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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리뷰

[와이키키 브라더스] 중년이 된 세친구 (임순례 감독 Waikiki Brothers, 2001, 명필름)

by 내이름은★박재환 2019.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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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01/4/27) 대안영화를 표방하고, 지방문화의 국제화를 앞당기기 위해 개최되는 전주국제영화제 그 두 번째 장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분명 이 영화제의 위상을 한층 높여줄 작품으로 보인다.

 

작년 1회 영화제 개막작으로 작가주의 감독홍상수의 세 번째 영화 <! 수정>이 상영되면서 이 영화제는 단번에 부산영화제와 부천판타스틱영화제와는 분명 구별되는 작가주의 지향의 영화제임을 영화팬들에게 인식시켰다. 올해 개막작으로 선정된 임순례 감독의 신작 <와이키키 브라더스>도 그러한 영화제 조직위원회와 영화팬들의 기대에 한껏 부응하는 작품이 되었다.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는 4인조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불경기로 인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출장밴드로 전전한다. 지방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 시골 촌구석에서 열리는 집안행사 등에까지 불려가며 노래하고, 반주하며 겨우겨우 살아간다. 팀의 리더 성우는 고교 졸업 후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고향, 수안보의 와이키키 호텔에 일자리를 얻어 팀원들과 귀향한다. 고교 시절 순수하기만 했던 동창들은 어느새 생활에 찌든 생활인으로 변해 있어 가슴 아프게 한다. 이제는 남편을 잃고 야채 장수를 하는 첫사랑 인희와도 서먹한 모습으로 재회하게 된다. 밴드 내 팀원들도 음악적인 견해 차이와 여자 문제로 극도의 갈등에 이른다. 멤버들은 하나둘씩 떠나가고 새로운 멤버가 들어오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만 한다. 마침내, 성우는 고향을 떠나 새로운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기 위해 여수로 떠난다.

 

이 영화는 임순례 감독의 1997년도 작품 <세 친구>, 나아가 그녀의 94년 단편 <우중산책>과 궤를 같이 하는 역작이다. <세 친구>에서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의 꼬일 대로 꼬인, 삶들을 보여주었다. 학창시절 모범학생도 불량학생도 아니었던, 그래서 교실에서는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너무나 평범한 존재였던 '섬세', '삼겹', '무소속'이라는 세 친구가 '학교를 나오긴 했다만' 할 것 없는 성인으로서의 생활을 양념하나 첨가하지 않고 생짜로 보여주었다. 비록 흥행영화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었지만, 영화팬들은 이 세상에는 잘 나가는 사람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패배자들의 삶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이 담담하고 조용한 임순례 감독의 외침에 공감했다.

 

4년 만에 신작을 들고 나온 임순례 감독은 그 '세 친구'들의 인생궤적이 어떻게 변해갔을지 짐작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 물론, 이번에는 그 전처럼 가족과 사회, 학교에서 내던져진 인생이 아니라, 자신들이 좋아서 선택한 '음악'에 매진하면서도 개인적 굴레의 한계를 보여준다.

 

학창시절, 통기타와 미국의 락에 심취한 일단의 학생들이 밴드연습에 매달린다. 그들은 '옥슨'의 노래와 조안 제트의 '아이 러브 락 앤 롤'을 부른다. 그러던 그들이 인기가수로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 밤무대에서 '뽕짝'과 룸살롱의 분위기메이커 밴드로 전락하며 겪게 되는 해체의 순간을 그린다. <세친구>에 버금가는 쓸쓸함과 애처로움이 화면 가득 펼쳐지면서 관객들은 갈수록 주인공들의 풀리지 않는 인생에 동화되어간다.

 

 

 

이 영화에서 가장 선명하게 기억되는 장면은 학창시절 해수욕장에서 발가벗고 해변을 질주하는 네 친구들을 롱샷으로 잡는 장면일 것이다. 그들에겐 미래에 대한 불안과 멤버들 상호간의 갈등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중에 성우는 룸살롱에서 윤수일의 '아파트'를 부르다, 술에 취한 손님의 '명령'에 따라 함께 발가벗고 기타하나만을 멘 채 노래를 부른다. 그때 노래방 모니터에서는 해변을 질주하는 벌거벗은 그들의 학창시절이 반사되어 나온다. 노래가 좋아서 노래를 부르는 것과 어쩔 수 없이 노래 밖에 부를 수 없는 인생의 서글픔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감독은 이 모든 절망적인 순간들을 마지막에는 하나의 희망으로 처리한다. 비록 여수까지 흘러가서 연주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어쩌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노래와 연주를 계속하며, 짐작하건대 사랑도 얻은 것임을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영화에는 함중아, 윤수일, 심수봉, 나훈아 등의 '구닥다리' 히트송이 끊임없이 나온다. 그리고, 한 시절 나이트클럽에서 들을 수 있었던 끈적끈적한 블루스의 곡들이 묘한 느낌을 전해준다. 그것은 올해 노스탤지어의 상징이 되어버린 곽경택 감독의 <친구>와는 또 다른 회고주의적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이 영화에서 실감나는 연기를 해낸 배우들은 모두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은, 그래서 영화팬들에겐 낯선 얼굴이 대부분이다. 단 한 명의 스타가 있다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각광받은 류승범. 그의 전직(나이트클럽 DJ)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 영화 마지막에 가서는 '구닥다리' 나이트클럽 밴드와는 대비되는 펄펄 뛰는 신세대 DJ를 만날 수 있다.

 

<세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도 사회에서 인식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러한 존재들의 담담한 삶들을 담백하게 그려내었다.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이 영화는 가을에 개봉될 예정이다. 작년 김기덕 감독의 <>이 많은 해외 영화제에 출품되어 호평을 받았던 것에 비해, 서둘러 개봉된 국내극장가에선 비참할 정도의 흥행성적을 거둔 것은 마케팅의 실패였다고 제작사인 '명필름'은 자평했다. 이 영화처럼 스타가 출연하지 않는 '좋은 작품'일 경우 입소문과 꾸준한 마케팅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전주영화제도 그 하나의 선전장이 될 것이다. (박재환 200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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