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궁 - 제왕의 첩] 크라잉 게임 (김대승 감독 The Concubine, 2012)

2019.09.06 07:44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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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나눠가질 수 없다!

최근 극장에서 개봉된 김대승 감독의 <후궁-제왕의 첩>이 화제이다. 김대승 감독은 <번지점프를 하다>라는 가슴 저미는 노스탤지어 순애보로 호평을 받으며 감독데뷔를 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어서 <혈의 누>라는 굉장히 재미있는 사극으로 충무로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가 <가을로>를 거쳐 내놓은 네 번째 감독 작품이 바로 <후궁-제왕의 첩>이다. 제목에서부터, 그리고 조여정의 포스터 사진 때문에 이 영화는 기자시사회 이후 내내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 화제성에 걸맞게 흥행스코어도 좋았고 말이다. 물론 조여정의 뒤태를 능가하는 깊이와 심오함과 이야깃거리가 있는 영화가 바로 <후궁>이다. 재미가 아주 좋으오~

왕의 여자, 여자의 왕

예로부터 왕좌는 절대권력이었다. (정찬)은 왕이 되고 아우 성원대군(김동욱)은 말 타고 사냥이나 하며 소일한다. 그 아우는 영문도 모른 채 권력쟁탈전의 한복판에 떨어진 최대피해자였다. 어려서 불에 타 죽을 뻔 했으니 말이다. 그 때 남은 화상 자국이 냉혹한 권력싸움의 본질을 가르쳐준다. 어느 날 사냥하다가 참판 댁에 머물게 되고 그곳에서 참판의 딸 화연(조여정)의 화색에 끌리게 된다. 연정의 마음을 펼치기도 전에 화연은 왕의 후궁으로 입궐하게 된다. 그런데 화연에게는 이미 마음을 둔 남자 권유(김민준)가 있었으니. 화연은 권력도 싫다며 권유와 야반도주를 하고 오두막에서 마지막 사랑을 불태우는데... 결국 잡힌다. 감히 왕의 여자를 넘보다니. 권유는 생의 대가로 치욕스런 형벌을 받게 된다. 후궁이 된 화연. 그런데 왕이 갑자기 죽고, 성원대군이 권좌를 잇게 된다. 이는 대비마마(박지영)의 무서운 간계가 있었으니. 갑자기 왕이 된 남자, 선왕에 이어 후왕까지 손아귀에 진 여자, 그런 왕과 왕비를 동시에 갖고 노는 대비마마, 남성을 잃고 궁에 들어선 옛 남자, 그리고 이런 남자 저런 여자까지... 궁궐은 떨치지 못한 사랑의 집착과 놓칠 수 없는 권력에 사로잡힌 인간 군상들로 어두운 죽음의 그림자가 떠나지 않는다.

TV사극 <조선왕조실록>에서 여러 차례 극화된 궁중드라마와 중국영화 <황후화> 등에서 익히 보아온 왕과 왕비의 이야기는 백성을 널리 이롭게 하려는 왕족들의 고뇌나 종묘사직의 영원한 보존을 위해 불철주야 주청 올리는 만조백관의 성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태자가 왕이 되어야 우리 가문이 살아남고, 오늘밤에는 왕의 수청을 들어야 외족이 흥하게 되는 그런 정욕의 드라마가 본질이다. 민초들이 보기엔 가슴 아픈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후궁-제왕의 첩>은 바로 그런 구중심처, 궁궐음모극의 엑기스를 제대로 보여주는 드라마이다. 이 이야기가 어느 나라, 어느 왕조를 배경으로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왕의 시대에, 인간의 욕정이 꿈틀거리고 살아있는 한 언제나 존재했던 비밀의 공간의 다 알려진 이야기이니 말이다.

선왕 - 후사를 이어시오

누가 뭐래도 왕은 왕이다. 그러나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어마마마의 힘 때문이었다. 왕좌에 있지만 그의 역할은 후사를 생산하는 것일 뿐. 백약이 무효하고 백 가지 민간요법이 통하지 않을 경우는? 그래서 왕위를 이을 수 없다면? 그건 왕이 아닌 셈이다. 그런 상상력은 중국의 강희제도 조선의 정조도 암살당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광범위하게 퍼지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후궁 - 제왕의 첩

()왕이 태자를 낳을 수 없다니. 그럼 왕의 비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왕의 후사를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건강(?)한 후궁이 권력의 핵심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조여정은 왕의 여자로 간택되기 전에 이미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니. 왕의 몸을 얻고, 왕의 마음을 얻은 여자는 자신의 마음을 실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궁궐엔 담이 높고 적이 많다.

후궁의 무수리

가진 자의 욕망과 잃은 자의 분노가 들끓는 이 드라마에서 맹랑하게 소용돌이 한 복판에 뛰어드는 불나방이 있다. 조여정의 몸종에 불과했던 조은지이다. 그는 우연찮게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왕의 성은을 입게 되고 바래서는 안 되는 욕망을 키우다가 제 명에 못 살게 된다. 조은지에게 없었던 것은 외척이나 내시 무리의 도움이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더 영악하거나 더 예뻤으면 그 또한 33번째 후궁으로 성공했을 것이리라.

대비마마 - 내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야

궁중 드라마의 핵심은 왕의 후사(後嗣) 이다. 선왕 정찬은 대를 이을 수 없다. 왕손이 없다는 것은 대비마마에게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별 수를 다 써보아도 태자를 생산할 수가 없을 때 대비마마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는? 왕을 죽이고 왕의 동생을 새 왕으로 즉위시키면 되는 것이다. 측천무후나 서태후의 이야기에서 많이 보아온 냉혹한 어머니 상이다. 모성애란 최고 권력의 맛을 모르는 아래 것이나 느끼는 감정인 셈이다.

- 왕의 여자, 여자의 왕

왕의 동생으로 태어난 김동욱은 결코 왕이 되고자 한 적이 없다. 살아남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한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았을 것이다. 중국 작가 이월하의 역사소설(강희-옹정-건륭)을 보면 왕이 된 자와 왕위 쟁탈전에서 밀린 형제들의 처참한 살육의 모습을 실감할 수 있다. 절대권력은 형제의 정이나 피의 무게를 넘어서는 것이다. 게다가 배다른 피붙이들의 맨얼굴이란 얼마나 잔혹한가. 왕이 되었지만 자기의 여자를 갖지 못한다. 한 차례 피바람이 몰아친 뒤 자기의 여자를 갖지만 이미 왕의 수명은 다하는 것이다. 궁중 드라마의 본질인 셈이다.

그리고, 내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김민준이 연기하는 내시이다. 그는 왕의 씨를 남기는 대신 끔찍한 육체의 형벌을 받게 된다. 바로 궁형(宮刑)이다. 궁형은 중국역사에서는 꽤나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극형이다. 궁형은 남자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에게도 가해지던 형벌이다. 이 영화에서는 이 계통의 드라마와 관련된 꽤 많은 이야기를 보여준다. 가장 수치스런 형벌을 받은 인간이 살아남아서 행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범인(凡人)이 생각할 수 없는 최악의 복수거나 자신의 목숨을 언제라도 초개같이 내버릴 극한의 정신상태일 것이다. 김민준은 그런 모습을 두루두루 보여준다.

김대승 감독은 <번지점프를 하다>가 보여준 드라마의 깊이와 <혈의 누>가 이룬 사극의 재미를 적절히 버무렸다. 조여정의 몸이 남긴 후폭풍이 워낙 거세어 김동욱의 고뇌와 김민준의 치욕감이 반감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사극의 진화 측면에서 보자면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않은가. (박재환 201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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