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 유토피아를 찾아 (임순례 감독 South Bound , 2012)

2019.09.05 13:53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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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13.3.3.) 임순례 감독의 신작 남쪽으로 튀어가 극장에서 개봉하는 것 같더니 어느새 종영되었다. 같은 한국영화라도 ‘7번방의 비밀베를린같이 블록버스터 급 흥행가도를 달리는 영화가 있는가하면 이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극장에서 사라져버리는 영화가 있다. 하지만 임순례 감독 작품이니 볼 가치가 있고, 김윤석 주연 영화이니 믿을 구석이 있다. 게다가 원작소설이 재미있단다. 오쿠다 히데오의 동명의 소설이다. 원작소설까지 읽고 이 영화를 봤으면 이 영화가 더 재밌거나 이 리뷰가 더 충실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국민연금도 싫고,TV수신료도 내기 싫다 

최해갑(김윤석)은 학창시절 민주화운동 좀 해본 사람이다. 하지만 PD, NL이냐 이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저만치 떨어져 나와 자그마한 찻집을 아지트 삼아 혁명적 일탈을 몸소 실천한다. 젊은 시절에 품었을 화염병 불꽃같은 야망은 소극장의 반도 못 채우는 독립영화 감독의 행동력으로 남아있다.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라는 제목이 보여주듯. 국가안보적 차원에서 보자면 이 남자 사회안정 구현에 있어 절대적 위협분자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국가의 비밀스런 기관의 요원들이 그를 상시 사찰한다. 이 남자가 사는 법은 운동권시절부터 함께한 아내와, 그런 아버지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은 것이 틀림없는 자식들과 공동연계투쟁이다. 최해갑은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체의 현실적 간여와 정기적 수금행위에 대해 반발한다. 

특히 국민연금에 대한 거부감과 TV시청료에 대한 반발심은 대단하다. 그런 일상이 불만에 가득한 그에게 고향 섬마을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셈이다. 가진 자들이 고향 땅을 깡그리 빼앗아 리조트를 만든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 남자 결심한다. 이런 나라의 국민이 싫다고. 그래서 가족들 다 이끌고 섬으로 들어간다. 혁명적 투쟁가와 낭만적 아나키스트의 섬 생활이 시작된다. 쓰러져가는 움막을 아지트삼아 해방촌을 꿈꾼다. 그의 소박하고, 인간적인, 그리고 매력적인 자연친화적 삶에 섬마을 사람들이 따른다. 순박한 순경도 그 뒤를 잇고 마지막에 가서는 그까지 쫓아온 국가 비밀요원도 호응하게 된다. 혁명은 성공할 수 있을까? 

유토피아 만들기 

최해갑 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나중에 얼마나 돌려받을지도 모르는 국민연금 같은 건 내고 싶지 않다거나, 원하지도 않는 뉴스와 보기도 싫은 프로그램 때문에 TV수신료를 강제로떼어가는 작금의 상황이 싫다는 사람.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 체제를 뒤집어놓거나, 딴 나라로 떠나면 된다. 세금이 무서워 이웃나라 가듯이. 최해갑은 일상에서 일탈을 시도한다. ‘개겨도보고, 항의도 해보고, 영화로 떠들어도 보고. 그의 아내도, 아들도, 딸도 그렇게 부조리한 현 상황에 맞서 본다. 동지가 늘면 세상은 변혁시킬 수 있겠지만 낭만적 아나키스트 패밀리의 영향력은 찻집을 벗어나지 못한다. 게다가 그가 맞서 싸워야할 상대는 초등학교의 교장 나부랭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이라는 거악도 존재한다. 아무도 보지 않은 독립단편영화로는, 소주 짝을 가득채운 화염병만으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희망을 품고 배를 타고 청산도 푸른 바다를 가로지른다. 

유토피아 찾기 

그의 투쟁은 성공했을까? 리조트 건설은 중단될까? 민간사찰의 통수는 법의 심판을 받을까? 그걸 기화로 국민연금은 철폐되고, TV수신료는 폐지될까. 그러면 미래의 대한민국은 더 행복해질까. 그 결말에 대해 낭만적 아나키스트 최해갑은 관심 없을 것이다. 아내와 배를 타고 푸른 바다를 지나 남쪽으로 갈테니. 조류 따라 가다보면 파푸아뉴기니와에 도착할지, 아프리카 희망봉에라도 이를지 모른다. 그곳에서 그만의 왕국을 건설할지 모른다. 국민연금도 없고 TV수신료도 없는 세상 말이다. 

우리 안의 유토피아 

이 영화는 원작소설처럼 난감한 현실을 담고 있다. 예전의 학생운동의 전설이 현실을 어떻게 변혁시키려는지 보여준다. 지금은 혁명주의자도 무정부주의자도 아니다. 꿈은 높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동지는 간 곳이 없고 깃발만 나부끼는 암담한 상황이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서는 것은 홍길동의 율도국 건설 만큼이나 현실회피적이다. 결국은 의식 있는 사람들이 공동체사회를 만들어 작은 행복나라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에서 사용된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는 독립영화계 이마리오 감독의 작품으로 KBS<<열린채널>>에서 우여곡절 끝에 방영되기도 했었다. (박재환 201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