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옆 동물원] 그들이 쓴 것- 커플 시나리오 (이정향 감독 Art Museum By The Zoo, 1998)

2019. 8. 30. 12:34한국영화리뷰

반응형

0123456789

(박재환 1999.1.1.) 부산에서 태어난 나는 어릴 적 아버지 어머니 손잡고 금강원이란 곳에 갔었다. 금강원이란 곳은 부산 금정산의 자락에 있는 유원지이다. 그곳엔 동래동물원이 있었다. 그곳에 들어서면 우선 물개들이 헤엄치고 다니는 커다란 풀장이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가면 하마가 있었다. 하마는 언제나 하품을 하고 있었다. 입이 이~~렇게나 컸었다. 하마가 크게 하품하면 사람들은 입으로 돌멩이며 깡통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 국민학교 졸업할 즈음 그 하마가 소화불량으로 죽었고, 해부했을 때 위에서 온갖 잡동사니가 쏟아져 나와서 우리나라 인간들의 잔인한 호기심을 욕하는 것을 보았다. 

그 동물원 옆에 식물원이 있었다. <요람을 흔드는 손>에 나왔던 커다란 글라스로 지은 온실이 있고, 온갖 식물들이 있었을 터이다. 해마다 봄이면 이곳 식물원에서는 예쁜 모델들을 불러다가 시민 사진촬영대회란 것이 열렸었다. 한 해는 최진실이 온다고 큼직하게 광고가 되었다. 당시 최진실이 한참 뜰 때였으니, 그 소동을 어찌 여기서 다 표현하리오. 나도 그날 구경 갔었다. 물론 최진실은 머리꽁지조차 구경하지 못했다. 하지만, 부산에는 동물원 옆에 미술관이 없다. 대신 부산 용두산공원에 올라가보면 조그만 갤러리가 있다. 

그리고 오늘 이정향 감독의 <미술관 옆 동물원>을 보았다. 영화는 무척 재미있었다. 이상한 일로 한 집안에 있게 된 남과 여의 이야기가 아기자기하게 진행된다. 있음직한 어떤 사건도 결코 일어나지 않고, 들어갈 것 같은 동화적인 내용도 없다. 이상하기 그지없는 기묘한 동거는 전혀 뜻밖의 효과를 낸다. 

이러한 공간에 초대된 관객은 남자의 과거와 여자의 과거가 적당히 버무리는 이야기와 그들의 미래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것은 시나리오처럼 고쳐질 수가 있다. 비록 가상이지만 대리 만족, 대리 성취가 가능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이름부터 얼마나 촌스럽고, 또한 사랑스럽냐. 춘희가 뭐냐. 철수는 또 뭐고? 

여하튼 촌스런 이름만큼 괄괄한 그리고 순진한 우리의 여주인공 춘희는 오늘도 남들 결혼식 비디오촬영에 열심이다. 그리고 식장에서 주례 따라온 국회의원 보좌관-안성기-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의 아파트에 철수라는 휴가 장병이 들이닥친다. 철수에게는 이 집안이 그의 애인 집이었는데 어느 사이 주인이 바뀐 상태. 철수는 무작정 눌러 앉아버린다. 

춘희와 철수의 기묘한 1주일간의 동거는 여태 보아온 그 어떠한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궁금증과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남자는 다혜를 어떻게 할 것이고, 여자는 안성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이들을 연결시켜줄 것이 과연 무엇일까? 이정향 감독은 색다른 이야기를 뽑아낸다. (지금 와서는 이정향 감독의 대학교 3학년 때 작품인 초코렛CM송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둘은 처음엔 어울리지 않지만, 1주일간의 집중동거를 통해 상대에 대해 조금씩 호감을 느끼게 될 것이고, 내일을 기약하는 기쁜 마음에 별거에 들어간다. 아이고 맙소사. 그럼 섹스도 안 해? 키스도 없어? 그런 영화가 흥행이 될 것 같아? 물론 된다. 심은하가 나오니까. 

어쨌든 이정향 감독의 아기자기한 이 영화는 심은하 보러 왔는지 철수 보러 왔는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이 슈운지 못잖은 순정영화 감독이 탄생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이정향에게 그런 플레임을 씌우진 말자. 이제 첫 작품이니 말이다. 이정향 감독의 아기자기하고 보고 편한 영화, 호감이 가는 두 번 째 작품을 기대한다. 심은하가 예쁜 것은 이 영화에서도 증명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