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아니나다를까 홍상수 스타일 (홍상수 감독 Woman Is The Future Of Man, 2004)

2019. 8. 17. 21:38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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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04/4/22) 한동안 척박했던 걸로 인식되던 한국영화계의 유일한 작가감독으로 추앙 받는 홍상수 감독의 신작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가 곧 개봉된다. 홍상수 감독으로서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96), [강원도의 힘](89), [! 수정](00), [생활의 발견](02) 이후 5번째 작품이다. 국내 개봉도 되기 전에 희소식이 먼저 날아들었다. 다음 달에 열리는 프랑스 깐느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와 함께!)

 

사실 홍상수 감독 작품은 똑같다. 김기덕 감독은 자신의 치열한 작가정신, 혹은 창작욕구를 끊임없이 소수의 대중과 다수의 평론가들과 투쟁하며 가다듬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 비해 홍상수 감독은 첫 작품이나 최근 작품이나 똑같이 돋보기 렌즈를 닦고, 투명도를 더 높이는 수준의 마이너 업그레이드만을 꾸준히 진행시켜왔다. '아니나다를까'. 실제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또한 홍상수 감독 특유의 제목놀이만큼 똑같은 전작들과 거의 변함없는 함량의 작품을 뽑아내었다. 만약 홍상수영화를 통해 판에 박은 삶의 재현, 남자-여자의 짝짓기 게임에 근접한 사랑타령을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영화도 그러한 기대에 딱 맞춘 홍상수표 영화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번에도 문제는 섹스다. 어쩜 그들은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게 삶 자체라고 우쭐할지도 모른다. 한 여자가 있다. 선화(성현아)이다. 두 남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다. 헌준(김태우)이 먼저 선화를 사랑한다. 물론 정신적인 사랑은 모르겠고 육체적인 사랑-이런 표현이 말이 된다면-은 확실히 먼저 차지한다. 그리고 헌준의 후배인 문호(유지태)도 아슬아슬하게 한발 늦게, 선화를 '육체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이런 상황 설정은 홍상수 영화의 특징인 대학생, 그 시절 그런 연령대의 머리 속에 가득찬 예쁜계집 독차지하기의 전략적 선택일 뿐이다. 그런 쟁탈전에서는 지적 우위나 미학적 개념이 필요 없다. 전적으로 알코올의 도수와 함량에 전적으로 의존할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영화에서도 홍상수 감독은 주인공의 입에 끊임없이 알코올을 들이부으며, '아니나다를까' 여관으로 밀어 넣는다. 누가 먼저고, 누가 뒤인지는 필요 없다. 필름이 끊긴 사람은 여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긴가민가 할 것이고, 도덕적 후회나 육체적 피곤함보다는 어쨌든 현상유지나 관계접점이 제1순위 목표가 되어버렸을 테니 말이다. 물론 헌준과 문호는 선화가 어떤 여자인지를 알 것이지만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 된다. 관객들은 결코 '성녀'(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의 황신혜 정도?)로 묘사되지 않은 선화에 대해서는 거의 냉정함을 유지하도록 주입받는다. 여자는 '대상'인 동시에 '3'가 되어 있고, 두 남자의 절절한 구애만이 남게 된다. 영화는 7년의 세월을 등지고 있다. 7년 전 그랬던 선후배와 여자는 다시 술자리와 여관을 오가며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는 상대에 몰입한다. 결론은? 결국 술이 모든 것을 인도하고 모든 것을 해결한다.

 

초반부, 재밌다. 알 수 없는 과거를 가졌던 두 남자의 뜻밖의 대사와 행동 속에는 7년간 숙성된 '선화'에 대한 내공이 잠재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점점 알게 된다. 그리고 중국집에서의 1차 대결을 통해 이들이 라이벌인 동시에 동병상련의 불쌍한 수컷임을 확인하게 된다. 갈수록 여자 하나 때문에 생긴 갈등구조는 과음현상을 일으킨다. 게다가 대학 강사가 되어있는 문호의 술주정과 한 여학생의 저돌적 행동은 이 영화를 [대학괴담 외전] 정도로 만들 뻔 한다.

 

눈이 쌓여있고 남자가 지나가고 여자가 스쳐간다. 그들 사이에 어떤 과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눈은 쌓였다가 녹을 것이고, 남자는 무심하게 지나갈 것이고, 여자는 웃음만 흘릴 것이다. 그러다보면 대학생은 학교를 졸업할 것이고, 시간강사는 교수가 될 것이고, 시간이 가면 영화는 끝날 것이고, 영화를 만들다보면 깐느도 갈 것이다.

 

이 영화의 명대사는 김태우가 여관에서 읊조리는 대사 "내가 깨끗하게 해 줄게.." 정도이거나, 유지태가 술 먹고 학생들 앞에서 토로하는 격정의 대사일 것이다.

 

홍상수 감독 영화의 특징은 철저히 감독의 작품이란 것이다. 배우는 모두 홍상수의 술판에 용해되어 들어간다. 평론가도 용해되어 버렸다. 이제 관객들이 그 술상을 떠안을 시간이 된 것이다. (박재환 200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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