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자] 루저, 아니면 히어로! (김민석 감독 Haunters, 2010)

2019.09.02 17:41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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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환, 2010.11.4.) 우월적 유전자라도 지니고 태어난 듯 눈부신 외모를 자랑하는 강동원과 고수가 주연을 맡은 영화 <초능력자>가 다음 주 개봉된다. 이미 신예 김민석 감독의 예사롭지 않은 연출력과 두 배우의 아우라가 창출하는 포스가 보통을 넘는다는 입소문이 파다했기에 <초능력자>의 시사회장은 한껏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강동원은 <의형제><전우치전>으로 흥행에서 연타석 홈런을 날렸고, 고수 또한 제대 후 <백야행> 등으로 안정된 연기력을 보여주며 충무로의 다크호스가 되었다. 분명 <초능력자>는 올 연말 기대되는 한국영화임에는 분명하다.

저주받은 초능력

영화는 초인(강동원)의 어린 시절을 잠깐 보여준다. 금세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우중충한 1991년의 서울이다. 소년은 가정폭력의 희생자이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마구 폭행하고 아이를 두들겨 팬다. 아이는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는다. 소년은 아버지를 처단할 만큼 엄청난 초능력(염력)을 보여준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의 숨은 능력을 어찌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10년이 흐른다. 서울 하늘아래 또 다른 특별한 사람이 있다. 폐차장에서 막일을 하는 임규남(고수)이라는 청년이다. 그는 생일날 교통사고를 당하고 일자리를 잃는다. 그러나 곧 유토피아라는 전당포에서 일하게 되면서 초인과 조우하게 된다. 초인은 여전히 한쪽 발을 절고(의족) 두 눈은 광기에 가득하다. 초인이 한번 눈을 희번덕하면 그 순간 세상의 시간은 딱 멈춘다. 그렇게 초인은 전당포의 돈을 훔쳐간다. 그런데 유독 임규남에게는 그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초인에게는 또 다른 초능력이 있으니 타인의 마음을 조종하는 것이다. 임규남은 초인의 정신감응에 따른 조종을 받아 마치 좀비처럼 변해버린 사람들의 공격을 받는다. 모든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초인과, 그 초인의 초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임규남의 최종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가정폭력이 빚은 초능력

이 영화는 가정폭력이 아동, 그리고 나아가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보여준다. 강동원이 연기하는 초인은 아버지의 폭력으로 어린 시절이 완전히 재가 되어버린 초능력자이다. 소년은 자신의 잠재된 초능력을 영원히 거부하며 단순한 행복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 손으로 애비를 죽여야 했고, 어머니는 그런 아들과 함께 이 세상을 하직하고 싶었다. 요즘 세상에 초능력자는 TV 기인쇼나 라스베이거스의 마술사 노릇만이 유일한 생존방법인 모양이다. 초인은 어린 시절 가족이 해체된 뒤 제대로 배우거나, 따듯한 사람의 정을 결코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허울 대 멀쩡한 강동원이라도 말이다. 그 엄청난 초능력을 가지고도 한다는 짓은 전당포 주인을 ‘freeze' 시켜놓고 금고 속 돈이나 털어가는 꽤나 좀스러운 하류인생을 보여준다. 반면 임규남(고수)은 어떤가. 임규남도 초인과 유사한 인생역정을 가졌으리라. 그가 내민 이력서와 사는 을 봤을 때 그도 일반적인 성장 패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큰 차이를 보여준다. 한 사람은 사회를 증오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또 한 사람은 자기희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적 초능력자

영화 <초능력자>가 보여주는 초능력자는 할리우드 출신의 슈퍼 히어로들과 비교하면 규모와 정서가 완전히 다르다. <슈퍼맨>의 렉터나 <배트맨>의 조커 같은 전 지구적 악당은 아니다. 기껏 해봐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전당포나 터는 소시민적 악당의 공상력을 보여준다. 당연히 그에 맞서는 영웅도 슈퍼맨이나 아이언맨과는 백만 광년 떨어진 존재이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언브레이커블>의 히로인처럼 끝없이 고통에서 허덕이면서도 그 고통을 이겨내는 예수 그리스도적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둘은 영웅이라기보다는 사회적 낙오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초능력자>의 시작은 가정폭력의 희생자이기에 전체 사회를 저주할 운명을 타고난 초인의 드라마틱한 부상에 초점을 맞추지만 의외로 그 초인은 사회순응자 마냥 칩거하고 제한된 초능력만을 사사로이 사용한다. 아마도 그런 그의 능력을 알아보는 임규남(고수)만 없었다면 그는 전당포 푼돈이나 몰래 훔쳐서 호텔에 무전취식하며 여생을 조용히 보냈을지도 모른다. 전체적으로 사회적 패악은 굉장히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죽였고(죽게 만들었고), 10년 뒤 고통을 끝내기 위해 어머니를 죽이고 싶어하지만 끝까지 머뭇거린다. 그는 저주받은 초능력을 받고 태어난 루저의 전형을 보여준다.

더욱 흥미로운 인물은 임규남이다. 임규남이 교통사고를 당한 뒤 퇴원 후 반지하방에서 일자리 찾아 전화하는 장면에서 잠깐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본다. 그 때 창밖 지상의 세상에는 미니스커트의 여자가 지나간다. 감독이 왜 그 장면을 굳이 넣었을까? 아마도 임규남이 거세된 성인이라는 상징일지 모른다. 그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지구에 떨어진 성자일 것이다. (모르긴 해도 그도 꽤 비극적 가족사를 프리퀄로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고수가 눈만 감았다면, 그리고 이어지는 사건들에서 한발 물러나기만 했다면 세상은 의외로 조용해졌을 텐데. 하지만 고수는 세상의 모든 죄악을 응징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기 주변의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고통을 감수한다. 물론, 그 때문에 그의 몇 안 되는 사람들이 희생되고 말지만 말이다.

영화의 잔재미

김민석 감독은 정말 초인고수의 흥미로운 대결구도에 쏠쏠한 잔재미를 집어넣었다. 그것은 한국말은 너무나 유창하게 하는 두 외국인 노동자의 맹활약과 짧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변희봉과 김인권, 물론 홍일점 정은채도 신선한 연기력을 선보인다. 폐차장에서 다국적 노동자들이 긴 테이블에 앉아서 점심을 먹는 장면은 분명히 의도적인 최후의 만찬패러디일 것이다. 물론 예수보다는 끝자락에 앉은 초라한 영웅을 위한 안식이겠지만 말이다.

이 영화를 보면 <엑스맨>시리즈보다는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가 떠오를 것 같다.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루저이고, 영웅이란 결국 찌질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박재환, 201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