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송혜교의 용서, 남지현의 반성, 이정향의 밀양 (이정향 감독 Reason to Live, 2011)

2019. 8. 31. 06:59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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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11.10.8.) 최근 전 국민을 분노케 한 사건이 있다. 영화 <도가니>의 경우와 모 대학 의대생들의 파렴치한 행위이다. 엄연한 법치주의 국가에서 일어난 관련사건은 국민의 정서와는 엄청나게 괴리된 판결행위로 인해 국민의 공분을 살 지경이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른바 전관예우가 대변하는 탄탄한 이너 써클 때문인가. 아니면 아무리 끔찍한 사건이라도 한 달만 지나면 금세 잊어버리는 국민 탓일까. 그런 잘잘못을 떠나 이런 일에는 항상 발 벗고 나서는 인권단체가 있고 종교인들이 있다. “죄 없는 자 돌을 던져라”라거나 “한 마리 길 잃은 양....”식으로. 혹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금언까지. 그런 복잡한 ‘보통사람의 법감정’을 향해 이정향 감독의 신작 <오늘>은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난 죄도 없고, 죄 지은 사람을 증오한다!”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그런 관점에서 말이다.

용서는 누가 하죠? 언제 하죠?

영화의 시작은 송혜교가 시누이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올케는 어찌 그리 쉽게 용서할 수가 있었니.” 송혜교는 담담하게 신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이라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그 애는 소년이에요. 더 좋은 삶을 살 거예요.”라는 식으로. 영화는 사고가 나던 날로 돌아간다. 송혜교의 행복했던 마지막 그날 밤. 자신의 생일, 사랑하는 사람(기태영)과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사랑하는 그 남자는 술 취한 친구(송창의)의 전화를 받고 차를 돌리고 송혜교는 혼자 집으로 돌아간다. 갑자기 비가 내린다. 남편은 그렇게 나갔다가 찻길에서 뺑소니 오토바이에 치어 숨진다. 슬픔에 빠진 송혜교는 신부님과 수녀님의 말에 귀 기울이고 서둘러 탄원서를 써서 그 뺑소니범(아직 소년!)을 용서한다. 그리고 신부님과 수녀님의 말에 따라 다큐멘터리 촬영에 나선다. 끔찍한 범죄의 가해자 가족들과 그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담으려고. 자기가 일찍이 용서했듯이 모든 피해자가족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용서하고 먼저 정신적 위안을 얻으라 말하고 싶어서. 그런데, 그날 사고가 나던 날 술 취한 친구(송창의)를 먼저 데려갔던 여동생 남지현이 불쑥 찾아오면서 혼란을 겪게 된다.

남지현의 경우: 용서? 웃기고 있네

남지현은 송혜교가 다큐를 찍는 것을 도와준다. 그런데 매번 피해자 가족들을 인터뷰하러 갈 때마다 어깃장을 놓기 시작한다. “언니는 왜 먼저 용서했어요?” “그 놈이 잘 됐을 것 같아요?” 송혜교는 열심히 설득한다. “잘 될 거야. 잘 될 거야. 용서하라”고. 마치 신부님처럼. 그런데 남지현은 끔찍한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다. 법관인 아버지는 하루가 멀다하고 남지현을 때리고 학대한다. “이년이 누구 덕에 이렇게 사는데.. 어디 꼬박꼬박 말대꾸야... 너 같은 년은 맞아야 해.” 그럼 엄마는 옆에서 거든다. “아이고. 애야 잘못했다고 빌어. 넌 왜 그러니.” 남지현은 어려서부터 너무나 많이 맞고 자라서 아버지에 대해선 처절한 증오감과 복수심만 갖고 있다. 그래서 공자님, 하느님 소리만 하는 송혜교에게 대든다. “흥. 그러니까 아버지가 애 때리는 것은 괜찮다 이거죠. 그렇게 맞고 자란 애가 다른 사람을 죽여요. 왜냐하면 아버지를 못 죽이니까. 아버지를 죽일 정도면 어떤 애인지 알아요? 내가 왜 아빠를 못 죽이는지 알아요. 아니.. 죽여버릴 거에요.” 영화는 뜻밖에도 남지현의 가정폭력의 케이스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가 신문사회면에서 언젠가 읽어봤음직한 그들 고상한 가족의 숨기고 싶은 비밀 말이다. 영화가 계속될수록 남지현의 정서에 동화되기 시작한다. 무기력한 피해자(와 그 가족), 감옥 가서 적당히 살다가 나오는 가해자의 현실에 대한 분노. 

송혜교 케이스: 용서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송혜교는 남지현의 외침에 다시 한 번 길을 돌아본다. 이제 개과천선하여 고등학생이 되어 착하게 살고 있을 거라고. 자기가 그렇게 뛰어서 탄원서까지 썼고 소년은 풀려나서 학교생활을 열심히 할거라고. 그런데 알고 보니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 소년은 최근 친구를 죽여 소년원에 갔단다. ‘이건 아닌데...’  담당형사를 만나보니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사형수요? 10년 만에 모범수로 가석방된 그 사건요?” “푸헐, 그런 경우 90%가 가석방되요.” 그리고 “70%가 재범으로 잡혀와요.” 여기서 말하는 그런 사건이란 끔찍한 연쇄살인, 강간 등을 말한다. 송혜교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용서를 설파했지만 그 뒤꼍에는 자신도 믿지 못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 10년 만에 가석방되어 나왔다는 놈에게 딸을 잃은 피해자 엄마의 말. “자매님은 먼저 용서하라고요? 그렇게 쉽게요? 전 못합니다. 내 딸이 마지막에 어땠을 것 같아요. 그 놈이 마지막에 마음을 돌려먹기를, 반성하기를 얼마나 간절히 생각했을까요. 난 그 생각만 하면.... 근데 그놈은 10년간 감옥에서 반성했다고요? 누구한테요. 나한텐 우리 (죽은) 딸에게 한마디......”

<도가니>에서 “아, 방과 후에 일어난 사건이죠? 그건 우리 교육청 소관이 아니라 시 소관입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분노를 느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우, 그런 일반 법 감정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조화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소년을 찾아 진심어린 사죄의 말을 듣고 싶어하는 송혜교에게 하는 말을 듣게 된다면 말이다.

이정향 감독의 용서란

이정향 감독은 심은하를 캐스팅한 <미술관 옆 동물원>으로 멜로드라마의 새 장을 열었었다. 그리고 도시 꼬마 애의 시골방황기를 담은 <집으로>는 메마른 도시인에게 맑은 공기를 안겨주었다. 그녀가 실로 오랜만에 내놓은 작품 <오늘>은 꽤나 무거운 주제를 내보인다. 일상에서는, 밝은 태양아래에서는, 십자가 아래에서는 누구나 공감하는 “먼저 용서하라!”라는 그런 착한 심성에 강한 의문부호를 던지는 것이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도 전도연은 미친 듯이 주님을 찾고,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그 용서는 고통의 도피수단이었던 것이다. 이정향의 <오늘>도 그러하다. 끔찍한 과거에서 먼저 달아나고 싶은 피해자 가족의 마음. 주님의 은총 밑에서 애써 웃고 애써 착해지려는 자신만의 위안. 송혜교는 그렇게 방안에 갇혀 용서하고 그렇게 살아가는데 남지현은 그런 ‘너무나 쉬운 용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관객은 영화 중반에 들어서면 송혜교의 심적 변화나 이정향의 의도를 간파할지 모른다. 남지현은 아버지를 용서하고 싶은지 모른다. 송혜교가 먼저 그러했듯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송혜교가 파란색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마구 밟는다.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달리다 보면 트라우마를 잊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리고 극장을 나서는 관객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것이다. “용서는 누가 하지? 언제 하지?” 분명 <오늘>은 아닐 것이다. 10월 27일 개봉예정. (박재환, 2011.10.8. 부산영화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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