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화 속으로] 소년, 전사가 되다 (이재한 감독 71: Into The Fire, 2010)

2019. 8. 31. 06:28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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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환 2010.6.9)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0년이 되었다. 반만년을 같은 민족으로 자처하던 한민족이 38선이라는 인위적인 금이 그어진지 딱 5년 만에 벌어진 전투에서 수백만 명이 희생되었다. 그리고 그 생채기는 너무나 오래, 깊이, 아프게 남아있다. 당시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이제 노년이 되어 역사 속으로, 기억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그리고 올해 영화와 TV드라마로 한국전쟁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것은 꼭 MB정권/천안호가 가져온 우리 사회의 보수화, 우익화 경향은 아니다. 원래 영화판이나, 대중문화라는 것은 계기성 콘텐츠를 기막히게 찾아내어 업그레이드 시키는 동네이니 말이다. 올해 꽤 많은 전쟁영화가 기획, 제작되고 개봉을 준비 중이다. 언젠가부터 잊어진 전쟁으로만 여겨졌던 한국전쟁이 대중문화 영역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 스타트는 이재한 감독의 <포화 속으로>이다.

1950년 8월 11일, 포항여중

영화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인민군이 급습하고 서울이 사흘 만에 점령되고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온다. 국군은 UN군만 애타게 기다리며 낙동강 전선에서 혈전을 펼친다. 낙동강 전선이 무너지면, 부산까지 내몰리고 모두 태평양바다에 풍덩 빠져죽는 일만 남았다. 이때 포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영덕이 무너지고, 군인들은 낙동강 전선으로 몽땅 투입된다. 그러면서 포항여중 학교에는 갓 투입된 학도병 71명만이 남는다. 총을 쏘아본 적도, 전쟁이 뭔지도 모르는 학도병들.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사흘 만에 수도를 휩쓴 막강 인민군을 분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루만이라도 그들의 남진을 막는 것이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다 죽더라도!) 실제 1950년 8월 11일 학도병들은 야수같이 달려드는 인민군을 ‘11시간동안’ 막아선다. 그때의 전사는 포항여중에 비석으로 남아있단다.

2010년, T.O.P, 권상우, 그리고 차승원

영화는 1950년 영덕 전투를 보여준다. 탱크까지 앞세운 인민군의 파상공세에 국군은 무참하게 쓰러져간다. 그곳에는 오장범(T.O.P)이 있다. 얼마 전에 어머니에게 큰절하고 트럭타고 전선에 투입된 학도병이다. 총을 쏘아본 적도, 북한 사람을 본적도 없는 그의 눈앞에서 포탄이 사방에서 터지고 국군들의 사지가 찢겨나가는 장면을 목도한다. 총을 단 한발도 제대로 쏘아보지 못한다. 그리고 살아남은 그는 포항의 한 학교로 이동한다. 트럭에 실려 온 71명의 학도병에게 총 한 자루와 총알 250발을 나눠주고는 ‘정식’ 군인들은 모두 낙동강 전선으로 이동한다. 이제 이곳에 남은 것은 초짜, 학도병 71명뿐. 국가의 안위가 걱정되는 국군 강석대 대위(김승우)는 포항의 운명을 이들 어린 영혼에게 맡겨놓고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한다. “학도병은 군인인가 아닌가?”고 자탄하며. 이후 영화는 순수한 소년이 어떻게 살벌한 전쟁에서 애국자로, 야수로, 전사로 바뀌는지를 보여준다. 얼마 전까지 시시덕대며 싸움질을 하던 동료가 비명에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동질감을 느끼고, 전우애를 갖게 되는 것이다. 

 영화에서 오장범 역할을 맡은 것은 빅뱅의 멤버 T.O.P이다.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대사가 거의 없는 잔인한 킬러 역을 맡아 강인한 인상을 주었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는 신병 트라우마를 간직한 청년으로 거듭난다. 권상우는 개인적 복수심에 불타는 비열한 건달에서 ‘폼생폼사’ 애국자로 거듭나는 드라마틱한 역할을 맡았다. 둘의 화학적 결합은 예측가능하면서도, 극적 긴장도를 배가시키는 절묘한 효과를 나타낸다. 인민군 장교 박무랑(차승원)에게는 이들은 젖비린내는 아이들에 불과하다. 당성을 내세우며 사사건건 최고지도자를 들먹이는 정치군관마저 우습게 아는 차승원에게서 ‘패튼’의 그림자 - 정복심에 불타는 군인 -를  엿본다. 그런 차승원이 ‘젖비린내 나는 아이’와 처음 맞닥쳐서는 주저하게 된다. 당성과 혁명성에 앞서 어이없는 인간성에 멈칫하는 것이다.

고답적 애국심과 현대적 가치관의 만남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한 논란만큼, 그 봉합에 대한 시각도 다양하고 극단적이다. 이 영화에서는 비록 태극기와 인공기가 펄럭이지만 이데올로기의 주장은 없다. 명령과 자의에 의한 진군과 대치만이 군인과 학도병들을 짓누른다. 군사작전에서 보자면 인민군 장교의 행동은 독단적 판단에 의한 엄청난 과오이며, 학도병의 편제는 황당한 호구책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셈이다. 적의 의도는 분쇄되었고 아군은 한숨 돌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후 3년 동안 더 치열한 전투가 이어진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117억 원이란다. <태극기 휘날리며>만큼이나 스펙터클한 화면을 보여준다. 아니 그보다 훨씬 나아진 CG와 특수효과는 전쟁의 생생함을 <라이언 일병구하기>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애국심을 내세우며 감동을 강요(?)하던 전쟁영화가 뜸해진 것은 대중의 정서 탓일 것이다. 이데올로기나 휴머니즘의 일방적 강조는 피곤하니까 말이다. 대신 화끈한 불바다 위주의 시각효과, 아니면 아예 피아의 구분이 필요 없는 고귀한 인간성의 발현을 좋은 영화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 보자면 이 영화는 애매하다. 적과 아군이 분명하고 어쨌든 아군이 이기는 구닥다리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용감한 박 대위나 김 상사 대신에 어제까지 펜을 들고 공부했을 학생들이 총을 들고는 람보가 되어버리는 것은 할리우드 스타일이다. 아마도 이것은 이재한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라기보다는 각본에 참여한 제작자(아이리스의 제작자이기도 한) 정태원 입김인 듯하다. 구국의 열정에 불타는 학도병의 희생은 한 줄 기사, 하나의 비석으로도 끝나버리는 것이 요즘 세태이다. 영화의 흥행을 위해서는 플러스알파가 필요한 것이다. 수출까지 염두에 뒀다면 말이다.

전쟁은 끝났다. 전쟁의 기억은 많은 사람의 뇌리에서 이미 봉인되었다. 이 영화는 어느 정도, 아니, 예상 밖으로 큰 흥행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된다면 정작 보여주고자 했던 ‘71명의 애국심’보다는 다른 학습효과가 있을 듯하다. 6.25는 실제 있었고, 인민군은 용감했고, 한국은 학도병까지 처절하게 싸웠으며, 마침내 태극기가 휘날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가끔 삼일운동이 몇 년에, 625가 언제 일어났는지 모른다는 청소년에 대한 기사를 읽을 때마다 "진짜 그 정도일까" 생각했는데  한류 톱스타 ‘T.O.P’와 ‘권상우’가 중요한 가르침을 준 셈이다.

사족. 이 영화가 급하게 후반편집을 마치고 지난 달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최초 시사회를 가졌었다. 그런데 영화 인트로 장면에서 사단이 났다.  “해방된 지 얼마 후,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되고....”라는 자막이 흐르고 불타오르는 지도로 급박한 정세를 보여주는 흔한 오프닝이다.  그런데 그 지도엔  ‘동해’가 ‘Sea of Japan'(일본해)로 표기되어 있었단다. 그게 나중에 한국에 알려지면서 일부(혹은 전체?) 네티즌의 항의가 있었고 영화사는 신속하게 사과성명을 내고 그 장면을 수정하였다. 이재한 감독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시인하고서 말이다. 영화사 측은 굉장한 홍보효과를 노리고 특별히 미국 대학에서 시사회를 가졌는데 엉뚱한 논란만 일으켰다. (학습효과가 하나 더 있다.  영화인들도 '독도는 우리땅'만큼이나 '동해' 명칭에 주의를 기울여라는 것이다!)  영화 개봉 전에 포털사이트의 영화 소개페이지를 찾아보니 빠지지 않고 나오는 네티즌의 말이 있다. “Sea of Japan 영화, 망해라!”라는 것이다. 남북한이 싸운 한국전쟁의 의미보다는 일본이 우리 공동의 적이라는 일부(혹은 전체?) 네티즌의 정서를 대변하는 듯하다. 미래지향적으로 보자면 아주 좋은 정서겠지만.  (박재환 201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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