀴스트의 열성팬이었던 브라이언 카메론(조셉 코튼)이다. 그는 공원에서 우연히 폴라를 보는 순간 긴장한다.
혹시 '앨리스 앨퀴스트의 재림?' 그는 은밀하게 이 집안의 비밀을 파헤쳐간다. 그러면서 관객들은 조금씩 10년 전의 살인에 대한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된다. '앨리스 앨퀴스트에게는 영국 황실급에 해당하는 엄청난 보석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녀의 죽음과 더불어 그 보석은 행방불명 되었다는 것이다. 잉그리드 버그먼의 고립은 점차 더해가고 그녀 스스로 자신의 증세에 갈팡질팡한다. 남편은 밤이면 사라지고.
아카데미 주연상 단골 메뉴는 비정상적인 주인공역을 맡은 배우에게 돌아간다는 속설이 있다. 이 영화에서 불안한 폴라 역을 맡았던 잉그리드 버그먼은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모두 8개 부문 오스카 후보에 올랐지만 잉그리드 버그먼과 안개 낀 런던을 재현한 미술감독상(B/W Interior Decoration)을 받았다. 잉그리드 버그먼으로서는 바로 전 해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43) 로 후보에 올랐다가 떨어진 것을 한 해만에 보상 받은 셈. 잉그리드 버그먼은 이후 <아나스타샤>(57),<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75) 으로 두 차례 더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는다.
이 영화에서 조금은 맹랑한 가정부 낸시를 연기한 배우가 바로 안젤라 란스베리이다. 아가사 크리스티 원작의 영화에 자주 출연했던 배우인데 아마, 80년대 TV 탐정극 < Murder, She Wrote>(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되었는데 한글제목이 기억 안 나네요..^^)를 통해 추리극의 대표아줌마로 각인된 배우이다. 그녀의 영화 데뷔작이 바로 미스터리물 <가스등>이다. 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가스등> 이미 TV 에서 몇 차례 방영되었지만 흑백영화에서 느끼는, 그리고 런던의 축축함이 고스란히 배어나는, 그러면서도 잉그리드 버그먼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클래식이다. (비디오로도 출시되었으니 제법 큰 비디오가게에 가면 구석에서 먼지 뒤집어쓴 채 미스터리 팬, 클래식 매니아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박재환 2002/2/25)
[퍼블릭 에너미] 미국 금주법 시대, 공공의 적 (윌리엄 A.웰먼 감독 Public Enemy 1931) (0) | 2019.09.05 |
---|---|
[도라!도라!도라!] 애국자 게임 (리쳐드 플레이셔, 후카사쿠 긴지 감독 Tora! Tora! Tora! 1970) (0) | 2019.09.05 |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정치초년병, 혁명을 일으키다 (프랭크 카프라 감독 Mr. Smith Goes to Washington 1939) (0) | 2019.09.04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화려한 날은 가고... (엘리아 카잔 감독 A Streetcar Named Desire 1951) (0) | 2019.09.04 |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클리어 앤드 데인저러스' 에이전시 (토니 스코트 감독 Enemy of the State 1998) (0) | 2019.09.04 |
[인 타임] 시간은 돈이다 (앤드류 니콜 감독 In Time, 2011) (1) | 2019.09.03 |
[라이어 라이어] 변호사가 진실만 말한다면... (톰 세디악 감독 Liar Liar 1997) (0) | 2019.09.03 |
[파이어폭스] 냉전시대의 도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Firefox 1982) (0) | 2019.09.02 |
[최후의 카운트다운] 시간의 파라독스 (돈 테일러 감독 Final Countdown 1980) (0) | 2019.09.02 |
[스타워즈 에피소드5 - 제국의 역습] "내가 니 애비다" (어빈 케슈너 감독 Star Wars: Episode V - The Empire Strikes Back 1980년) (0) | 2019.0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