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2002.8.28) <문화일보>사회면에 난 끔찍한 기사내용이다.
<바람개비> 80代노인이 정신지체자매 상습성폭행....정신장애 10대 자매를 꾀어 포르노테이프를 보여주고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일삼은 80대 노인이 경찰에 꼬리가 잡혀 철창행. **동부경찰서는 27일 **군 모 지역에 사는 B(80·무직)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 경찰에 따르면 B씨는 같은 마을에 사는 K(14·정신지체 *급)양과 동생(11)을 올해 3월초부터 지난 19일까지 9회에 걸쳐 인근 야산과 다리 밑 등지로 끌고 다니며 번갈아 성폭행을 해 온 혐의다.
이창동 감독의 신작 <오아시스>의 내용은 내일이 없는 전과 3범이 지체장애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었다. 이창동의 문학적 능력으로 미루어보아 <오아시스>는 영화판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이창동이 만들었기에 다행이지 만약 김기덕이 만들었다면 관객들은 굉장히 불편해 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설경구의 연기는 너무나 야비했고, 문소리의 지체 정도는 너무나 가슴 아팠기 때문이다.
굳이 '대~한민국'의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은 아니지만 가족의 짐이 되는, 그리고 자기의 미래에 걸림돌이 되는 장애인 가족을 유기 시키는 경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너무나 도덕적인 우리 한민족은 그러한 반인륜적 행위에 대해 공분을 금치 못한다. 이런 기사도 났었다.
불치병 아들 살해 아버지 결국 구속......
유전되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아들을 살해한 아버지가 결국 구속됐다. 광주 남부경찰서는 3일 윌슨병을 앓고 있는 아들(29)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 김모(59.광주 남구 방림동)씨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윌슨병으로 시각ㆍ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은 김씨는 지난 1일 오후 7시20분께 자신의 집 작은 방에서 아들이 "죽여달라"고 하자 추리닝 허리끈을 이용, 목 졸라 숨지게 한 혐의다. 김씨 가족은 2대에 걸쳐 나이가 들수록 하반신이 마비되고 눈이 멀어지는 윌슨병을 앓고 있는데 어머니와 여동생, 조카 등 3명이 이미 이 병으로 사망했고 딸(30)도 이 병으로 현재 목포의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김씨는 아들을 살해한 뒤 자신도 목숨을 끊으려다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한편 김씨의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동네 주민 50여명이 경찰에 선처를 호소하는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불치병 아들을 살해한 김씨에 대해 동정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희귀병인 윌슨병은 체내에 흡수된 구리가 제대로 배출되지 않고 간과 뇌, 신장,각막 등에 축적돼 그 독성으로 간경화와 뇌이상 등의 증상을 보이는 선천성 질환으로 인구 3만 명당 1명꼴로 나타난다.
참, 인구가 많다보니 이런 비극적인 이야기가 넘쳐나는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우리들의 편견이나 차별에 대해 '당신'도 "난 아니다!"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창동 감독은 그런 제반의 상황을 충분히 알고 자신의 감수성 풍부한 문학으로 관객들을 불편한 고백과 동감의 공간으로 이끈다.
막 출소한 설경구. 한여름에 잡혀 들어가 한겨울에 출소한 까닭에 그의 옷차림은 하와이언 셔츠이다. 가족을 찾아갔지만 이미 이사 가고 없다. 무전취식 하다 경찰서에 잡혀가고 연락 받고 달려온 가족은 설경구를 꺼려한다. 관객은 곧 설경구의 전과에 대해 듣게 된다. '폭력-강간미수-뺑소니치사' 이 정도의 '별'을 달았으면 관객들은 설경구에 대한 손톱만큼의 인정을 베푸는 것조차 거부하게 된다. 설경구는 카센터를 하는 큰형에 이끌려 자장면 배달부로 일단 취직한다. 한밤 설경구는 스쿠터를 몰고 어설픈 폭주족이 되었다가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관객은 이 대책 없는 사회대열이탈자에 대해 점점 외면하게 된다.
이때 설경구는 또 다른 사회와 격리된 존재를 만나게 된다. 문소리. 허름한 아파트. 중증지체장애인(팔이 심하게 비틀렸고 입술이 돌아갔고 얼굴근육이 마비된 그런) 문소리를 돌보던 오빠 내외는 문소리만 남겨놓고 번듯한 아파트로 이사가 버린다. 그리곤, 매달 20만원으로 이웃에게 문소리를 부탁한다. 오빠는 '무려' 20만원이나 주고서 중증 장애인의 식사 기타 수발을 들게 한다. 그리고 가끔 동사무소나 이런데서 확인 나오면 동생을 '번듯한' 자기의 집으로 옮겨놓고... 뭐 그런다.
어쨌든 출소하며 쇼핑백에 구겨 넣어온 짐이라곤 도색잡지 나부랭이(그것도 플레이보이나 이런 번듯한 것이 아니라 터미널에서 파는 '사건과 핵심'(?)스타일의 너덜너덜한 사진책)뿐이었던 설경구는 자장면 배달을 하다 문소리 아파트까지 오게 되고 문소리를 보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문소리를 강간하려다가 처절하게 반항하는 문소리에 놀라 도망쳐 나온다. 관객들은 장애인을 강간하려한 설경구에게 더 이상 무슨 좋은 감정이 남았으리요.
하지만, 이창동 감독은 인간의 밑바닥에서 잃어버린 인간의 순수성을 찾아낸다. 설경구는 몰래 문소리의 방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사회에 버림받았던' 설경구는 '사회에서 버림받은' 문소리에게서 어떤 보상심리를 얻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문소리는 아마, 가족 외에는 처음 타인의 손길을 느꼈을 것이다. 설경구는 문소리를 데리고 방을 벗어나서 지하철을 타고 바깥바람을 쐰다. 그렇게 두 사람은 두 사람을 제외한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이해하려 조차 하지 않는 사랑을 하게 된다.
그날 밤. 마침내 일은 생긴다. 바깥나들이를 하고 돌아온 날. 설경구가 돌아가려 하자 문소리가 자고 가라고 그런다. 그러면서...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요?" (물론, 문소리는 중증장애인이라 말도 제대로 못한다!!) 둘은 섹스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 무슨 운명인가. 하필 이날 문소리의 오빠가 아파트를 찾아오고. 방문을 열 찰라.... 그때 관객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그런다. "안 돼!!!!"
그 문을 열면, 정상인의 눈에는 어떤 광경이 들어올 것인가. 전과 3범이 장애인을 강간하는 것!!!!
경찰이 그런다. "너 변태 아냐? 성욕이 생기대?"
이창동 감독이 소설가 출신이라서 그런지 이 영화에선 소설적 환상이 관객을 푸근하게 한다. 방안에만 갇혀 지내던 문소리의 손에 들린 거울을 통해 반사된 햇살이 새가 된다. 새가 되어 그의 머리 위에서 펄럭인다. 그의 좁은 방에 아기 코끼리가 등장하여 춤을 춘다. 노랫소리가 들리고 문소리는 휠체어를 박차고 일어나 설경구와 춤을 춘다. 문소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벽에 걸린 '오아시스' 그림에 흔들리는 나뭇잎 그림자이다. 특히 밤에는 너무 무섭다. 그래서.. 설경구에게 부탁한다. 저 그림자를 없애달라고. 설경구는 마술을 건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사라져랏!" 문소리는 너무나 즐겁다. 그 순간이...
관객은 설경구를 이해하고, 그런 설경구를 격리시키는 사회를 돌아다본다. 문소리는 이제 늦은 밤 편한 잠을 잘 것이다. 왜냐하면 그림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설경구가 마지막 마술을 부리기 때문이다. 이창동은 관객에게 마술을 건 것이다. 장애인도 결국 인간이라는 것을..
와이프가 그런다. 이창동 감독이 아들을 잃은 적이 있다고. 이창동의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유별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두 가지 단상. 아마도 이창동 감독은 5회 부산영화제 개막작이었던 <레슬러>를 감동적으로 본 모양이다. 이 영화에서도 이창동식 가족의 갈등구조가 피로연(또 다른 축제)의 모습을 통해 나타난다. 설경구의 '전과'와 '가족의 굴레'는 너무나 현실적이며, 소설적이다.
그리고, 저 위에 언급한 사회면 기사. 불치병 아들을 살해한 아버지가 정상인이었을까? 그 사람의 부인의 말이다. ".....김씨의 부인 차모씨(54)는 “남편은 아들을 숨지게 한 죄인이지만 옆 사람이 도와주지 않으면 밥도 먹을 수 없는 중증장애인”이라며 “나도 함께 감옥에 가둬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세상은 그렇게 '엿' 같은 것이다. (박재환 200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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