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목)부터 9월 5일까지 8일 동안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열린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31개국 119편의 영화가 상영되며 포럼 및 부대행사가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영화제의 캐치프레이즈는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이고 슬로건은 ‘20+1, 벽을 깨는 얼굴들’이다. 여성영화제 기간에 맞춰 KBS 독립영화관에서는 ‘한국+여성+영화’의 현재를 엿볼 수 있는 단편 3편이 방송된다. <자유연기>, <증언>, <내 차례>이다. 세 작품 모두 오늘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 여성이 처한 현실을 날카롭게 이야기한다.
우경희 감독의 단편 <증언>은 직장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여성의 문제를 다룬다. 취업 준비 중인 혜인(문혜인)은 경력증명서를 받기 위해 이전에 일했던 작은 회사를 찾아온다. 서류를 건네주는 오 대리(한해인)는 “이런 건 미리 전화 좀 하고 오세요.”라고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 오랜만에 보는 이 과장은 여전히 밉상이다. 그나저나 그동안 간식 심부름 하고도 받지 못한 돈 67,600원을 꼭 받고 싶지만 역시나 실패한다. 부장은 “요즘 신입 뽑을 때 전 직장으로 전화해서는 근무평판을 물어보더라. 어떻게 대답해 줄까.”라고 섬뜩한 농담을 한다. 여전히 진절머리 나는 직장이다.
그런데 오 대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자신이 부장에게 성희롱을 당한 것에 대해 증언을 좀 해달라는 것이다. 왜 회사 그만 둔 사람에게 이런 부탁을 할까. 직장 내 다른 여직원이 모두 증언을 거절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 대리가 평소 어깨가 파인 옷,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녔고, 이 과장과 붙어 다녔다고 수근 댄다. 게다가, 사내 승진평가에서 (같은) 여직원에 대해 감점했다는 사실을 거론한다. 새 회사 취업 면접장에서 혜인은 동료가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혜인은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일에 용기를 가질 수 있는지.’
영화는 작은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관계의 충돌을 보여준다. 지위와 형편, 각자의 사정에 따라 적당히 관계하고, 적절히 간섭하고, 현명하게 발을 빼는 직장생활백서 같은 것 말이다. 인사고과의 키를 쥔 상사와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성희롱을 당했을 때의 대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증언>이 돋보이는 것은 짧은 이야기 속에서 복잡하고, 예민한 관계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장의 늑대’를 이야기하면서 ‘직장의 여우’에 대한 다층적 관계를 보여준다. 이른바 ‘갑’과 ‘을’, ‘을’과 ‘을’의 심각한 부조리를 이야기한다. 물론, 혜인은 ‘을’보다 못한 ‘병’ 신세이다.
우경희 감독의 <증언>은 직장이라는 정글에서 펼쳐지는 권력 게임에서 언저리를 장식하고 있는 ‘을’과 ‘병’의 서글픈 이야기이다. 법률과 사규, 노조가 이들을 케어해 줄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말이다. (박재환)
2019년 8월 31일(토) 00:45 KBS독립영화관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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