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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 사랑의 접속 (장윤현 감독 The Contact , 1997)

한국영화리뷰

by 내이름은★박재환 2019. 8. 3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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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1999.12.26.) ...... 누구에게나 개인적인 기억을 가진 사적인 영화를 하나씩은 갖고 있을 것이다. 그 영화는 그녀와 처음 본 영화였다든지, 그 영화 촬영할 때 그 옆에 있다가 여자주인공에게 사인 받았다든지. 아님 불행히도 그 영화 본 다음날 깨어졌다든지. 어쨌든 이 영화에도 나에겐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다. 

내가 이전에 다니던 회사의 한 여자 동료가 생각난다. 한석규가 지금은 넷츠고 광고모델이지만, 이 영화에선 유니텔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 개봉할 즈음해서 유니텔에서 펼친 이벤트 중에 그런 것이 있었다. 온라인상에서 만난 사이버커플 이야기 공모였을 것이다. <접속>에 나오는 한석규가 사용하던 노트북이 경품이었다. (영화 끝나고 올라가는 자막에 유니텔과 더불어 삼성전자가 있는데 아마 그 노트북을 찬조한 모양이다) 놀랍게도 내 회사동료가 1등하여 그 노트북을 받았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것은 세월이 흐르면서 영원한 것은 없다고 노트북 밧데리 고장나기도 전에 그 둘은 헤어졌다고 하더구나--;) 물론 그들에겐 그럴 이유가 있었겠지만 인연치고는 조금 아쉽다.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선 말이다. 요즘 젊은 세대, 아니 사이버 제너레이션은 그런 모양이다. (물론 나도 그런 세대이고) 소비지향적이며, 찰라적이며, 감각적이며, 자기중심적인.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정말 따뜻한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접속> 감상문! 

사실 <접속>보다 일본영화 <하루>를 먼저 보았었다. 그리고 곧 <유버갓 메일>이란 미국영화가 개봉될 것이고 말이다. 오래 전에 <하루>를 보고 나선, 사이버 문화와 표절에 대해서 좀 쓸까 했었는데 오늘 실제로 <접속>을 보고 나서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다. 이 영화는 참 잘 만든 멜로드라마이고, 굳이 표절이라고 단정 지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공통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법 많다. 이른바 정황증거, 이미지의 유사성, 스토리 전개의 통속성, 뭐 그런 것 말이다. 주인공은 각자의 과거가 있고, 그것은 역시 현재진행형이라는 이상한 모습을 띠고 있고, 어느 순간까지 상대에게 마음을 열어놓지 않는다. 그러다가 모든 것을 다 말할 만큼 상대에게 신뢰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굉장한 기대와 흥분으로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일본영화 <하루>에선 중요한 소도구로서 캠코더가 쓰였다. 단 한번 스쳐지나가는 먼발치의 서로를 캠코더로 찍어서 주인공은 주인공대로 야릇한 만남의 느낌을 갖게 되고, 관객은 관객대로 "저 둘은 언젠가는 꼭 만나게 되리라"라는 희망을 심어주게 된다. 

<접속>에선 단연코 음악-음반-이 최고의 소도구이며 영화진행의 힘이 된다. 언제였던가 지난해 하반기 내내 거리에서 지겹도록 들었던 <러브 콘체르트><페일 블루 아이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우선 깔끔함과 정겨움이 있다. 깔끔함이란 PC통신에서 이루어지는 연애을 다룸으로서 가능한 그 주변부의 세련됨과 모던한 느낌을 캐치해내었다는 것이다. 한석규는 방송국 심야 음악프로의 PD이다. 여자는 홈쇼핑 텔레마케터이다.(잠깐 보이는 사무실로 봐서는 케이블TV 39채널이었다) 나야, 라디오 프로는 아주 오래 전에 김세원의 영화음악실 (그리고 김희애의 인기가요인가 희망가요인가하는 심야방송)밖에 애청을 안 했었지만 그런 인기장수 프로의 힘은 안다. 아마 지금도 하나 모르겠다만 전영혁인가 하는 사람의 프로는 어쩌다 밤늦게 주파수 맞추다 듣게 되면 깜짝 놀란다. 저런 음악 켜주고도 여태 퇴출 안 당했네..라고.. 한석규도 그런 타입이다. 20분짜리 음악, 30분짜리 음악을 켜주고 윗분들에게 질책을 당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호흡이 너무나 짧다. 그래서 라디오 방송의 음악은 4분 이내여야 한다. 지난주 텔레비전에서 <닥터 지바고>를 했었는데 그냥 반씩 잘라 이틀에 걸쳐 방영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시·청취자들은 풀타임으로 한 작품을 다 감상할 안목이 없다고 방송국 사람들은 판단한 모양이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이 옳다는 것은 나도 느낀다. 이미 이 글이 한 페이지를 넘어가고 있음으로 해서 이미 그나마 얼마 없는 독자는 나가기버턴을 누르고 더 짧고 더 감각적인 글을 찾으러 할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다..... 

어쨌든 한석규는 간도 큰 PD이다. 그런 취향의 음악을 그렇게 보내고 있다. 이 방송국에서는 그런 한석규PD를 은근히 좋아하게 되는 추상미라는 구성작가가 있다. 물론 이 영화에서 가장 복잡한 인간관계를 나타내는 것은 한석규-추상미-그리고 한 고참 PD의 삼각관계인데 영화의 깔끔함에 반하는 통속적 구성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10대적 불장난이 아닌 적어도 30대 여피의 이야기를 다룸에 있어서는 성공한 소재이고 괜찮은 설정 같았다. 일반 직장에선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는 아니더라도 있을 수 있는 연애감정이며 사람 사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전도연은 텔레마케터이다. 

한석규는 대학시절 선배의 애인을 사랑했었다. 군에 간 선배는 죽었다. 한석규는 선배가 자기 때문에 자살했을 것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선배 애인은 그 후 한 번도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 한석규는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만나고 싶었다. 그녀가 좋아하던 음악 Velvet Underground"Pale Blue Eyes"를 들으며 말이다. 그의 유니텔 아이디가 해피앤드이다. 전도연은 여자친구와 한 아파트에 산다. 그 친구의 애인-김태우-이 너무너무 마음에 든다. 친구의 애인을 짝사랑한다는 게 얼마나 가슴 아픈지는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면은 누가 뭐래도 난, 전도연이 몰래 그 남자의 구두를 신어보다 화들짝 놀라는 그 장면이다. 전도연의 유니텔 아이디는 여인2’이다. 전도연에게도 Velvet Underground"Pale Blue Eyes"노래에 얽힌 사연이 있는지라 둘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될 것이다. 채팅으로 둘은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다. 

심야방송의 PD 하나와 쇼핑채널의 여자하나가 만난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질 것도 영화가 달라질 것도 사실 없다. 하지만, 이러한 둘의 만남이 얼마나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동정과 호감을 갖게 되는지는 관객동원이 증명해줄 것이다. 둘은 현실에선 서로 가슴 아파하는 사랑을 두고 살아간다. 한석규는 추상미 때문에 또 한 차례 현실을 느껴야했고 말이다. 전도연은 김태우를 만나러 포항까지 가지만 자신의 맘을 종잡을 수가 없다. 

마지막에 우리는 왜 한석규가 전도연을 만남에 있어 머뭇거리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다. 실연 혹은 그와 유사한 상처를 가진 사람은 결코 쉽게 또 다른 상대를 만나기를 주저한다. 사랑은 그렇게 가고 또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리라. 이 영화는 사이버의 찰나적 사랑이 아니라, 젊은 한 시절의 고뇌를 엮어나간 90년대판 <겨울 나그네>인 셈. 

채팅에서 만난 사람이 실제로 만나는 것이 그렇게 즐거운 일인 것은 아니다. 오래 전에 대학 영어독해 교재에서 보았던- 아니 고등학교 영어교과서였던가... 한 군인이 오랫동안 펜팔을 하던 여자를 만나게 된다. 결국은 서로는 무척 설레며, 한편으로는 두려워한다. 편지로는 무슨 이야기든 다 했지만, 이제 만나게 되니 서로에 실망을 하게 되며 끝날 것 같은 두려운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여자가 마지막으로 쓴 편지에는 그런 남자의 마음을 알고 있음직한 여자의 마음이 묻어난다. "전 빨간 모자에 손에는 "키노" 잡지를 들고 있을게요^^. 아니다 싶으시면 그냥 지나치세요..." <하루>에선 영어신문과 디스켓을 들고 있었다. 설렘과 희망을 키보드와 모니터에 싣고 오늘도 채팅실로 향한다. 영퀴방 말고.. 내년 크리스마스는 정말 따뜻했음 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 이어.  (박재환 1999.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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