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달밤] 경주로 간 '친구' (김상진 감독 2001)

2019. 8. 17. 21:19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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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환 2001/6/15)  곽경택 감독의 <친구>는 중장년층에게 노스탤지어를 불려 일으키는 고풍스런 교복과, 암울했던 1970년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내용에 편승하여 전국관객 800만이라는 빅 히트를 거두고 있다. <친구>는 분명 부산사투리라는 제한된 언어 영역에서 느낄 수 있는 옛 정과 영화적 미학을 발견할 수 있는 많은 장치가 숨어 있었다. 이번에는 경주로 자리를 바꾼 또 한편의 영화가 노스탤지어를 불려 일으킨다. 물론, 이번에는 하와이에 갈 필요도 없고, 장동건의 비장미 넘치는 마지막 장면같이 눈물샘을 자극하는 라스트 씬도 없다. 단지, '그냥' 웃기려고만 덤벼들던 <주유소 습격사건>의 그 철저한 오락정신으로만 무장되어있다.

 

<주유소 습격사건>을 만들었던 '좋은영화'라는 영화사의 김미희 대표는 대단한 여자 분이다. <주유소>가 개봉할 때만해도 그 영화가 그렇게까지 대성공(서울에서만 96, 역대 한국영화 5)을 거두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물론, <공동경비구역 JSA><친구>도 처음에는 그처럼 빅히트를 하리라고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김미희 대표는 "요즘 젊은 영화팬들은 복잡한 것보다는 즉각적이고 확실한 액션과 웃음을 좋아한다"고 분석했다. 그러한 분석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 이번 영화의 흥행전망도 밝은 편이다. 어제 <신라의 달밤> 시사회가 끝나자마자 <진주만>이나 <미이라>와의 흥행대결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것이라는 성급한 판단이 나올 정도였다. 사실 시사회장은 꼬투리 잡으려고 혈안이 된 평론가나 기자들이 가득한 가운데에서도 시종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김상진 감독 말대로 "웃기면 그만이지.."라는 영화철학이 그대로 베어 나오는 또 한편의 <주유소>식 영화인 것이다.

 

깡패와 선생

 

옛날 경주에 수학여행 온 고등학생들이 한밤에 즐겁게 장기자랑 대회를 갖다가 다른 학교와 집단 패싸움을 펼치게 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학교의 ''이었던 최기동과 이 학교의 '범생이'였던 박영준의 운명은 갈리게 되는 것이다. 패싸움의 선봉장이었던 최기동은 선생에게 죽도록 얻어터지면서 결심을 한다. "그래, 나도 공부하면 될 거 아냐. 더러워서..." 그 시간에 모든 학생들이 의리로 뭉쳐 패싸움에 말려들 때 혼자 떨어져있던 범생이 박영준도 쏟아지는 친구들의 멸시의 눈초리, 왕따 당한 설움을 견디다 못해 결심한다. "그래, 나도 건달이 될거야"라고.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설명이 끝나면 세월이 훌쩍 흘려 장성한 최기동과 박영준을 만나게 된다. 최기동은 경주의 한 고등학교의 체육선생님이 되고, 박영준은 서울의 전국적 범죄집단의 참모깡패가 되어 있다. , 경주 수학여행의 대혈투는 이렇게 두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성격이 어디가나. 다혈질의 의리파 최기동 선생님은 이소룡식 츄리닝에 몽둥이를 들고 학교를 휘저으며 '의리'를 중시하는 조폭급 선생님이 되어있고, 박영준은 언제나 상위 1%에만 드는 똑똑한 학생답게 최고의 지능파 깡패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 둘이 다시 경주에서 재회하게 된다. 민주란 이라는 똑 부러지게 생긴 여자를 사이에 두고 우정과 사랑의 혈투를 벌이게 되면서 말이다.

 

웃음과 미학

 

김상진 감독은 <주유소>에서 성공한 캐릭터를 활용한 폭소 대작전을 우선 시도한다. 최기동, 박영준, 민주란 이라는 쓰리 톱 배우들의 연기를 극도로 과장시키고 주변인물들을 하나같이 희화화시킨다. 차승원의 능청스런 연기는 이 영화를 시종일관 웃음보를 터뜨리게 한다. 일등급 깡패 이성재는 끝까지 분위기 잡으며 차승원의 신경을 박박 긁으면서 긴장관계를 고조시키는 것이다. 그 사이에 낀 김혜수는 액세서리가 아니라 핵심인물로 부상한다.

 

학교 앞 라면집('주섭이네'라는 라면집은 이미 경주의 명물이 되었다고 한다)의 왈가닥 여주인 김혜수는 톡톡 튀는 그의 이미지를 그대로 닮았다. 게다가 김상진 감독은 시종일관 "분위기 잡지 말고 자연스런 연기를 하란 말야"고 요구했다. 아마, <신라의 달밤>이 재미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들 삼총사 외에 민주란의 남동생 민주섭 역의 이종수 때문인지도 모른다. <간첩 리철진>에서 언제나 짱이 되려고 했던 '신하균'처럼 그는 언제나 노력한다. "20등 안에 들면 조직에 받아주지"라는 박영준의 말에 빠져 죽도록 공부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만화'스타일이다. 그런 만화 스타일은 경주 토착 깡패나 박영준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노형사의 집착에서도 느낄 수 있다. 휘영청 달 밝은 밤에 벌이는 만화같이 황당한 차승원의 와이어 액션 장면 또한 명장면이다.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유승완 감독의 인터넷 영화 <다찌마와 리>가 마치 <친구>를 만난 것 같이 오락물로서는 만점이다.

 

영화 <친구>는 의리의 본질적인 문제와 '지방언어의 정치성'에 대한 논의를 불려 일으킬 정도로 반향이 컸었다. 하지만, <신라의 달밤>은 정교한 캐릭터 구조가 뿜어내는 카리스마와 그 웃음의 미학에만 몰두하면 된다. 무슨 얼어죽을 미학이냐고? 김상진 감독은 열심히 셈하기 바쁘다. 내 영화에 관객들이 몇 번이나 자지러지게 웃는지. (박재환 2001/6/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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